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 1887년 12월 28일[1] |
한성부 (현 서울특별시) | |
사망 | 1975년 3월 12일 (향년 87세) |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 | |
묘소 |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 외곽 산 카를로스 공동묘지 |
상훈 | 2011년 건국포장 추서 |
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11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887년 12월 28일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호씨와 어머니 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905년 멕시코 메리다 애네캔 농장으로 노동이민을 갔고, 1911년 대한인국민회 멕시코 타바스코 신한동 지방회 회원, 1917년 메리다 지방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이후 쿠바로 이주하여 1921년 마탄사스 지방회에서 구제원·재무 등을 맡았다. 이후 카르데나스 지방회로 자리를 옮겨 1924년 법무, 1925년 서기·학무·인구세 수봉위원, 1926년 부회장·인구세 수봉위원 등을 맡았다.
1927년 다시 마탄사스 지방회 회원으로 복귀하여 1928년 지방회 구제원을 지냈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대한 지지대회와 후원금 모금 활동을 벌였다. 이후 1932년 지방회 학무·재무, 1933년 민성국어학교 서기·재무, 1934년 지방회 평의원·재정조사위원, 민성국어학교 교장·간사를 역임했다. 1936년 민성국어학교 서기·재무, 1937년 민성국어학교 교장, 1941년 지방회 재무, 1942년 지방회 특연금 수전위원 등으로 두루 활동하면서 1945년까지 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 본부를 통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금 114원 86전을 지원하였다.
1975년 3월 12일 쿠바 마탄사스주 마탄사스에서 사망하였다. 유해는 마탄사스 외곽에 있는 산 카를로스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2]
201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후손을 찾지 못하여 훈장 전수가 이뤄지지 못하였으나, 광주학생독립운동연구회 회장인 김재기 전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2016년 5월 및 7월에 두 차례 쿠바를 찾아 광주학생독립운동 지지운동 참가자들을 찾았고, 여러 사람들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극적으로 호근덕의 후손을 찾았다.
2017년 4월 11일 쿠바 아바나에서 '독립유공자 호근덕 훈장 전수식'이 개최되어 마침내 호근덕의 아들인 빅토르에게 건국포장을 전수하였다.[3] 빅토르씨는 2021년 7월 현재 마탄사스 버스터미널엥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종의 민박인 '까사(Casa)'를 운영하고 있으며, 공용어인 스페인어를 주로 쓸 뿐 한국어는 '한인' 등 아버지 호근덕이 집에서 쓰던 아주 짧은 단어 몇 가지만 기억하였다고 한다.[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