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9 12:37:40

한국프로야구/1983년/신인 드래프트

파일:KBO 로고(세로형/화이트).svg 신인 드래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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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차 지명3. 2차 지명4. 이모저모

1. 개요

사실상 KBO 최초의 신인 드래프트[1]로 이 해부터 본격적으로 1차 지명과 2차 지명이 시작되었다.

2. 1차 지명

1차 지명은 각 팀에서 팀 별 연고지 내 고교 출신 선수를 뽑았다. 지명 수에 제한은 없었다.

OB는 임시로 대전을 연고지로 쓰고 있었지만 원 연고지는 서울로 MBC와 겹치기에, 대전 및 충청 지역 선수 외에 서울 지역 선수들을 상대로 MBC와 지명을 했다. 지명 방식은 MBC가 투수 2명을 먼저 지명하고 OB가 1명을 지명하였고, 야수는 반대로 OB가 우선 2명을 지명하고 MBC가 1명을 지명하였다. 양팀 지명 선수들 중 10명의 선수가 겹쳐, 10명을 대상으로 드래프트를 했다. 이후로 두 팀은 1차 지명을 앞두고 동전 던지기나 주사위 굴리기 등으로 지명 순번을 정했다. 10명의 선수는 지명 순번대로고 그외에는 가나다 순이다.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1차 지명자
파일:MBC 청룡 엠블럼(1982~1985).png 오영일(배명고-인하대, 투수)
김용수(동대문상고-중앙대, 투수)※[2]
기세봉(충암고-포철-경리단, 투수)※[3]
신계석(경기고-경희대, 투수)
김정수(신일고-고려대, 외야수)
박철영(배명고-연세대, 포수)
김문영(선린상고-연세대, 외야수)
유성용(경기고-중앙대, 내야수)
이성수(충암고-동아대, 외야수)
이승희(서울고-한양대, 내야수)※[4]
최홍석(신일고-고려대, 외야수)[삼미]
편기철(부산고-건국대-농협-성무, 투수)
MBC 청룡
파일:OB 베어스 엠블럼.svg (서울)
장호연(충암고-동국대, 투수)
정선두(장충고-실업롯데-경리단, 투수)
박종훈(신일고-고려대-상업은행, 외야수)
이선웅(선린상고-인하대, 내야수)[삼미]
(대전·충청)
송일섭(청주고-농협,성무, 외야수)[7]
정구선(대전고-동국대-한국화장품-경리단, 내야수)[삼미]
한대화(대전고-동국대, 내야수)
OB 베어스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김석일(경남고-중앙대, 외야수)
김성호(부산고-건국대, 내야수)
김종근(경남고-중앙대, 내야수)
김호근(부산고-고려대, 포수)
박영태(마산상고-동아대, 내야수)
박정후(경남고-동아대, 투수)
배경환(경남고-연세대-포철-경리단, 투수)
심재원(부산고-성균관대-한국화장품, 포수)
양상문(부산고-고려대, 투수)※[9]
우경하(경남고-고려대-실업롯데-경리단, 외야수)
유두열(마산상고-한국전력, 외야수)
장상철(부산고-고려대, 내야수)※
최동원(경남고-연세대-실업롯데-한국전력, 투수)
한문연(마산상고-동아대, 포수)
롯데 자이언츠
파일:삼미 슈퍼스타즈 엠블럼(1982~1985).png 김상기(인천고-인하대, 투수)
김진우(인천고-인하대, 포수)
박명운(인천고-중앙대, 포수)
유응삼(동산고-농협, 외야수)※
임호균(인천고-철도청-동아대-한국전력, 투수)
최광묵(인천고-인하대, 외야수)※
삼미 슈퍼스타즈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김근석(경북고-고려대, 내야수)
김동재(경북고-연세대, 내야수)
김시진(대구상고-한양대-경리단, 투수)
박승호(대건고-건국대-실업롯데-성무, 내야수)
양일환(대구상고-건국대, 투수)
장효조(대구상고-한양대-포철-경리단, 외야수)
정진호(경북고-연세대-한국전력-경리단, 내야수)
홍승규(대구상고-성균관대, 외야수)
황병일(경북고-건국대, 외야수)
삼성 라이온즈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장진범(진흥고-영남대, 내야수)
조종규(군산상고-건국대-한국화장품-경리단, 포수)
해태 타이거즈

3. 2차 지명

2차 지명은 롯데, 삼미, 삼성, 해태 4팀만 했다. ※표시가 붙은 선수는 지명권 포기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았다.
RD 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파일:삼미 슈퍼스타즈 엠블럼(1982~1985).png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1982~1988).svg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롯데 삼미 삼성 해태
1
이석규
(마산상고-동아대-한일은행,
내야수)
김대진
(경북고-연세대-포철-경리단,
외야수)
구영석
(경북고-상업은행,
내야수)
[10]
김현재
(휘문고-제일은행-고려대-경리단,
투수)
2
정윤돈
(경남고-경희대-한일은행,
내야수)
유종천
(배문고-성균관대-포철-성무,
투수)
조규식
(대구상고-영남대-제일은행-상무,
투수)
박동경
(서울고-상업은행,
투수)[11]
3
패스 이광길
(대전고-인하대,
내야수)
패스 양승호
(신일고-고려대-상업은행,
내야수)
4
- 패스 - 이원일
(청주고-제일은행,
포수)

4. 이모저모

  • 이 해 드래프트에서 가장 큰 수확을 거둔 팀은 롯데 자이언츠와 삼성 라이온즈로, 롯데는 1984년 리그 MVP를 수상한 최동원과 최동원의 전담 포수 한문연, 1984년 한국시리즈 MVP 유두열을 모두 이 해 뽑아 그 다음 해 한국시리즈에서 첫 우승을 차지한다. 삼성은 에이스 김시진과 타격의 달인 장효조를 지명했고, 나머지 선수들도 대부분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며 드래프트의 승자로 남았다. 그 외에도 장호연과 박종훈을 지명한 OB, 김진우와 임호균을 지명하고 이선웅과 정구선을 얻은 삼미도 쏠쏠한 이득을 얻었다. MBC는 1차지명 선수인 김용수가 입단을 거부하고 오영일만 입단하여 처쇄 10승을 거두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나머지 선수는 영 시원찮았고, 가능성을 보여주던 차에 요절한 김정수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박철영은 아쉽게 됐다. 반면, 해태는 뽑은 선수 자체가 적어 큰 성과를 얻지 못했다. 그나마 트레이드로 OB에서 영입한 한대화가 주전 3루수 자리에서 활약한 것이 위안거리.
  • 박동경과 양승호는 1982년 실업야구에서 각각 최우수 신인투수상과 최우수 신인타격상을 수상했는데, 그런 둘을 해태가 지명하면서 대한야구협회는 프로야구에서 실업야구의 유망주들을 빼간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이 둘은 프로 야구에서 기대만큼 활약을 보이지는 못했다.
  • 해태에 1차 지명된 조종규는 선수 생활 동안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은퇴한 후 심판위원으로 전향해 심판위원장과 경기감독관을 지냈다.
  • 해태에서 1차 지명된 또다른 선수인 장진범 역시 프로에서 크게 이름을 날리지 못하고 은퇴한후 심판위원으로 전향했다.


[1] 1982년 드래프트도 있지만, 이 드래프트는 전력 불균형 해소를 위해 시즌 직전에 일부 팀들만 참여하여 진행되었다.[2] 지명된 후 한일은행 야구단에 입단하지만, 이 때 지명 때문에 1985년 신인지명 때 MBC에 그대로 지명됐다.[3] 1년 뒤, 1984년 신인 드래프트 때 OB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4] 2년 뒤 1985년 신인 드래프트 때 OB 베어스에 지명되어 프로에 입단했다.[삼미] 지명권 양도 계약으로 삼미 슈퍼스타즈에 입단하였다.[삼미] [7] 지명권 양도 계약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삼미] [9] 지명된 후 한국화장품 야구단에 입단하고 2년 뒤 다시 지명받았다.[10] 1년 뒤 롯데에 재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11] 지명권 양도 계약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