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25 23:17:22

풀란 데비


<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풀란 데비
Phoolan Devi
출생 1963년 8월 10일
인도 잘룬
사망 2001년 7월 25일
인도 뉴델리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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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사마지와디당
직업 정치인

1. 개요2. 생애3. 사망


1. 개요


풀란 데비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강성용 서울대학교 남아시아센터 센터장

인도의 전 정치인. 불가촉천민의 딸로 태어나 처절한 삶을 산 끝에 도망쳐서 산적 두목이 되었고, 자신을 학대하고 멸시한 자들을 향해 인도 역사에 남는 복수극을 벌인 뒤 인도 불가촉천민의 영웅이 되어 수십명을 살해한 범죄집단 수괴임에도 사면된뒤 결국 인도 주 하원의원까지 당선되었다 암살당한 희대의 인물로 활동 당시 밴디트 퀸(Bandit Queen)으로도 불리우며 여러 파란만장한 행적으로 1994년 동명의 영화도 나왔다.

2. 생애

불가촉천민 카스트의 집안에서 태어난 여성. 11세에 푸틸랄이라는 남자와 결혼하였지만 가정 폭력을 이기지 못하고 1979년에 집을 떠나 갱단에 들어간다. 갱단 리더 구자르에게 몸이 더럽혀지기도 했으나 2인자인 비크람 말라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비크람 말라는 구자르를 처치하고 갱단 리더의 자리에 오르며 데비에게 총을 다루는 법을 알려준다. 데비는 비크랄과 함께 갱단을 이끌면서 부자들을 상대로 노상 강도짓을 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눠 의적 이미지가 생기기도 했다. 그 와중에 데비는 푸틸랄을 찾아가 보복을 하기도 한다.

데비는 베마이 마을의 라이벌 갱단에 비크람 말라를 잃고 사로잡힌다. 붙잡혀있는 3주 동안 성적인 수치도 겪었지만 데비는 탈출한다. 데비는 만 싱이라는 갱단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복수를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던 1981년 조직원들과 베마이 마을로 향해 자신을 성폭행한 자들을 포함 20명의 사람들을 살해한다. 그 결과 데비는 인도 당국으로부터 베마이 마을 학살과 나머지 합계 48건의 범죄 혐의로 궐석 재판을 받고 체포 명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실제 여론은 달랐다. 당시 인도 전체, 그녀의 세력권인 우타르프라데시에도 10%가량 있었던 불가촉천민들은 항상 모든 카스트에 탄압받던 가운데 그들에게 복수를 성공한 풀란 데비를 영웅처럼 생각했고 실제로 그녀는 불가촉천민의 영웅이 되었다. 그덕에 도망자 신세가 되었음에도 근거지였던 우타르프라데시의 험준한 산속에 살던 불가촉천민들의 도움으로 인도 군에 잡히지 않고 2년간 도피 생활을 한 데비는 인도 정권이 정규군까지 투입해 풀란 데비를 제거하려 했지만, 이랬다간 불가촉천민 전부가 들고 일어나 내전까지 갈수도 있던 위기상황이 닥치자 방향을 바꿔 풀란 데비를 회유했고, 총리 인디라 간디까지 풀란을 회유하는데 동조하면서 끝내 조건을 걸고 자수한다.[1] 그녀가 잡힌뒤 호송되는 길에 수많은 불가촉천민들이 통곡하며 그들의 영웅을 보냈을 정도다. 그로인해 풀란 데비의 거취는 당시 인도 정치계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결국 인도 정부는 풀란 데비를 사면할 수 밖에 없었으며, 10년 이상 복역을 마치자마자 1994년 사마지와디당의 물라얌 싱 야다브에 의해 풀려난 데비는 그 길로 사마지와디당에 가입하여 불가촉천민의 수가 많고 물라얌 싱 야다브의 카스트와 연합할 수 있는 우타르프라데시 주 미르자푸르 선거구로 1996년 인도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된다.[2] 이후 1998년 의석을 잃었다가 이듬해에 되찾는다.

3. 사망

2001년 7월 25일 자택 근처에서 괴한 3명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그 괴한은 풀란 데비에 의해 학살당했던 카스트 집단에서 보낸 암살자였다.
[1] 다음과 같은 조건하에 데비와 만 싱을 포함 7명이 자수했다. 자기 갱단원에 대한 사형 선고 금지, 최대 8년의 징역형(결국 데비는 10년간 수감된다.), 수갑 사용 금지, 집단으로 투옥, 옥중 암살 위협을 피하기 위해 우타르프라데시가 아닌 남쪽 마디아프라데시 교도소에 투옥, 그녀의 가족에게 염소와 소를 키울 수 있는 땅 제공, 그녀의 오빠가 공무원으로 취직.[2] 인도 정치의 고질적 카스트 문제와 전근대적 사회상 때문에 인도 연방 의회나 각 주별 의회 의원중 못해도 30%는 강력범죄 한둘쯤은 연루되어있고 그중 절반은 실제로 살인 전과가 있으며 도시화가 덜된 낙후주의 지역구를 위주로 인도 전체 10% 정도는 진짜로 조직폭력단을 이쓰는 보스들이 의원뱃지를 달고 정치인 행세를 하는게 인도의 현실이다. 풀란의 이력따위 의원 결격 사유로 쳐주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