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24 08:49:49

하야시 히데사다

<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e0e0e0> 하야시 히데사다
林秀貞
출생 1513년
오와리국
사망 1580년 11월 21일 (향년 약 67세)
교토
가족 하야시 카즈요시(林 一吉) (아들)
직업 무장
주군 오다 노부히데오다 노부나가오다 노부타다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1. 개요

오다 가문의 가신으로 오랫동안 미치카츠(通勝)로 알려져 있었으나 연구 결과 히데사다(秀貞)였다는 설이 정설이 되었다.

2. 생애

오다 노부히데를 섬기면서 오다 노부나가가 태어나자 그 후견인으로써 가로에 임명되었으며, 1546년에 후루와타리 성에서 노부나가의 성인식 때 노부나가의 시중을 드는 역할을 맡았다. 노부히데가 사망하면서 노부나가가 당주가 되었는데, 이때 히데사다는 노부나가의 기행에 우려를 표하며 동생인 노부카츠(노부유키)를 지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다.

1555년에 노부나가가 오다 노부토모를 살해하면서 키요스성을 점령하자 나고야 성의 루스이(留守居, 성 대리인)에 임명되었지만 1556년에 시바타 카츠이에와 함께 오다 노부카츠를 옹립하여 반기를 들었고 이노 전투에서 패하자 노부나가에게 항복한다. 이후 노부나가에게 사면받고 숙로(宿老)의 지위를 유지하며 오다 가문의 주요 행정 및 외교 업무를 담당했다. 1560년에는 오케하자마 전투에 참전하였다. 1578년에는 하리마 국 공략전과 칸키 성 공략전 등에도 참전하였는데, 이때 오다 노부타다의 군단에 속하여 참전하였으며, 주로 군감(軍監) 또는 후방 지원 등의 역할로 산요도 경비를 맡았다.

1580년, 과거 노부카쓰를 옹립하여 반기를 들었던 일을 이유로 추방된다. 추방 후 약 2개월 만에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하야시 히데사다의 3남 하야시 카즈요시(林 一吉)는 아버지 히데사다가 추방될 때 함께 추방되었다가, 혼노지의 변 이후에 야마우치 카즈토요의 가신이 되었다. 이때 카즈토요와 카즈요시 두 사람은 "서로 먼저 영주가 되는 사람을 섬기자"라고 약속을 했다는 일화가 있다. 세키가하라 전투 후 논공행상에서 야마우치 카즈토요가 토사 1국을 받자 카즈요시는 가로(家老)의 직위와 야마우치 성(姓), 그리고 5000석의 영지를 받았다. 이후에도 카즈요시 가문은 대대로 토사 번의 가로직을 역임했다.

3. 대중매체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8c066d09.jpg
노부나가의 야망 시리즈에서는 c급 무장 정도로 나오지만 오다 가를 오랫동안 모셔온 가신이라 노부유키의 반란이나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얼굴을 비춘다. 하지만 컴퓨터에게 맡겨도 중간에 쫓아내질 정도로 무장으로서의 능력은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