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13 13:57:18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

파일:Padmanabhaswamy_Temple_Gopuram.jpg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의 고푸람(탑문)

1. 개요2. 상세3.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원



ശ്രീ പത്മനാഭ സ്വാമി ക്ഷേത്രം (말라얄람어)
Padmanabhaswamy Temple (영어)

1. 개요

인도 케랄라 티루바난타푸람에 위치한 사원.

지난 수 천년간 역대 남인도 힌두 왕조들의 막대한 기부를 받으며 재산을 축적했고, 왕가의 재산을 대신 관리해주면서 엄청난 부를 쌓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원으로 유명하다. 이 곳에서 보관하고 있는 보물들의 가치만 2011년 기준으로 220억 달러, 2025년 기준 47조 원에 달한다.

사원의 이름 '파드마나바스와미(पद्मनाभस्वामि)'는 '아난타샤야나' 자세를 하고 있는 비슈누의 한 형태를 의미한다. 아난타샤야나란 비슈누가 나가들의 왕이자 거대한 뱀인 '셰샤' 위에 누운 채 영원한 요가 수면[1]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은 질서의 신 비슈누를 주신으로 모시는 사원으로 고대 시대부터 인도 전역 108개의 비슈누 성지들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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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 내부 비슈누 신상[2]
마하바라타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서가 깊은 사원으로, 이미 고대 시절부터 일대를 주름잡던, 남인도에서도 알아주는 거대한 대사원이었다. 설화에 따르면 비슈누의 여섯 번째 화신인 파라슈라마가 사원을 세우고 포티 가문에게 사원의 관리를 맡겼다고 한다. 9세기 경 타밀족의 성인이 '사원과 도시 전체가 순금으로 된 벽을 둘렀고 특히 사원은 천국과도 같다'며 언급한 것을 보면 이미 사원이 1,200년 전부터 부유하기로 이름높았던 모양. 힌두교의 여러 종파들 중 비슈누를 최고신으로 모시는 비슈누파는 이 곳을 인도 전역의 108개 성지들 중 하나로 부르며 신성하게 여겼다.

1680년 무굴 제국의 장군 무킬란이 남인도를 침략했을 때 이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의 막대한 부를 전해듣고선 사원의 보물을 약탈해버리고 건물은 파괴하려 들었지만 케랄라 일대의 무슬림들이 극구만류한 덕에 겨우 약탈을 면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여럿이 사원의 보물을 훔쳐가려 군사를 보냈지만 그때마다 신성한 뱀 수백 마리가 기어나와 병사들을 쫒아버렸다는 일화가 전해져내려온다. 실제로 뱀이 사원을 지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수 천년 동안 사원이 약탈당하지 않고 꼬박꼬박 부를 착실하게 축적해왔다는 것이다.

고대 이래로 모든 남인도 힌두 왕조들이 이 곳을 신성하게 여기며 막대한 보물을 기부하곤 했다. 심심하면 이슬람이나 시크교 등 타 종교의 침략에게 털려나가던 북인도의 힌두 사원들과는 달리, 남인도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항상 힌두 왕조들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약탈당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체라 왕조, 판디아 왕조, 팔라바 왕조, 촐라 제국 등 역대 왕조들이 막대한 보물을 이 곳에 바치고 보관했다. 1729년 세워져 마지막으로 케랄라 일대를 지배한 트라방코르 왕조가 영국의 식민지 시기에도 이 곳을 관리했고, 심지어 인도가 독립한 현재까지도 여전히 옛 트라방코르 왕가에서 이 사원의 관리권과 재산을 그대로 소유하고 있다.[3]

3.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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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의 황금 고푸람 파드마나바스와미 신상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에 엄청난 양의 보물이 쌓여있다는 소문은 이미 널리 퍼져있던 사실이지만, 정확히 얼마 정도가 보관되어 있는지 세간에 공개된 적은 없었다.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은 재산 규모를 극비리로 숨겨오다가, 변호사 TP 순다라라잔이 사원 운영의 투명성을 요구하며 인도 법원에 사원의 재산 규모 공개청구를 신청하면서 마침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치열한 법적공방 끝에 2011년 6월 인도 대법원에서 마침내 고고학자들과 소방당국에게 사원의 금고를 열어 내부의 재산 규모를 조사하라고 명령했다.

조사 결과 사원에는 총 A부터 F로 표시된 6개의 금고가 존재했다.[4] 개중 가장 중요한 것은 B번 금고로 1880년대 이래로 140여년간 단 한번도 열리지 않았을 정도로 보안이 철통같았고, A번 금고는 1930년대에 열린 적이 있으며 C ~ F번 금고는 최근에도 여러 차례 사제들이 열어서 출입한 적이 있었다. 대법원은 7인의 위원들을 임명해 금고들 속에 들어있던 방대한 양의 보물들의 목록을 작성하라 명령했고, 그 결과 사원에서 어쩔 수 없이 A, C, D, E, F번 금고를 공개했다.
  • 수 백여개의 다이아몬드와 보석들이 박힌 5.5m 크기의 순금 왕좌[5]
  • 신상에 입힐 무게 30kg에 달하는 16파트 순금 제례 의상
  • 500kg에 달하는 순금 뭉치
  • 36kg에 달하는 황금 베일
  • 무게 3.5 ~ 10.5kg 사이의 1,200여 개의 보석박힌 황금 사슬
  • 금으로 만든 유물, 목걸이, 왕관,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및 기타 귀금속들로 가득 채워진 자루들
  • 루비와 에메랄드로 장식된 황금 코코넛 껍질
  • 고대부터 중근세까지에 걸쳐 만들어진 금화 800kg[6]

놀라운 것은 이 것들이 고작 사원에서 발견된 보물들 중 일부라는 점이다. 현지 언론에서는 다이아몬드와 보석들로 장식한 순금 왕관 최소 3개가 나왔으며 , 특히 A번 금고에서는 황금 의자 수 백여개, 금 항아리와 단지 수 천개가 발견되었다는 말까지도 나왔다. 조사단은 C번 금고에서는 1,469점의 보물들을 발견했고, D번 금고에서 617점의 보물들을 발견했으며 E, F번 금고에서는 40점, 그리고 A번 금고에서만 102,000여 개가 넘는 보물들을 찾아냈다. 대법원은 찾아낸 보물들의 목록을 만들었으나 대중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극히 일부만이 언론을 통하여 공개됐고 그 것이 위의 목록이다. 즉 저 위의 보물들조차 그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

특히 가장 중요하고 가장 많은 보물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알려진 B번 금고는 정부 조사단이 아예 들어가보지조차 못했다. 워낙에 신성한 곳이다보니 사원 측에서 공개를 기를 쓰고 결사반대했기 때문. 대법원이 2011년 6월에 B번 금고도 열 것을 명령했으나 사원 측에서는 함부로 B번 금고를 열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여론을 선동했다.[7] 결국 그해 7월 사원 측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며 B번 금고는 다른 금고들과는 달리 공개되지 않았고, 2020년 7월에 최종적으로 대법원이 B번 금고를 공개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내리면서 B번 금고는 끝까지 공개되지 않았다. 결국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영영 묻혀버리고 만 셈. 게다가 지하에 있다는 G, H번 금고 역시 공개되지 않은 채 그대로 넘어가버렸다.

B번 금고는 단순한 금고 목적이 아니라 사원의 성소이기도 하다. 인도인들은 크리슈나의 형인 발라라마를 숭배하기 위해 모인 온갖 신들이 이 금고 안에 거주하고 있다고 믿는다. 뱀신 나가를 포함해 수많은 신성한 존재들이 여기서 살고있으며 나라심하 신이 금고를 수호하고 있다고 한다. B번 금고에는 코브라가 새겨져 있으며,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재앙이 내린다는 소문도 있다. 1880년대에 트라방코르 왕가가 마지막으로 금고를 열어봤는데, 그 안 보물들의 가치를 당시 가치로 12,000 루피, 1조 2천억 루피로 추산했다. 1908년에 국고에 돈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금고를 열려고 했지만 안에 코브라들이 들끓는 것을 보고 기겁해 도망쳤다는 기록이 있어 1880년대 이후로는 아무도 그 안에서 보물을 꺼내간 적이 없다.

이 모든 부는 사실 지난 3,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남인도의 힌두 왕조들이 사원에 바쳐온 것들이었다. 심지어 고대 타밀 문헌에도 체라 왕조의 왕이 '황금 사원', 즉 이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으로부터 금과 보석을 선물로 받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그 당시에도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에 금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몇 천년 간 역대 힌두 왕실들이 이 곳에 수없이 보물들을 바쳐댔고 케랄라 일대에서 풍부하게 나는 이 이 곳으로 흘러들어왔다. 특히 마이소르 왕국 같은 이슬람 세력의 침략에서 달아나 남쪽의 티루바난타푸람으로 피난온 10여 개의 힌두 소(小) 왕가들이 갖고온 재산을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에 바치곤 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케랄라를 통치한 트라방코르 왕조도 재산을 영국에게 압류당할까봐 모든 재산을 여기에다 모아서 박아둔 덕에 파드마나바스와미 사원은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인도 대법원 측에서는 조사한 보물들의 공개를 명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현지 언론은 대략 2011년 기준 220억 달러, 인플레이션을 고려할 시 현재 가치로 한화 47조 원 가치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그 것도 역사적인 가치를 제하고 오직 귀금속의 가치만 따졌을 때의 이야기. 2011년 기준으로 당시 인도 교육 예산의 2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트라방코르 왕가 측에서는 미공개된 B번 금고에는 1조 달러, 한화 1,400조 원에 달하는 보물들이 추가로 묻혀있다고 주장하는데, 물론 허풍이 심한 인도 특성상 적당히 걸러들어야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상을 초월하는 양의 부가 사원의 금고에 묻혀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1] yogic sleep.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상태로 깨어있는 것과 자는 것 반쯤 어딘가에서 정신을 유영하며 명상하는 것을 의미한다.[2] 사원 이름의 유래가 된 신상이다. 꽈리를 튼 뱀의 왕 '셰샤' 위에 연꽃이 피어있고 비슈누가 평온한 표정으로 그 위에서 영원한 잠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다. 네팔의 신성한 간다키 강의 바닥에서 채취한 12,000개의 신성한 돌로 제작되었다고 한다.[3] 케랄라 고등법원은 2011년 1월에 정부가 사원의 보물과 문화유산들을 관리해야 한다고 판결내렸지만, 트라방코르 왕가가 항소했고 결국 2020년 7월 대법원이 판결을 뒤집고 왕가에서 계속 사원을 관리해도 좋다고 허가했다. 1947년 인도가 독립할 당시 트라방코르 왕가와 군주 협정을 맺어 왕가의 자산을 인정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함부로 뒤집기가 어렵기 때문.[4] 다만 2014년에 나온 보고서를 보면 지하에 G와 H로 표시된 비밀 금고 2개가 더 있다고 하니 확실한 것은 아니다.[5] 사람이 실제로 앉는 용도는 아니라 신상을 앉혀놓는 용도였다. A번 금고에서 발견되었는데, 실제로 금고 내에 들어가본 사람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몇 개의 다이아몬드는 성인 남자의 손가락만했다고 한다.[6] 금화 1개당 가격이 31만 달러, 즉 한화 4,500만원을 가뿐히 넘는다고 한다.[7] 또한 정부측 조사위원회가 사원 앞에서 올바르지 않은 종교 의식을 진행했다는 둥 온갖 핑계를 대면서 조사를 방해했다. 사원에 모신 신을 깨우기 위해서는 사원이 정한 대로 나팔을 불고 예식을 치러야 하는데 위원회가 이를 따르지 않고 따로 의식을 치렀다는 것. 사원 측에서는 조사위원회의 잘못된 의식으로 신이 고통받고 있다며 난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