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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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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2001 2002 2003 2004
8위 7위 6위 2위

5위
초대 강병철 제2대 조범현
2005 2006 2007 2008 2009
3위
6위 '''1위
[[2007년 한국시리즈|
]]'''
'''1위
[[2008년 한국시리즈|
]]'''
2위
제2대 조범현 제2대 조범현 제3대 김성근
2010 2011 2012 2013 2014
'''1위
[[2010년 한국시리즈|
]]'''
2위

2위
6위 5위
제3대 김성근 대행
이만수
제4대 이만수
2015 2016 2017 2018 2019
5위
6위 5위
'''1위
[[2018년 한국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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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위
제5대 김용희 제6대 힐만 제7대 염경엽
2020 20211 2022 2023 2024
9위 6위 '''1위
[[2022년 한국시리즈|
]]'''
3위
제7대 염경엽 제8대 김원형 제9대 이숭용
1: SSG 랜더스로서 첫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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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4년2. 2005년3. 2006년4. 2007년 - 전성기의 시작5. 2008년

1. 2004년

2004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6 337,674 5,116 3위
SK 와이번스 2004 시즌
최종 순위 (2004년 10월 5일 확정)
5
승차 승률
61 8 64 14.0 0.488

2004년에 LG 트윈스에서 그 유명한 "야생마" 이상훈을 영입하여 지난 시즌 마무리를 담당한 조웅천과 더불어 이른바 "더블 스토퍼"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그러나 초반부터 좋지 않은 성적이 이어지자 자신의 플레이에 용납을 못한다는 이유로 결국 이상훈은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고 만다.[2]

조웅천 역시 작년과 달리 잔부상 등으로 예전의 구위를 회복치 못하고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선발로 영입한 용병 호세 카브레라를 시즌 후반에 마무리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다.

선발진에서는 이승호가 15승을 거두었지만 나머지 선발들은 부진했다. 다만 엄정욱이 당시 기아 리오스와의 선발대결에서 1피안타 14탈삼진 완봉승을 거두는 등 7승을 올리는 성과도 있었다. 또한 무명투수 김경태가 후반기에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깜짝 활약을 하기도 했다.

부진한 투수진과는 달리 타자들의 성적은 눈부셨다. 이진영은 시즌막판까지 브룸바와 수위타자 경쟁을 했지만 병역비리에 걸리며 결국 3할4푼2리로 타율 2위를 기록했다. 이호준이 112타점으로 타점왕, 박경완이 홈런 34개로 홈런왕을 차지했는데 이후로도 아직 와이번스 소속 타점왕은 나오질 않고 있으며 홈런왕도 2016년 최정의 공동홈런왕 이전까지 맥이 끊기게 된다. 그러나 팀 최종성적은 61승 8무 64패, 5위로 2004 시즌을 마쳤다. 지금까지도 와이번스 역사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타격타이틀을 배출한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4강에 실패했다. 결국 타율2위, 타점왕, 홈런왕이 있어도 4강 진출에 실패한 것은 마무리와 선발의 부실 때문이었다는 것.

마지막으로 팀 내에서 골든글러브는 이진영(외야수)와 김기태(지명타자)가 수상했다.[3]

2. 2005년

2005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3 458,121 7,272 4위
SK 와이번스 2005 시즌
최종 순위 (2005년 10월 6일 확정)
3[5]
승차 승률
70 6 50 3.0 0.583

2005년은 그야말로 천당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시즌이었다.

FA를 통해 LG 트윈스김재현을, 트레이드를 통해 KIA 타이거즈박재홍을, 현대 유니콘스에서 방출된[6] 위재영을 영입했다. 애당초 병역비리 사건으로 생길 공백으로 김재현박재홍을 영입한 것이었으나 행정소송으로 이러한 문제점이 해결되어 대폭적인 전력증강이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시즌 초에는 부상으로 인한 투수진의 붕괴와 타선의 집중력 부족으로 계속적으로 하위권으로 내려가더니 5월말에 기어이 꼴찌까지 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투수진에서 지난 시즌에 기껏해야 패전 처리조에 지나지 않은 신승현(12승)의 포텐 폭발과 김원형(14승)의 부활, 승부처마다 투입되어 2이닝 정도 중간에이스 역할을 한 위재영이 활약하고 그동안 부진했던 이호준이 여름부터 홈런포를 연이어 터트리면서 상황은 나아지기 시작했다. 거기한 교체영입한 용병 넬슨 크루즈[7]가 선발진에 가세하고 중간계투에 정대현이 부상에서 돌아오면서 8월말에는 단독 2위까지 치고올랐다. 그 때 벌어진 문학에서의 삼성 라이온즈와의 3연전은 미리보는 한국시리즈라고 제법 떠들썩하게 치러졌는데 지금도 간간이 틀어주는 박재홍의 홈스틸 장면도 이 3연전때 나온 것이었다. 결과는 1승 1무 1패.

이대로 쭉 가면 1위는 몰라도 2위는 매우 높은 확률로 정규시즌을 끝마치고 플레이오프 직행을 할 것이라고 와이번스 팬들은 전망했다. 그러나 3위 두산 베어스도 만만찮게 한두게임차로 시즌 막판까지 추격하고 있었다. 결국 시즌 최종전에서 그 결말이 나는데, 와이번스는 LG 트윈스와 베어스는 KIA 타이거즈와 맞붙었는데 공교롭게 4강과 이미 멀어진 두팀을 상대로 홈에서 치러지는지라 누가 유불리한지 따질 수도 없었다. 결과는 베어스가 이기고 와이번스는 져서 한끝차 3위로 2005 시즌을 마쳤다. 더욱이 LG 트윈스가 그동안 부진했던 선수들이 대활약[8]을 하면서 이겼는지 더욱 속이 쓰렸던 상황.[9] 하지만 15년이 지난 후 이를 완전히 설욕하였다.

포스트시즌에서 한화 이글스와 맞붙어서 2승 3패로 탈락. 여담으로 2005년 포스트시즌에서는 가장 재밌던 시리즈였다.[10]

마지막으로 팀 내에서 김재현이 지명타자 부문에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3. 2006년

2006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3 331,143 5,256 4위
SK 와이번스 2006 시즌
최종 순위 (2006년 10월 5일 확정)
6
승차 승률
60 1 65 14.0 0.480

소속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지난 시즌에 비해 스탯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여 덩달아 팀 성적도 떨어진 시즌이었다. 용병들도 타자로 영입한 일본인 타자 시오타니 가즈히코가 시즌 초에 맹활약했으나 기아와의 경기에서 장문석을 상대로 몸에 맞는 볼로 인한 손가락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었고, 거구인 캘빈 피커링 또한 홈런을 쳐주긴 했으나 향수병 때문에 퇴출되었다. 후속 영입한 투수 용병들인 호세 카브레라와 제임스 세라노는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재계약에 실패. 특히 삼성 라이온즈에게 매우 약했는데 이는 지난 시즌에 선수생활을 한 강성우가 삼성 코치로 가면서 작전을 읽혔다는 분석이 있기도 했다. 결국 60승 1무 65패, 6위로 2006 시즌을 마쳤다.

그러나 소득이라면 후일에 와이번스의 기둥이 되는 자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정근우가 도루 2위를 하면서 2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김강민, 박재상, 최정[12] 등이 주전을 꿰차기 시작했다.

시즌 종료 후, 조범현 감독은 사의를 표하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구단은 신속하게 후임 감독을 물색했고 김성근을 감독으로 이만수를 수석코치로 기용하는 등 파격에 가까운 영입을 이뤄냈다.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참교육자 펠릭스 호세선생의 신승현 구타사건이 이 시즌에 일어났다.

4. 2007년 - 전성기의 시작

2007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3 656,426 10,419 4위
SK 와이번스 2007 시즌
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
2007년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최종 순위 (2007년 10월 29일 확정)
1[14]
승차 승률
73 5 48 0.0 0.603

와이번스-랜더스 프랜차이즈 최초의 우승시즌. 그러나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시즌 막판까지 두산 베어스와 1위 경쟁을 하였고 한국 시리즈도 레전드급 경기를 치러내어 이때부터 베어스와의 2000년대 후반 한국 프로야구의 라이벌 구도를 이뤄냈다. 와이번스는 김성근 특유의 스몰볼을 내세웠다면 베어스는 뛰는 야구에 기반한 선굵은 빅볼로써 대응하는 강렬한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면서 프로야구 흥행에 큰 기여를 했다.

선발진은 케니 레이번-마이크 로마노-채병용이 확고한 가운데 송은범이 뒷받침하고 막판에 신인 김광현이 한국시리즈에서 큰 역할을 했다. 타선이 전반적으로 스탯이 올라온 가운데 특히 최정은 수비가 많이 향상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완성형 3루수로써의 시작을 알렸고 베어스에서 트레이드된 나주환[15]이 유격수로 고정이 되면서 덩달아 내야수비까지 안정이 되었다. 결국 73승 5무 48패로 와이번스 최초의 정규 시즌 1위로 2007 시즌을 마쳤다.

두산 베어스와의 한국 시리즈는 그야말로 명승부 중 하나였다. 1, 2차전 홈에서 모두 패배한 와이번스는 지금껏 2승을 먼저한 팀이 한국 시리즈를 우승한다는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에 암울한 분위기 속에 잠실로의 원정을 가야만 했다. 그러나 3차전에서 로마노의 호투와 돌발적인 벤치 클리어링으로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하더니 4차전에서는 김광현의 깜짝호투로 2승2패 동률을 만들었다. 5차전은 투수전속에 김재현과 이호준의 활약으로 승리. 결국 인천 홈에서의 6차전 승리로 한국 시리즈까지 우승했다. 와이번스 시절 4번의 우승 가운데 인천 홈에서의 우승 결정은 이 때가 유일하다. 2패후 4연승 한국 시리즈 우승도 KBO 최초. 한국 시리즈 MVP는 시즌 내내 부진했지만 승부처마다 홈런과 적시타를 때려낸 김재현이 차지했다.

한국 대표로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하여 준우승을 했다. 주니치 드래곤스와 1승 1패를 했지만 그 1패가 결승전이었다는 게 아쉬울 뿐.

마지막으로 박경완이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5. 2008년

2008년도 SK 와이번스 홈경기 누적 관중 수 (최종)[A]
구장 경기 수 전체 관중 수 평균 관중 수 총 관중 순위
문학 야구장 63 754,247 11,972 4위
SK 와이번스 2008 시즌
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
2008년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
최종 순위 (2008년 10월 31일 확정)
1[17]
승차 승률
83 0 43 0.0 0.659

2008년 SK 와이번스는 83승 43패로 승률 0.659를 거두면서 KBO 리그의 역사를 새로 세우며 페넌트레이스 1위로 2008 시즌을 마쳤다. 83승은 126경기 체제의 최고기록이며, 당시 기준[18] 00현대(133경기, 91승)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승수이다. 4월 20일 이후로 시즌 종료일까지 1위를 유지하였다. 더불어 기존 해태가 1993년에 기록한 126게임체제 최고승률(.655)를 경신하는 기록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를 맞아 4승 1패로 2연패를 거두는데 성공하였다.

2007년의 에이스인 케니 레이번은 부진으로 17승 투수가 5승 투수로,[19] 4번타자인 이호준이 부상 및 수술로 8게임밖에 나서지 못하였다. 또한 나머지 외인인 다윈 쿠비얀[20]은 죽만 쑤다가 케니 레이로 교체되었는데, 케니 레이도 5경기만에 난타당하면서 빠르게 퇴출되었고, 에스테반 얀을 새로 영입하는 등 외인 교체도 잦았기 때문에 외국인 선수는 사실상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를 국민우익수 이진영의 1루기용에서 드러나는 토탈베이스볼로 메꾸는데 성공하였다. 2년간의 동계훈련으로 누적해놓은 선수단 전체의 깊이와, 기존의 노장, 김재현이나 박재홍 등이 2008년에 대분투한 것이 이를 가능케 하였다.

투수 부문에서는 2007년 17승을 거두었던 레이번이 5승으로 부진하였고, 다윈 쿠비얀과 케니 레이의 연쇄부도, 채병용의 부상등으로 선발로테이션이 불안한데다가 마무리 정대현조웅천의 부진이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극복해내는 데 성공하였다. 김광현은 2007년 가을의 활약을 정규 시즌에 보여주는데 성공하면서 다승 1위 - 탈삼진 1위 - 평균자책점 2위로서 투수 3관왕을 아쉽게 놓쳤지만, 정규 시즌 MVP와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전에 두 번 나와 금메달에 기여하면서 개인적으로도 군면제 혜택을 받게 되었다. 채병용은 눈에 띄지 않는 꾸준한 투구로서 팀의 2선발로서 제 역할을 해냈고, 승률 1위로서 첫 개인타이틀을 수상하였다. 정우람은 홀드왕이 되었고, 이승호는 오랜 재활 끝에 돌아와서 한국시리즈에서 1점만을 내주면서 두산의 타선을 틀어막는 데 성공하였다.

한마디로 4번 타자와 외국인 선수 하나 없이 126경기 체제 정규 시즌 최다승을 기록했다는 점. 한국시리즈에서도 후반기에 합류한 에스테반 얀을 제외시킨 채 두산타선을 꽁꽁 틀어막았다. 그럴만도 한 것이 2008년 승률을 보면 매월 승률이 6할을 웃돌았으며 가장 추락했던 것이 2008년 5월과 7월 6할 4푼대 승률이었는데 여름에는 뭐 다른 팀들도 다들 페이스 떨어질 때였고 2008년 6월에 KBO 역사상 월간 최다승 최고 승률을 갱신하며 벌어 놨기 때문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월간 최다승 최고승률은 다음해 KIA 타이거즈에 의해 재갱신된다.)

긍정적인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윤길현이 KIA의 최경환에게 욕설을 하면서 빚어진 욕설파문과 아시안 시리즈 예선에서 대만의 퉁이 라이온즈에게 지면서 결승 진출이 좌절되었다. 또 창단멤버이자 시즌 내내 멀티플레이어로서 활약한 이진영이 LG로 이적하며 전력이 약화되었다.


[A] 관중수 확인하는 곳: https://www.koreabaseball.com/History/Crowd/GraphTeam.aspx[2] 조범현 감독이 "상훈아, 이럴 거면 나와 같이 그만두자."라고 심각하게 설득했으나 결국 은퇴했고 10년간 야구계를 떠났다.[3] 막상 홈런왕에 OPS 1.0 이상을 찍은 박경완은 당시 홍성흔에게 밀려서 포수 골든글러브 수상에 실패했는데 이는 지금도 상당히 논란이 많은 수상 사례 중 하나다. 무엇보다도 당시 홍성흔은 거의 포수로 전 경기를 출장한 박경완과는 달리 지명타자로 출장한 경기도 꽤 되었던지라 지금까지도 인기빨, 친목빨로 받았다는 말이 나오곤 한다.[A] 관중수 확인하는 곳: https://www.koreabaseball.com/History/Crowd/GraphTeam.aspx[5] 정규시즌 3위. 준플레이오프에서 정규시즌 4위 한화 이글스에 의해 탈락.[6] 부상과 불성실 등으로 몇 년간 기회를 받지 못하자 구단과의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2004년 말 자유계약선수로 방출되었고 고향팀 SK로 이적, 하필이면 이적한 구단이 당시 현대와 인천, 경기권 연고지 관련 문제를 가지고 있던 SK여서 현대 팬덤에서의 반응은 배신자라고 까였다.[7] 2007년의 한화 이글스의 용병과는 다른 인물[8] 왈론드의 깔끔한 마무리와 한규식의 결승타.[9] 여기에 LG는 2005년 SK가 가장 상대전적에서 우세했던 팀이었다. 최종전 패배 전까지 LG전 9연승이었으니[10] 플레이오프와 한국시리즈는 모두 승리팀이 스윕했다.[A] 관중수 확인하는 곳: https://www.koreabaseball.com/History/Crowd/GraphTeam.aspx[12] 특히 최정은 10대에 두자릿수 홈런을 치는 KBO 4번째 선수(김재현-이승엽-김태균에 이어)가 되었다.[A] 관중수 확인하는 곳: https://www.koreabaseball.com/History/Crowd/GraphTeam.aspx[14]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15] 이대수와 트레이드. 이대수가 송구동작을 사이드스로를 하는걸 김성근 감독이 고치라고 했는데 말을 잘 안들어서 트레이드 시켰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었다.[A] 관중수 확인하는 곳: https://www.koreabaseball.com/History/Crowd/GraphTeam.aspx[17] 정규시즌 1위, 한국시리즈 우승[18] 2016년까지 범위를 넓히면 16두산(144경기, 93승)이 1위, 10SK(133경기, 84승)가 3위[19] 레이번 성적을 보면 평균자책점 순위권에 들 정도로 좋은 투구 내용을 보였지만 레이번 선발 등판이 SK 타자들은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많은 SK팬들은 레이번이 불쌍하다고 할 정도로 안타까워했다.[20] SK에 오기 전에 한신 타이거스에서 3년간 뛰었다. 이때 보면 주로 2군에서 뛴 첫 해를 제외하면 꾸준히 셋업맨으로 뛰며 3년 동안 88경기에서 3승 5패 2세이브 18홀드에 ERA 3.76을 기록했다. 아무래도 불펜 스타일의 투수를 SK에서 무리하게 선발로 뛰게 하다가 탈이 난 듯. 그 후로 이탈리아 야구 리그로 진출하여 2016년까지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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