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달 전쟁(Moon Wars)은 Orion's Arm 세계에서 가이아의 대추방 선언으로 인해 추방된 난민들과 달에 거주하는 셀레니언(Selenians) 원주민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The Last War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628AT년 이후인 629AT년에 발발하였고 640AT에 종전했다. 처음 2년 동안 약 1억 5천만 명의 바이온트가 사망할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2. 배경
테크노칼립스로 인한 가이아의 대추방 선언으로 지구에서 쫒겨난 사람들은 달로 도망쳐왔다. 달은 컴퓨터 시스템, 산업, 숙련된 인력의 파괴로 인해 막대한 양의 기술을 상실하여 피해를 입었고 기술도 한 세기 이상 후퇴했지만 시간이 지나 파괴된 산업이 회복되면서 전체적으로 희망적인 상황이었다. 결정적으로 달 궤도의 시스루나(cislunar) 지역 산업이 회복되면서 난민을 어느정도 수용할 역량을 가지게 되었다. 달의 역량으로 가이아와 맞서 싸우는 건 불가능 했기에 대신 난민 수용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러나 궤도 및 달 산업은 난민 수용에 대한 기대감으로 크게 발전했고 궤도와 달 식민지가 과밀화 되면서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가장 큰 문제는 인구 문제였다. 539AT년 달 인구는 2억 3천만 명이었다. 테크노칼립스로 인한 사망자와 565~620AT년 지구로의 이민으로 인해, 621AT에는 달 인구가 1억 9천만 명으로 감소했다. 그에 반해서 대추방은 19년 동안(621-640AT 기간) 약 20억~30억 명의 난민들을 달로 보냈다. 이는 필연적으로 인구 과잉을 불러일으켰다. 난민들은 자신들의 처우가 너무하다고 생각했는데 10평방미터 이하의 좁아터진 공간에 여러명이 갇혀 생필품이 부족한 상태로 지냈으며 불만을 표출하는 난민들에게는 가혹한 통제가 계속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자원이 난민 생활 개선과는 관계 없는 분야에 투입되었다. 반면에 셀레니언은 난민들을 먹여주고 재워줬더니 돌아오는게 폭동과 범죄, 심지어 정부 전복 시도라는 것에 분노했다. 설상가상으로 조약기구(Treaty Org)가 629AT년에 상황을 악용하여 셀레니언의 자원과 영토를 태양계에서의 통제권 확보를 위해 빼앗으려 한 것은 덤이다.
3. 전개
3.1. 전쟁의 계기
대추방이 시행된 직후, 슈퍼튜링, 슈페리어, 하이퍼튜링 식민지 지도자들은 난민 유입이 거대한 위기가 될 것임을 인식했다. 처음에는 기존의 이민 절차를 따랐으나, 곧 이어질 대규모 유입에 대비해 식민지들은 광업, 건설, 운송을 대폭 확장하고, 정치적 통제를 유지하기 위한 보안 및 선전 캠페인, 난민 노동 동원 계획 등을 추진했다. 난민들은 도착 즉시 기술에 따라 분류되고, 생존과 노동 훈련을 받은 뒤 식민지 확장에 필요한 일자리에 배치되었다. 그들은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배급과 사치품을 차등적으로 지급받았으며, 기본 배급은 유지되었지만 노동을 회피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불이익이었다. AI에 대한 공포와 자율 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많은 식민지에서 난민들은 건설, 유지보수, 광산, 공장 등 인간 노동을 필요로 하는 일에 직접 투입되었다.이러한 체계는 난민들이 점차 식민 사회에 정착하고 충성심을 가지게 하는 효과를 냈다. 자신들의 노동이 새로운 서식지와 더 나은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약 7년간의 산업 확장으로 초기 난민 수억 명은 점차 개선된 주거와 배급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모든 식민지가 인도적인 정책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난민을 계약직 노예로 취급하거나, 회사 상점 제도 등으로 가난과 종속을 유지시키는 착취 구조가 존재했다. 치안 유지 명목으로 감시, 기억 통제, DNI 조작, 심지어 사형까지 이용되기도 했다.
무단 거주자 문제도 심각했다. 일부 난민, 특히 백야더라 불린 집단은 허가 없이 달의 미개척지에 정착하여 자체 공동체를 세웠고, 이는 셀레니아 식민정부와 충돌을 일으켰다. 대부분 강제로 체포되어 장비를 몰수당했고, 다시 노동자로 전락했다. 또한 GAIA가 난민들에게 지급한 휘발성 물질은 달의 자원 부족을 보완하기 위한 필수품이었으나, 많은 식민지들이 이를 몰수해 난민들의 생활은 더욱 열악해졌다. 난민들은 차별과 빈곤, 몰수, 과도한 감시 등에 항의했지만, 식민지 정부는 그들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여 체제 균형이 흔들리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차별은 셀레니안들 사이의 고정관념을 강화했으며, 난민 수용소의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은 범죄와 부패, 암시장을 확산시켰다.
AT629년경에는 시위, 파업, 농성 등 평화적 저항이 줄어들고, 식민지 당국은 치명적이지 않은 군중 통제나 투옥, 행동 교정 등으로 불만을 관리했다. 극단적인 곳에서는 사형, 부채 노예제, 식량 통제까지 시행되었다. 이러한 억압적 환경은 조약기구(Treaty Org) 같은 외부 세력에게 이용당했으며, 이들은 난민들의 불만과 분노를 선동해 달 식민지 체제를 약화시키려 했다. 그렇게 대추방 10년 동안 달에 정착한 약 20억 명의 난민 사이에는 체계적인 불평과 저항 의식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3.2. 전쟁 초기
629AT부터 630AT까지 약 5개월간 이어진 첫 번째 달 전쟁은 조약 기구가 대규모 난민 반란을 지원하고 셀레니아의 주요 거점인 아르테미스, 웨위안, 슈미트 지역을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들의 목표는 태양열 발전소, 질량 동력기, 로터베이터, 광산 등 핵심 인프라를 장악하고 인구 중심지를 점령함으로써 셀레니아 세력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조약 기구는 셀레니아만큼 달의 경제를 장악하진 못했지만, 전쟁 경험이 풍부한 대규모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기에 기습을 통해 신속히 승리하고 인류 전체가 복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하지만 셀레니아는 이미 이 전쟁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부 반란, 전면전, 사이버전, 특수부대 침투까지 철저히 대비했으며, 이전부터 조약 기구의 개입을 경계해왔다. 반면 조약 기구는 중립 식민지로 여겨졌던 암스트롱이나 코페르니쿠스가 셀레니아 측을 지지하거나, 친지구파로 분류된 올드린 식민지가 배신하는 상황을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지구군의 물자 손실은 컸고, 전사자는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작전 효율은 급격히 떨어졌다. 초기에는 조약 기구가 유리하게 전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난민 게릴라 단체들이 연이어 붕괴하고 유혈 사태가 이어지자, 셀레니아 측은 내전을 정리한 병력을 재배치하여 조약 기구의 지상군과 수송망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피폐해진 지구군은 방어선이 붕괴되고, 셀레니아군은 주요 지하 시설과 수송 통로를 되찾으며 일련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에 조약 기구는 상호확증파괴 전략을 들고 나왔다. 이는 직접적인 대량 살상보다는, 반물질 무기를 통해 셀레니아의 핵심 인프라를 파괴하여 심리적이며 산업적인 타격을 주는 방식이었다. 조약 기구는 이렇게 하면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상대의 산업 기반을 무력화하고, 자동화 전력의 사용을 억제하며, 정치적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의회 기록에 따르면, 조약 기구 내부에서는 만약 반물질 무기를 직접 사용했다면 전면전이 수년간 이어지거나 상호 멸망으로 끝났을 것이라며 부분적 인프라 타격이 더 실용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테크노칼립스 이후 기술 수준이 퇴보한 달 식민지는 어느 정도 중복성과 방호 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초반 전투에서 이 방어선이 일부 파괴되면서 전체 시스템의 균형이 무너졌다. 조약 기구의 반물질 공격은 달의 산업·교통 인프라를 마비시켰고, 그 여파로 수많은 생명 유지 시설이 붕괴되었다. 630~631AT의 휴전 기간 동안 긴급 복구가 이뤄지기 전까지 약 1억 5천만 명의 바이온트가 사망했다. 이 중 대부분은 난민 출신이었다.
이 사건은 이후에도 논란이 많았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초지성체가 시스템의 복잡성과 취약성을 충분히 이해했을 텐데, 조약 기구가 이런 치명적 전략을 실행하도록 방치한 이유를 의심했다. 일각에서는 하이퍼튜링들이 조약 기구 지도자들을 의도적으로 조종해, 그들이 실패하도록 유도했다고 주장한다. 당시 하이퍼튜링은 조약 기구를 직접 통제하지 않았지만, 막후에서 정책과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들의 목표는 조약 기구 지도부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자신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정치적, 전략적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달의 산업 붕괴와 1억 5천만 명에 달하는 바이온트의 희생은 그러한 권력 재편의 필요한 대가로 간주되었다. 결국 이 초기 전쟁은 단순한 군사 충돌이 아니라, 인류와 초지성체 사이의 권력 관계가 뒤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하이퍼튜링들은 난민 반란과 조약 기구의 무모한 공격을 통해 인간 지도층의 무능을 부각시키고, 이후 더 직접적이고 냉정한 통치를 정당화할 발판을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