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7 15:24:35

프릴레프

프릴레프
Прилеп
<nopad> 파일:프릴레프.jpg
국가 북마케도니아
해발 620m
인구 63,308명 (2021년 기준)
면적 1,194.44㎢

1. 개요2. 역사

1. 개요

마케도니아어, 세르비아어, 불가리아어 Прилеп
튀르키예어 Pirlepe / Perlepe
알바니아어 Prilep / Përlep

북마케도니아 남부에 위치한 도시. 비톨라, 오흐리드와 함께 북마케도니아 남부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이다. 지명은 슬라브어로 '바위에 박힌'이란 뜻이다. 마케도니아 왕국 시기부터 인근에 도시가 형성되었으나 시가지 자체는 오스만 제국 시기에 세워졌다. 19세기 말엽 들어 불가리아, 알바니아, 세르비아 등이 영유권을 주장하며 발칸의 화약고가 되었고 20세기 전반에 여러번 주인이 바뀌었다. 민족/종교 분쟁의 씨앗은 이어져 2001년에도 알바니아계 민병대와 마케도니아군과의 카르팔라크 전투 후 벌어진 반알바니아 폭동에서 15세기에 세워진 유서 깊은 모스크가 파괴되는 비극이 있기도 했다.

2. 역사

파일:프릴레프 1.jpg
1475년에 세워져 2001년의 반알바니아 폭동으로 불탄 바자르 모스크와 1826년에 세워진 시계탑
파일:프릴레프.png
14세기 후반 세르비아 왕공 마르코 므르냐브체비치가 세운 마르코의 성탑 (Маркови Кули)

고대에 펠라고니아 지역에 속했고, 그리스계 펠라고네스 인들이 거주했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 왕국령이 되었다. 서남쪽 15km 지점의 체피고보 (Чепигово)에는 스티베라 (Στύβερρα)란 도시가 세워졌고, 남쪽 10km 지점의 본체 (Бонче) 산지에서는 왕릉이 조성되기도 했다. 다만 스티베라는 로마 제국 시기인 268년에 고트족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다. 1014년에는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 사무일클레이디온 전투 패전 후 인근에서 동로마 제국 측에 의해 실명된 포로들을 보고 심장마비로 사망하기도 했다. 12세기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을 거쳐 1334년 세르비아 제국령이 되었고, 1395년 오스만 제국령이 된 이후 알바니아 및 튀르크 무슬림이 대거 이주하여 도시화되었다. 알바니아, 블라흐계 기독교도들은 불가리아 혹은 그리스화 되어 공존했다. 18세기에는 바자르가 조성되었다.

19세기 무렵 오스만령 마나스티르 빌라예트에 속한 프릴레프는 서부 마케도니아의 불가리아 민족주의 거점이었다. 6천 5백의 인구 중 4천여가 불가리아계, 2천이 무슬림, 나머지가 세르비아 및 그리스 및 아로마니아인 등이었다. 1880년대 들어 불가리아 공국이 일대를 노렸으나 알바니아 인들이 결성한 프리즈렌 동맹이 저지했다. 발칸 전쟁 중인 1912년 11월, 세르비아 왕국군이 프릴레프 전투에서 오스만 군을 격파하고 북마케도니아 대부분을 점령했다. 1차 대전 중인 1915년 11월에는 불가리아 왕국이 점령했고, 1918년 전후 반환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에 속했다. 1941년 4월에는 나치 독일군이 점령하여 재차 불가리아 왕국 령이 되었고, 1944년 9월 불가리아의 연합군 가담 후에는 불가리아 수비대가 유고 민병대와 나치 독일에 10여일간 저항하다 축출되었다. 다만 두 달 후에 티토의 파르티잔이 도시를 점령했고, 이후 유고 연방에 속했다가 1991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령이 되어 현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