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최한영(崔漢泳, 1899년 ~ 1990년)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주 지역의 독립운동, 청년운동, 시민운동에 헌신한 인물이다. 그는 1919년 광주 3.1운동을 주도하였으며, 광주실업청년구락부 창립, 연진회 발기, 광주 건국준비위원회 위원,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파일:XfVwDVO.jpg
2. 생애
1899년 전라남도 광주군 호남동(현 광주광역시 동구) 출생.1919년 3월 10일 광주 부동교 아래 작은 장터에서 열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당시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며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체포되어,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1938년 허백련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문화단체 연진회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 광주지부 위원을 지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3. 기타
- 광주 임암동 전부일 장군 효행비 비문의 앞면 글씨를 썼다.- 1929년 실업청년구락부 창립 당시 충장로에서 고무신 판매상을 운영하였다.
- 1977년 대통령표창
-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4. 참고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최한영](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1562)- [인물정보 1](http://aks.ai/GC60000817)
- [인물정보 2](http://aks.ai/GC600013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