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8 22:49:37

1971 유러피언컵 결승전


파일:관련 문서 아이콘.svg   관련 문서: 1970-71 유러피언컵
#!if 문서명2 != null
, [[]]
#!if 문서명3 != null
, [[]]
#!if 문서명4 != null
, [[]]
#!if 문서명5 != null
, [[]]
#!if 문서명6 != null
, [[]]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word-break: keep-all;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0008b 20%, #00008b 80%, #9400d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000000,#e5e5e5
1956 RMA 1957 RMA 1958 RMA 1959 RMA 1960 RMA
1961 SLB 1962 SLB 1963 ACM 1964 INT 1965 INT
1966 RMA 1967 CEL 1968 MUN 1969 ACM 1970 FEY
1971 AJA 1972 AJA 1973 AJA 1974 BAY 1975 BAY
1976 BAY 1977 LIV 1978 LIV 1979 NFO 1980 NFO
1981 LIV 1982 AVL 1983 HSV 1984 LIV 1985 JUV
1986 CSA 1987 FCP 1988 PSV 1989 ACM 1990 ACM
1991 ZVZ 1992 FCB 1993 MRS 1994 ACM 1995 AJA
1996 JUV 1997 BVB 1998 RMA 1999 MUN 2000 RMA
2001 BAY 2002 RMA 2003 ACM 2004 FCP 2005 LIV
2006 FCB 2007 ACM 2008 MUN 2009 FCB 2010 INT
2011 FCB 2012 CHE 2013 BAY 2014 RMA 2015 FCB
2016 RMA 2017 RMA 2018 RMA 2019 LIV 2020 BAY
2021 CHE 2022 RMA 2023 MCI 2024 RMA 2025 OOO

}}}}}}}}}}}}}}}}}} ||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엠블럼.svg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유러피언컵 결승전
1970
밀라노
1970-71
웸블리
1972
로테르담
파일:1971 유러피언컵 결승전 표지.jpg
European Cup Final Wembley 1971

1. 개요2. 진출 팀3. 경기 내용4. 경기 후5. 여담

1. 개요

1971년 6월 2일 영국 런던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AFC 아약스파나티나이코스 FC 간의 열여섯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전.

AFC 아약스1969년 결승 패배 이후 두 번째 결승 진출이었으며, 파나티나이코스 FC는 그리스 팀 중 최초로 결승에 진출한 팀이었다.

이 경기의 주심은 잉글랜드 국적의 잭 타일러(Jack Taylor)가 담당했다. 경기는 약 83,179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2. 진출 팀

파일:AFC 아약스 로고(1928~1991, 레드&화이트).svg
파일:파나티나이코스 FC 로고(화이트).svg
아약스 파나티나이코스

2.1. AFC 아약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이끄는 아약스는 1969-70 에레디비시 우승을 통해 유러피언컵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알바니아의 17 넨토리 티라나를 상대로 원정에서 2-2로 비기고 홈에서 2-0으로 승리해 합산 4-2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에서는 스위스의 FC 바젤을 상대로 홈에서 3-0, 원정에서 2-1로 승리하며 합산 5-1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셀틱 FC를 상대로 홈에서 3-0으로 이기고 원정에서 0-1로 패했지만 합산 3-1로 4강에 올랐다.

준결승에서는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맞붙어 원정에서 0-1로 패했지만, 홈에서 3-0으로 승리하며 합산 3-1로 결승에 진출했다. 이 경기에서 아약스는 경기 종료 직전에 두 골을 추가하며 역전승을 거두었다.

2.2. 파나티나이코스 FC

전설적인 선수 페렌츠 푸스카스가 감독으로 이끄는 파나티나이코스는 1969-70 그리스 리그 우승을 통해 유러피언컵에 진출했다.

1라운드에서 룩셈부르크의 AS 죄네스 에슈를 상대로 원정에서 2-1, 홈에서 5-0으로 승리하며 합산 7-1로 쉽게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ŠK 슬로반 브라티슬라바를 홈에서 3-0으로 이긴 후 원정에서 1-2로 패했지만 합산 4-2로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잉글랜드의 에버튼 FC와 원정에서 1-1로 비긴 후 홈에서 0-0으로 비겨 원정 다득점 규정에 따라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유고슬라비아의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를 상대로 원정에서 1-4로 대패했지만, 홈에서 3-0으로 승리하며 합산 스코어 4-4, 원정 다득점 규정에 따라 결승에 올랐다. 파나티나이코스의 안토니스 안토니아디스는 10골을 기록하며 이 대회의 득점왕이 되었다.

2.3. Road to the Final

''''''
파일:AFC 아약스 로고(1928~1991).svg 아약스 파일:파나티나이코스 FC 로고(화이트).svg 파나티나이코스
대진 합계 1차전 2차전 녹아웃 대진 합계 1차전 2차전
파일:KF 티라나 로고(1956~1991).svg 17 넌토리 티라나 4:2 2:2 (원정) 2:0 (홈) 1라운드 파일:AS 죄네스 에슈 로고.svg 죄네스 에슈 7:1 2:1 (원정) 5:0 (홈)
파일:FC 바젤 로고(1966~1982).svg 바젤 5:1 3:0 (홈) 2:0 (원정) 2라운드 파일:ŠK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로고(1961~1990).svg 슬로반 브라티슬라바 4:2 3:0 (홈) 1:2 (원정)
파일:셀틱 FC 로고(1965~1977).svg 셀틱 3:1 3:0 (홈) 0:1 (원정) 준준결승 파일:에버튼 FC 로고(1938~1972).svg 에버튼 1:1
(원정 다득점)
1:1 (원정) 0:0 (홈)
파일: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로고(1969~1979).svg 아틀레티코 3:1 0:1 (원정) 3:0 (홈) 준결승 파일:FK 츠르베나 즈베즈다 로고.svg 츠르베나 즈베즈다 4:4
(원정 다득점)
1:4 (원정) 3:0 (홈)
5승 1무 2패 (15득점 5실점) 합계 성적 4승 2무 2패 (16득점 8실점)
◀ 1969-70 결승 ▶ 1971-72

3. 경기 내용

'''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1970-71 유러피언컵 결승
1971년 6월 2일 수요일 19:45 (BST)
대한민국 표준시 1971년 6월 3일 목요일 03:45 (BST+8)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주심: 잭 타일러 (잉글랜드)
관중: 83,179명
파일:AFC 아약스 로고(1928~1991, 레드&화이트).svg
파일:trophy_front_full.png 파일:파나티나이코스 FC 로고(화이트).svg
아약스 파나티나이코스
감독: 리누스 미헬스 감독: 페렌츠 푸스카스
2 0
5' 딕 판데이크
87' 아리에 한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엠블럼.svg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 화이트.svg
파일:득점 아이콘.svg
-
-
◀ 1970 유러피언컵 결승전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1972 유러피언컵 결승전


경기 시작 5분 만에 아약스의 딕 반 다이크가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 아약스는 여러 차례 추가 득점 기회를 놓쳤고, 전반전을 1-0으로 마쳤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은 팀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후반전 시작과 함께 두 명의 선수를 교체했다. 파나티나이코스는 후반전에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경기를 뒤집으려 했지만, 결국 87분에 아리에 한의 슛이 안티모스 캅시스의 몸에 맞고 굴절되어 아약스의 두 번째 골이 되었다.

경기는 2-0 아약스의 승리로 끝났고, 아약스는 구단 역사상 첫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다. 푸스카스는 경기 후 "파나티나이코스가 70분 동안 훌륭한 축구를 했지만, 초반의 재앙적인 출발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평했다.

4. 경기 후

이 경기는 오늘날까지 '토탈 풋볼'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와 파나티나이코스의 감독 페렌츠 푸스카스 사이의 대결은 축구의 세대교체를 상징했다. 아약스의 전술은 모든 선수가 어느 위치에서든 플레이할 수 있어야 하며, "모두가 공격하고, 모두가 수비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혁신적인 축구 스타일이었다.

아약스는 이후 1972년과 1973년에도 유러피언컵을 연속으로 승리하며 3연패를 달성했다. 요한 크루이프를 중심으로 한 이 황금세대는 네덜란드 축구의 전성기를 열었으며, 1974년 월드컵에서도 '토탈 풋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파나티나이코스는 그리스 팀으로는 유일하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한 팀으로 기록됐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5. 여담

이 결승전은 몇 가지 특이한 점들이 있었다.
  • 아약스는 결승전에 최적의 상태로 나서지 못했다. 네덜란드 리그에서는 전년도 유러피언컵 우승팀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우승을 내주었다.
  • 파나티나이코스의 감독 페렌츠 푸스카스는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유러피언컵 5회 우승을 경험한 전설적인 선수였으나, 감독으로서는 처음 유러피언컵 결승을 경험했다.
  •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는 이 경기에서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지만, 득점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전체적인 경기 운영은 '토탈 풋볼'의 핵심이었다.
  • 베테랑 수비수 벨리보르 바소비치1966년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패배한 FK 파르티잔의 선수로 출전한 후, 1969년 결승에서는 AC 밀란에 패배한 AFC 아약스의 선수로 출전하였는데, 세 번째로 참가한 이 결승전에서는 아약스의 주장으로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아약스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이며,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주장이 우승을 차지한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