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9246><colcolor=#FFF> 프란체스코 안토니오 아레나 Francesco Antonio Aren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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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89년 3월 27일 |
이탈리아 왕국 피조니 | |
사망 | 1945년 1월 28일 (향년 55세) |
폴란드 군정청 비엘렌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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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
복무 기간 | 1909년 ~ 1945년 |
최종 계급 | 준장 |
참전 |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이탈리아-알바니아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
1. 개요
이탈리아의 군인이다.2. 생애
피조니에서 태어나 1909년 이탈리아 왕국군에 보병 장교로 입대했다. 1911년 이탈리아-튀르크 전쟁 당시 리비아 키레나이카 인근에서 전투를 치렀고 무공훈장을 획득했다. 1914년 중위로 진급하고 왕립식민지군단 소말리아부대에 배치되었으며 1915년 대위로 진급했다.1916년 이탈리아 북부 전선으로 이동해 제10차 이손초 전투에서 공을 세워 무공훈장을 획득했다. 비토리오벤토 전투 당시 알라노디피아베 지역을 방어해 훈장을 수여받았다. 전후 참모직에서 복무하다가 1926년 중령으로 진급해 시칠리아, 나폴리를 거쳐 1936년 대령으로 진급했다.
1937년 전쟁부에서 복무했고 바리에서 연대장으로 배치되어 알바니아 전쟁에 투입되었다. 2차 대전이 본격적으로 발발할 당시 제9군단 참모장으로 있다가 1940년 준장으로 진급해 아리에테 기갑사단의 부사단장으로 임명되어 북아프리카 전선에 배치되었다. 가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제20군단장인 에토레 발다사레가 공습으로 전사하자 아리에테 사단장이였던 주세페 데스테파니스가 군단장으로 영전해 후임사단장 아돌포 인판테가 올 때까지 권한대행을 수행했다.
인판테의 후임으로 사단장으로 영전했고 제2차 엘 알라메인 전투 당시 분전했으나 부대는 전멸했다. 이후 전쟁부로 전출되었고 제36보병사단장이 되어 그리스 아테네 인근을 방어했으나 연합국, 이탈리아의 휴전협상을 이행하기 위해 독일군의 모든 전투요청을 거부하자 독일군이 체포해 폴란드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폴란드를 탈환하자 수용자들은 죽음의 행진을 당했다. 이 당시 아레나뿐만 아니라 공군 장성 알베르토 브리간티, 카를로 우니아도 있었으며 3명은 모의해 탈주했고 폴란드 농장에 숨었다. 폴란드 농부와 우니아는 농장을 탈출했으나 브리간티, 아레나는 농장에 남았고 2명의 소련군에게 다시 봍잡혀 파시스트의 부역자라는 모욕을 들으며 총살형을 당했다. 브리간티는 급소를 빗겨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아레나는 사망했다.
시신은 1960년대 발견되어 로마에 있는 베라노 묘지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