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1 21:59:25

군기



1. (군대의 기강)
1.1. 개요1.2. 특징1.3. 변질1.4. 관련 문서
2. (군대의 깃발)
2.1. 개요2.2. 고대~근대2.3. 근현대
3. (군대의 사기)

1. (군대의 기강)

1.1. 개요

Military Discipline

군기는 군대의 기강을 말하며,[1][2] 강군(強軍)의 필수요소다.

1.2. 특징

병사를 자식처럼 부르면 어디든 따를 것이다. 병사를 사랑하는 자식 대하듯 하면 목숨을 바쳐 충성할 것이다.
손자
군기(軍紀)는 군대의 기율(紀律)이며 생명과 같다. 군기를 세우는 목적은 지휘체계를 확립하고 질서를 유지하며 일정한 방침에 일률적으로 따르게 하여 전투력을 보존·발휘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군대는 항상 엄정한 군기를 세워야 한다. 군기를 세우는 으뜸은 법규와 명령에 대한 자발적인 준수와 복종이다. 따라서 군인은 정성을 다하여 상관에게 복종하고 법규와 명령을 지키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시행령 제2조(기본정신)
군인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 중 하나로, 군인복무기본법 시행령의 서술과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휘관의 명령이 이행되도록 하며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군은 민간 조직이나 다른 공무원 조직(경찰 등 일부 특수한 직렬은 예외)과 달리 폭력을 직접 다루는 집단이다. 이러한 폭력이 올바르게 통제되지 않아 개별 군인이 임의로, 또는 사사로이 폭력을 사용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민간인에 대한 폭행이나 약탈 등의 범죄가 나타날 수 있고, 더욱 심하면 쿠데타가 일어나 국가 체제가 완전히 붕괴될 수도 았다. 또한 전시에는 지휘관의 명령을 무섭다거나 단순히 수행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따르지 않는다면 군의 체계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며 전쟁에서의 승리도 보장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군은 다른 조직과 달리 '군기'라는 이름으로 집단의 규율을 강조한다. 이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것인데, 고대에도 전투 시 지휘관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대열을 이탈하거나 민간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경우 엄벌에 처했다.

이처럼 군기는 군대의 특성으로 인한 문제를 막고 군대의 존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 개념이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평소 군법에 의거하여 철저한 신상필벌을 통해 군기를 다져 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지휘체계와 원리, 원칙에 따른 군기 확립은 군대로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근은 과거에 군기 확립을 위해 절대 복종을 요구했으나, 2000년대 중후반부터 '절대'를 삭제하고 "명령에 복종한다"라는 문구를 주로 쓴다. 국방부에서 발간하는 정신전력교육 기본교재에도 군대의 특성을 서술할 때에는 군대 계급의 특수성은 직무에 관련하여 절대적 복종을 요구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조직으로서의 군대의 일반적 특성을 서술한 것이며, 이어지는 문단에서 복종해야 하는 명령의 요건, 따르지 않아도 되는 명령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한다. 이와 함께 개별 전투원이 자발성과 창의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지휘관의 잘못된 명령에 대해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군기가 확립된 군인이라도 상관의 법규에 반하는 명령, 직무와 무관한 명령은 따르지 않을 수 있다. 상관의 정당한 지시에 불응하는 항명과 달리, 이 경우 정당한 사유에 따른 거부 의사를 밝혀야 하며 계속 상관으로부터 위법한 명령, 지시가 강요되면 차상급 지휘관에게 보고하거나 군 내 권리구제 절차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 애초에 위법적인 명령을 명령에 절대복종한답시고 그대로 따르면 따른 본인 역시 처벌된다. 대표 사례로 나치 독일일본 제국의 군인들이 있다. 이들 역시 위법적인 명령을 따른 것 때문에 종전 후 연합국에 의해 전범재판을 거쳐 처벌을 받았다.

1.3. 변질

군기의 정상적인 의미에서 왜곡되어, 보통 한국군에서 요구하는 군기라는 것은 이른바 '똥군기', '갑질'로, '자기 앞에서 긴장한 모습으로 굽신굽신하면서 "까라면 까라" 식의 말도 안되는 요구를 따라 주는 것에 가깝다.[3] 그러나 이러한 똥군기를 요구하는 인간들 앞에서 군의 존재 목적, 인권, 안전 등의 원론적인 가치를 언급하면 되려 큰일난다. 이러한 지적 자체를 군기가 해이해졌다고 생각하여 더욱 심한 부조리나 가혹행위를 당할 뿐이다. 게다가 상급자의 부당한 요구에 맞춰줘 봤자 국가나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상급자의 부당한 이익이 충족되는 것뿐이니 이런 똥군기를 강요받는 입장은 난처하기만 하다.

이러한 똥군기가 아니더라도 군에는 군기를 명목으로 독선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상식에서 벗어난 요구를 하는 상급자들이 많다. 이를테면 작전(심지어는 평시의 훈련, 부대활동)을 계획하면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을 군기가 빠졌다고 생각하거나, 군기를 갖추기 위해서라면서 복장을 통일하거나 생활관 내 관물의 각을 잡도록 강요하는 식이다. 수많은 연구들은 평시에는 민주적인 리더십이 가장 좋다고 밝히며[4], 군의 양성, 보수교육에 포함된 리더십 과목에서도 항상 언급되는 문제임에도 전혀 고쳐지지 않는다.

군기를 요구한다는 상황을 외부인의 눈으로 살펴보면 상급자를 위한 비위맞추기일 뿐이다. 전투 대비나 기강 유지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단지 선임의 맘에 안 든다는 이유만으로 군기 빠졌다는 말을 쓰는 것이다.
  • 후임의 말투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꼬투리를 잡지만, 실제로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리 예절을 잘 지키더라도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갈굴 수 있다.
  • 청소가 더럽다면서 꼬투리를 잡지만, 실제로는 아무리 깨끗하게 해도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갈굴 수 있다.

또한 굳이 일선 부대들의 병영생활이 아니더라도 어떤 주제가 높은 사람의 눈에 거슬릴 때에도 등장한다. 간단한 예를 들어 전투복 상의 넣어 입기. 미군영국군 등 선진 병영문화를 자랑하는 외국군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는 한국군 내에서도 미군처럼 바깥으로 빼서 입자[5]고 수 차례 건의가 올라왔으나, 국방부는 그 때마다 위대한 장군님들의 폼이 안 난다는 이유[6]로 취소되었다. 그러다가 다행히 신형 디지털 전투복이 보급되면서 국방부가 개정된 훈령을 발표해 상의를 바깥으로 빼내어 입게 되었다.

이러한 왜곡된 군기는 일반적으로 병적으로 군기와 정신력에 집착하던 일본군에서 그대로 계승 것으로 인식된다. 구 일본군에서 그랬던 것처럼 비합리적이고 온갖 웃기지도 않는 조치를 모조리 정당화시킬 수 있는 만능 개념이 되어버렸으며 실제로도 인원, 장비 부족 등 여러 제한사항으로 할 수 없는 일을 "군기가 빠져서 한다"란 식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정작 현재 일본에서는 군기라는 단어 자체를 사람들이 모른다. 쉽게 말해 사어(死語)가 된 것. 그런데 한국에서는 계속 쓴다.

의미가 '왜곡된' 똥군기는 육해공군, 전후방 구분 없이 발생한다. 육군 최전방에서도, 2작사 최후방에서도 똥군기가 가득찬 부대는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해병대는 최고수준의 똥군기를 자랑한다. 해병대는 공군비행학교 습격사건의 재조명과 빤스런, 2020년도 월북사건으로 이미 이미지 날아갔다. 일반 부대가 그러면 질책받고 끝나겠으나 "귀신잡는 해병대"라고 동네방네 자랑을 해두고 뚫린건 실드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2010년대 후반 들어 징집률이 90% 가까이 치솟음에 따라 그에 맞춰서 원래 군대를 가지 말아야 할 사람들까지 입대하게 됨으로써 군기가 떨어져서 사건사고가 일어나는것처럼 보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사건사고가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예전에는 군 밖으로 퍼지지 않을 소식이 쉽게 전파되고 공론화되기 때문이며 실질적인 부조리나 가혹행위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감소하였다. 휴대폰 사용으로 인해서 다양한 부조리가 공론화되고, 지휘관들도 예전애 비해 부대 내 문제를 엄격하게 처리하려는 경향이 늘었다.

그나마 긍정적인 측면은 군 내 뜻 있는, 생각 있는 지휘관들은 민간의 리더십의 영향을 받아 사소한 일을 명령하더라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고 동기를 부여하려고 하는 추세이다. 리더십 항목에 군의 변화하고 있는 모습에 대한 설명이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징병제의 영향으로 군대만이 아니라 민간 사회에서도 군기를 강요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 심지어 가장(家長) 또는 부모가 매우 엄한 집안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으며 이 곳에서 자란 자식들은 당연히 군기 확립 대상 0순위다. 특히 군복무를 마친 아버지들의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7] 군기가 센 해병대 출신은 더욱 말할 것도 없으니. 대학이나 직장, 학교 등에서도 예비군 남학생이나 장교 또는 부사관 또는 병 출신 남자 상사, 교사 등의 경우에는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사회에서의 똥군기는 사회 전체를 병영사회화하므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1.4. 관련 문서

2. (군대의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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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기를 받들고 있는 영국군 근위대의 장병

2.1. 개요

군기령 제2조 (상징등)
군기는 군을 상징하고 그 명예를 표상한다.
군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호되어야 한다.
군대에서 각 부대를 상징하는 깃발. 고대로부터 깃발을 각 부대가 모이는 위치로 삼았기에 부대를 상징하는 물품이 되었다. 군대를 상징하는 깃발도 군기라고 한다. 군기를 꽂으면 그 지역은 점령되었음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단순히 플래그(Flag)라고 부르거나, 또는 컬러(미국식 영어로는 Color, 영국식 영어로는 Colour, (色)을 의미하는 그 컬러 맞다.), Banner, Ensign[8]이라고 한다. 좀 옛날 표현으로는 Standard, Military Standard라고도 부른다.

2.2. 고대~근대

전근대에는 전술전략의 특성 상 군기는 부대의 심장 그 자체였다. 현대엔 그냥 대대 이상 지휘부가 지휘부에 모셔두다가 큰 곳 점령해서 사령부 세우면 꽂아두는 수준이지만, 현대 이전까지는 깃발을 정말 전장에도 가지고 나와서 부대의 중심 그 자체로 삼았다. 메가폰무전기도 없는 고대에 수만 명이 뒤엉켜 싸우는 아수라장에서, 군대가 있어야 할 위치를 표시하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표식으로 쓸 수 있는 물건은 군기가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전근대에는 공통적으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부대 편제는 수백명 단위였고, 이 부대는 진형을 짜서 오와 열을 맞춰 움직였는데, 이때 진형을 짠 한 부대의 병사들을 지휘하는데 쓰인 것이 북, 나팔, 깃발이었다. 당연히 북과 나팔은 소리로, 깃발은 시각으로 병사들을 이끌었다.

이런 지휘체계에서 군기는 부대에서 제일 보호받는 물건이었고, 그런만큼 군기는 부대의 중심에 위치했다. 군기를 잃거나 부러뜨릴 지경이 되면 부대 자체가 중심까지 뚫릴 정도로 와해된 상황이며, 이는 부대를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군기는 해당 제대의 진형을 만드는 구심점 노릇을 하기 때문에, 진형 전투가 존재한 시대에는 병사 개인의 무기 따위 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한 기물이었다. 만약 기수가 쓰러져 군기를 떨어트리면, 바로 옆의 인원이 자신의 무기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주워 들어야 했다. 만약 군기를 다시 들어세우지 못하면 해당 제대가 구심점을 잃고 흩어져버리기 때문에 누군가가 군기를 계속 들고 있는 것은 부대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총기가 등장한 후에도 기관총으로 인해 분대 전투가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군기는 제대의 중심으로 활약했으며, 전열보병 시대에는 최전열이 총탄과 포탄에 쓰러져 가는 중에도 악착같이 생존자가 군기를 다시 들어세워 진격하는 얼핏 기행으로 느껴질 정도로 악착 같은 모습이 흔했다. 척후보병 시대가 되고나면 좀 덜해지지만 여전히 제대 배치의 기준점으로 활용되곤 했다.
파일:Korean-flags-Captured-flag-with-US-Marines.jpg
신미양요때 전리품으로 미 해군이 노획한 어재연 수자기. 전리품으로써 오랜 기간 미국이 소유하고 있으며, 대한민국과 미국이 동맹이 된 지금까지도 대여만 해준 상태이다.[9]
전통적으로 적에게서 노획한 군기는 중대한 전리품으로 취급되며, 어지간해선 반환하지 않았다. 특히 서구에서는 과거 잃어버린 군기를 반환하라 요구받아도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반환하는 일이 없다. 군기 자체가 그 부대의 역사 그 자체인데, 이 군기를 전리품으로 탈취한다면 그 부대는 탈취한 군기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게 되는 것이므로, 그걸 반환한다는 것은 부대의 전통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반환에 매우매우 인색하다.[10] 설령 두 나라가 현재 동맹이 되었다 하더라도 쉬이 돌려주지 않으며, 함부로 반환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서로 용맹을 겨룬 싸움의 증거이자, 승자의 중요한 권리 중 하나로 여겨지기 때문. 고전 시대로부터 이어져오는 유구한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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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인액트먼트 행사에서 재현된 조지 시대그레이트브리튼 왕국군의 군기들. 이 정도 크기만 하더라도 일반 야전에서 들고다니는 깃발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한다.
굉장히 중요한 상징물인 만큼, 아무리 작은 군기라 하더라도 보통은 전혀 작단 생각이 안 날 만큼 크고 아름답다. 전설 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로, 어느 부대는 군기가 너무 거대해서 200명이 달라붙어 옮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200명이 달라붙어야 한다는건 지나친 과장이지만[11] 문화재로 남아있거나 오래전부터 현대까지[12] 사용되는 군기들을 보면 찢기는걸 막고자 아주 두껍게 만들어졌으며 크기가 어지간한 장정을 둘둘 말고도 남을 정도의 너비를 가졌다.

더군다나 이정도의 너비와 무게를 가진 기가 바람에 나부껴도 깃대가 부러지지 않아야 하고 전장 어디서든 볼 수 있게 상당히 높아야 하기 때문에 굵고 길고 튼튼한 깃대를 사용해서 어지간한 성인 남성 두셋이 달라붙어도 들고 옮기기 쉽지 않다.

삼국지중국 사서에서 군대의 수를 몇 기(旗)로 세고는 하는데, 이러한 사정으로 군기 하나가 곧 부대 하나였기 때문에 사용된 표현이다. 그런 이유로 병력에 비해 많이 깃발을 세워 페이크를 거는 장면도 나온다. 바람이 불어 대장기가 부러지니까 싸움에 졌더라클리셰도 있다. 병법에서도 이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절이 나오는데, 대표적으로 오기오자병법에선 "키가 작은 자는 창을 쥐어 체력의 약점을 극복하고 키가 큰 자는 활을 들어 높이의 이점을 살리며, 가장 용맹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에게는 군기를 쥐어주거나 군고(軍鼓)를 치게 하라"는 구절이 있다. 군고를 쳐서 부대에 지시를 내리고, 군기를 들어 부대의 위치를 알려주기 때문에 이들이 제1목표가 되는 일이 잦기 때문.[13]

로마군은 '아퀼라'(독수리를 뜻하는 라틴어)라는 금/은도금한 나무로 만든 독수리 모양 조각을 장대에 단 것을 군기로 썼는데, 군기를 잃어버리고 그냥 도망친 부대에게 당대에서조차 야만적으로 여기던 로마군의 최고 극형인 '10분의 1형'을 내렸을 정도로 군기의 관리를 중요시했다. [14]

전열에 배치되는 최하등급 군기라 하더라도 부대의 중심, 곧 가장 인원이 밀집된 곳에 자리하며, 후퇴할 때에도 구심점이다.[15] 군기가 회수되지 않았다는 것은 해당 부대의 진형이 완전히 무너져 실시간으로 병사들이 썰려나가는 극도로 암울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정상적으로 퇴각하지 않고 도주했다는 소리가 되기 때문. 이런 식의 무질서한 적전 도주는 진형 붕괴의 여파를 도미노 쓰러지듯 확산시켜 전투에 동원된 부대 전체의 파멸로 직결될 수 있기에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반면 전투 후 군기 근방에서 전사한 시체를 발견하면 명예롭게 싸웠다고 대우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주워들어야 하는 군기가 남은 자리 주변에 쓰러진 시신이 있다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부대 최후의 인원이기 때문이다. 더 이상 군기를 회수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한 상황에서도 그 주변을 지킨 것이므로 매우 용감한 행동으로 비춰졌다. 설령 졸전으로 부대가 어이없게 무너진 참사였다 하더라도 군기 주변에서 죽은 자들은, 바로 그 참사를 정면에서 제일 먼저 받아 죽은 자들이므로 용맹함을 인정받을만 했다.

로마군에게 있어 군기는 절대적인 상징으로 군기를 모독 당하는 것 이상의 모욕을 찾기 드물 정도였다. 오죽하면 로마군의 전투사례를 보면 사기가 떨어졌을때 군기를 강제로 최전선에 배치하는 초강경수로 역전한 경우가 많았다. 피드나 전투 때는 로마군 선봉이 팔랑크스의 도산검림(刀山劍林)에 겁을 먹고 나가지 않자, 한 백인대 지휘관이 군기를 뺏어다가 팔랑크스 앞에 던져놓은 것에 자극 받은 병사들이 군기를 되찾기 위해 전열도 안 갖추고 팔랑크스의 정면에 돌격해 와해된 황당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16]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에서는 브리타니아 원정 당시 해안의 강력한 저항에 상륙을 머뭇거리자 10군단 기수가 '''전우들이여, 독수리 군기를 모독시키지 말자! 나는 최고 사령관에 대한 의무를 다 할 것이다'라며 해안으로 나아가자 군단병들 역시 그에 힘을 받아 상륙에 임했다고 한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Return_of_the_Roman_military_standards.jpg
아퀼라를 반환하는 파르티아 사절
아우구스투스파르티아와 국교를 회복할 때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크라수스의 패전으로 빼앗긴 로마군 아퀼라를 반환하는 것'을 들기도 했을 정도로 군기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아우구스투스 치세 말년 토이토부르크 전투에서 전멸한 17, 18, 19 군단의 경우, 양아버지 아우구스투스와 다르게 게르마니아 정벌에 비판적이었던 티베리우스마저 빼앗긴 아퀼라를 되찾기 위한 보복 원정에 나서 게르마니쿠스로 하여금 아르미니우스의 게르만족을 추격해 2개의 군단기를 환수하고 아르미니우스가 살해되고 나서야 전쟁을 관두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가 멸망하는 그날까지 3개의 군단의 서수를 가진 군단을 창설하지 않았을 만큼 로마에게 독수리 군단기는 단순히 군단 한개의 상징이 아니라 로마군 자체의 상징을 의미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앞서 설명한 오자병법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전면전이 펼쳐지면 기수가 항상 먼저 노려지는 대상이였기 때문에 부대에서 가장 용맹한 자가 기수가 되었고, 이 기수가 된다는 것은 대단한 영예로 여겨졌다.[17]
파일:roman flag.jpg
로마군의 군기, 좌측부터 아퀼라, 이마고, 벡실라리움, 시그눔, 드라코.
독수리 군기(아퀼라)를 드는 기수를 "아퀼리페르"라 불렀으며 표범, 곰, 늑대 등 맹수 머리가 달린 가죽을 투구 위에 덮어쓰는 장식을 했다. 또한 아퀼라와 함께 원수정 시대부터 황제의 초상(이마고)를 드는 기수 "이마기페르", 각 군단의 군단기(벡실라리움)을 드는 기수 "벡실라리오"가 아퀼라 양 옆에 나란히 서서 행군했고, 군단 예하 각 코호르스(대대/천인대)는 아퀼라 군기에서 독수리를 로마식 경례를 하는 오른손 모양 조각상으로 교체한 대대기(시그눔)을 드는 기수 "시그니페르"가 편제되어 있었다. 기병대는 길쭉한 용 모양의 군기(드라코)를 드는 기수 "드라코나리우스"가 있었다.[18] 이 군기들은 해당 부대 자체와 동일시 되었으며, 해당 부대기를 기울여 하는 경례는 전장에서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우거나 위기에 빠진 아군 부대를 구원하는 등의 위업을 기릴때에나 하는 최고수준의 경례였다.

이 부대기로 하는 경례는 중세시대를 지나 총기 시대를 거쳐 자동화기의 시대가 된 현대에서도 제식 전통으로 살아남았으며, 특히 의장대 사열식 때 빠지지 않는 퍼포먼스로 활약한다. 의장대란 이름 부터가 바로 군기를 관리하는 부대니까.

한국사에서도 신라군은 옷깃(衿) 색깔을 각 부대별로 통일해서 서로 식별하고 구분할 수 있게 하고,[19] 신라군 공통으로는 이 그려진 군기를 들어 아군을 구분했다고 한다. 고구려군은 붉은 색의 깃발을 사용했다.[20] 백제군은 모두 황색의 깃발을 사용했다는 기록있다. [21]
파일:조선군 좌독기.svg
조선군 좌독기
조선시대에는 군기로 상술된 수자기, 그리고 좌독기를 사용했다. 좌독기는 검은 바탕에 태극팔괘, 성좌가 그려진 깃발로 행진할 때는 주장[22]의 앞에 세우고, 멈추면 장대[23]의 앞 왼편에 세웠다. 수좌기는 장수 수(帥)가 쓰여진 깃발로 지휘관 군영에 세웠던 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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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시모노를 등에 차고 돌격하는 센고쿠 시대 장수의 피규어
근대까지의 일본은 장수가 등에 지고 다니는 군기인 사시모노(指物)를 차고 싸웠다.[24] 물론 시종이 손에 들고 다니기도 했다.

2.3. 근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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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의 국기 게양식. 각종 부대기들이 보인다.
현대에서도 그 상징성만큼은 살아있어 군기를 잃어버리면 그 날로 헬게이트가 열린다. 미 해병대의 이라크전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제너레이션 킬에서 이런 모습이 잘 나타난다. 대대장의 결정으로 인해 대대 깃발이 분실된 것이 알려지자 부대원들이 술렁거리고 대대장은 자신의 경력 중 가장 후회스런 사고라고 말한다.

전투 중에 지휘부까지 털려서 적 부대에게 군기를 탈취당하면 똑같은 방법으로 아군기를 찾아오지 않는 이상 군기를 빼앗긴 부대로 영원히 남게 된다. 때문에 일부 부대는 군기를 탈취당하기 직전의 상태에 도달할 경우 '뺏기느니 없애버리는 게 낫다'는 심정으로 군기를 불태워 버리기도 한다. 특히 군기에 집착이 심했던 일본군이 이런 경향이 심했고 실제로 과달카날에서 전멸한 이치키 지대는 전멸 직전했던 일이 제일 먼저 군기를 소각하는 것이었고 이후 태평양 전쟁의 모든 격전지의 최종 국면은 일본군이 천황이 하사한 연대기를 소각하고 반자이 돌격하면서 전멸하는 형태였다. 장진호에서 전멸한 미7사단 31연대는 미처 군기를 소각하지도 못하고 전멸했고 노획된 군기는 현재 북경 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이러한 조리돌림을 피하고 부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자존심이 군기소각 행위다.
파일:기병4.jpg
군기를 탈취당하면 벌여지는 사태를 아주 잘 묘사한 그림. 영국군의 기병대가 군기를 노획한걸 보고 대육군 장병들이 기겁하는 모습에, 빼앗는 중인 그대로 돌격하는 모습, 기병 돌격에 개박살이 나는 와중에도 기겁하여 말단 병사조차 기겁하고 달려드는 모습이 인상깊다.
군기는 그 부대의 역사와 전통 그 자체이자 그 부대와 한 몸인 상징이기 때문에, 군기를 빼앗기는 것은 부대가 처참히 패배하다 못해 그 중심부까지 비참하게 탈탈 털리는 최악의 치욕을 당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 군기를 빼앗은 부대는? 적에게 대승을 거두고 빛나는 전공을 세운 영예로운 부대라는 영광을 얻게 된다.

지극히 당연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노획한 군기는 절대로 안 돌려준다. 그걸 빼앗은 순간 그 군기는 이제 노획한 부대의 역사와 전통으로 편입되는 것이고, 그걸 내주는 일은 부대가 역으로 치욕을 입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므로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돌려주지 않고 돌려줘도 대여 명목으로 선심 써주는게 대부분이며, 그나마도 대여료를 징수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전리품도 거의 안돌려주는데 군기를 돌려준다? 자국군 부대가 승리를 얻어낸 증거품을 전투에서 패전한 부대(나라)에게 준다는 것은 오히려 티배깅으로 받아들여야 할수도 있는 정도이다. 설령 군기를 가져간 나라와 후일 돈독한 동맹이 되더라도, 그 군기를 돌려달라고 하는 요구는 굉장한 요구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도 힘들고 하기도 힘들다. 위에서 나온 어재연 수자기를 "대여" 형식으로나마 한국에 보내준 것은 미국의 엄청난 선의이자 한미동맹 우호 관계의 상징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다. 당장 유럽 나라들도 과거에 서로 빼앗은 군기들을 지금까지 안 돌려주고 있지 않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군기가 "진짜로" 원래 국가에 돌아가는 것은, 해당 국가가 군기를 노획한 나라와 전쟁을 하여 역으로 전리품으로 탈취한 경우에나 가능하다. 군기를 빼앗긴 부대가, 이전에 군기를 가져간 나라와 전쟁이 다시 터지자 군기를 되찾겠다고 선봉을 자처하는 일은 아주 흔했다.

과거에 장수를 비롯한 군인들이 세운 공로 기록을 보면 '깃대 몇 개를 꺾었다'는 기록이 종종 나온다. 군기를 뺏을 상황이라면 이미 그 군기의 주인이었던 부대가 와해되거나 지휘부를 무너뜨렸다는 말이므로, 당연히 군기를 빼앗는 것 혹은 깃대를 꺾는 것은 적장을 잡은 것에 준하는 큰 전공이었다.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도 마리우스의 아버지가 적군의 대대기를 빼앗아 나폴레옹 앞에 바치자 나폴레옹이 소령이었던 그를 대령으로 특진시켜준 것은 물론 훈장과 남작 작위까지 하사했다는 내용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의 가장 극적인 사례로는 소련전승절 기념식이 있다. 대조국 전쟁 승전 이래 시민들 앞에서 참전 부대들이 탈취해 온 나치독일군 깃발들을 들고 사열하거나, 사열 후 한 곳에 던져 쌓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있는데, 이것은 그야말로 국가 규모 티배깅이라 봐도 무방하다.[25] 히틀러가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을 뛰어넘는 수준의 조롱인 것이다. 그리고 이 조롱에 대해 아무도 문제 삼지 않을 만큼 나치의 만행이 어마어마했다는 산 증거이기도 하다.[26]

군기는 부대 전체를 상징하는 존재인 만큼, 상급부대의 이취임식때는 새로운 지휘관의 지휘에 순응한다는 뜻에서 예하부대의 부대기를 45도로 기울여 경례하는 의식을 치른다.

군기는 부대 지휘관이 있느냐 없느냐를 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장성기 역시 비슷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중대기를 든 한 무리의 군인들이 지나간다면, 그 대열에 중대장이 있다는 뜻이다(단 아침 구보시에는 제외). 해군에서는 기함에 다는 제독/지휘관기가 이 역할을 한다.[27]

그렇다보니 군기를 가지고 장난을 벌이는 것은 엄청난 혼동을 일으킬 수 있어, 아무리 좋은 의도라 해도 자제해야 하는 행동이다. 모 해병 부대에서 전투체육 시간에 어느 병장이 폼 나게 한 번 알통구보 해보자고 중대원을 이끌고 나온 뒤 중대기를 들고 앞장서서 영내 구보를 했다는 전설이 유명한데, 그 광경을 본 대대장이 중대장을 보러 나왔다가 없어서 혼란에 빠졌다.

지휘관 입장에서 자기 부하들이 깃발 갖고 노는(...)정도의 사소한 상황(?)상황에 그냥 웃자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부대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와 있는 것은 절대 정상적인 일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대원이 그 지휘관을 모독하거나, 혹은 하위 지휘관이 상관을 모독하는 하극상으로 비춰질 수 있고, 심지어 항명이나 반란을 의미할 수도 있기에 기겁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므로 군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다만, 이런 장난은 고대로부터 틈나면 있어온 인간의 본능과 같기도 해서, 군율을 심각하게 모독하는게 아니라면 눈 감아 주는 경우가 많다.[28] 심지어 군기를 자랑스럽게 높이 들었다 내렸다하며 화려하게 행진 하면서 장군을 놀려 먹는 구호를 외치는 게 고대 로마 개선식의 전통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국군도 군기(軍旗)를 사용하며(국군조직법 제5조 제1항), 군기의 종류와 규격 및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데(같은 조 제2항), 이에 따라 군기령이 제정되어 있다.

다만 각 군별(軍別)이나 개별 부대가 아닌 대한민국 국군 전체를 상징하는 군기는 아직도 제정되지 않았다. 자국의 정규군 전체를 상징하는 군기를 제정한 나라로는 볼리비아, 브루나이, 조지아, 페루, 포르투갈, 핀란드, 스웨덴, 독일, 덴마크, 아이슬란드, 베네수엘라, 오스트리아 정도가 있는데 대한민국은 아직도 자국의 정규군 전체를 상징하는 군기를 제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국군 문서에 보이는 닻 모양이 그려진 깃발은 대한민국 국군을 상징하는 깃발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방부를 상징하는 깃발이다. 대한민국 국군 전체를 상징하는 군기가 없으니 편의상 대한민국 국방부를 상징하는 깃발을 문서에 넣은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에서는 부대장이 이취임식을 할때 군기이양을 하는데 이때 군기를 이양시 군기를 이취임 지휘관에게 전달하는 사람은 그 지휘관의 직속 상관이 행한다. 예를들어 이임 대대장이 취임 대대장에게 부대기를 전달한다면 여단장 혹은 연대장이 중간에 받아서 다시 주는 형태로 진행된다. 무조건 직속 지휘관이 행한다.

근대 영국군은 (특히 바다에서 쓰는) 국기를 Ensign이라 불렀는데, 국기를 게양하고 휴대하는 직책은 장교 중에서 가장 경력이 짧은 장교가 담당했기에 육해군을 막론하고 하급장교인 를 뜻하는 단어로 확대되었고,[29] 나중에 해군에서는 그대로 소위 계급으로 정착하였다. 이 기수사관을 지키는 군기 호위 부사관(Colour Sergeant)은 뚜렷한 전공을 세워 군에 기여한 이들에게 부여하는 영예로운 계급이자 직책이며, 오늘날에는 영국 육군 상사 계급이다. 한편, 군기호위부사관이 이끄는 군기호위대(colour guard)도 의장대의 일종으로 바뀌었다.

3. (군대의 사기)

군대의 사기. 하지만 맨 위의 군기와 발음도 같고 의미도 아주 비슷해서인지 인지도가 낮다. 무엇보다 공식매체등에서 보통 군의 사기라고 부르는 게 크다.
[1] 사기와는 별개의 개념으로 군기가 잘 잡힌 군대와 사기가 높은 군대는 다른 것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군기가 잘 잡혀 있는 군대가 사기 또한 잘 오른다. 아니, 잘 오른다기보다 높은 사기가 잘 무너지지 않는다는게 정확하겠다.[2] 그리고 군기가 잡혀있어도 사기는 낮을 수 있지만, 군기가 해이한데 사기만 충천한 군대는 없다. 전자의 예가 적벽대전 후 패퇴하여 무사히 도망치기까지의 조조군으로 지휘관의 명령에 제대로 따르는등 군기가 무너졌다 싶은 일은 없없건만, 사기가 바닥이었다. 그리고 후자의 예가 은하영웅전설에서의 문벌귀족의 군대로 평상시에는 지나치게 호전적인데다 생각이라는 것이 없을 정도의 열혈이면서도, 실전에서 약간만 문제가 생기면 바로 사기가 떨어지며 무너졌다. 게르만족이나 바이킹들은 안 그렇게 보이지만 전투 관련으론 기강이 엄했다.[3] 부당한 요구를 하면서 따르지 않으면 '상명하복'을 언급할 때도 있는데, 그냥 개소리다. 애초에 이런 놈들의 행동 중 상당수는 규정과 동떨어져 있는 경우가 절대다수이며 부당한 행위의 요구 자체가 상관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것이다. 여러 부당한 행위를 금지한 병영생활 행동강령도 대한민국 육군 일반명령 제03-21호, 즉 육군참모총장의 명령이다.[4] 오점록 외, '한국군 리더십', 박영사, 1999, p47에서 재인용[5] 상의 안쪽에 적힌 취급주의사항 1번 항목이 '바지 바깥으로 빼서 입으시오.(Wear outside of trousers. / 穿在褲子外面。)'이다. 이게 간단해 보이지만 효과는 굉장히 좋다. 포복 시나 군장으로 인한 허리의 피로를 10% 이상 감소시킨다는 미군의 보고서도 있다.[6] 정확히는 상의를 빼 입으면 장군들이 착용하는 가죽벨트가 안 보인다는 이유였다고 한다.[7]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명문대 출신에 ROTC 출신에 현직 공무원 엘리트 스펙을 가진 아빠가 아들들을 강압적으로 다루는 장면이 나온다. 초등학생 아들이 구름사다리를 타는데 정신력을 운운했고 절반도 채 가지 못하고 떨어지자 혼날 것이 두려워 울어버린 아들을 격려는 커녕 고압적으로 대했다.[8] 보통 전함에 거는 해군기를 의미한다. 참고로 민간 상선용 깃발 역시 엔슨이라고도 쓰는데, 특히 해양 강국이던 영국 같은 경우는 군용과 상선용 엔슨 외에도 관공서용 엔슨까지 존재한다.[9] 당연하지만 저 사진에는 아무나 세워둔게 아니다.[10] 비단 군기 말고도 전리품은 찝찝한 배경 하에서 약탈한 것이더라도, 상대국과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안 돌려주는게 기본이다. 되려 대여료를 지불해야 할 정도.[11] 어재연 수자기처럼 부대 중심에 놓이는 최고 상징물로써의 군기는 수십명이 달라붙어야 옮길 만큼 크고 아름답긴 하다. 이 정도로 위풍당당한 군기를 노획하게 된다면 다른 군기들 보다도 더욱 위풍당당한 전리품으로 여겨지곤 하므로, 더욱 반환을 꺼리기도 한다. 어재연 수자기만 해도 아직은 미국이 아류 국가 취급 받던 시절에 해외 원정에서 거둔 빛나는 승리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기념 사진까지 촬영했으며, 지금까지도 미국이 소유하고 있다.[12] 물론 이런 물건들은 대부분 천이 낡아 삭아 해질 우려가 있기에 보통 사령부 박물관에 보존한다. 애시당초 이런 전통이 오래된 부대들의 경우 자신들의 전적을 자랑하고자 자체적으로 박물관을 두는 경우가 많다.[13] 현대의 통신병 보직과 대다수 일치한다. 신호로 부대를 지휘한다는 점이나 적의 제 0순위 공격대상인 점 등.[14] 졸전 끝에 적에게 군기를 빼앗긴 부대를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경우는 로마 시대 이후로도 종종 있었는데, 독소전쟁 당시 어느 소련군 연대가 전투 중 독일군에게 군기를 빼앗기자 스탈린은 해당 연대의 모든 장교와 사병들을 모조리 형벌부대로 보내버리기도 했다.[15] 고대 전투에서는 진형이 붕괴된 상태로 추격 당하면서 대부분의 사상자가 나왔는데, 전투에서 패해 도망칠때에도 진형이 너무 와해되지 않고 어떻게든 질서를 유지하며 퇴각할 수 있다면 패배한 전투라도 상당수의 인원이 생존 가능한 반면, 진형이 완전히 무너져버리면 해당 전투에 동원된 부대 전체가 몰살당하기도 했다.[16] 상술했듯 군기를 잃어버리면 극형을 당하기 때문에 죽을 각오를 하고 돌격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17] 기수는 무겁고 거대한 깃발을 들고 다니느라 적의 무기가 겨눠지는 와중에 반격조차 못한다. 즉 사실상 갑옷 빼면 맨몸인 비무장 상태로 자신을 죽이려 창칼을 겨누는 적을 코 앞에서 대면해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옆의 전우들이 기수가 공격 받지 못하게 적을 견제하겠지만, 자신은 아무런 방어도 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적 면전에 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지간히 용맹하지않으면 도저히 못할 짓이다. 설령 상대적으로 후방인 부대 중앙에 배치된다 하더라도, 부대가 돌파당하게 될 경우 제일 먼저 군기가 있는 위치로 적이 쇄도할 것이므로 먼저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사태가 터질 경우 해당 부대는 붕괴 위기에 놓인 것인데, 그대로 부대가 와해되어 퇴각해야 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기수는 군기를 들고 끝까지 진형의 구심점이 되어야만 한다. 전술했듯, 기수가 군기를 버리는 순간 그 부대는 사지에서 빠져나가기는커녕 사분오열되어 적에게 마구 썰려 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18] 이것이 정확히 어느 시기에 생겨난 전통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언젠가부터 기병대가 드라코를 드는 것이 전통이 되었고, 다키아 원정에서 다키안 드라코의 영향을 크게 받은 후로는 로마군 이곳저곳에서 군기로 애용되어 로마제국의 최후까지 함께했다.[19] 예를 들어 녹금서당(綠衿誓幢) 부대는 초록색 옷깃, 백금서당(白衿誓幢) 부대는 흰색 옷깃을 착용하는 식.[20] <근초고왕 본기>에서는 "고구려 군대가 비록 수는 많으나 모두 수를 채운 가짜 병사입니다. 그 중 날쌔고 용감한 병사는 오직 붉은 깃발의 군대뿐이니, 만일 그들을 먼저 쳐부수면 그 나머지는 치지 않아도 저절로 무너질 것입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21] 〈근초고왕 본기〉[22] 主將, 장수 중 우두머리[23] 군사를 지위하는 사람이 올라서서 명령하던 돌로 쌓은 단상[24] 좀 규모가 되는 세력은 장수 뿐만 아니라 아시가루에게도 한명 한명 전부 꽂아줬다.[25] 부대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군기를 노획한다면 자랑거리로 곱게 모셔두기 마련인데, 그걸 내다 버려놓는 것은 그럴 가치조차 없는 쓰레기라 선언하는 행동이다.[26]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러시아가 엄청난 비난을 받으며 그 위신이 땅 속으로 추락해 악의 축 취급받는 지금조차 저 퍼포먼스에 토 달 사람이 없고, 앞으로도 아마 없을 것이다.[27] 애초에 기함(旗艦)이란 말 자체가 '깃발을 단 배'라는 뜻이다.[28] 이런 기행은 부대에 대한 자부심 표출의 일환으로 벌여지기도 하니까.[29] 육군의 경우 ensign은 보병부대 기수였다. 기병은 원래 나팔수를 뜻하던 cornet가 기수로 변모하여 ensign과 같은 지위로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