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성군 순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 원 역사의 해리 파크스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2. 작중 행적
과거 고작 5살의 나이에 사고로 부모를 모두 잃고 은퇴한 해군 장교였던 삼촌에 의지해 간신히 학교를 졸업한 후 14살에 사촌누나를 졸라 마카오로 건너와 그곳에서 은사를 만나 외교관 수업을 받은 후 2년만에 홍콩에서 열린 영사 시험에 합격, 수습 외교관으로서 외교관 커리어를 시작했다.3년 후 일본어를 공부해 상해 부영사관으로 승진, 잠시 유럽에 돌아왔다가 다시 아시아로 돌아와 26살의 나이에 영사 대리로서 시암과의 통상조약을 담당했으며, 그후 28살의 나이에 애로호 사건을 부풀려서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킨 공으로 기사 작위를 받았고, 1865년에 일본에 부임해 18년 동안 주일 영국공사로 근무하며 토막파의 승리와 메이지 유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영제국 최고의 동아시아 전문가로 활약했다가 1884년에 주일 영국공사 임기를 마치고 주조선 영국공사로 부임[1], 역시 주조선 일본공사로 부임하여 같은 배를 타게 된 이토 히로부미와 쓰시마 해협에서 담화를 나눈다.
동양에 온 지만 40년째에 중국어와 일본어는 물론이고 지역사까지 통달한 노련한 외교관으로, 다른 영국인처럼 자국 이익만 최선인 제국주의자나 돈에 미친 배금주의자가 아니라 진심으로 백인의 짐을 신봉하는 또라이라서 토막파 시절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전적으로 메이지 신정부의 뒤를 봐주고 도우려 했던 사람이라 그 이토 히로부미조차 '노괴'라 부르며 두려워한다.
이토가 20대였을 때부터 봐오다 보니 이토의 속내쯤은 단번에 파악하며 어느새 이토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었음에도 아직 애송이 취급하고 있는데, 이제는 본인도 나이가 많아서 이번 조선 공사가 생애 마지막 공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영국인들은 영웅 취급하지만 프로이센 출신에 청나라에서 일했던 묄렌도르프는 제2차 아편전쟁을 일으키고 막부에게 다 망해가던 토막파를 도와서 일본 전역을 불태우는 내전을 키운 사람이라 '미스터 아편'이라 부르며 재앙신 취급한다. 영국 외의 다른 유럽인들도 파크스를 꺼리는 걸 보아 다른 유럽 국가들의 인식도 대체로 비슷한 듯하다.[2]
묄렌도르프를 처음 만났을 때 조선 선거가 어떻게 돌아가냐고 묻자 묄렌도르프는 신성모독 때문에 일어난 종교재판 포지션의 선거임에도 다들 굉장히 해학적이고 즐기고 있어서 이해가 안 간다고 평하자 '원래 선거란 그런 거야 무식한 독일 놈아'라고 비웃어서 묄렌도르프를 빡치게 만들기도 했다. 2차 아편전쟁의 주요 전범답게 서태후와 이홍장은 파크스가 조선에 파견되었다는 말을 듣고 예의주시하고 있다.
1882년 시점에서 조선의 개혁에 흑막이 없다는 걸 눈치챈 유일한 서양 인물인데,[3] 조선이 만약 타국의 간섭으로 근대적 개혁을 치룬다면 틀림없이 어딘가에서 억지로 적용한 탓에 생긴 부작용이 있어야 하나 그게 없다는 이유. 자신이 20년 동안 일본의 근대화를 전격적으로 지원했기 때문에 본인이 제일 잘 안다고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딱 2가지 가능성밖에 없다고 고려했다.
- 1. 조선에 대해서 완전히 잘 아는 백인이 조선에 대해 완벽하게 적용시킨 개혁안을 제안한다
- 2. 조선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나라 상태를 고려하여 제안된 개혁안이다
문제는 1의 경우 과연 다른 백인들이 '조선에 전면적으로 협력하며' 개혁안을 제안할까라는 당대 시대상이 발목을 잡기 때문에, 사실상 2번밖에 없고, 그 말은 바로 흑막은 없다라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때문. 오히려 조선이 폭주하듯 올바른 길을 달려나가는 것을 보며 이게 바로 사회진화론의 결정적인 증거인 문명 수렴진화의 증거다!라며 기뻐한다. 여담이지만 이 때 서양 흑막이 없다고 추론할 때 영국인 아니랄까 봐 경마에 비유하는데 슬쩍 재투성이 신데렐라라는 드립도 등장한다.
이후 영국 유학을 가고자 찾아온 유인석에게 최소 본인 포함 5명~10명의 유학생을 모아오라는 조건으로 추천장을 써주며 유인석이 돌아간 뒤에는 청국이 조선을 징발했다며 조사를 요구하는 프랑스의 제안은 무시하면서[4] 홍영식의 초대에는 기꺼이 응하는 등 조선에 푹 빠진 모양새다. 독자들의 평으로는 본인이 하는 게임에서 신선한 뉴비를 찾은 고인물이나 훌륭한 대학원생감을 찾은 교수의 심정일 것이라고.프랑스가 의열단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만주 진출의 야욕을 품게 하여 조청분쟁을 일으키게 하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의열단이 과감히 프랑스와의 접촉 사실을 까고 이를 애국을 위한 것이다라 말하며 여론전으로 몰고 가자 이에 대해 공민당이 오로지 청문회와 법치주의로 그걸 제어하려고 하는 모습을 알게 되자…
룰을 우회하기 위해 여론전에 나선 야당. 다시 그 야권을 옭아매기 위하여 잔재주 하나 없이 법치라는 창살 아래 잡아 가두려 하는 여당.
주륵. 눈가에서 메마른 줄만 알았던 이슬이 솟구쳤다. 다만, 딱 한 가지 생각만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54화. 체제선전에서 발췌
주륵. 눈가에서 메마른 줄만 알았던 이슬이 솟구쳤다. 다만, 딱 한 가지 생각만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태어나길 잘했다고.
54화. 체제선전에서 발췌
아예 정신줄을 놓고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당의 쟁의 방식이 전형적인 영국식 민주주의의 그것이기 때문. 이전까지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접촉 자체가 없던 조선이라는 국가에서 서구의 개입 없이 자체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사회진화론자이기도 한 파크스 입장에선 자신과 같은 사회진화론자들이 옳았다며 감격할 수 밖에 없던 것.
얼마나 감격했으면 조선 내각의 진정한 의도(대외적으로는 당쟁으로 억누르면서, 마적에게 말을 팔아서 실질적 지배권을 넓혀간다)를 알아차리고는 경마 산업 육성을 통한 군마 수급과, 총의 복제용 재료 수급을 위한 고철 수급을 시작하며 조선 내각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중이다. 전형적인 전근대식 농본경제만 굴리다 보니 아직 산업혁명 같은 상공업에 미숙해서 실수하니까 슬쩍 수정해주기도 했을 정도.
영국 정부에서는 공사라는 작자가 뭐 하는 거냐고 황당해하고 있는 중이지만, 파크스는 자신의 행보를 역사적 사명이라 굳건히 믿으며 훗날 자신의 의도를 깨닫고 영국이 기뻐할 날이 올 것이라 생각 중. 여담으로 이러면서 하는 소리가 가관인데…
이것도 다, 먼저 유혹한 조선이 나쁜 거다.
55화, 캣파이트에서 발췌
55화, 캣파이트에서 발췌
이후 민영익을 통해 조선의 제헌회의를 참관하고 싶다는 뜻을 전하는데 조선국 헌법 1조는 영국식과 상당히 유사한 상황에서 관습법을 선호해 성문헌법이 없는 영국과 달리 관례를 성문화하는 사례가 될 것이라 자국의 지식인들에게 큰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
파크스가 영국 정계에 공 들여 보고서를 보냈지만 영국 정계에서는 '드디어 이 노인네가 노망이 났구나?' 라며 깡그리 무시했는데, 글래드스턴은 파크스 그놈의 성질머리상 그럴 리가 없다며 진지하게 읽어보고 조선의 변화에 흑막이 없었으며 자신들과 같은 길을 스스로 나아가고 있다고 감격, 조선을 '동방의 샛별'이라 칭하는 연설을 펼쳐 영국 대중들에게 화제를 몰고 왔다. 마침 이때 프랑스가 청프전쟁에서 온갖 굴욕을 겪고 있을 때라서 영국은 프랑스 민주주의를 대차게 깠고, 프랑스는 프랑스대로 영국 민주주의를 대차게 깠다고.
프랑스가 청프전쟁의 사실상의 패배(?)로 인해 다친 자존심을 조선과 인도차이나를 엮어 회복하기로 하고, 그 일환으로 조선의 채권을 싸그리 매입하려고 하자,[5] 이를 알아차리고는 이토에게 일본의 자금을 동원해서 채권을 방어하라고 지시한다. 200만 엔이라는 막대한 금액을 퍼부어 청나라와 치킨게임을 벌여야 할 상황에 놓여 허덕이던 이토가 중재를 요청하자[6] 조선 최초의 경마 경기인 조선컵 개막식 자리에서 이토와 만나 일본이 매입해야 할 채권의 양을 80만 엔으로 줄여주고 프랑스와 청나라 쪽 공사와 만나 적당한 선에서 조절하도록 뒤에서 손썼다고 한다. 원래라면 직접 개입하고 싶었지만 조선에 무관심한 보수당 정권의 특성 때문에 직접적인 개입이 안 되어서 이 정도로 한 것.
이토의 심정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자신이 아끼는 두 나라가 서로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게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영국과 프랑스처럼 일본도 조선과 건전한 경쟁만 하고 괜히 조선을 잡아먹을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라고 넌지시 경고하고, 호주에서 공수한 영국산 명마들을 조선에 넘기면서 일본도 갖고 가라고 조언해준다. 이 광경을 본 이토는 왜 우리에게는 모질었으면서 조선에게는 그렇게 잘 대해주는 거냐고 속으로 열불을 낸다.
이후에도 주조선 영국공사 직을 수행하다 1887년이 되자 급속도로 기력이 쇠해지며 본인도 죽을 때가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조선의 새마을운동에 대해 본국에 보내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자신의 지난날을 돌아보는데, 조국 영국이 걸어온 길이야 말로 말로 인류의 발전에 있어서 유일한 정답지이고 그 길 외에 나머지는 실패작이니 시간과 자원을 허비하기 전에 모조리 꺾어주는게 옳다고 믿으며 그 믿음에 따라 평생을 살아왔으나 조선에 온 이후 영국과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같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조선의 행보를 바라보며, 어쩌면 영국과 자신이 꺾어온 무수한 길 중에 조선과 같은 사례가 하나쯤은 섞여 있지 않았을까, 영국이야말로 그 길을 방해하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지난날 자신의 제국주의적 행적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본에서 민권운동이 격화되고 공안정국을 일으킨 야마가타를 몰아내기 위해 이토가 귀국길에 오르자 자국 동양함대 소속 군함들을 이토의 호위로 붙여주면서 권력을 탐하는 정도야 눈감아주겠지만 지금처럼 노골적으로 시위를 밀어버리면서 군사독재자 시늉을 내면 재미없을 줄 알라고 야마가타에게 무언의 경고를 한다.
이후 일본도 입헌혁명에 성공하는데, 야마가타의 폭주를 저지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자국의 동양함대이었음에도 정작 입헌혁명에 성공한 일본인들은 일장기와 함께 태극기를 들고 나온 것을 보고 지금의 야마가타와 조슈벌은 자신과 대영제국이 낳은 괴물이었으며 식민주의야말로 인류문명의 발전을 저해하는 죄악이었다는걸 깨닫는다. 지금 본국에 보고해봐야 어차피 본국에서는 관심도 가져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깨달은 바를 후대에게 전해주기 위해 '민주평화론에 입각한 동양평화론 개론'이라는 칼럼을 남긴다.
조청전쟁이 임박하자 조선을 성심성의껏 도와주려 하지만 정작 본국은 남아프리카를 파먹는데 정신이 팔려서 차관을 대주고 미국과 이어주는 것밖에 하지 못 해 아쉬워하며 전쟁이 터지자 다른 외국 공사관들이 철수하거나 다른 안전한 개항장에 위치한 영사관으로 피신한 가운데 이 꿈의 끝을 보고싶다는 소망에 외국 공사관 중 유일하게 한양에 남는다. 그러나 본인의 건강은 더 악화되어 오늘내일하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영사인 윌리엄 애스턴에게 임시 공사직을 위임한다. 그리고 조선군이 청군에게 포위된 한양을 구원하는데 성공하자 마지막 참회와 함께 눈을 감는다.
3. 기타
다른 영국 상류층들과 달리 가난한 고아 출신이었다 자수성가로 현재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라서 영국 민중들의 선망을 받는다고 묘사된다. 이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상류층이었던 사람들과 은근한 기싸움이 있으며 파크스가 사회진화론과 백인의 짐에 심취한 것도 이런 과거사가 원인이라고 한다. 사회진화론에 따른 문명의 수렴진화를 돕는 건 조국의 오만한 배불뚝이들에게 충격을 줄 역사적 사명이라 믿었다고. 진성 영국 국수주의자로 영국식만이 진리이며[7] 모두가 영국과 똑같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주조선 영국공사로 부임한 후 영국이 다른 길을 걷고 있으나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조선의 모습을 보고 가치관을 180°변경, 그동안 자신이 믿어온 사회진화론과 제국주의 사상이 틀렸음을 인정하고 지난날 자신의 행적에 대한 참회와 함께 눈을 감는다.다소 착각물을 찍기는 했지만 굉장히 예리한 식견의 소유자로,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이토는 거의 어린애처럼 갖고 놀다시피 하며[8] 동아시아 삼국의 대외관에 대해서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일본을 아끼면서도 가차없게 대한 이유 중에 하나가 일본은 너무 오랫동안 고립되어 외교라는 것을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며, 차후 어떤 식으로든 자신들의 기대를 배신할 것이고 그게 문제라는 생각조차 못할 것을 정확히 간파했기 때문. 그리고 죽기 직전 자신이 그토록 찾아 다니던 그림자 내각의 주인이자 현재 조선의 개혁을 이끌고 있는 그 흑막의 정체가 바로 세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의 능력을 인정하고 경외를 담아 그를 '시조(Founding Father)'라고 부른다.
[1] 원 역사에서도 1883년부터 주조선 영국공사로 부임했지만, 임오군란 직후라 조선이 청의 속국으로 취급되어 주청 영국 공사와 겸임한 데다 1885년에 북경에서 말라리아로 사망해서 조선과 인연이 없었다.[2] 다만 리치먼드를 비롯한 영국인들은 위인이라 부르는데 당연히 묄렌도르프는 자네들이 그러니 해적 소리 듣는 거라며 영국인들을 깠다.[3] 굳이 따지면 묄렌도르프도 강백산을 처음 만나고 나서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성인임을 깨닫고 '흑막'의 정체가 강백산이라는 걸 눈치채기는 했지만, 파크스는 만나기도 전에 간파한 것이다.[4] 그 이유도 가관인 게, 산업화도 안 된 조선이 지원해봤자 얼마나 될 것이며, 고작 그거 받았다고 프랑스가 밀리면 프랑스가 잘못한 거다라는 이유. 당시 청과 프랑스의 국력 차를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5] 영국이 프랑스 민주주의를 조선을 이용해서 욕한 것에 대한 앙심도 있었다. 그래도 영국과 직접 대결할 생각은 없어서 영국(과 명령받은 일본)은 철저히 무시하고 화교 자본만 집중 마크했다고.[6] 그래도 이때까지는 원래 예정한 10만 엔 이내이기는 했다고 한다.[7] 프랑스의 의회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카오스고, 미국은 국가가 아니라 주식회사이며, 프로이센식은 입에 담는 것조차 구역질 나는 수구반동으로 취급한다고 한다. 본인 행적이 행적이라 적도 많아서 만약 파크스가 진짜로 노망이 났으면 그를 죽이려 할 의인이 넘쳐날 거라고 글래드스턴이 장담할 정도.[8] 젊었을 때부터 키다리 아저씨 노릇을 하며 후원해 준 이토에게는 엄격하고 무시무시한 스승님 포지션으로, 그 이토가 노괴라 부르며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질색하는 인간으로 파크스에게는 맥을 못 춘다. 한편 파크스가 자신들보다 조선을 더 귀여워하는 듯하자 서운함과 질투를 느끼거나, 파크스도 이토의 심정을 이해하고 경멸하는 게 아니라 딱하게 보는 등 다소 복잡한 사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