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07 02:01:59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파일:조선 어기 문장.svg 개화기 조선의 개혁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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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변사)
삼군부
통리기무아문
삼군부 기무처
감생청
통리내무아문 통리아문
통리군국사무아문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내무부
교정청 군국기무처
궁내부 8아문
내각 7부
중추원 }}}}}}}}}

1. 개요2. 인원 구성3. 상세4. 관련 문서

1. 개요

1882년 12월 4일, 조선 정부가 외교와 통상 관련 업무를 전문적으로 다루기 위해 기존의 통리아문을 확충한 기구.

통리아문의.이름을 바꾸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 이라고 불렀다. 줄여서는 "외아문" 이라고 한다.

2. 인원 구성

이러한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최고 책임자인 독판 1명을 두고, 각 사마다 협판이라는 직책의 간부가 1명씩 배치되었다. 이 외에도 각 협판을 보조하는 참의와 실무를 담당하는 주사가 있었다.

3. 상세

외아문은 1883년 1월 20일에 구체적인 업무 체계를 정비하면서, 그 아래에 정각사, 장교사, 부교사, 우정사, 동문학이라는 4개 사무 기관과 1개의 교육 기관을 두었다.

각 기관은 맡은 역할이 뚜렷했다. 정각사는 세금 징수 및 개항장 관련 업무를 담당했고, 장교사는 외국과의 외교 협상, 조약 체결 및 개정 등의 업무를 맡았다. 부교사는 경제 개발에 초점을 맞춰 화폐 주조, 광산 개발, 공업 육성, 누에치기와 목축 등을 추진하였다. 우정사는 통신과 교통 분야를 관장하며 전신, 역마, 철도, 도로 건설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마지막으로 동문학은 외국어와 정치·경제에 관한 교육을 통해 외교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이었다.

이후 1885년 내무부가 설치되면서 외아문의 일부 기능이 이관되었고, 외아문은 외교와 통상 분야만을 전담하는 조직으로 재편되었다. 1887년에는 조직이 다시 개편되어 기존의 4사 1학 체계가 총무사, 교섭사, 번역사, 기록사, 통상사, 회계사 등 6사 체계로 바뀌었고, 주사 인원도 8명에서 24명으로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갑오개혁이 본격화된 1894년 7월 20일, 외아문은 폐지되고 대신 ‘외무아문’이 새로 만들어졌다. 외무아문은 외아문을 계승하여 업무를 이어나간다.

4.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