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대 호주 자유당 대표 피터 크레이그 더튼 Peter Craig Dutt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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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caa><colcolor=#fff> 출생 | 1970년 11월 18일 ([age(1970-11-18)]세) | ||
호주 퀸즐랜드 주 브리즈번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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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 호주 자유당 대표 | ||
지역구 | 딕슨 | ||
서명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005caa><colcolor=#fff> 배우자 | 키릴리 브럼비2003년 결혼 | |
자녀 | 3명[1] | ||
소속 정당 | |||
학력 | 퀸즐랜드 공과대학교 | }}}}}}}}} |
1. 개요
호주의 정치인. 호주 자유당의 제15대 당대표이다.2. 생애
1970년 11월 18일 브리즈본 북부 교외 도시인 Boondall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보육원에서 일했고, 아버지는 건축업자였다. 학창 시절에 정육점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부모는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이혼했다.일찍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는데 19살이던 1989년에는 퀸즐랜드 주 선거에서 노동당 텃밭인 Lytton에서 前 퀸즐랜드 주 노동당 대표였던 톰 번스(1931~2007)를 상대로 자유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패배한 적도 있다.
1988년 퀸즐랜드 공과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는데 2학년이던 1989년 6과목 중 4과목에서 낙제를 받은 적도 있다. 이 해부터 경찰로 일하기 시작했고 경찰 일과 대학 생활을 병행한 끝에 1999년이 되어서야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다.
1990년 퀸즐랜드 경찰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브리즈번에서 마약 단속반 소속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성범죄 단속반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1998년 8월 탈옥범이 운전하는 차를 추적하다 교통사고를 내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하는 사건을 겪었다. 이듬해인 1999년 경찰을 그만뒀다.
2000년 아버지와 함께 더튼 홀딩스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건물을 매입해 보육원으로 개조하는 사업이었다.
3. 정치 활동
31살이던 2001년 11월 호주 총선에서 브리즈번 인근 딕슨 지역 자유당 후보로 출마해서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다.2004년 10월 존 하워드 내각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006년 1월에는 재무 장관에 임명되었다. 2007년 11월 총선에서 더튼 본인은 지역구인 딕슨을 수성했지만 자유당이 노동당에게 패배하면서 정권이 교체되고 장관직에서는 내려와야 했다.
2013년 9월 총선에서 자유당-국민연합이 승리하자 토니 애벗 총리는 더튼을 보건부 장관 겸 스포츠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렇게 9월 18일부터 두 장관직에 취임했고 이듬해인 2014년 12월 23일까지 재임했다. 2014년 12월 23일부터 2018년 8월 21까지는 이민부 장관을, 2017년 12월 20일부터 2021년 3월 30일까지는 내무장관을, 2021년 3월 30일부터 2022년 5월 23일까지는 하원의장 겸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2013년부터 2022년까지 토니 애벗-말콤 턴불-스콧 모리슨 세 내각을 거치며 요직을 두루 거친 셈이다.
2022년 5월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면서 하원의장과 국방장관직을 사임했다. 2022년 5월 30일부터 2025년 5월 3일까지 자유당 대표직을 역임했다.
2025년 총선에서 노동당에게 패배했고 더튼 본인도 지역구에서 낙선하고 말았다.
4. 성향
호주 자유당내 강경우파 인사로 알려져있다. 특히 막말 논란이 많은 편인데,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당시 호주로 넘어온 사람들을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거나[2], 호주에 사는 흑인들은 모두 갱단이라거나, 이민자들은 영어도 제대로 못쓰는 멍청이라거나 하는 등의 인종차별적 막말을 자주 해서 호주 대중들에겐 극우 인사로 찍힌 상태다.때문에 상대평가로 2020년대 노동당 총리 앤서니 앨버니지의 높은 지지율에 알게 모르게 기여한다는 평가가 많았으나, 2023년 노동당이 주도한 개헌안 국민투표가 압도적 표차로 부결되고 이후 자유당의 지지율이 노동당의 지지율을 역전하면서 평가가 좀 개선되었다.
허나 호주판 도널드 트럼프 혹은 막심 베르니에로 불릴 정도로 타협 자체를 모르는듯한 불같은 스트롱맨적 기질이 언젠간 발목을 잡을거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2025년 5월 3일 열린 2025년 호주 연방 선거에서 보수연합을 이끌고 선거에 나섰지만, 반트럼프 바람이 분 선거라 친트럼프를 내세운 피터 더튼 세력들은 역사에 남을 참패를 기록함과 더불어 본인까지 지역구에서 낙선하고 만다.[3]
5. 기타
- 탈모를 앓고 있다. 정확히는 전두탈모증으로 머리카락은 물론 눈썹과 수염도 없다.
- 상술했듯 불의의 교통사고로 경찰 일을 그만둔 적이 있다.
- 1992년 결혼했지만 1년도 안 돼서 이혼했으며 2002년 당시 파트너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다. 파트너와 헤어진 뒤 2003년 재혼했고 아들 둘을 낳았다.
- 가톨릭 신자다. 다만 교회는 자주 안 간다고 한다.
- 2020년 3월 13일 코로나 양성 반응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당시 호주 내각 구성원들 중 최초였다.
[1] 2남 1녀[2] 남아공에서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후 화이트 제노사이드가 벌어졌다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남아공 백인을 난민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유색인종 난민은 반대하기 때문에 비판자들은 백인 인구 비율을 늘려 유색인종 인구 비율 증가를 막으려는 더튼의 백인 민족주의 성향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3] 공교롭게도 5일 전 같은 영연방 국가인 캐나다에서 열린 총선에서도 호주 자유당과 성향이 비슷한 보수당이 패배하고, 당 대표인 피에르 폴리에브가 지역구에서 낙선하였다. 그나마 폴리에브는 피터 더튼보단 온건파라서인지 당 자체는 패하긴 했어도 이전보단 의석이 늘어났지만, 피터 더튼과 자유당은 그런 것도 없이 참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