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왜색과 원조
트로트가 엔카와 비슷한 점이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고 일본식 음계의 영향이 남아있다. 표준국어대사전 트로트 항목도 '정형화된 리듬에 일본 엔카(演歌)에서 들어온 음계를 사용했다'고 서술한다. 민족말살통치 시기엔 한국적인 정서를 띄는 노래를 만들기 어려운 경우도 겪었다. 이로 인해 해방 후 왜색으로 인하여 탄압받은 일도 있었다. 이미자의 곡 동백아가씨도 엔카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금지곡 처분을 받았던 적이 있다.1.1. 반박
비록 일제강점기 당시엔 일본으로부터의 영향과 친일 행적 가수들이 활동했던 사례, 그리고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까지 더해져 해방 전까지는 대중가요 분위기와 창법 등을 두 나라가 비슷하게 공유했었다. 하지만 해방과 동시에 일본과의 문화적 단절이 일어나며 왜색을 제거하고 한국만의 독자적인 요소로 발전시키며 '트로트'라는 하나의 장르로 확립시켰고 일본도 비슷한 시기에 별개로 '엔카'라는 장르를 확립시켰기에 '트로트의 원조는 엔카'라는 건 시간적 선후 관계가 다소 어긋난 결론이라는 시각도 있다.[1] 일반적으로 엔카를 막연히 일제강점기의 일본 대중음악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고, 엔카의 역사를 말할 때 일제강점기의 노래들도 곁들여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단지 1960년대부터 확립된 엔카라는 장르의 뿌리가 일제의 대중가요이기 때문에 편의적으로 묶어서 설명하는 것일 뿐이다.일제강점기 당시 유행하던 대중가요들의 영향 중에서 서양 음악과 일본 민요 요소만 있었던 게 아니라 한국 민요 요소와 한반도의 각 지역색 또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 대중가요 자체를 전부 일본만의 것으로 단정짓기는 곤란하다. 한국 정서가 느껴지는 곡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광복 이후 대대적으로 왜색 걷어내기 운동과 함께 점차 현대적인 기술로 발전하는 악곡을 넣거나 한국 특유의 정서를 함께 살려서 접목함과 동시에 차별점 또한 부각시키며 발전해 왔다. 일제강점기 때도 당시 한반도의 대중들이 서양에서 전해진 세련된 음악이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나 해방 이후 이화여대에서 이야기를 봐도 트로트는 일본음악이 아닌 서구음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편 트로트 전체 역사에서 보면 일본 영향은 일제강점기(특히 민족말살통치 시기)로 한정될 뿐이며 현대 트로트 곡들은 일본식 음계를 사용해서 만든 곡들을 제외하면 왜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정작 일본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엔카가 한국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거나 '엔카는 한국이 원조'라는 인식이 있다. 일본인들이 이런 민감한 주제를 립서비스 처럼 가볍게 얘기할 성향도 아닐 뿐더러, 엔카의 시조라 불리는 코가 마사오 또한 6/8박자 등 한국 민요의 영향을 자주 언급했다. 급기야 엔카협회에서 그가 한국인이라느니,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으로부터 온 것이라느니 하기도 했다. 코가 마사오가 정말로 토종 한국인이라거나 모든 엔카의 멜로디가 한국에서 왔다는 것이라기 보단, 그만큼 엔카도 한국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뜻이다.
"일본 엔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피가 섞여 있고, 엔카 멜로디 원조는 한국입니다." 다카기 이치로, 일본엔카가요협회 이사장
"일본의 엔카 멜로디는 한국의 멜로디다." 고바야시 아세이, 일본 원로 작곡가
일본엔카가요협회 "일본 엔카의 창시자 故 고가 마사오는 한국인"
설령 트로트가 엔카에서 나왔다고 하여 일본문화라고 한다면 기모노는 한푸에서 나왔으니 중국문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인들이 이러한 주장을 할 때 일본인들은 '일본만의 독자적인 문화로 발전시켰으니 일본문화'라며 반박한다. 트로트의 뿌리를 일본 엔카로 볼 것인지 서양 폭스트롯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으나, 참고로 비슷한 반대 사례를 언급하자면, 한국이 고대에 일본에게 문물을 전해준 것에 대해선 일본인들은 '단지 한국을 거쳐 중국 문물을 받은 것 뿐'이라는 반박을 펼치는데 같은 논리대로라면 한국도 '단지 일본을 거쳐 서양 문물을 받은 것 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것 하나 라, 시, 도, 미, 파 단음계가 남아 있는 한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 음계가 남아 있는 국가는 일본과 일본 식민지 경험이 있는 한국, 대만이다. 일본의 침략을 받은 중국에서도 쓰였지만 공산화 이후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했다는 후문이 있다.
트로트 음악가들은 중국처럼 이 단음계를 극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진또배기는 단음계이지만 라, 시, 도, 미, 파 단음계가 아닌 도, 레, 미, 솔, 라 단음계를 채택해서 왜색 논란에서 자유로우며, 중국의 많은 단조 가요들도 이를 극복해서 중국적인 느낌이 나는 국풍(혹은 고풍)가요라는 장르를 만든 것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옛부터 전통적으로 5음계를 사용했으며 트로트, 엔카, 중국 고풍가요가 처음 나온 시기가 서로 비슷한 1920년대 말 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세 나라의 세 장르가 다소 닮은 점이 있는 건 당연할 것이다.[2] 더욱이 비슷하게 공유하는 동아시아 정서와 선율로 인해 세 나라 가요계의 교류도 빈번했다.
'엔카가 하드록이라면 트로트는 헤비메탈'이라고 비유하기도 한다. 둘 다 공통적으로 블루스에서 유래했지만 하드록에서는 계속 쓰는 블루노트와 기존 리듬을 빼버리고 빠른 리듬과 기교를 새롭게 넣어서 만든 헤비메탈과의 유사성 면에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부터 현재까지 트로트와 엔카간의 교류가 적지 않았다.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계 가수들이나 이박사의 일본 진출 등. 때문에 트로트 스타일 엔카 또한 존재하는 상황이라 이런 표현이 꼭 들어맞는건 아니지만 현대에서는 음악계 흐름이 워낙 장르간 화합이 대세이기 때문에 세세한 장르 구분이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
2. 저속함, 획일성, 자기복제성
광복 이후로도 통속성, 저급성이란 이유로 탄압받기도 했는데, 《잘 있거라 부산항아》로 유명한 백야성도 이러한 이유로 젊은 나이에 강제로 은퇴하는 사태까지 터졌었다. 사실 이는 독재 정권의 문화적 보수성 탓이기는 하며 하위 장르처럼 인식했다거나 일종의 키치 문화로 보자는 관점도 존재한다. 다만 단순히 B급 문화라고 보기에는 자본성이나 대중성 측면에서 엄연히 주류였던 문화이자 한편으로는 민중적인 문화이기도 했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2008년에는 지나치게 유치하고 저속한 가사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과거의 트로트는 유행가라 불리던 시절엔 고급예술로 여겨지던 인식에 걸맞게 연주, 편곡 등 제법 음악적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처럼 힘든 시기를 겪은 세대의 한맺힘과 한국 민족적인 감성을 잘 담아내고 대변해주는 노래가 많았을 뿐 아니라 민요나 판소리 등에서 따온 한국적인 박자나 가락 창법을 도입하려는 시도 역시 풍부했다. 이 시기에서 나온 트로트 중 꿈에 본 내 고향, 나그네 설움, 목포의 눈물, 불효자는 웁니다, 이별의 부산정거장, 비내리는 고모령, 비 내리는 호남선[3], 눈물젖은 두만강, 굳세어라 금순아[4],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을 들어보자. 이 노래들을 저질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장윤정, 박현빈 류의 소위 말하는 '네오 트로트'는 이전의 트로트들과 비교해 가사의 깊이도 얕아지고 곡의 완성도도 낮아졌다. 브라스에 퍼커션 적당히 넣어놓은 싸구려 편곡으로 실제 브라스밴드를 쓰는 경우는 요즘엔 찾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예산 문제로 거진 신디사이저 한두 대 정도로 갈음하는 일도 다반사다. 그래서 장윤정이나 박현빈 등 젊은 가수[5]가 부르는 트로트는 인기가 있어도 옛날의 트로트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지는 편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다른 이에 대한 연민 등 보편적이고 고귀하다고 여기는 마음을 기성 트로트 곡에 주된 주제로 사용하는 작곡가 혹은 가수들은 가사가 조금만 선정적이어도 "트로트"라는 같은 분야로 엮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거나 몹시 난처해하거나 자신들과 완전히 다르게 여기고 싶어하는 듯 하다.[6]
최근 네오 트로트는 장르마저 모호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들어보면 이게 1990년대 댄스곡인지 트로트인지 분간할 수 없는 해괴한 곡들도 존재한다. 이런 곡들의 작곡가들이 정작 트로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하지만 요즘 음악계는 워낙 장르간 혼합이 대세인지라 마냥 비난만 하기에는 또 모호하다.
신인 트로트 가수들의 질적 문제도 있다. 물론 새로 데뷔하는 트로트 가수들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아이돌이나 과거 인기를 풍미했던 가수들이 트로트로 전향하거나, 가수 지망생이 주류 음악 가수가 되기에는 어느 한 부분이 모자라서(주로 외모) 트로트로 데뷔[7]하는 케이스가 많다.
또한 트로트 장르 특성상 간단하고 단순한 리듬의 곡조 형태이다보니 한글을 갓 뗀 유아동 연령대가 따라 부르기 쉽다는 특징으로 전국팔도에 트로트 신동을 배출해대는 장르도 없을 것이며 그런 어린이들이 곧잘 성인가수 수준의 노래를 잘도 해낸다.[8] 단순히 폄하해서는 안 되겠지만, 꽤나 많은 어린이들이 성인가수 수준을 수준급으로 소화해 내는 것을 보면 가창의 난도 자체가 그다지 높은 수준은 아니라고 의심을 해 볼 여지도 있다. 이런 케이스들을 보면 다른 음악 장르들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아보이는 건 솔직히 사실이다.
언급했듯이 사실 음악이란 장르도 항상 고정된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는 장르의 특성은 명확하지만 이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뮤지션들의 방향성은 계속해서 바뀐다. 힙합이 시기와 지역에 따라 가사의 주제나 메시지, 사운드의 특징이 다른 것처럼 이를 사용하는 뮤지션들의 성향은 전부 다르다. 트로트도 클래식 취급받던 1970년대 히트곡들도 일차원적인 사랑 타령에 과하게 치중한 노래는 무수히 많았다. 단지 이를 어떤 식으로 해석했느냐가 차이점이다. 오히려 화성학을 비롯한 음악이론적인 지식은 최근에 트로트 시장으로 진입한 작곡가나 가수들이 더 빼어난 경우도 많다. 게다가 반대로 '변형' 자체를 인정하지 못하는 폐쇄성이 장르가 도태하는데 일조했다는 의견도 있다. 뽕짝 창시자 이박사를 바라보는 한일간 시각차이도 이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여간 이러나 저러나 이러한 가사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단순히 취향 차이이자 주관적인 문제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 하면 K-POP을 예로 들어서 대한민국에서는 흔히들 K-POP 가사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해외 K-POP 팬들이 주로 꼽는 K-POP의 장점 중에서는 가사가 저속하지 않아서 좋다는 긍정적 의견이 많다. 결국 듣는 사람 취향마다 케바케라는 것. 자기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걸 다른 관점을 가진 남들은 장점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3. 용어의 오용
2005년 나훈아는 B급 하위문화란 인식을 받는 '트로트'에서 탈피하기 위해 '아리랑 전통 가요'라고 부르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트로트 인식이 부정적인 현주소에 대한 단순한 열폭이었기 때문에 학계와 음악 관계자들은 무시했으며, 일반인들도 그건 무리수라는 반응을 내비치기도 했다.일부 방송 매체나 음반 매장 코너에서는 성인가요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 이유는 단순하게도 미성년자가 아닌 성인이 주 소비층이기 때문. 다만 이것도 약간 문제가 되는 것이 한국사회가 일제대와 한국전쟁 이후로 경제, 문화, 교육, 시대상 모든 면에서 너무나 급속도로 발전한 나머지 1940~50년대, 1960~70년대, 1980~90년대, 2000~10년대에 10대-20대를 보낸 성인들은 모두 각기 다른 성장 배경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글로벌 기준에서 보자면 보즈 스캑스, 마이클 맥도널드, 크리스토퍼 크로스, 빌리 조얼, 스팅 등 1970~80년대 서구와 일본에서 크게 유행한 팝/락 음악 라디오 포맷인 AOR(Adult Oriented Rock)처럼 성인이 들을 수 있는 팝음악을 만들고자 했던 우리 대중음악인들의 시도와는 구분된다. 한국형 AOR내지는 국내전용 용어로 소위 시티 팝등으로 구분되는 유재하, 어떤날, 김현철, 조규찬, 이소라, 015B, 신해철, 넥스트, 김동률,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정원영, 한동준, 장필순, 유희열, 선우정아, 최백호, 부활, 김현식, 신승훈, 김건모 등 성인들이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세련된 가요를 만들어내고자 한 작가주의 싱어송라이터들이 성인들이 들을 수 있는 가요를 만들어온 역사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되어버린다는 얘기다.
4. 한정된 소비시장과 양산형 가수
누구나 부르기 쉬운 친숙한 음악이라는 이미지지만, 거꾸로 가창력이 떨어져도 대충 부를 수 있는 음악으로 인식되어 고만고만한 양산형 가수가 쏟아져 나오는 역설적으로 저렴한 장르이기도 하다.특정 작사가와 작곡가가 만든 같은 곡을 여러 가수들이 시도때도없이 돌아가면서 똑같은 수록곡으로 공장형 찍어내기 앨범을 낸 사례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부지기수다. 물론 인기와 판매량은 플라스틱 산업 폐기물 수준으로 처참했고[9] 그 양산형 가수들 중에서 거의 대부분은 군소 지역축제 정도만 돌면서 무명 3류 가수로 활동을 마쳤다.
결국 좋은 트로트 신곡과 좋은 신인을 찾는 것은 모래 속에서 진주 찾기보다 어렵다. 최근에는 양산형 가수들이 얼마나 나왔는지 오토튠을 쓰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인식은 최근 세미 트로트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일반적인 기존 트로트와는 거리가 있다.
한정된 소비시장, 낮은 위상, 낮은 진입 장벽이 결합하면서 트로트 장르로 새로 유입하는 가수들 중에서는 부업이나 취미와 가깝게 활동하거나, 정말 시장성과 가능성이 없어서 최후의 보루로라도 트로트를 선택하는 것처럼 기본 역량이 매우 한정적인 사람들이 많다. 시장성의 한계로 트로트 소속사들도 매우 영세하기 때문에 명품 신인을 발굴하더라도 거대 기획사 같은 시스템적인 관리나 트레이닝 같은 것은 불가능하다. 트로트계의 검증없는 음원 발매와 관련하여 가수협회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양산형 가수가 마구마구 쏟아지는 것은 국적, 시대, 장르를 불문한다. 하지만, 트로트는 위에서 언급한 총체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타 장르들에 비해 양산형 가수들이 기본 역량 한계가 두드러진다는 것이 문제다. 이는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2013년 방송 심의 신청곡 기준으로 트로트 신곡 4,000여곡이 쏟아져 나와서 매년 연간 4,000~5,000곡에 달하는데, 2위 발라드 2,300여 곡, 3위 댄스 1,600여 곡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그나마 10%의 낮은 시장 점유율을 연간 수천 곡의 양산형 신곡이 나눠 가지면서 더더욱 영세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행사나 콘서트라도 가능한 유명 가수를 제외하면 무명 가수들은 사실상 전적으로 행사비나 콘서트비에만 과하게 의존하고 있는데, 안 그래도 시장은 한정돼 있는 마당에 공급은 지나치게 많기에 자연히 단가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2019년부터 위에서 언급한 각종 트로트 관련 TV 프로그램들과 함께 트로트가 다시금 주 트렌드가 되기 시작했는데, 일부 평론가들은 이러한 트로트 열풍을 회의적으로 보는 주장을 제기한다. 우선 미스터트롯의 대흥행은 정말로 남녀노소 모두가 트로트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기존 예능 프로그램들의 실적이 부쩍 저조해진 것과 TV 대신 유튜브를 보는 등 1인 미디어 및 영상에 관심이 깊은 10~30대가 TV 시청 자체를 줄이는 상황과 맞물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즉, 고정적으로 TV를 시청하는 인구 중 장·노년층 인구가 시청률 상승을 주도한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시청률만 가지고 트로트가 대세가 됐다는 주장은 마냥 옳다고 보기 어렵다.
2020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외부 활동 제한과 TV 시청이 늘어난 것과 동시에 각종 행사가 연기 및 취소되면서 트로트는 부활할 기회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트로트 가수들의 수입 자체는 전체적으로 축소한 상황이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트로트 열풍은 트로트의 주요 수입원이던 각종 행사들과 콘서트들을 전격 취소함으로 생기는 수익 악화와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음원 시장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악재가 공존한다.
막강한 팬덤이 수익을 보장해주는 아이돌과 비교하면 그보다 훨씬 미약한 시장성이 트로트의 발목을 잡는다. 평론가들은 트로트가 극복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점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사태와 미디어 환경의 변화라는 시대적 상황이 맞물려 발효된 트로트 열풍은 오히려 트로트가 개선해야 할 문제점을 가리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지금 당장의 트로트 열풍을 가지고 트로트의 부활과 대세를 언급하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한다.
트로트가 음악 시장에서 주요 장르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건실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 장착과 음악 자체의 질적 향상, 안정적인 팬덤 형성 및 음원 시장 진입을 반영해야 한다. 결정적으로 음원 시장이나 가요 차트에서 트로트는 아직도 약세인데, 정말 트로트가 범국민적 대세라면 아이돌 뿐만 아니라 장범준, 볼빨간사춘기, 윤하 같은 인기 가수들이 장악한 음원 시장을 뒤엎어야 하지만, 트로트는 음원 차트에서도 구경하는 것이 아직도 힘든 상황이다. 화제성을 모은 미스&미스터트롯 시리즈에 나온 곡들 중에서 영탁의 찐이야가 47위로 최고를 기록했을 뿐 다른 곡들은 아직도 100위 진입조차도 하지 못했다. 화제가 됐던 유산슬 프로젝트 곡들인 사랑의 재개발과 '합정역 5번 출구'도 각각 75위, 97위로 간신히 차트인을 한 정도다.
2020년 이후의 트로트계 전반은 쟈니스 사무소(現 스타토 엔터테인먼트)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들은 2023년에 전 사장의 추악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음악 활동보다는 주로 예능 활동으로 인지도를 얻었듯이, 지금의 젊은 트로트 가수들은 음반 활동보다는 각종 예능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이는 상황이다. 따라서 트로트 자체의 개선과 장르적 쇄신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나마 송가인, 미스터트롯 TOP7 정도가 사실상 최후의 인지도 높고 위상 높은 트로트 가수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10] 이들의 인기마저 사그라든다면 트로트는 아예 장르 자체의 소멸을 고민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으므로 일시적인 열풍에 기대는 것보다는 트로트 자체를 장기적으로 꾸준히 개선해야 앞으로도 쭉 롱런하고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5. 과도한 트로트 프로그램의 양산
한때는 트로트의 가장 큰 문제점이었으며, 트로트 문화 자체가 젊은 세대들에게 점차 배척받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이것이 꼽힌다.특히 2010년대 후반, 2020년대 초반 고령층 인구 증가에 따른 TV 시청층의 고령화를 집중 타겟으로 TV CHOSUN 오디션 프로그램 시리즈 이후 트로트가 대흥행하면서 현재는 방송사를 막론하고 너도나도 트로트 관련 미디어를 우후죽순 제작함에 따라 주 시청층인 중장년층 이상의 세대들 조차도 트로트 밀어주기 세태에 피로감과 기피하는 수준을 넘어서 저열함을 느껴 혐오하는 수준까지 추락한 사태가 일어났다.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들은 이미 레드 오션화되고 실제로 트로트에 식상함을 느낀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트롯강점기, 뽕짝강점기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로 여론이 나빠졌다.
특히 10~30대의 젊은 시청자들 대부분이 트로트 프로그램을 극도로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기존의 예능을 꾸준히 잘 봐 오던 고정 시청자 뿐만 아니라 일반 시청자들, 심지어는 트로트 애호가들이 많은 40대 이상의 시청자들마저도 점차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2020년대의 40대는 H.O.T., 젝스키스, god, 신화 등 1세대 아이돌이 활동한 시기에 팬이 된 청소년이 성장한 경우가 있기에 과거 40대에 비하면 트로트가 주류인 비중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또한 트로트 오디션이 기원한 종편, 케이블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지상파 방송에서도 이런 트로트 위주의 프로그램들이 장악한 상태다. 사실상 여기에서 자유로운 지상파 방송은 교육방송 EBS가 유일하다시피 한 수준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트롯과 관련된 방송만이 아니라 포맷상으로는 트롯과 전혀 관련 없는 방송도 일단 섭외부터 하고 보는데다가 방송의 본래 취지를 거스르고 본인들의 노래만 부르다가 간다는 비판도 나오면서 당장의 시청률과 화제성을 위해 프로그램의 본질을 흐린다는 지적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 예로 뭉쳐야 찬다, 미운 우리 새끼, 끼리끼리, 구해줘! 홈즈, 전지적 참견 시점,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는 형님 등. 특히 아는 형님은 5월 한 달을 내내 미스터트롯 출연자들로만 줄창 때우면서(미스터트롯 TOP7 3주+어린이날 특집에 출연한 홍잠언과 이후 미스트롯 2에 출연한 김태연까지 1주) 대놓고 트로트 열풍에 과하게 편승했다는 악평을 받기도 했으며, 이 때문에 주 시청층인 10대가 대거 이탈했다.[11] 하지만 그 이후 아는 형님은 고정적으로 5~6% 나오던 시청률이 2~3%대로 떨어졌다. 특히 아이돌이 나올 땐 최저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하는 등 확실히 주요 시청자였던 젊은 층의 부재가 눈에 띄며 장기적으로 봤을 땐 오히려 손해를 본 셈이다. 히든싱어6 또한 전보다 트로트 가수를 훨씬 많이 섭외했으며, 패널로도 미스터트롯 관련 인물을 대거 섭외해서 시청자들의 많은 불만을 샀다. #1 / #2 / #3 / #4 / #5 / #6 / #7
OTT 컨텐츠의 등장으로 장르를 안 가리고 텔레비전 방송들의 시청률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 내일은 미스터트롯만큼은 유독 최고 시청률 35%를 찍었다. 30%를 넘어가는 경이로운 시청률이 나온 것도 본질적으로는 OTT 등 뉴미디어에 상대적으로 익숙치 않은 고연령층이 본방사수를 위하여 TV 앞에 앉은 탓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12] 또 사랑의 콜센타가 평균 20%를 찍었다. 3%만 찍어도 감지덕지하는 2020년대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 입장에서는 트로트 가수들의 출연에 감사할 수밖에 없다. 식상하니 뭐니 해도 시청률 두 배는 찍어주니까 계속 섭외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로트 가수가 없을 경우에는 대부분 예전 시청률로 되돌아가는 게 다반사다. 이렇게 늘어난 시청률의 지분은 프로그램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온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갑자기 시청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MC 박명수의 또 하나의 망작이라고 평가받는 끼리끼리에서도 미스터트롯 출연진이 출연한 회차는 두 배를 찍었다. 물론 평균 시청률이 1%대여서 두 배가 되어도 높아봐야 2~3%대여서 큰 의미가 없다.
미스트롯/미스터트롯의 흥행으로 비슷한 포맷의 트로트 관련 방송이 범람하고 트로트 가수들의 섭외도 무척 잦아지자 이에 대한 피로감을 가지고 방송사들의 과한 트로트 편애를 지적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시청률 무용론 문서에 나오는 것처럼 단순히 시청률만 높다고 해서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인기인지를 지적하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예시로 2021년 초에 방영한 내일은 미스트롯2는 시청률과 화제성은 많이 끌었지만, 오디션이 끝나고 이후 여러 방송국들의 게스트로 출연하는 탑7의 화제성이 미지근하자 미스트롯2 결승 시점부터 음원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킨 브레이브걸스를 대환영하며 섭외했다. 다만 브레이브걸스가 전지적 참견 시점에 나왔을 때, 전참시 녹화 당일 쇼챔피언에 나란히 출연했던 임영웅과, 임영웅의 전화 연결로 이찬원이 곁다리로 나오기는 했다.[13] 물론 미스터트롯 탑7의 화제성과 미스트롯2 탑7의 화제성을 비교하는 예시가 아니긴 하지만, 미스트롯2 탑7의 화제성이 임영웅, 이찬원의 화제성을 아직 넘지는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미스트롯2가 끝난 상황인데 이전 시즌 수상자인 인물들로 화제를 모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중에서는 아이돌 팬덤의 불만이 가장 큰데, 메이저 예능들의 섭외 비중 자체가 최근 몇 년과 비교해 봐도 눈에 보일 정도로 엄청나게 줄어들면서 신곡을 냈음에도 제대로 된 예능 프로 하나 나오지도 못하고 활동기 내내 뮤직뱅크나 SBS 인기가요 같은 음악 방송 뺑뺑이만 줄창 돌다 활동을 종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되었기 때문. 게다가 어쩌다 예능 프로그램에 운좋게 나와도 주로 관찰 예능이나 음악 경연 프로그램의 패널 정도로 나오는 사례가 대부분이며, 이마저도 다른 연예인들에 밀려 병풍으로 전락해버리는 일도 많다.
그 때문인지 2020년 하반기부터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정체를 숨기고 출연해 경연하는 싱어게인 - 무명가수전, SHOW ME THE MONEY 9, 로또싱어 등의 프로그램들이 좋은 기획의도로 호평을 받고 트로트에 질린 대중들을 주 시청자로 흡수하면서 다른 장르 오디션 프로그램들도 점차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세대 차가 극명한 건 어느 시대나 똑같다. 1980년대 이전의 청소년 세대들 사이에선 트로트가 대세였다. 대중가요가 곧 트로트이던 상황이 변한 건 1980년대 조용필, 90년대 초반 서태지와 아이들 음악을 청소년기에 즐기던 세대였다. 즉, 2020년대 초반 기준으로 50대 이하는 청소년기 20대~30대에 조용필과 서태지와 아이들, 김건모 등 음악을 듣던 나잇대이며, 서태지와 아이들 및 H.O.T, 젝스키스 등을 거쳐 K-POP 원조의 팬덤이었던 이들이 2020년대 현재 중년이 되었다. 게다가 1980/90년대는 탈트로트화, 경제 성장에 따른 대중문화 향유 계층의 증가로 세련된 가요와 외국 팝 음악을 본격적으로 즐기는 추미가 정착된 시기이다. 독재 정권 시절과 달리 각종 제한이 풀린 시대 상황이 조건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과거 1970~80년대에는 트로트와 함께 포크송과 락이 지금보다 더 유행했다. 당시 젊은 세대에게 트로트는 이미 구닥다리에 흘러간 옛 노래이자 그 당시 유행하던 이른바 민족 문화 재발견에 어긋나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민중가요를 비롯한 대안 운동이 일어났고,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그룹사운드와 포크송이 재발견된다. 그런 인식을 바탕으로 1980년대도 대학가에서는 포크송 계열의 노래가 은근한 인기를 얻게 된다. 박인희의 모닥불,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신형원의 개똥벌레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많은 노래들이 있지만, 대학가에서 얼마 전까지 전승되던 노래들이다. 특히 수련회나 수학여행, MT 같은 단체 활동에서 이러한 노래들이 자주 불렸다. 그 외에도 김민기, 정태춘, 김광석 등의 노래가 그 당시 청년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이러한 노래들은 느리고 잔잔하며 심오한 면이 많았고 함께 싱얼롱하기 좋고 적절한 노래들이었다. 여러모로 2020년대의 시류와는 상당히 대조된다.[14]
2021년 하반기에 들어서는 1분기에 했던 미스트롯2의 화제성이 이전 시즌에 비해 떨어지고 각 방송사들이 너무 많이 트로트 프로그램을 만드는 바람에 매너리즘에 빠졌고 이는 주 시청층에도 지겹다는 소리가 나와 거품이 많이 꺼진 상태다. 이러한 중장년층 거품은 골프로 옮겨갔는데, 하필 이번엔 포맷이 비슷한 방송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진데다 연예인들까지 너도나도 골프 채널을 개설하다 보니 젊은 층들 사이에선 "트로트 강점기가 가더니 이젠 또 골프 강점기가 왔다"는 볼멘소리가 보이기도 한다.
트로트가 유행하면서 그간 트로트를 멀리하던 음악 방송에서도 트로트 가수들이 다시금 간간히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2021년 3월 임영웅의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가 SBS 더 쇼[15]와 MBC 쇼! 음악중심에서 1위[16]를 차지한 걸 시작으로 2022년 5월 14일 임영웅의 '다시 만날 수 있을까'가 쇼! 음악중심 1위를 차지했고 2024년 5월 3일에 이찬원이 뮤직뱅크에서 하늘 여행으로 1위를 차지하는 등 트로트 곡도 종종 음방 1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로트 가수들의 음방 출연은 2021년 하반기 이후부터 크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더 쇼가 2021년 하반기 이후에도 트로트 가수들의 출연이 간간히 있는 편. 사실 어쩔 수 없는 게 음방의 주 시청자들은 이미 국내보다 해외 K-POP 팬들의 유튜브 시청이 주가 된지 오래되었으므로 음악적 예술성을 상당히 중시하기 때문이다.
6. 팬덤 관련 문제
트로트 프로그램의 양산과 더불어 트로트 문화의 심각한 문제점 중 하나. 트로트라는 장르나 트로트 가수들의 문제점은 아니고 전 분야의 팬덤에게도 해당되는 얘기지만, 트로트 팬덤들의 과도한 트로트 가수들 찬양 및 타 장르 가수들을 향한 견제 또한 비판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본인들이 좋아하는 트로트 가수가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킬만한 행동을 했어도 잘못을 지적하지는 않고 덮어놓고 응원하기 바쁜 등 맹목적이고 비뚤어진 팬심을 보여준다. 김호중의 불법 도박 논란과 음주 뺑소니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극성 팬덤을 중심으로 꾸준히 김호중을 응원했으며, 진달래와 황영웅의 학교폭력 논란이 발각된 후에도 자신들이 어린 시절에는 저런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어린 시절은 원래 그렇게 철없는 시기를 겪고 자란다, 가수는 노래만 잘 하면 되니까 상관없다는 식으로 개의치 않아하거나 하필 이제 와서 옛날을 들먹이는 건 뭐하자는 플레이냐면서 역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며 2차 가해를 저지른다. 대학원 논문 표절로 인해 예능으로 쌓은 청년층의 인기가 모두 사라진 홍진영이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도 트로트 가수라는 특성 상 사건사고에 주 수요층이 둔감한 편이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빠가 까를 만든다는 전형적인 예시 또한 보여주고 있다. 대표적으로 임영웅의 팬덤 영웅시대[17]와 김호중의 팬인 ARISS가 있다. 유튜브 등지에서도 트로트를 옹호하거나 과도한 트로트 열풍에 대해 비판하는 영상이 올라오면 열에 아홉은 우린 아무리 봐도 전혀 안 지겨우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니가 사라지라는 과격한 댓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음원 사이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돌 팬덤의 고질적인 문제인 스밍 문화를 갖고 와 트로트 가수들에게 똑같이 써먹는다. 멜론 같은 메이저 사이트에서는 이 수법이 안 통하니 지니, 소리바다 등 이용자가 마이너한 사이트들에 침입해 스밍을 돌리며 차트를 파괴하는 행위를 일삼고, 결국 차트가 이상하게 변질되며 안 그래도 이용자수가 얼마 없던 음원사이트의 이용자들마저 실망해서 다른 곳으로 갈아타며, 그 음원사이트는 결국 망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건 스밍문화가 10대~20대가 주축인 아이돌 팬덤에 의해 처음 생겼을 때 이를 거칠게 비판한 세대가 지금의 트로트 팬덤을 구성하는 연령이라는 거다. 이제 와서 내로남불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7. 트로트 업계의 피해의식, 잘못된 현실 인식, 예술성 부족
트로트 업계에서는 2000년대 들어서 트로트가 점점 쇠퇴하자 음악적인 발전과 연구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피해의식으로 보이는 치사한 반응을 많이 보여왔다. 주로 음악 시장이 10대 위주로 흘러간다는 식으로 자신들을 약자로 자칭하면서 만만한 게 아이돌이라 아이돌 탓을 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치부에는 눈감기 바빴다. 또한 모 중견 트로트 가수는 "젊은 트로트 가수들이 많이 데뷔하면 트로트의 인기도 올라갈 것이고 아이돌 노래를 듣는 젊은 사람들이 자연히 트로트로 옮겨갈 것"이라는 현실과 동떨어진 발언을 하기도 했다.전술되었듯 청년 세대가 트로트를 고깝게 여기는 이유는 단순히 가수들의 나이가 많거나 취향이 아니어서가 아니다. 아무리 나이 든 가수라도 아모르 파티, 유행가 같은 곡들은 청년 세대들에서도 밈으로 2차 창작이 되는 등 준수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야구단 젊은 팬들이라고 롯데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나 부산 갈매기, 기아의 남행열차를 모르는 팬이 있던가?
트로트가 청년 세대에서 거부당하는 수준을 넘어 혐오/배척당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트로트라는 장르 자체에 근본적으로 익숙하지도 않을 뿐더러 트로트 팬덤의 과격화와 연령별 인구비율에 매몰되어 고령층 타겟 트로트 프로그램을 독점양산하는 방송 및 언론계에 피로를 느꼈기 때문이다. 꼭 젊은 가수가 트로트를 부른다고 해서 열광을 하는 것도 아니다.
걸그룹 베스티 출신의 강혜연, 걸스데이 출신의 장혜리, 보이그룹 M.I.B 출신의 강남, 배우 출신의 노현희, 미녀 개그우먼으로 꽤 이름을 알린 김나희, 무려 축구 선수 출신의 전종혁도 트로트 가수로 무대에 섰는데도 큰 관심을 가진 젊은 팬들은 소수였다. 오히려 강혜연이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자 옛날 베스티 시절 영상이 재조명되면서 "베스티가 더 크게 히트치지 못한 게 아쉽다"라는 안타까움의 반응이 더 컸다.
오히려 청소년/청년층에게 잠시나마 트로트를 좋게 보여준 인물은 아이돌 출신의 젊은 트로트 가수도 아니고 청년층들 사이에서 수포자의 구세주로 불리며 큰 인기를 구가하는 수학강사 정승제였다. 5060 일색으로 도배된 네이버 미스/미스터트롯 채널에서 유일하게 1020이 댓글 분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사람도 그가 유일했다. 오히려 그의 영상에서는 60대 이상 댓글러가 0%였을 정도. 물론 사실 이것도 수학강사가 교단을 벗어나 뜬금없이 뽕짝가락 꺾어대는 저렴한 퍼포먼스라는 1차원적 흥미거리 요소에 소비된 면도 있으며 트로트 자체에 열광한 건 아니라는 한계도 있다.
2010년대 후반부터 양산형 트로트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으로 젊은 트로트 신예를 매스컴에서 크게 주목하자, 기성 선배 트로트 가수들이 그토록 희망을 갖던 트로트 장르의 전성시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였으나 실질적으로 여론을 평가해보니 대부분의 출연자가 젊은 가수였던 미스터트롯과 그 후속작들이 고연령층에서만 큰 인기를 얻고 젊은 층에서는 외면을 넘어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트로트 장르를 모든 연령대의 대중 속으로 포용시키고자 시작했던 트로트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 및 트로트 가수 프로그램은 최초 기획의도와는 정반대로 그동안 겨우겨우 연명 치료 중이던 대한민국 트로트 장르가 의지하고 있던 산소호흡기를 떼버리는 역설적 행동이 되어버리는 것을 넘어서, 아예 병풍치고 향을 피우는 처사로 떠오름으로서 중장년~고령의 기성 트로트 가수 및 트로트 가요 제작자들이 희망했던 최초 기획의도에서 완전히 어그러졌다.[18] 물론 비록 다른 분야에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지만 트로트로는 대성공한 장민호나 한혜진 같은 케이스도 있어서 꼭 이렇지만은 않다.
특히 트로트라는 장르 특성상 연령대가 아무래도 한정될 수밖에 없는데,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변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젊은 가수들이 트로트를 부르면 된다는 마음으로 본인들의 책임을 애먼 후배 가수들에게 떠넘기면서 다른 음악을 향유하는 세대를 트로트 쪽으로 뺏어올 궁리만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어떤 트로트 가수는 트로트의 인기가 쇠퇴하고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 아이돌이 주류 아티스트로 출연하자 "요즘 TV에서 10대들 취향 위주로 음악 방송을 해서 애들이 공부를 안 한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2020년대에 이런 말을 내뱉었다가는 연예계가 발칵 뒤집히고 큰 논란이 되었을 실언이지만, 오히려 젊은 트로트 가수 중에서 성공하면 다른 장르 음악을 내서 이미지 변화를 시도하는 등 그 장르에 대해서 일시적인 수익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트로트 업계가 반성해야 할 지점임을 무시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 ~ 2020년대 초반의 과한 트로트 프로그램 양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달도 차면 기운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어떤 것이든지 잘 나갔을 때 변동하는 추세에 맞춰서 변화를 꾀했어야 했는데, 트로트 관련 업계의 입장에서는 몇 달 몇 년을 굶주렸으니 눈 앞에 진수성찬이 펼쳐진 것과 같았고, 결국 이러한 인식을 버리지 못한 채 그저 이러한 추세가 천년만년 이어질 것처럼 착각하고 자신들의 단점을 고치기는커녕 계속 무사안일주의로 일관하다가 결국 일반 대중에게 외면을 받고 다시금 쇠퇴하게 된 것이다.
8. 미성년자 트로트 가수의 활동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시리즈의 인기로 미성년자가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박성온, 김유하, 홍잠언, 빈예서 등을 들 수가 있다. 이에 대해서 대중들은 회의적인데, 트로트가 좋거나 방송계에 입문하고 싶어서 활동하는 어린이들도 물론 있겠지만 트로트 열풍에 맞춰 어린이들을 돈벌이로 쓰는 건 옳지 않다는 시선이 자리잡고 있다.일명 트로트 신동 스타로 소개되는 대표적인 매체가 명절날 특집 TV 프로그램 및 양산형 트로트 서바이벌 경연 프로그램인데, 대부분 트로트 신동이라는 명칭으로 매년 꾸준히 소비되는 어린이 출연진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열에 여덞~아홉은 부족한 가정경제해결을 위한 맞벌이를 이유로 조부모에게 맡겨진 저소득/중위권 가정 자녀이거나 여러가지 슬픈 연유로 인하여 영유아 시기에 조부모 손에 맡겨져 키워진 조손 가정 자녀가 부지기수이다. 즉 외부 환경 흡수에 취약한 영유아기 연령대에 할아버지,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다보니 조부모들이 양육 스트레스 해소 용도로 주야장천 틀어대는 트로트, 뽕짝 가요의 영향을 받고 반복적으로 청취한 트로트, 뽕짝 노래 가락을 불러대면 주변 어르신, 어른들이 박장대소하며 맞장구 쳐주는 것에 흥미를 느껴서서 숨쉬듯이 불러대는 것을 트로트 신동으로 포장하여 매스컴에서 소비하는 것인데, 이는 영유아 아동 정서 발달 측면에서는 올바르지 못한 처사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사실 그 전에도 량현량하, 컬러링 베이비 7공주 등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한 사례도 있고 유명 어린이들도 있긴 하지만,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생활하다가는 건강을 망치고 학업에도 지장이 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있는 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연령층 가수가 나타나는 현상은 트로트에만 해당되는 게 아닌 아이돌계에서도 해당된다. 방과후 설렘에서는 저연령층 팬들이 1~2학년 멤버들에게 몰표를 주면서 최종 데뷔 그룹 CLASS:y 7명 중 4명이 저학년 연습생이었고, 라우드의 데뷔 팀인 THE NEW SIX, 유니버스 티켓의 UNIS[19]도 해당된다.
그래도 아이돌계는 키즈돌이 아닌 이상 아무리 어려도 중학생 정도이긴 하지만,[20] 트로트는 초등학생 층까지 가수로 활동한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
점차 한국 가요계에 저연령층 가수들이 데뷔하는 건 장기적으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어린이들이 가요계에서 성공한 사례들이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21]
아역 배우의 문제점에서도 나와 있지만 대부분 유명 연예인들은 여러 스케줄 때문에 과속으로 흔들리는 차 안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소속사의 갑질 때문에 맘놓고 활동하는 게 그렇게 쉽지 않다. 건장한 성인들도 그런 마당에 하물며 어린이들은 오죽할까? 더욱이 어린 나이부터 시작되는 연예계 활동으로 인해 학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이는 훗날 연예계 활동을 그만 두고 일반 사회인으로 살아가며 새로운 진로를 정해야 할 때 큰 진입 장벽이 된다.
그리고 잘 먹고 잘 자라야 할 시기에 저녁~심야까지 방송과 행사에 출연하며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삶이 지속되는 것은 정상적인 청소년으로 성장하는 데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22] 특히 남학생들은 변성기로 인해 목소리가 변하면서 이전보다 좋은 가창력을 내기도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23]
거기다가 어린 가수들이 성인이 되면 일반 대중들은 엄격한 잣대를 내미는 데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추세도 많이 바뀌는 터라 과거의 인기와 위상을 얻기 힘들다는 점도 미성년자 가수들이 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런 것 때문에 대중들은 아무리 트로트가 중장년층에게 인기 있다고 해도 어린이들을 눈요기거리 돈벌이 수단으로 쓰려는 게 아니냐는 비판적 여론이 많으며, 점차 연령대가 낮아지는 아이돌계의 전철을 따르게 되는 것이냐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장르 자체의 한계 때문에 아이돌계보다 더 심각하게 다가올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더불어 트로트 장르적 특성상 감성이 성인 위주로 맞춰져 있다 보니 사별, 이별 등 어린이들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정서의 가사 투성이인데, 그런 조숙하고 고루한 정서의 노래를 어린이들이 부르면서 아동정서발달이 망가지는 건 아닐지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으며, 과연 체계적인 교육과 사회화를 거쳐서 노래하는 성인 가수들과 비교했을 때 지적 능력 및 문학적 이해력의 한계가 뚜렷하다 보니 가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기교만 담아서 기계적으로 부르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올 수 있다.
또한 동요 및 아이돌 장르를 먼저 접해야 할 연령대에 가정/지역사회 환경영향 및 주변 어른들의 맞장구에 무분별하게 성인가요를 먼저 덥석 접하다 보니[24]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 실제 일상생활에서의 모습 사이에 괴리를 느끼고 과거에 꼬마 트로트 신동 스타로 데뷔한 어린이 트로트 가수 대부분 중학교 입학 전후의 사춘기를 겪으며 자아 혼란/분열을 겪게 되어 변성기/사춘기의 이유 및 학업을 이유로 활동을 접거나 장르를 바꾸어 재데뷔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요컨대, 트로트 가수들이 '트로트'라는 장르의 특징이 '한민족 특유의 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음악'이라고 흔히들 말하는데, 그 恨이라는 감정을 아이들이 알고서 부르는지 의문이고, 그러한 감정을 아이들이 알게 하는 게 과연 어른으로서 옳은 행동인지도 의문이다. 그래서 트로트를 안 좋게 보는 사람들 중에서는 어린이들에게 트로트를 부르게 하는 걸 정서적 아동 학대 행위로 여기는 이들도 존재한다. #
게다가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유치부~초등부 참가자까지 있을 정도로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극과 극인데, 이들이 부모뻘~조부모뻘 성인 참가자들과 함께 경쟁한다는 포맷 또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더군다나 어른도 멘탈 무너지게 만드는게 서바이벌 경연인데, 트로트 서바이벌 경연은 그들보다 훨씬 작고 여린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서바이벌 경연에 출연하기 때문에 당연히 결과에 따른 감정의 기복 변동이 심할 수 밖에 없고, 여기서 트로트 장르의 핵심 희로애락의 특징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면 바로 대중의 가혹한 십자포화를 맞는다. 이런 정서적인 학대가 아이들의 정신적인 성장에 결코 좋을 리가 없다.
반대로 아이돌계는 나이 차이가 적고 호흡이 잘 맞는 멤버들끼리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또래 친구들과 외로움이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반면, 개인 위주로 활동하는 트로트계의 어린이 가수들은 터울이 큰 성인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데다가 학업까지 병행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돌 가수보다 고충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도 걱정받는 이유다. 미스터트롯 출연 후 아이돌과 발라드, 심지어 연기로도 활동 영역을 확장한 정동원, 미스트롯 출연 후 UNIS로 데뷔한 임서원을 비롯해 오유진, 안율, 황승아 등 트로트 오디션으로 얼굴을 알리긴 했으나 이후 아이돌에 도전하거나 아이돌 오디션에 참가하는 청소년 가수들이 증가하는 것도 이러한 우려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25]
무엇보다 이른바 3B 흥행공식에 따라 특히 고연령층이 어린이 가수를 기특히 여겨 선호하고 시청률도 좋기에 은근히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 위의 어린이 트로트 가수들은 대다수가 미스·미스터트롯 출신인데, PD인 서혜진이 초반 이슈몰이 목적으로 어린이 참가자를 흥미거리로 띄워줘 성인 가수와 맞먹게 연출한 것도 한몫했다. 해당 PD의 개인적인 흥행 방식도 영향이 없지 않은게, 전·후의 대표작 놀라운 대회 스타킹·UNDER15도 각 문서에 나오듯 어린이가 어른 성향의 연기, 춤, 노래를 하게 해 이미지 소비를 부추기는 등 각종 논란으로 비화되곤 했다.
즉,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유독 해당 PD가 맡은 방송이 어린이 활용을 많이 한 것을 보면, 해당 PD가 트로트 방송을 흥행시키고 다른 방송이 따라해서 그런 경향이 있는 것도 부정하긴 힘들다.
[1] 다만 일본에서 演歌라는 용어는 메이지시대 때부터 시작되었고 艶歌라는 용어도 1960년대 전후부터 시작되었지만 한국에서 트로트라는 용어는 처음엔 춤이나 춤곡인 '폭스트롯'을 나타내다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한국의 대중음악 장르를 가리키기 시작했으므로 장르로서의 용어 정립은 시간적으로 이후의 일인 것은 사실이다.[2] 서양 문물을 접한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가요인 낙화유수는 1927년에 나왔으며 중국 최초의 가요인 毛毛雨도 1927년에 나왔다.[3] 이 노래에서 그 유명한 김수희의 남행열차가 나왔다.[4] 굳세어라 금순아는 아예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 수능특강 한국사 영역 128쪽 10번 문제에서 지문으로 나왔으니 말 다 했다.[5] 젊다는 것도 업계 평균에 비해서 그런 것이고, 절대적 나이로 따져도 2000년대 초반 기준이며, 이들도 2020년대 현재는 중년 연령대의 중견 가수에 해당한다.[6] 주로 어덜트 컨템포러리 장르 가수,싱어송라이터들의 청원이다.[7] 지금이야 그 대단한 장윤정도 가수 준비를 하다가 처음 소속사에서 트로트 가수 전향 제의를 받고 며칠 밤을 울었다고 한다. 물론 홍진영도 마찬가지..[8] 본 문서 항목의 "미성년자 트로트 가수의 활동" 각주에서 후술하지만 방송계 매스컴에서 이슈몰이거리로 소비되는 트로트 신동 어린이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가정환경의 영향이 가장 크다.[9] 오죽하면 고속도로 휴게소 가판대 에서도 악성재고로 내몰려 국도 휴게소, 시골 장터 품바 리어카 까지 재고음반으로 전전하다가 화물 트럭 전면유리창 반사용 으로 덤핑되는 수준이다.[10] 이 중에서도 임영웅은 사랑은 늘 도망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우리들의 블루스' 등 대표 히트곡이 모두 발라드라서 전문 트로트 가수와는 거리가 멀어졌고, 이찬원은 예능 프로그램 출연 같은 방송 활동에 더 힘쓰고 있는 전문 방송인에 가까우며, 후에 '하늘 여행'과 '오늘은 왠지'로 음방 1위를 했지만, 두 곡 모두 트로트와는 거리가 멀고 트로트 장르로는 미스터트롯 때 리메이크한 진또배기 정도다.[11] 다만 분명한 것은 저 방송 기간에 아는 형님의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12] 미국 등 해외에서도 사실은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13] 다만 이 둘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한 시기가 브레이브걸스가 한창 군 내에서 인기몰이를 하던 시기와 겹치기에 접점이 있는 출연진들이기도 하다. 특히 1996년생인 이찬원은 한창 롤린이 군 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던 시기에 군생활을 했던 사람인지라 더 각별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14] 그래서 엠넷이 포크송 오디션을 만들었지만, 하필 시간대 선정 미스, 포크송과는 동떨어진 참가자 풀, 긴장감 없는 연출 등 총체적 난국 속에 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그런 프로가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존재도 널리 알려지지 못한 채 제대로 망해버렸다.[15] 정작 이 프로는 지상파가 아니라 케이블에서 방송하는 프로라서 화제성 사수에서도 불리하다.[16] 2005년 장윤정의 어머나! 이후 16년만에 트로트 지상파 음방 1위 기록이며, 2007년 강진의 땡벌이 뮤직뱅크 시청자 선호도 차트에서 1위를 한 걸 포함하면 14년 만에 트로트 지상파 1위이다. 다만 이 시절 뮤직뱅크는 차트 집계를 통합해서 1위를 발표한 게 아니라 매주 음반, 노래방, 음원, 선호도 차트 중 하나씩만 골라서 발표해서 진정한 음방 1위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좀 미묘하다. 때문에 다른 가수들도 이 시절 기록은 통합 기록으로는 불인정하는 경우도 많다. 자세한 내용은 뮤직뱅크/K-차트/2007년 이후 문서 참고 바람.[17] 압도적인 팬덤 규모만큼이나 이러한 문제점 또한 제일 심각한 팬덤으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을 참고.[18] 물론 미스터트롯의 가수들의 팬이 된 젊은 층도 다수 존재하지만, 그들은 대부분 트로트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가수 개인에게만 관심이 있다. 쉽게 말해서 가수의 곡이 아닌 비주얼에 더 관심이 있다는 것. 또한 해당 가수들은 원래 트로트 가수도 아니었다.[19] 내일은 미스트롯2 출신 임서원이 최종 5위로 데뷔하면서 한국 아이돌 중 최연소 아이돌이 되었다.[20] 최연소 아이돌 데뷔 시기로 여겨지던 중학교 2학년보다 더 어린 나이에 데뷔한 상술한 UNIS의 임서원과 버스터즈 출신 tripleS의 김채연, 핑크판타지의 희선도 중학교 1학년에 데뷔했으며, 이 중 희선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예전부터 방송에 나왔었다.[21] 물론 전술했던 량현량하나 컬러링 베이비 7공주처럼 성공 사례도 있긴 하지만 이것도 극소수의 사례일 뿐이며, 이들도 그렇게까지 대성공한 수준은 아니다.[22] 분야는 다르지만 서커스 소녀 감금 학대 사건의 피해자 또한 너무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사회화 없이 어른들의 세계에 노출된 탓에 정신적으로 많이 불안정한 상태였고, 발육도 또래 아이들보다 한참 밑돌았다.[23] 같은 이유로 미스터트롯 시리즈에서도 변성기가 오지 않은 미성년자 참가자들은 대부분 초반에 물먹었고, 정동원, 홍잠언 등 변성기 관련 기준이 없었던 첫 시즌 출신 참가자들 또한 변성기를 겪은 후에는 활동이 줄었다.[24] 이는 엠넷에서 동요 경연 프로그램인 위키드를 편성한 이유이기도 하며, 실제로 FIFTY FIFTY의 하나, Baby DONT Cry의 이현처럼 위키드 출신 아이돌 가수들도 존재하지만 위키드 출신 트로트 가수들은 아직 한 명도 없다는 게 이를 증명하는 사례가 되었다.[25] 다만 트로트는 장르와 창법의 한계로 상술된 양산형 가수가 많다는 문제점이 더해져 타 장르 도전이 어렵기 때문에 오디션 참가자는 많지만 아이돌 데뷔까지 성공한 사례는 임서원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없다. 오유진도 방과후 설렘 참가 당시 가창력은 좋지만 K팝을 트로트처럼 부르는 특유의 창법 때문에 방송 초반부터 지적을 숱하게 받았으며 결국 탈락 후에는 아이돌 도전을 포기하고 트로트 가수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리스너들에게도 아이돌은 도전하기 힘드니까 진입 장벽이 낮은 트로트로 찍먹하듯이 전향해서 날로 먹는다는 선입견을 심어줄 수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인재 유입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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