아리우스파와 네스토리우스파 논쟁이 끝나고 난 이후 드디어 단성론이 등장하였다. 처음 이에 대한 주장을 하고 나선 것은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 에우티케스의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에우티케스는 신성과 인성이 융합되었으며, 인성은 마치 포도주가 바다에 빠지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인성도 신성에 흡수되어 하나의 본성만이 남았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런 단성론은 로마 교회의 반발을 사, 결국 교황 레오 1세의 논박[1]에 따라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에우티케스의 교리가 단죄되고 삼위일체론 교리 및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겸비를 선언한 신조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단성론 논쟁은 칼케돈파 교회에서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