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문서명2 != null
, [[]]
#!if 문서명3 != null
, [[]]
#!if 문서명4 != null
, [[]]
#!if 문서명5 != null
, [[]]
#!if 문서명6 != null
,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word-break: keep-all;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35deg, #00008b 20%, #00008b 80%, #9400d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000000,#e5e5e5 | 1956 RMA | 1957 RMA | 1958 RMA | 1959 RMA | 1960 RMA | |
1961 SLB | 1962 SLB | 1963 ACM | 1964 INT | 1965 INT | ||
1966 RMA | 1967 CEL | 1968 MUN | 1969 ACM | 1970 FEY | ||
1971 AJA | 1972 AJA | 1973 AJA | 1974 BAY | 1975 BAY | ||
1976 BAY | 1977 LIV | 1978 LIV | 1979 NFO | 1980 NFO | ||
1981 LIV | 1982 AVL | 1983 HSV | 1984 LIV | 1985 JUV | ||
1986 CSA | 1987 FCP | 1988 PSV | 1989 ACM | 1990 ACM | ||
1991 ZVZ | 1992 FCB | 1993 MRS | 1994 ACM | 1995 AJA | ||
1996 JUV | 1997 BVB | 1998 RMA | 1999 MUN | 2000 RMA | ||
2001 BAY | 2002 RMA | 2003 ACM | 2004 FCP | 2005 LIV | ||
2006 FCB | 2007 ACM | 2008 MUN | 2009 FCB | 2010 INT | ||
2011 FCB | 2012 CHE | 2013 BAY | 2014 RMA | 2015 FCB | ||
2016 RMA | 2017 RMA | 2018 RMA | 2019 LIV | 2020 BAY | ||
2021 CHE | 2022 RMA | 2023 MCI | 2024 RMA | 2025 OOO |
}}}}}}}}}}}}}}}}}} ||
| ||||
유러피언컵 결승전 | ||||
1970 밀라노 | → | 1970-71 웸블리 | → | 1972 로테르담 |
|
European Cup Final Wembley 1971 |
1. 개요
1971년 6월 2일 영국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AFC 아약스와 파나티나이코스 FC 간의 열여섯 번째 유러피언컵 결승전.AFC 아약스는 1969년 결승 패배 이후 두 번째 결승 진출이었으며, 파나티나이코스 FC는 그리스 팀 중 최초로 결승에 진출한 팀이었다.
이 경기의 주심은 잉글랜드 국적의 잭 타일러(Jack Taylor)가 담당했다. 경기는 약 83,179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되었다.
2. 진출 팀
| |
아약스 | 파나티나이코스 |
2.1. AFC 아약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이 이끄는 아약스는 1969-70 에레디비시 우승을 통해 유러피언컵에 진출했다.1라운드에서 알바니아의 17 넨토리 티라나를 상대로 원정에서 2-2로 비기고 홈에서 2-0으로 승리해 합산 4-2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에서는 스위스의 FC 바젤을 상대로 홈에서 3-0, 원정에서 2-1로 승리하며 합산 5-1로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셀틱 FC를 상대로 홈에서 3-0으로 이기고 원정에서 0-1로 패했지만 합산 3-1로 4강에 올랐다.
준결승에서는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맞붙어 원정에서 0-1로 패했지만, 홈에서 3-0으로 승리하며 합산 3-1로 결승에 진출했다. 이 경기에서 아약스는 경기 종료 직전에 두 골을 추가하며 역전승을 거두었다.
2.2. 파나티나이코스 FC
전설적인 선수 페렌츠 푸스카스가 감독으로 이끄는 파나티나이코스는 1969-70 그리스 리그 우승을 통해 유러피언컵에 진출했다.1라운드에서 룩셈부르크의 AS 죄네스 에슈를 상대로 원정에서 2-1, 홈에서 5-0으로 승리하며 합산 7-1로 쉽게 2라운드에 진출했다.
2라운드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의 ŠK 슬로반 브라티슬라바를 홈에서 3-0으로 이긴 후 원정에서 1-2로 패했지만 합산 4-2로 8강에 올랐다. 8강에서는 잉글랜드의 에버튼 FC와 원정에서 1-1로 비긴 후 홈에서 0-0으로 비겨 원정 다득점 규정에 따라 4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유고슬라비아의 레드 스타 베오그라드를 상대로 원정에서 1-4로 대패했지만, 홈에서 3-0으로 승리하며 합산 스코어 4-4, 원정 다득점 규정에 따라 결승에 올랐다. 파나티나이코스의 안토니스 안토니아디스는 10골을 기록하며 이 대회의 득점왕이 되었다.
2.3. Road to the Final
'''''' | ||||||||||
| 팀 | |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녹아웃 | 대진 | 합계 | 1차전 | 2차전 | ||
| 4:2 승 | 2:2 무 (원정) | 2:0 승 (홈) | 1라운드 | | 7:1 승 | 2:1 승 (원정) | 5:0 승 (홈) | ||
| 5:1 승 | 3:0 승 (홈) | 2:0 승 (원정) | 2라운드 | | 4:2 승 | 3:0 승 (홈) | 1:2 패 (원정) | ||
| 3:1 승 | 3:0 승 (홈) | 0:1 패 (원정) | 준준결승 | | 1:1 무 (원정 다득점) 승 | 1:1 무 (원정) | 0:0 무 (홈) | ||
| 3:1 승 | 0:1 패 (원정) | 3:0 승 (홈) | 준결승 | | 4:4 무 (원정 다득점) 승 | 1:4 패 (원정) | 3:0 승 (홈) | ||
5승 1무 2패 (15득점 5실점) | 합계 성적 | 4승 2무 2패 (16득점 8실점) | ||||||||
◀ 1969-70 | 결승 | ▶ 1971-72 |
3. 경기 내용
'''''' | ||
웸블리 스타디움 (런던) | ||
주심: 잭 타일러 (잉글랜드) | ||
관중: 83,179명 | ||
| | |
아약스 | 파나티나이코스 | |
감독: 리누스 미헬스 | 감독: 페렌츠 푸스카스 | |
2 | — | 0 |
5' 딕 판데이크 87' 아리에 한 | | - |
- | ||
◀ 1970 유러피언컵 결승전 | 경기 하이라이트 | 매치 리포트 | ▶ 1972 유러피언컵 결승전 |
경기 시작 5분 만에 아약스의 딕 반 다이크가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 아약스는 여러 차례 추가 득점 기회를 놓쳤고, 전반전을 1-0으로 마쳤다.
리누스 미헬스 감독은 팀에 새로운 활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후반전 시작과 함께 두 명의 선수를 교체했다. 파나티나이코스는 후반전에 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경기를 뒤집으려 했지만, 결국 87분에 아리에 한의 슛이 안티모스 캅시스의 몸에 맞고 굴절되어 아약스의 두 번째 골이 되었다.
경기는 2-0 아약스의 승리로 끝났고, 아약스는 구단 역사상 첫 유러피언컵 우승을 차지했다. 푸스카스는 경기 후 "파나티나이코스가 70분 동안 훌륭한 축구를 했지만, 초반의 재앙적인 출발을 극복하지 못했다"라고 평했다.
4. 경기 후
이 경기는 오늘날까지 '토탈 풋볼'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으로 평가받는다.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와 파나티나이코스의 감독 페렌츠 푸스카스 사이의 대결은 축구의 세대교체를 상징했다. 아약스의 전술은 모든 선수가 어느 위치에서든 플레이할 수 있어야 하며, "모두가 공격하고, 모두가 수비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한 혁신적인 축구 스타일이었다.아약스는 이후 1972년과 1973년에도 유러피언컵을 연속으로 승리하며 3연패를 달성했다. 요한 크루이프를 중심으로 한 이 황금세대는 네덜란드 축구의 전성기를 열었으며, 1974년 월드컵에서도 '토탈 풋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파나티나이코스는 그리스 팀으로는 유일하게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한 팀으로 기록됐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5. 여담
이 결승전은 몇 가지 특이한 점들이 있었다.- 아약스는 결승전에 최적의 상태로 나서지 못했다. 네덜란드 리그에서는 전년도 유러피언컵 우승팀인 페예노르트 로테르담에 우승을 내주었다.
- 파나티나이코스의 감독 페렌츠 푸스카스는 선수 시절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유러피언컵 5회 우승을 경험한 전설적인 선수였으나, 감독으로서는 처음 유러피언컵 결승을 경험했다.
- 아약스의 요한 크루이프는 이 경기에서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지만, 득점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전체적인 경기 운영은 '토탈 풋볼'의 핵심이었다.
- 베테랑 수비수 벨리보르 바소비치는 1966년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에 패배한 FK 파르티잔의 선수로 출전한 후, 1969년 결승에서는 AC 밀란에 패배한 AFC 아약스의 선수로 출전하였는데, 세 번째로 참가한 이 결승전에서는 아약스의 주장으로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아약스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주장이며, 챔피언스 리그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주장이 우승을 차지한 사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