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프랭키 너클스 Frankie Knuckl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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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프랜시스 워렌 니콜스 주니어 Francis Warren Nicholls Jr. |
| 출생 | 1955년 1월 18일 |
| 미국 뉴욕 | |
| 사망 | 2014년 3월 31일 (향년 59세) |
| 미국 시카고 | |
| 국적 | |
| 직업 | DJ, 음악 프로듀서 |
1. 소개
프랭키 너클스는 미국의 DJ이자 프로듀서로, 래리 레반과 함께 하우스 음악(House Music)의 창시자이자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1] 오픈리 게이로 주로 시카고의 흑인 인구가 많이 찾는 게이 클럽에서 DJ를 했었다. 본래는 뉴욕 출신이다. 특히 시카고 클럽 '웨어하우스'(The Warehouse)에서 활동하며 디스코, 소울, 펑크 음악을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DJ 스타일을 확립했고, 이로부터 ‘하우스 음악’이라는 장르명이 유래하였다.그는 DJ를 단순한 선곡자가 아닌 음악을 재구성하고 창조하는 존재로 정립한 인물 중 하나로 꼽힌다.
2. 생애
1955년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으며, 디스코와 소울 음악이 전성기를 맞던 1970년대 뉴욕 게이 클럽 문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DJ 활동을 시작했다. 이 곳에서 래리 레반과 친구가 되었고 '컨티넨털 베스'의 DJ가 되었다. 하지만 1976년 '컨티넨털 배스'가 문을 닫으면서 실직 상태가 되었는데, 1977년 과거 자신의 청소년 상담사였던 로버트 윌리엄즈가 시카고에 새 클럽 '웨어하우스'(The Warehouse)을 오픈하면서 프랭키 너클즈를 상주 DJ로 스카웃하게 된다.70년대 중후반 디스코는 미국의 대중 문화를 휩쓸며 주류 문화가 되었지만, 흑인과 성소수자의 문화에 뿌리를 둔 디스코에 대한 반발도 심해졌고, 이는 1979년 시카고에서 디스코 데몰리션 나이트(Disco Demolition Night)로 폭력적으로 발화하게 된다.[2][3] 이런 일련의 사건과 디스코 장르에 대한 대중의 피로가 시작되며 디스코의 대중 인기는 차츰 저물게 된다.
프랭키 너클즈는 그런 상황 속에 기존 디스코 음반을 단순히 재생하는 데 그치지 않고, 테이프 편집, 드럼 머신, 이퀄라이징 등을 활용해 곡을 재구성하며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웨어하우스'에서 연주되던 그의 음악은 큰 반향을 일으켜, 인근 레코드 가게에서 "웨어하우스에서 나왔던 음악"을 찾는 손님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고, 이 것이 더 축약되어 '하우스 뮤직'이라 불리게 되었다.[4] 프랭키 너클스는 디스코의 감성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리듬을 강조해, 댄스플로어 중심의 음악 스타일을 확립했다. 이후 1982년 프랭키 너클즈는 직접 독자적인 클럽, '파워플랜트'(Power Plant)를 차려 독립하게 되고, '웨어하우스'는 문을 닫게 되면서 흑인이나 성소수자 아닌 DJ나 음악가들도 하우스 장르를 시도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 시카고 하우스, 딥 하우스, 개러지 하우스 등 다양한 하위 장르로 발전하게 된다.
1980년대 후반부터는 DJ 활동과 더불어 본격적인 음악 제작에 나서며, <Your Love>, <Baby Wants to Ride>, <The Whistle Song> 등의 곡을 발표한다. 1997년, 최초로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댄스 레코딩 부문을 수상한 DJ가 되었다. 이를 통해 하우스 음악과 DJ 문화가 주류 음악 산업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2014년 3월 31일, 당뇨 합병증으로 사망하였다.
3. 정규 음반
- Beyond the Mix (1991)
- Welcome to the Real World (1995)
[1] 실제로 둘은 친한 친구사이였다.[2] 시카고 화이트삭스 측에서 야구경기 시작 전에 디스코 앨범을 가져오라고 한 뒤 야구장 한가운데에서 폭죽으로 터트리는 이벤트를 기획한 것인데, 직후 백인 관중들이 필드로 난입하고 관중석들을 침범하며 다른 흑인 관중들을 집단 폭행하는 일이 벌어진다.[3] 비슷한 시기에 펑크 록 컬쳐 또한 평행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펑크 록은 당대 이미 성공적으로 대중 문화가 된 디스코를 포함한 전반적인 주류 문화와 기득권 사회에 대한 반발과 반항이라는 큰 틀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디스코 데몰리션 나이트로 상징되는 'Disco Sucks'운동은 인종 차별과 성소수자 차별에 더 크게 기인하였다는 차이가 있다.[4] 같은 시기 인근 해당 레코드 샵, 'Imports etc.'에서 일을하던 Chip E.는 아예 'It's House'라는 하우스 곡을 발표하며 이런 대중어를 확립시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