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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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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언

1. 개요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 및 읽을 만한 글귀를 정리한 문서.

2. 명언

나는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신성시할까 봐 두렵기 그지없다. 이제 사람들은 내가 왜 이 책을 먼저 출간하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헛소리를 하는 것을 막고 싶은 것이다. ⋯ 나는 성자가 되고 싶지 않다. 차라리 어릿광대가 되고 싶다. [1]

《이 사람을 보라》
춤추는 별을 낳기 위해선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3][4]

《우상의 황혼》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심연 또한 네 속을 들여다볼 것이므로. [5]

《선악의 저편》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6]

《즐거운 학문》
음악이 없다면 인생은 잘못된 것이다. [7]

《우상의 황혼》
모든 글 중에서 나는 누군가가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피로 써라. 그러면 그대는 피가 곧 정신임을 알게 될 것이다. [8]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9]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 [10]

《즐거운 학문》
삶의 여로를 걷는 우리들은 여행자다. 가장 비참한 여행자는 누군가를 따라가는 인간이며, 가장 위대한 여행자는 습득한 모든 지혜를 남김없이 발휘하여 스스로 목적지를 선택하는 인간이다. [11]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하루의 3분의 2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12]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젊은이를 망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대신에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존경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13]

《아침놀》
깊이있는 모든 사상가들은 오해받는 것보다 이해받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 [14]

《선악의 저편》
그대의 몸은 그대의 철학보다 더 많은 지혜를 품고 있다. [1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더러운 것에 대한 혐오가 지나치면, 스스로를 정화시키고자 하거나 정당화하는 데에 장애가 될 수 있다. [16]

《선악의 저편》
진리는 추악하다. 진리에 의해서 멸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예술을 가지는 것이다. [17]

《유고》
옛사람들이 '신을 위해서' 행했던 것을 요즘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행한다. [18]

《아침놀》
나는 욕구가 소박한 예술가를 사랑한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단 두 가지, 자신이 먹을 빵과 자신의 예술이다. [19]

《우상의 황혼》
우리는 정말 우리 삶의 시인이 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사소하고 가장 평범한 일에서부터. [20]

《즐거운 학문》
결혼 생활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결핍이 아니라 우정의 결핍이다. [21]

《유고》
아이들이냐 아니면 책이냐. [22]

《우상의 황혼》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그 욕망의 대상은 아니다. [23]

《선악의 저편》
친구를 최고의 적으로 삼아야 한다. 친구에게 반대할 때, 너는 마음속으로 그를 더없이 가깝게 여겨야 한다. [24]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어떤 방식으로든 견뎌낼 수 있다. [25]

《우상의 황혼》
오늘 가장 잘 웃는 자가 최후에도 웃을 것이다. [26]

《우상의 황혼》
나쁜 기억력의 장점은 동일한 좋은 것을 여러 번이나 마치 처음처럼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27]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의 성숙 : 어렸을 때 놀이에서 가졌던 진지함을 다시 발견하는 것. [28]

《선악의 저편》
네 운명을 사랑하라 (Amor fati[29]) : 이것이 지금부터 나의 사랑이 될 것이다! 나는 추한 것과 전쟁을 벌이지 않으련다. 나는 비난하지 않으련다. 나를 비난하는 자도 비난하지 않으련다. 눈길을 돌리는 것이 나의 유일한 부정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언젠가 긍정하는 자가 될 것이다! [30]

《즐거운 학문》
이것이 삶이었나?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31]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모두 그리고 각자에게 하는 질문: "너는 이 삶을 다시 한 번, 그리고 무수히 반복하길 원하는가?" 는 마치 최대의 중량으로 그대의 행동 위에 얹힐 것이다! [32]

《즐거운 학문》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성실한 사람이 아니며 누구나 내 면전에서 그렇게 말해도 된다. [33]

《아침놀》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34]

《즐거운 학문》
나의 제자들이여, 나는 이제 홀로 가련다! 그대들도 이제 홀로 떠나라! 그것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나를 떠나서 차라투스트라에 저항하라! 아니 차라리 그를 부끄러워하라! 그가 그대를 속였을 수도 있으니... 언제나 제자인 채로 머문다면, 그대들은 스승의 은혜를 저버리는 것이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나의 월계관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가?... 이제 나는 그대들에게 명한다. 나를 버리고 그대들 자신을 찾아라. 그대들이 모두 나를 부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그대들에게 돌아오리라. [3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박찬국 옮김, 아카넷, 2022, p.235. 강조는 책 내에서의 강조.[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말로서, 원문은 Man muss noch Chaos in sich haben, um einen tanzenden Stern gebären zu können.[3] 직역하면 '죽이지 않는 것'이지만 '못하는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원문은 우상의 황혼에 나오는 말로서, Was mich nicht umbringt, macht mich stärker. 『이 사람을 보라』에도 "그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라는 비슷한 문장이 나온다.[4] 참고로 이 문장의 한 부분 중에서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이란 부분의 의미는 '고통'이라는 해석이다. 즉,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 아니, 정확히로는 '나를 죽이지 않은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셈이다.[5] 선악의 저편 146절에 나오는 말로서, 원문은 다음과 같다. Wer mit Ungeheuern kämpft, mag zusehen, dass er nicht dabei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여기서 '괴물'은 도덕종교를 말하는 것이고, '심연'은 영원ㆍ궁극ㆍ무조건적 특성을 지닌 진리를 가리킨다. 데모크리토스는 진리와 심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진리는 심연 속에 있기 때문이다. (ἐτεῇ δὲ οὐδὲν ἴδμεν: ἐν βυθῷ γὰρ ἡ ἀλήθεια)" 즉, 니체는 이 말을 염두에 두고 해당 어록을 얘기한 것인데, 니체는 해당 어록을 통해 '도덕 · 종교라는 절대적 진리와 싸우다가 거꾸로 자기 자신이 절대적 진리가 되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니체는 인류가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는 모든 가치가 가상에 불과한 것이며, 단지 그 가치의 '유용성'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절대적 진리라고 믿고 있을 따름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무조건적 믿음'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의심을 통한 자유로운 생각들의 실험들'을 권유한다.[6] Gott ist tot! Gott bleibt tot! Und wir haben ihn getötet! Wie trösten wir uns, die Mörder aller Mörder?[7] Ohne Musik wäre das Leben ein Irrtum.[8] Von allem Geschriebenen liebe ich nur das, was einer mit seinem Blute schreibt. Schreibe mit Blut: und du wirst erfahren, daß Blut Geist ist.[9] 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10] Gefährlich leben! Baut eure Städte an den Vesuv! (『즐거운 학문』 283절 Vorbereitende Menschen.)[11]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中에 비슷한 맥락의 내용은 나오는데 '구체적'인 독일 원문은 확인 되지 않는다. 아마도 니체가 이런 식으로 말했다는 요약문을 마치 니체가 했던 말인 것처럼 쓴 것처럼 보인다.[12] denn wer von seinem Tage nicht zwei Drittel für sich hat, ist ein Sklave.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83절)[13] "Man verdirbt einen Jüngling am sichersten, wenn man ihn anleitet, den Gleichdenkenden höher zu achten als den Andersdenkenden." (아침놀 297절)[14] Jeder tiefe Denker hat mehr Angst davor, verstanden zu werden als missverstanden zu werden.[15]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1부, '신체를 경멸하는 자들에 대하여'[16] Der Ekel vor dem Schmutze kann so groß sein, daß er uns hindert, uns zu reinigen – uns zu »rechtfertigen«. (『선악의 저편』 119절)[17] 유고(1888년 봄-여름, KSA 16 (40〔7〕))에 나오는 말이다. 철학자가 진리를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하면 매를 맞아야(!) 된다면서 하는 말이다. 원문은 Die Wahrheit ist häßlich. Wir haben die Kunst, damit wir nicht an der Wahrheit zu Grunde gehen.[18] 『아침놀』 204절에 나온다. 주식시장과 그곳에 있는 돈에 목숨 건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한 말이다. 원문은 und was man ehedem "um Gottes willen" that, thut man jetzt um des Geldes willen.[19] Das ist ein Künstler, wie ich Künstlerliebe, bescheiden in seinen Bedürfnissen: er will eigentlich nur zweierlei, sein Brot und seine Kunst. (우상의 황혼)[20] wir aber wollen die Dichter unseres Lebens sein, und im Kleinsten und Alltäglichsten zuerst. (Die fröhliche Wissenschaft, 299.)[21] "Nicht die Abwesenheit der Liebe, sondern die Abwesenheit der Freundschaft macht die unglücklichen Ehen." 유고(1876년 말 ~ 1877년 여름 (23〔72〕))에 나온다. #[22] 원문은 라틴어로 "Aut liberi aut libri." 아이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책을 지을 것인가? 라는 뜻으로서, 아이를 가지면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 어려우니 독신으로 살지 말지를 결정해야 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니체는 이 말을 유고(1885년 가을 ~ 1887년 가을, (2〔22〕)에서 1번, 우상의 황혼(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편력, 27)에서 1번 말한다.[23] 선악의 저편 175절에 나오는 말로서, 원문은 "Man liebt zuletzt seine Begierde, und nicht das Begehrte."[24] In seinem Freunde soll man seinen besten Feind haben. Du sollst ihm am nächsten mit dem Herzen sein, wenn du ihm widerstrebst. (Also sprach Zarathustra, Vom Freunde)[25] 이 말은 『우상의 황혼』에 나오는 말로써, 원문은 이렇다. "Hat man sein warum? des Lebens, so verträgt man sich fast mit jedem wie?" 직역은 "삶의 '왜?'를 가진 사람은, 거의 모든 삶의 '어떻게?'를 견뎌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빅터 프랭클이 인용한 니체의 말로 잘 알려져 있다.[26] wer heute am besten lacht, lacht auch zuletzt. (우상의 황혼)[27] Der Vorteil des schlechten Gedächtnisses ist, daß man dieselben guten Dinge mehrere Male zum ersten Male genießt.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 580)[28] Reife des Mannes: das heißt den Ernst wiedergefunden haben, den man als Kind hatte, beim Spiel. (『선악의 저편』 94절)[29] Amor fati는 '운명의 사랑'는 뜻의 라틴어이다. 니체는 이 부분만 의도적으로 라틴어를 사용했다.[30] Amor fati: das sei von nun an meine Liebe! Ich will keinen Krieg gegen das Häßliche führen. Ich will nicht anklagen, ich will nicht einmal die Ankläger anklagen. Wegsehen sei meine einzige Verneinung! Und, alles in allem und großen: ich will irgendwann einmal nur noch ein Jasagender sein! (『즐거운 학문』 4부 276절)[31] War das das Leben? Wohlan! Noch einmal! (Also sprach Zarathustra, Vom Gesicht und Rätsel)[32] die Frage bei allem und jedem: »willst du dies noch einmal und noch unzählige Male?« würde als das größte Schwergewicht auf deinem Handeln liegen! (Die fröhliche Wissenschaft, 341. Das größte Schwergewicht)[33] Wenn ich jetzt lüge, so bin ich kein anständiger Mensch mehr, und jeder soll es mir ins Gesicht sagen dürfen. (아침놀 152절)[34] Du sollst der werden, der du bist. (즐거운 학문 270절)[35] Allein gehe ich nun, meine Jünger! Auch ihr geht nun davon und allein! So will ich es. Wahrlich, ich rate euch: geht fort von mir und wehrt euch gegen Zarathustra! Und besser noch: schämt euch seiner! Vielleicht betrog er euch. (...) Man vergilt einem Lehrer schlecht, wenn man immer nur der Schüler bleibt. Und warum wollt ihr nicht an meinem Kranze rupfen? (...) Nun heiße ich euch, mich verlieren und euch finden; und erst, wenn ihr mich alle verleugnet habt, will ich euch wiederkehren. (Also sprach Zarathustra, Von der schenkenden Tug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