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30 23:08:49

한지 플릭

한스디터 플리크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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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플릭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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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 플릭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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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FIFA 올해의 감독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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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위
한지 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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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바르셀로나
Entrenador de Fútbol Club 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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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32E7D><colcolor=#F5F5DC> 이름 한지 플릭
Hansi Flick[1]
본명 한스디터 플리크
Hans-Dieter[2] Flick
출생 1965년 2월 24일 ([age(1965-02-24)]세)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카를스루에현 하이델베르크
국적
[[독일|]][[틀:국기|]][[틀:국기|]]
신체 177cm
직업 축구 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행정가
소속 <colbgcolor=#232E7D><colcolor=#F5F5DC> 유스 BSC 뮈켄로흐 (1971~1976)
SpVgg 네카어게뮌트 (1976~1981)
SV 잔트하우젠 (1981~1983)
선수 SV 잔트하우젠 (1983~1985)
FC 바이에른 뮌헨 (1985~1990)
1. FC 쾰른 (1990~1993)
FC 빅토리아 바멘탈 (1994~2000)
감독 FC 빅토리아 바멘탈 (1996~2000 / 선수 겸 감독)
TSG 1899 호펜하임 (2000~2005)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2006 / 수석 코치)
독일 대표팀 (2006~2014 / 수석 코치)
FC 바이에른 뮌헨 (2019 / 수석 코치)
FC 바이에른 뮌헨 (2019~2020 / 감독 대행)
FC 바이에른 뮌헨 (2020~2021)
독일 대표팀 (2021~2023)[3]
FC 바르셀로나 (2024~ )
행정 독일 대표팀 (2014~2017 / 단장)
TSG 1899 호펜하임 (2017~2018 / 단장)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전술 스타일5. 평가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2. 감독
6.2.1. 대회 기록6.2.2. 개인 수상
6.3. 수훈
7. 여담8. 둘러보기

[clearfix]

1. 개요


독일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 현 FC 바르셀로나 감독을 맡고 있다.

2019-20 시즌 도중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 부임하여 구단 역대 두 번째 트레블을 달성하였으나,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는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을 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다가 독일 대표팀 최초로 경질당했다.

2024년 5월부터 FC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부임해 다시 현장에 복귀했다.

2. 선수 경력

플릭은 1982년, 17세의 나이로 당시 3부 리그 구단인 SV 잔트하우젠에서 프로 데뷔를 한다. 3년 동안 69경기를 출전하며 기량을 쌓아가던 플릭을 바이에른 뮌헨의 감독인 우도 라텍이 눈여겨보고 그를 영입하여 플릭은 20살의 나이에 1985-86 시즌을 앞두고 뮌헨으로 이적한다.

이적 첫 시즌 만에 분데스리가를 우승하면서 플릭은 첫 리그 우승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유러피언컵에서도 처음으로 뛰게 되었다. 챔스에서 처음으로 뛰게된 1986-87 시즌에 뮌헨은 결승까지 진출하여 플릭은 결승전 무대까지 밟을수 있었지만 FC 포르투에게 2:1로 역전패를 당하며 통한의 준우승을 거두고 이것의 플릭 선수생활 마지막 결승전이 되어버린다.[4] 시즌 이후 라텍은 뮌헨을 떠났고 그의 바통을 이어받아 유프 하인케스가 뮌헨의 지휘봉을 잡게된다. 즉 플릭은 우도 라텍유프 하인케스라는 두 명장의 지휘를 받으면서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리그에서 104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은 유망한 미드필더였다. 그러나 부상으로 꿈을 더 펼치지못한 채로 뮌헨을 떠났고 이후 쾰른에서 44경기를 치른 뒤, 30살도 되지않은 1993년에 은퇴했다. 대표팀에서는 뛰지 못했지만 18세 이하 팀에서 두 번 출전했다.

3. 지도자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지 플릭/지도자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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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술 스타일

유프 하인케스, 위르겐 클롭과 유사한 점이 많다. 기본적으로 4-2-3-1 포메이션을 선호하며, 강력하고 완성도 높은 전방 압박과 트랜지션 속도에 집중하고, 양 풀백을 공격적으로 활용하며 윙어와 콤비네이션 플레이를 권장하는 측면 공격 전술,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끊임없는 압박 및 스위칭을 통해 공격과 조직력에 최우선으로 초점을 맞추는 강력한 플랜 A를 구사한다. 교체 카드 역시 매우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편이다.

바이에른 뮌헨에서 감독으로 성공하려면 토마스 뮐러를 잘 써야한다는 말이 있는데 플릭은 2016년부터 뮐러의 줄어든 득점력을 억지로 늘리려고 하지 않고 그 대신 늘어난 어시스트와 메이킹 수치에 집중해 뮐러를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프리롤에 가깝게 활용하며 그가 발휘하는 찬스 메이킹과 더미 런을 통해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세르주 그나브리의 득점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레반도프스키와 그나브리는 이에 보답해 19-20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각각 15골과 10골을 득점하는 괴력을 선보였고, 플릭 재임 기간 동안 바이에른 뮌헨은 압도적인 공격력을 발휘하는 팀이 되었다.

펩 과르디올라가 챔스 토너먼트만 되면 정공법에서 벗어나 지나치게 변칙적 운영으로 스스로 무너졌던 전례와 대조적으로 자신의 강점을 끝까지 뚝심있게 밀어붙인다. 파리 생제르맹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단 한 골차로 이기고 있던 후반 94분조차도 선수들의 반 이상이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압박을 하는 장면은 어지간한 확신과 자신감으로는 할 수 없는 전술이다.

허나 여느 감독이 그렇듯 플릭의 전술에도 단점은 있는데, 우선 하나는 체력이다. 플릭은 하인케스, 클롭의 영향을 받은 감독 답게 볼이 없을 시 전방위적인 프레싱을 구사하고, 이는 엄청난 체력이 뒷받침해줘야 구현할 수 있는데, 만약에 스쿼드가 부실하면 당연히 제 경기력이 나올 수 없다. 19-20 시즌에는 그래서 줄부상으로 선수가 부족할 때는 일부러 전반전에 압박 강도를 낮추고 후반전에 승부수를 던지는 식으로 위기를 넘긴 적이 몇 차례 있다.[5]

그리고 선수 기용에서 고집이 강한 편이다. 대표적으로 20-21 시즌 도중 요주아 키미히가 부상당한 상황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인 마르크 로카가 있는데도 코랑탱 톨리소자말 무시알라 등 수비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들을 볼란치에 넣어 팀의 수비력을 약화시킨 전적도 있다. 물론 플릭 특유의 전방압박을 가동하려고 일부러 전방에 선수 한 명을 더 배치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안 그래도 취약한 뒷공간을 굳이 열어줄 필요가 없는데도 열어주니 팬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6] 그리고 가장 큰 비판은 좋은 폼을 보여주는 뤼카 에르난데스가 있음에도 굳이 폼이 떨어진 알라바를 쓴다는 것이다. 다만 후반기에 알라바가 폼을 회복하고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이런 비판이 불식되었다.[7]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고집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독일 대표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고집으로 월드컵을 말아먹었다.[8]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서도 니클라스 쥘레를 무리하게 라이트백으로 두는 비대칭형 백3를 쓰는가 하면 전문 스트라이커인 니클라스 퓔크루크가 있음에도 카이 하베르츠토마스 뮐러를 선발로 최전방에 배치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전술을 구사했다.[9]

또한 전술적 유연성도 뒤쳐지는 편이다. 하인케스가 12-13 시즌 당시 보여준 전술적 유연성[10]과는 상당히 대비된다. 애초에 현장에서는 오랜 시간 있었어도 감독직을 맡은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이런 유연성을 발휘하기 위한 경험이 더 쌓여야 하는 감독이다. 바이에른 뮌헨 때부터 독일 국가대표팀까지 라인을 올리고, 계속 공격 및 압박을 하는 게겐 프레싱 전술로 일관 중인데, 바이에른 뮌헨 부임 첫 시즌 때는 트레블이라는 결실을 얻었다.[11] 하지만 별다른 수정없이 같은 전술만을 지나치게 고집한 나머지 상대팀들은 파훼방법[12]을 찾아내서 대응하기 시작했고, 전 시즌과 달리 강력한 프레싱 전술의 반동으로 부상자들이 속출하면서 플랜 A가 악화되었다.

플릭은 결국 바이에른 뮌헨 두번째 시즌에 보여준 약점이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크게 부각되었고, 결국 크게 실패하면서 평가가 하락했다. 애초에 강력한 플랜 A를 구사하기엔 훈련 기간이 짧은 대표팀 성격상 플릭이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고, 선수 풀에 한계가 있는 대표팀의 성격과 플릭의 부족한 유연성과 좁은 선수 기용 폭이 좋지 않은 쪽으로 맞물리며 그의 발목을 크게 잡았다. 또한 독일 대표팀은 플릭이 바이에른 뮌헨 시절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인 레반도프스키 같은 월드클래스 공격수가 없었다. 플릭이 추구하는 축구는 수비에서 살을 내주더라도 공격으로 상대의 뼈를 취하는 닥공에 가까운데, 독일 대표팀은 미로슬라프 클로제 은퇴 이후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A급 공격수 하나 배출하지 못한 팀이었기 때문에 플릭이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성공 방식을 그대로 대표팀에 도입할 수 없었던 것. 결국 플릭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클럽팀을 맡는 시점에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플릭 역시 커리어를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단점인 유연성을 늘릴 필요가 있다.

5. 평가

현역 은퇴 후, TSG 1899 호펜하임 감독과 단장, 독일 대표팀 수석 코치[13]와 단장, FC 레드불 잘츠부르크 수석 코치 등 다양한 경력을 쌓다가 2019년 FC 바이에른 뮌헨에 수석 코치로 부임하였다. 니코 코바치 감독이 사퇴한 이후, 수석 코치였던 플릭이 감독 대행을 맡았는데 이전과 다른 좋은 경기력과 성적을 보여주면서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공식전 32경기 무패(31승 1무)와 23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이어가며 19-20 시즌 분데스리가, DFB-포칼, UCL를 모두 우승[14], 유럽 축구 역사상 최초로 시즌 도중 부임하여 트레블이라는 위업을 이룩했다. 이후로도 UEFA 슈퍼컵, DFL-슈퍼컵, FIFA 클럽 월드컵에서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역대 최초로 시즌 도중 부임한 첫 시즌 6관왕까지 달성, 당당히 명장의 반열에 올랐었다.

시즌 6관왕 자체와 부임 첫 시즌 6관왕은 2009년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에 이어 2번째로, 말 그대로 신데렐라와 같은 등장이다. 수석 코치나 단장으로 국가대표와 클럽을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이라는 세계 유수의 거함을 감독 부임 처음으로 지휘하며 리그에서도 4위로 부진하던 곳을 구단 역사상 두번째 트레블과 챔스 전승 우승, 30경기 무패라는 경이로운 위업으로 이끌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유프 하인케스요아힘 뢰프라는 명장 아래에서 착실히 경험을 쌓으며 내실을 다진 감독이라는 의견도 많았다.

19-20 시즌 FC 바이에른 뮌헨의 트레블 공로를 인정받아서 UEFA 올해의 감독[15]으로 남자팀 부문에 압도적인 표차이로 선정되었다.

바이에른의 6관왕을 이끈 그였기에 이후로도 바이에른의 태평성대를 이어갈 것처럼 보였으나 갑자기 20-21 시즌을 마지막으로 사퇴하겠다는 발표를 해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에는 현재 뮌헨의 단장 하산 살리하미지치와의 불화가 결정적이란 것이 거의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지나치게 선수단 운영에 개입하며 선수수급에서 감독 권한을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플릭이 원한 영입보단 실제 뮌헨이 행한 영입은 마감시한에 쫓겨 패닉바이에 가깝게 들여온 마르크 로카, 부나 사르등 수준 이하의 선수가 전부이며 플릭은 이들을 거의 기용하지 않았다. 작년 챔스 결승 상대편이던 PSG 소속으로 출전하기도 했던 막심 추포-모팅이 그나마 레반도프스키의 부상속에 분투해 준 유일한 영입 선수. 이런 상황 속에 정작 6관왕을 이끈 플릭이 구단을 나가게 된 것은 뮌헨의 보드진이 살리하미지치의 손을 들어주며 정치싸움의 희생양이 된 정황이 짙다. 따라서 뮌헨 팬들은 황당함을 넘어선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상황이며 살리하미지치에 대한 여론은 극도로 좋지 않다. 잇다른 영입 실패에 스쿼드 뎁스가 옅어지며 결국 레반도프스키, 그나브리가 결장하자 스쿼드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며 챔스 8강 탈락이라는 결과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특히 살리하미지치가 가장 야심차게 영입한 리로이 자네의 트롤에 가까운 경기력에 팬들은 더더욱 분노했다.

결국 20-21 시즌 분데스리가 최종전에서 팀을 떠나는 데이비드 알라바, 하비 마르티네스, 제롬 보아텡과 함께 송별식을 가지고 공식적으로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여정을 끝냈다.

2021년 5월 25일,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이 공식 발표되었다. UEFA 유로 2020 종료 직후 감독 임기가 시작되었으며 UEFA 유로 2024까지가 계약 기간이다. 뮌헨에서의 경기력을 그대로 대표팀에서도 이식하여 부임 후 남아있던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전승 가도를 달리며 독일을 개최국 카타르를 제외하고 가장 먼저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에 안착 시키면서 한지 플릭의 독일은 4년 전이랑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과거처럼 우승 후보 0순위는 아니였으나, 브라질, 프랑스, 잉글랜드 등에 이어 4~6위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네이션스 리그랑 월드컵이 시작되자 기대했던 모습은 사라졌고 졸전 끝에 대회를 마치면서 평가가 수직추락했다. 그나마 네이션스 리그에서는 헝가리전 패배가 치명적이긴 했지만 워낙 죽음의 조고 대회 위상이 낮았던 만큼 아쉬움으로 넘어가는 반응이 많았으나 문제는 월드컵이다. 반드시 잡았어야 할 첫 경기부터 역전패로 놓치더니, 스페인전도 이기지 못하고 비겨서 결국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결과를 내버렸다.

특히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활약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스쿼드 선발, 선발 기용, 전술 기조, 상대 파악, 사후 인터뷰 등 여러 방면에서 계속해서 논란과 의문을 자아냈으며, 부활을 노리던 독일 축구를 오히려 녹슨 전차 군단으로 쐐기를 박아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제 아무리 스쿼드의 과거 대비 질적 저하 및 밸런스 문제 등으로 문제점이 잠재되긴 했으나, 조 편성 이후 사전 기대치를 고려할 때 조별 탈락을 의심할 정도까지는 절대 아니었다.

월드컵에서의 실패 이후로 부각되는 플릭의 가장 큰 단점은 사람 보는 안목이 없다는 것이다. 뮌헨 시절에도 영입 요청한 선수들의 면면을 보면 티모 베르너마리오 괴체, 틸로 케러 등 뮌헨 레벨에 전혀 맞지 않는 선수들이었고, 독일 국대 감독으로 부임하고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었고 국대 베테랑이란 명분도 있던 마츠 후멜스는 최종명단에서 탈락시켰고,[16] 율리안 브란트는 뽑아놓고 본선에서 한번도 기용하지 않았다.[17] 스트라이커 부재야 그렇다쳐도[18] 그렇게 집착하는 2선 자원으로라도 제로톱을 쓴다던지 난국을 헤쳐나가야는게 감독의 임무지만 이마저도 좋은 평을 내릴 수가 없는 공격진들의 움직임이었다.

독일 축구의 진짜 암흑기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자원이 풍성한 2선과, 수비 포메이션에 이상한 선수 기용을 고집하며 월드컵 이전부터도 잡음이 있었고, 이런 수준 이하의 선수들을 쓰다가 결국 월드컵에서 대망신을 당했다. 게다가 독일 대표팀의 적폐 1순위인 올리버 비어호프 단장을 믿고 독일 지휘봉을 잡았다고 하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전술적인 부분에서도 잘하던 선수를 이상한 방식으로 교체한다던지[19][20] 최악에 가까운 안목이 플릭의 발목을 제대로 잡고 있는 셈이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문제가 되었는데, 일본전 직후 경기 인터뷰에선 대놓고 니클라스 쥘레 탓을 한다거나, 대회를 마치고 난 직후에 스트라이커가 없다고 한탄한다거나, 남탓만 하는 인터뷰를 하면서 비난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조차도 문제가 되었는데, 쥘레의 경우에는 기대치에 못미친건 사실이지만 애초부터 용병술을 잘못 기용한게 컸고, 스트라이커에 대해서는 월드컵 이전의 친선전에서 유일하게 골을 넣었던 니클라스 퓔크루크가 있음에도 선발로 출전 안하고 그동안 전혀 통하지 않았던 뮐러 제로톱을 사용한다던지 등 본인의 결함을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된 책임감을 가져야 될 국가대표의 감독이 선수들에게 책임전가만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대실패로 트레블 시즌부터의 후광 효과도 사실상 소멸해 버렸고 이후의 커리어를 통해서 재기를 노려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월드컵에서 많은 기대를 받았던 플릭이었지만 월드컵에서 최악의 졸전을 보여준 탓에 독일 축구 팬들에게 상당한 충격만 남기게 되었고 그들의 민심까지 거의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 동안의 계속된 삽질에다 일본과의 친선 경기 대패까지 겹쳐 결국 독일 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었기에 감독 생활에 큰 위기를 맞은 상황이 되었다. ‘트레블 및 6관왕 감독’, ‘명장’이라는 자랑스러운 타이틀은 이미 빛을 잃은 지 오래이며 뮌헨 시절의 호성적들도 순전히 자신의 능력 덕분이 아니라 바이에른 뮌헨의 시스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역대급 활약과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이룬 거 아니었냐는 비아냥도 생겨나고 있을 지경이다.[21] 현재 제대로 된 구단을 맡을 수 있을지조차 의문인 상황이기에 추락해 버린 감독 경력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이후에 맡을 구단이 본인의 감독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짧은 영광 이후 워낙 성과가 꾸준하게 하향곡선을 그렸던 탓에, 하다하다 플릭을 쳐내고 율리안 나겔스만 선임에 거금을 질렀던 뮌헨의 괴상했던 행보마저 반농담으로나마 재평가 받을 정도.[22]

국대 감독으로서 역대급 행보들을 선보였지만, 그럼에도 워낙 바이에른에서 보여준 성과가 엄청났던건 사실이었기에 아직까지는 기회 자체는 있다. 특히 클럽과 국대 감독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만약 다음 클럽에서 다시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그냥 국대 감독이랑은 안맞는다는 변명거리를 만들 수 있다.

6. 기록

6.1. 선수

6.1.1. 대회 기록

6.2. 감독

6.2.1. 대회 기록

6.2.2. 개인 수상

6.3. 수훈

  • 바이에른 공로장: 2022

7. 여담

  •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났으며, 가족이 중산층에 속해서 크게 문제없이 성장했다고 한다. 학창시절 공부도 잘 해서 18살 때는 은행원이 되기 위해 지역 은행에서 견습생을 하기도 했다.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축구를 오래 할 확신이 없었고, 만일 중간에 그만둔다면 제2의 삶을 미리 준비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후 그의 소속팀이었던 잔트하우젠에서 축구를 하면서 은행원직까지 병행했으며, 2년 후에 유프 하인케스가 이끄는 FC 바이에른 뮌헨의 부름을 받으면서 전문 축구인의 길로 들어섰다.
  • 바이에른 뮌헨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후에도 꽤 많은 국내 축빠들이 플릭이 정식 감독이 되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었고, 플릭이 누군지 잘 모르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그리고 플릭이 바이에른의 임시 감독이 되기 전까지는[24] 바이에른 팬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내 축구 팬들은 대다수가 플릭에 대해 알지 못했으며, 실제로 이 문서도 바이에른의 임시 감독으로 부임할 때 생성되었다. 그래도 바르셀로나를 8:2로 털어버린 뒤[25], 플릭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상승했다.[26]
  • 유프 하인케스가 바이에른 뮌헨 감독을 맡았을 때와 행보가 비슷하다. 선수 시절 하인케스 감독한테 여러가지로 많이 배운 듯.
  • 니코 코바치가 사임하고 플릭의 감독 대행 첫 경기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전이었는데 이 때 플릭은 많이 긴장했고 유프 하인케스가 전화통화로 안심시켰다고 한다. 하인케스는 "걱정하지 마라. 너는 3-0 또는 4-0으로 이길거다. 나는 내 바이언을 안다." 말을 했는데 플릭은 다음 날 도르트문트전에서 4-0 대승을 거둔다. 출처.
  • 가족은 아내 실케 플릭과의 사이에서 장녀 캐서린 플릭과 차녀 한나 플릭을 두었다. 실케와는 10대 때부터 만났으며 결혼한지 30년이 넘었다고 한다. 장녀는 결혼해서 2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으며, 이로써 한지 플릭 본인은 환갑도 되기 전에 할아버지가 되었다.
  • 알폰소 데이비스 등 아직 독일어를 잘 못하는 선수들과 얘기할 때 따로 통역이 붙지 않는 걸로 봐서는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 때 영어로 인터뷰한 영상이 올라왔는데 완벽하게 구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꽤 잘하는 편이다.[27]
  • 성격은 그냥 무던한 듯하다. 골을 넣어도 큰 리액션 없이 선수들한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심지어 PSG를 꺾고 트레블을 달성한 순간에도 그냥 무덤덤하게 주변인들과 악수를 나눴다. 물론 우승 세리머니 때는 환하게 웃었지만.[28]
  • 인터뷰에서 논란이 될법한 말을 전혀 하지 않고 정석적인 대답으로 인터뷰가 깔끔한 편이다. 이적설로 핫한 선수에 관한 질문을 받으면 항상 '그는 바이언에서 중요한 선수이며 지금 팀을 위해 뛰고 있다.'라는 뉘앙스의 답변을 하여 언론들이 태클을 할 여지를 미리 차단한다.
  • 토니 크로스가 올해의 감독상 수상에 관련하여 인터뷰를 하면서 플릭과의 일화를 공개했는데 2014 브라질 월드컵때 독일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였던 플릭은 크로스가 아침을 잘 안먹는다는 것을 알고 계속 깨워서 아침을 먹으라고 내보냈다고 한다. 크로스는 더 자고 싶었다고 당시 추억을 회상했다. 출처.
  • 프랑스 풋볼 인터뷰에서 "어떤 감독이 당신에게 영감을 주었는가?"에 대한 질문에 네덜란드의 축구에 감탄했으며 많은 것을 따랐고 요한 크루이프, 루이 판할 등이 영감을 주었다고 답했다. 출처. 추가적으로 아르센 벵거에게도 존경을 표했다. 아스날의 벵거의 철학을 좋아했으며 벵거의 훈련방식도 많이 따랐다고 밝혔다. 출처. 지금의 감독에서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펩 과르디올라와 다른 나라에서 여러 타이틀을 획득한 주제 무리뉴에게 존경을 표했다. 출처.
  • 클럽 월드컵 우승 후 메달 수여식 때 메달을 수여를 하는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이 플릭과 주장 노이어였는데 메달 1개가 부족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나왔다. 이때 플릭은 메달이 하나만 남았다는 것을 눈치챘고 메달을 거절하고 뒤에 있는 노이어에게 양보했다. 6관왕을 달성한 것과 시상식에서 보여준 훌륭한 인성으로 여러 미디어에서 칭찬을 받았다.출처
  • 자신의 고향 바멘탈에서 가족들과 스포츠샵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상점 이름은 'Hansi Flick Sport und Freizeit GmbH'. 바멘탈의 젊은 주민들이 자주 이용했고 플릭의 스포츠샵에 익숙하게 자라왔으며 플릭은 2015년에 바멘탈에서 최연소로 명예 시민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가족 사정으로 문을 닫았다고 한다.
  • 월드컵 2년제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였다. 플릭은 월드컵 2년제는 축구에 큰 과부하를 줄 뿐만 아니라 타 스포츠에 부과되는 부담도 클 것이며 타 스포츠에도 자리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발언하였다.출처
  •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 굉장히 강하다. 뮌헨 감독으로 치른 리그 첫 경기에서 도르트문트를 4:0으로 박살냈고, 이듬해 리턴매치에서는 원정에서 1:0으로 승리하며 무려 3년 만에 리그에서 도르트문트전 전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차기 시즌 독일 슈퍼컵에서도 3:2로 이겼고, 리그에서는 두 경기 모두 선제골을 허용했음에도 두 번 다 역전승을 거두었다.[29] 불과 2년 사이에 5번 만나서 5번 다 이긴 것이다. 기록은 15득점 6실점.
  • 뮌헨 감독 커리어에 패배 횟수와 우승 트로피 갯수가 같은 감독이다.[30]
  • 뮌헨 감독 후임인 율리안 나겔스만에게 자신만의 노하우와 뮌헨에서의 성공 비결을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이에 나겔스만은 한지 플릭 감독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허나 나겔스만은 자신의 첫 시즌에서 포칼은 글라드바흐를 상대로 무려 5대0 완패를 당해 광탈했고, 챔스는 한 수 아래라 여겨지던 비야레알을 상대로 졸전 끝에 8강에서 탈락했다.[31][32]
  • 축구인 커리어가 엄청 화려하다. 선수 시절에는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4회 우승 및 더블 1회를 달성했고,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독일 대표팀 코치로는 유로 준우승, 월드컵 3위, 유로 4강, 그리고 월드컵 우승이라는 사기적인 국대 커리어를 쌓았다. 독일 대표팀의 스포팅 디렉터로 있는 동안 한 번 더 진출한 유로 4강은 덤.[33] 그리고 바이에른 뮌헨 감독으로는 전관왕과 분데스리가 1회 추가 우승으로 클럽 역사상 가장 성공한 감독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월드컵 조별예선 탈락을 하게 되어 명성에 흠집이 생기게 된건 아쉬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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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외 축구 팬들 사이에서 "플릭은 큰 점수차이로 이기고 있어도 언제나 무표정이다."라는 밈이 있다. 20/21 시즌 개막전 샬케와의 경기에서 크게 앞서고 있는 와중에 기회 하나를 놓치자 물병을 집어던지며 화내기도 했고 경기는 8대0 대승을 거두었으나 플릭은 전반전에 2~3골은 더 나왔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 프랑크 크라머 감독에 의하면 본인이 빌레펠트 감독 시절 플릭이 찾아왔는데 하위권 감독이었던 자신에게도 "국가대표팀 전술에 대해 의견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달라."고 얘기한 것에 대해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 선수 시절 외모가 필립 람과 묘하게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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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중 매체상에서는 '한지 플릭'이라는 표기가 가장 많이 사용하지만 독일어에는 불파음이 없으므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한지 플리크'라고 표기한다.[2]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인명에 있는 붙임표(-)는 무시한다. 단, 줄표의 앞뒤를 별개의 단어로 보아 띄어 쓰지는 않되, 연음 등은 고려하지 않고 표기한다.[3] 중도 경질. 독일 국가대표팀 최초로 경질된 감독이다.[4] 역전골을 먹힌 직후 플릭은 교체아웃됐는데 뮌헨 선발중에서 유일한 교체아웃이었다.[5] 대표적인 예시로 전반기 프라이부르크/볼프스부르크 2연전, 그리고 후반기 아우크스부르크 전. 이 당시에는 스쿼드가 부실한 걸 넘어 베스트일레븐만 간신히 짜고 벤치는 유망주로 가득 채워야 하는 실정이었다.[6] 다만 이는 단순히 로카가 아직 적응을 완벽히 못해서 천천히 출전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유는 로카가 출장할 때마다 부족한 탈압박 능력과 함께 상대의 압박에 취약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는 바이에른 뮌헨 시절 내내 고쳐지지 않았고 결국 선수가 바이에른 뮌헨 급 선수가 아닌 것만 증명된 채 팀을 떠났다.[7] 애초에 플릭이 센터백으로서 수비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알라바를 중용했던 이유는 수비진에서 빌드업을 책임지고 라인을 조율하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뤼카의 빌드업 능력도 준수한 편이지만 알라바와 비교하면 떨어지는 편이고, 티아고 알칸타라가 리버풀로 이적한 데다가 키미히까지 부상으로 한동안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플릭 입장에서는 안정적인 빌드업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알라바를 어떻게든 살리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었다. 후반기에 알라바의 폼이 다시 올라오고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알라바가 플릭의 전술과 수비진에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드러난다. 이 빌드업 능력의 유무가 센터백 출신인 뤼카가 레프트백으로 거진 전향했고 역으로 레프트백 출신인 알라바가 센터백으로 완전히 정착한 이유라고 볼 수 있다.[8] 애초에 이것 역시 결과가 좋았다면 어떻게든 변호를 받았을 것이다.[9] 다만 하베르츠는 어째서인지 플릭 이외에도 첼시 시절 투헬 때부터 모든 감독들이 최전방으로 기용하고 있다. 그리고 23-24시즌 후반기에 와서는 스트라이커로서 기량이 개화하는 중이다.[10] 8강 유벤투스를 상대로는 라인을 올려 전방위적인 프레싱과 점유율을 추구하는 전술을, 4강 바르셀로나를 상대로는 라인을 상대적으로 내리고 촘촘한 존 프레싱을 구사한 뒤 세트피스와 트랜지션으로 철퇴를 내리는 전술을, 결승전 도르트문트를 상대로는 상대의 게겐 프레싱에 맞불을 놓는 전술을 구사하는 등 같은 틀 하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11] 이 시즌 바이에른 뮌헨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것은 부정할 수 없으나 코로나-19로 인한 중단으로 역으로 체력 회복과 부상자들의 복귀가 이뤄지는 행운을 통해 챔피언스 리그를 앞두고 재정비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챔피언스 리그와 포칼컵 획득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12] 게겐프레싱 전술에는 한 가지의 단점이 부각되는데, 바로 뒷공간 허용이다. 20-21 시즌 바이에른 뮌헨에 정식 감독으로 부임한 후 2021년 1월까지 무려 석 달 동안 무실점 경기가 챔피언스 리그 로코모티브 모스크바 전에 2-0 승리를 거둔 경기밖에 없었는데, 실점 장면의 대부분을 보면 상대가 수비 뒷공간으로 롱볼을 뻥 차서 발빠른 공격수들을 앞세워 득점을 하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 문제는 이게 한 두번이 아니라 무려 석 달이나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플릭의 전술 파훼법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빡빡한 일정에 대한 선수들의 체력 문제, 수비진의 연이은 삽질, 살리하미지치의 여름 이적시장 보강 실패로 인한 플랜B 전술 조정의 한계 등등 여러 문제들이 겹쳤고 포칼 2라운드 홀슈타인 킬 전에서 결국 터져버렸다.[13] 수석 코치로 2014 월드컵에 출전해 우승컵을 들어올렸다.[14] 특히 챔피언스 리그는 축구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하게 전승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코로나19라는 특수 상황때문에 토너먼트를 단판으로 진행했다. 단판으로 진행했다고 해도 기존의 경기보다 고작 두 경기 적은데다가 토너먼트 단판에서도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상대를 파괴한 수준이어서 그 두 경기를 진행했다고 해도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는 없다.[15] 05-06 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가 European Sports Media(유럽 스포츠 미디어)와 제휴, 남녀팀 부문으로 분리되어 19-20 시즌부터 다시 시상.[16] 후멜스 대신 센터백으로 발탁된 틸로 케러, 안토니오 뤼디거, 니클라스 쥘레는 멘탈이나 실력면에서 후멜스의 빈자리만 뼈저리게 느끼게끔 만드는 삽질쇼만 보여주었다. 특히 쥘레의 경우 3경기 전부 실점에 직접적인 실책까지 범했을 지경.[17] 브란트는 특히 이번 대회에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마르코 로이스의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선수였다.[18] 미로슬라프 클로제 은퇴 이후론 정통 스트라이커가 독일 국대에선 씨가 말랐다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으로 그나마 티모 베르너, 카이 하베르츠가 플릭호에서 스트라이커 노릇을 맡아왔지만, 선배의 아성엔 한참 미치질 못하는 수준들이었다. 스트라이커로 제대로 뛴 선수는 니클라스 퓔크루크 뿐이었지만 조커 카드로 생각했는지 교체로만 출전시켰다.[19] 일본과의 경기에서 멀쩡히 잘하던 토마스 뮐러일카이 귄도안, 자말 무시알라를 일찍이 교체아웃 시킨다던지, 그나마 교체로 들여보낸 선수들도 삽질쇼만 보여주는 등 용병술도 문제가 있다.[20] 특히 1차전에서 귄도안 대신 교체로 들어온 레온 고레츠카는 거의 병풍처럼 서있기만 하면서 형편없는 경기력을 보여주었다.[21] 또다른 6관왕 감독인 펩 과르디올라의 경우에는 2022/23 시즌에 맨시티를 이끌고 트레블을 달성해 자신이 리오넬 메시 빨이라는 비판을 잠재운 것과도 대조된다. 그리고 그 전에도 펩은 메시를 포함한 전성기 바르샤 시절 전력은 본인이 직접 육성시킨 것이라는 변명이라도 가능했다.[22] 그 와중에 플릭과 뮌헨이 갈라서게 된 주범(?)이었던 브라쪼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해 5월 말 뮌헨의 리그 우승 직후에 해임되었다.[23] 사상 최초의 전승 우승. 이 우승으로 역대 8번째 트레블 감독이 되었다.[24] 바이에른의 수석 코치라는 것도 니코 코바치의 동생인 로베르트 코바치만 수석 코치인 줄로만 알지 플릭까지 수석 코치를 맡은 것을 몰랐던 팬들이 많았다.[25] 참고로 저때 바르셀로나의 감독은 키케 세티엔이었는데, 이 분도 바르샤 감독 부임이후로 단독문서가 생성되었다.[26] 사실 이뿐만 아니라 실력에 비해 비교적 한국에서 비인기였던 바이에른 선수단 전체가 좀 더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27] 독일인들은 전반적으로 영어를 잘하는 편이다.[28] 하지만 경기가 끝난 직후 선수들과 뤼카 에르난데스제 3의 눈을 꼬집으면서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29] 심지어 두번째 경기는 두 골이나 먼저 먹었지만 내리 4골을 몰아넣으며 이겼다.[30] 각 7번과 7개. 다만 홀슈타인 킬과의 승부차기 패배를 포함하면 패배가 1번 더 많아진다. 물론 약 2년 간 감독하면서 고작 8번 밖에 안 졌다는 것도 충분히 대단하다.[31] 굳이 따지면 플릭도 두번째 시즌은 리그 우승, 포칼 2라운드 탈락, 챔스 8강 탈락으로 나겔스만과 성적은 동일하다. 허나 플릭의 경우는 코로나 때문에 엄청나게 빡빡해진 일정 + 슈퍼컵/클럽월드컵을 모두 소화하느라 팀의 체력이 시즌 중반에 바닥나버렸고,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와 같은 팀내 초에이스와 더불어 주전 공격수, 미드필더가 부상으로 빠졌는데도 우승후보 PSG를 압도하며 원정골로 아쉽게 떨어진, 그야말로 졌잘싸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후반기 들어 졸전에 졸전을 거듭한 나겔스만과는 비교 자체가 실례이다. 게다가 플릭은 20/21 포칼과 챔스는 놓쳤지만 슈퍼컵 두 개와 클럽월드컵은 우승하며 전관왕을 달성해 축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32] 여담으로 플릭은 뮌헨을 떠나고 나서도 뮌헨 경기를 가끔 관전하러 다니고 있는데, 카메라에 얼굴을 비출 때마다 바이언 팬들의 심정은 황당했다.[33] 여담이지만 플릭이 대표팀을 완전히 떠난 시점부터 뢰브 감독은 부진을 면치 못했고 2017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제외하면 2018년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 네이션스 리그 강등, 유로 2020 16강 탈락, 스페인 0-6 참사, 북마케도니아 1-2 참사와 같은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이로 인하여 사실 플릭이 수석 코치 및 디렉터 시절 전술적인 부분을 모두 담당하여 대표팀이 호성적을 거둔 것이 아니냐는 의견까지 나온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