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07 10:59:03

폴 마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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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의 경우 임기가 중간에 단절되었다가 다시 집권해도 처음 집권했을 당시의 대수를 유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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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제21대 총리
폴 에드거 필립 마틴
Rt Hon. Paul Edgar Phillippe Martin
(Paul Martin Jr.)
파일:Paul Martin in 2011 crop.jpg
출생 1938년 8월 28일 ([age(1938-08-28)]세)
캐나다 자치령 온타리오주 윈저
국적
[[캐나다|]][[틀:국기|]][[틀:국기|]]
주요 이력 제21대 총리
2003년 12월 12일 ~ 2006년 2월 6일
직업 정치인, 변호사
학력 토론토 대학교 (역사학, 철학 / B.A.)
토론토 대학교 (법학 / LL.B.)
서명 파일:폴 마틴 서명.svg
정당
배우자 셰일라 마틴
자녀 3남
1. 개요2. 생애3. 선거이력

[clearfix]

1. 개요

캐나다 자유당 소속으로 캐나다의 전직 총리직을 맡았던 정치인.

2. 생애

아일랜드프랑스계 혼혈인이며, 1938년 윈저의 정치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폴 마틴 시니어는 25년간 장관을 역임했던 자유당의 원로 정치인이었다.

토론토 대학교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9년 당시에는 파워 코퍼레이션이라는 업체에서 대표이사의 비서로 일하던 도중, 회사가 캐나다 스팀십 라인이라는 업체를 인수하자 이사로 합류했다.

이후에는 캐나다 스팀십 라임의 CEO로 임명되었으며, 동료들과 함께 재정 문제에 빠진 회사를 역으로 인수하기도 했다.

1988년 캐나다 스팀십 라인 퇴사 이후, 정계에 입문해서 1990년 자유당 당수 경선에서 장 크레티앵에 이은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주목받았다.

1993년 장 크레티앵총리로 취임하고 재무부 장관을 역임, 2002년까지 장관직을 수행했다. 당시 캐나다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재정을 5년 연속 흑자 기조로 탈바꿈시키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당시 캐나다에는 2020년대 대한민국의 정서와 비슷한 결로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또한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120%에 육박하며 재정적자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에 연금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어, 미적립 부채는 당시 국가부채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폴 마틴은 보험료율을 당시 6% 수준에서 2003년 7.35%, 2030년 14.2%까지 점진적으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은 줄이는 방식으로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을 단행했다.[1]

2003년 장 크레티앵이 총리직에서 사임하자 자유당 당수가 되어 소수정부를 구성하고 제21대 캐나다 총리에 취임, 2006년 2월까지 재임했다.[2] 하지만 2006년 총선에서 패배한 후에는 자유당 당수 자리를 빌 그레이엄에게 맡기고 사퇴하였다.[3]

3. 선거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캐나다 연방 하원의원 선거 라살-에마르
23,394 (45.5%) 당선(1위) 초선
1993 30,869 (59.5%) 재선
1997 32,317 (60.9%) 3선
2000 32,069 (65.8%) 4선
2004 25,806 (56.6%) 5선
2006 22,751 (48.4%) 6선


[1] 이후 캐나다의 2016년 보험료율은 9.9%에 다다랐으며, 보험료율을 11.9%로 인상하는 대신 소득대체율은 25%에서 33.3%로 더욱 크게 인상하는 방식으로 다시 한 번 연금개혁을 단행했다. 폴 마틴이 시행했던 정책과는 다소 대조되는 상황이다.[2] 그의 부친인 폴 마틴 시니어는 오랜 기간동안 유력 정치인으로 활동했음에도 총리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3] 빌 그레이엄은 마틴의 당수 사퇴 이후 2006년 12월 스테판 디온의 정식 당수 취임 전까지 임시 당수로서 활동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