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30 22:55:24

조커: 폴리 아 되/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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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평점
2.1. 평론가 평점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3.1.1. 조커에 대한 고찰3.1.2. 배우들의 연기력3.1.3. 미장센
3.2. 부정적 평가
3.2.1. 전작을 부정하는 서사3.2.2. 영화 자체의 완성도 부족3.2.3. 마케팅

1. 개요

조커: 폴리 아 되의 평가를 정리한 문서이다.

2.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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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전에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국제 비평가 평점 3.25/5점(전체 6위), 이탈리아 비평가 평점 3.3/5점(전체 5위)을 받으며 전작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 평점을 받아 개봉 이전 기대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전체적인 양상으론 《다크 나이트》 이후 최고의 배트맨 프랜차이즈 영화이다"라거나 "일부러 혹평받을 작정으로 만든 영화 같다"는 등 극과 극으로 평이 갈리는 가운데 1편과 매우 다른 속편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정작 개봉 이후의 평가는 관람객과 평론가를 막론하고 혹평이 압도적인 상황이다. 국내에서는 개봉 첫날 곧바로 CGV Golden EGG지수가 64%[1]로 내려앉았으며 롯데시네마 7.6점, 메가박스 6.6점, 네이버 5.4점 등 다른 실관람객의 평점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2]

북미쪽의 반응도 국내와 동일하게 좋지 않은 편으로, 평점을 보면 국내보다 혹평이 더 두드러진다. IMDb의 사용자 평가 비율만 봐도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10점(만점)보다 1점(최하점)이 휠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작은 10점이 가장 많았고 1점은 1.4%로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생각하면 불호의 경향이 굉장히 강한 셈이다. 로튼 토마토 팝콘지수의 경우 무려 30%대로 추락하였다.[3]

전작과의 괴리와 심각한 완성도 부족 등이 주요 원인이며, 호평하는 의견으로 감상의 초점을 비롯해 작품 외적인 메타적 요소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호불호를 가리지 않고 전체적으로 영화가 상당히 난해하다는 평이 많다.

전작이 ‘어떻게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었는가’를 그리고 있다면, 이 작품은 큰 틀에서 대중이 열광하는 상징으로서의 조커와 불안정하고 소심한 아서 플렉을 정면으로 충돌시킨다. 이 때문에 ‘조커로서의 아서 플렉’을 기대할수록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전개의 주요 장치로 기능하는 뮤지컬도 관객들의 반응이 좋지 못하다. 길이나 횟수가 지나치게 과하다는 지적이 많고 일반적인 뮤지컬과 다르게 작중 배우가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연을 한다기보다 자기 서사를 시도한다.[4] 따라서 화려하게 설정된 배경과 동작이 절제되는 등 실험적 시도가 많이 보인다. 라라랜드 등의 뮤지컬 영화와도 결이 다르다 볼 수 있다.

코믹스 실사영화 사상 최초로 시네마스코어 D 등급을 받았는데, 이는 최악의 코믹스 실사영화로 뽑히는 판타스틱 4(2015)가 기록한 이제까지의 최저점 C-를 거의 10년 만에 갈아 치운 신기록이다.

2024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에서 무려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그 중 2개를 수상[5] 코믹스 원작 영화 중 역대급 최악의 작품이라는 혹평을 받았다. 전작 <조커>(2019)가 아카데미 11개 부문 후보 및 2관왕(남우주연상, 음악상)을 달성한 코믹스 원작 영화 중 손꼽히는 명작이었던 것과 완벽하게 대조되는 결과를 받았다. 2025년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코난 오브라이언의 인사말로 디스를 당하며# 영화 자체가 밈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이 영화 때문에 조커가 등장한 영화는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다는 징크스마저 가장 처참한 형태로 박살나고 말았다.

2.1. 평론가 평점

전문 평론가들만이 참여하는 로튼 토마토 신선도는 33%로 썩은 토마토를 받았고, 신선도의 탑 크리틱 46개 중 33개가 부정적인 평가로 굉장한 혹평을 받았다. 메타스코어는 45점으로 복합적과 불호 평가의 수가 호평의 2배이다. 평가 수치로만 따지면 같은 DC 코믹스 원작 영화 중 망작으로 꼽히는 저스티스 리그보다도 낮다.
뼈 아픈 각성에 목 놓아 노래를
박평식 (씨네21) (★★☆)
소격효과와 자학적 반성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탈진한 활력
김경수 (씨네21) (★★★)
조각난 할리우드의 환상 속을 헤매는 조커 최후의 벌레스크
김소미 (씨네21) (★★★)
내가 쓴 증오의 노래의 돌이킬 수 없는 성적표를 받아든 비운의 예술가
김철홍 (씨네21) (★★★★)
서도철도 아니고 조커가 자기 반성을 하니, 마음 한켠이 울적하다
김현승 (씨네21) (★★★)
유희를 내던진 거대 엔터테인먼트, 지친다
이용철 (씨네21) (★★★)
서커스장에서의 길고 지루한 진담과 궁색한 속죄
이우빈 (씨네21) (★★☆)
반대를 위한 반대명제
이병현 (씨네21) (★★)
성공한 1편의 별책부록
이해리 (맥스무비) (지수 69%)
망상과 광기를 공유하거나 단절해가며 전편과 내내 밀고 당기듯 치열하게 추는 2인무.
이동진 (★★★★)[6]

3. 평가

3.1. 긍정적 평가

3.1.1. 조커에 대한 고찰

시리즈의 연속성을 노렸다기 보다 '조커란 무엇인가?' 라는 그 질문 자체로 감독 나름대로의 깊은 고찰을 담아냈다고 볼 수 있다. 부제인 '폴리 아 되'가 작품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었던 것. 작중 아서는 사람들의 광기와 기대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 조커가 되어 사람들이 원하는 조커를 연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최후반부에 아서는 조커는 환상일 뿐 자신은 아서 플렉이라며 한탄하고 극 중 인물들의 상당수는 이에 대해 극도의 실망감을 표출한다.

현실 관객들도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지 않았다며 동일한 혹평을 내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내적으로나 메타적으로나 ‘타인이 아서 플렉을 조커라며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또 일방적으로 실망한다’는 일치된 양상을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제목인 ‘폴리 아 되’는 아서와 할리(로 대표되는 조커 지지자들)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 관객과 극 중 조커 지지자들의 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전작이나 본 작품이나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전작은 사회 시스템 내에서 약자인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본작은 이미 '조커가 된' 아서 플렉이 외부에 의해서 끊임없이 조커이기를, 혹은 조커가 아니기를 강요받으며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과정을 보인다. DC 코믹스에서의 조커가 광기의 화신으로 받아들여지는 점을 생각하면, 조커를 낳은 '사회'라는 광기를 조명하고 사회 앞에서 개인은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그저 휩쓸려 다니는 존재라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오히려 조커에 걸맞은 영화라는 호평이 나오기도 한다. 전작에서 잔뜩 쌓인 분노와 불만이 가득한 사회가 조커라는 불씨로 인해 타오르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고담은 조커가 언제 어디서라도 태어날 수 있는 광기의 산실이 되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불호평에서 말하는대로 분명 관객들은 아서 플렉이라는 인간에게 관심이 없지 않았다. 그의 과거사와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과 슬픔, 분노에 크게 공감을 표하고 그가 조커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심히 공감한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는 결국 혼돈과 파괴의 화신으로 치달은 조커라는 빌런의 오리진을 설득력 있게 극이 제시하면 그것을 흔쾌히 납득하고자 하는 심정에서 나온 것임도 분명하다. 이 영화는 표제부터가 '조커'고 아서 플렉이라는 작중의 주인공이 제목의 슈퍼빌런 조커로 가는 서사를 그리고 있다는 것 쯤은 이미 영화를 보자마자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편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로 가는 모습을 애초에 기대하고 있던 관객들은 그가 정말로 조커 그 자체가 되길 원했는가, 그걸 긍정하고 있었는가 하는 문제에서 '당연히 그는 이런 불행한 과거를 겪었으니 조커로써의 삶을 긍정할 수밖에 없었고, 긍정해야 한다'고 단정해버리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2편에서는 '실은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서 플렉이라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기원을 알 수 없는 혼돈의 악신 조커'가 아니라 '인간 아서 플렉'인 것이고 그에게는 어느쪽으로든 갈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며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렇듯이 그는 망설이고 흔들리다가 그 길을 포기한 것 뿐이다. 애당초 1편에서부터 아서는 조커라는 아이덴디티에 휘말린 것이지 조커 그 자체가 되길 정말 원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결국 조커라는 부자연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에 가까운 것이며 그가 조커로 가는 길을 일관성 있게 견지한 것은 엄밀하게는 아서가 아니라 그가 조커가 되는 결말의 카타르시스를 기대한 관객들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서가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아서 플렉이 아니라 조커를 지지한 작중의 조커 지지자들처럼 진정으로 그는 관객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물론 1편에서 아서 플렉이 조커를 자신의 일부라고 받아들였던 것은 분명하다. 조커가 비록 달갑지 않은 뭔가라 할지라도 결국은 스스로 받아들임으로써 아서의 일부가 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혁명가이자 빈민층의 분노 표현이었던 조커는 아서가 의도한 바가 전혀 아니었다. 아서가 조커라는 자의식을 가진 시발점인 지하철에서의 살인은 폭행에 대응하다 벌어진 우발적인 사건이다. 이것이 매스컴을 타며 광대는 빈민층의 분노를 표현하는 상징으로, 범인은 그들의 영웅으로 자리매김한다. 이를 보며 그동안 장애로 인해 무시받고 소외당한 아서는 마침내 자신이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수단을 찾는다. 이렇듯 조커는 대중과 아서에겐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아서에게 조커는 아서 자신을 인정 받기위한 수단으로 대중이 받아들인 투사와는 거리가 있다. 후에 머레이를 죽임으로서 대중이 바라는 조커의 모습은 완성된다. 그러나 아서는 대중이 바라던 모습을 의도하지 않았다. 둘의 견해는 큰 간극을 보이고 그가 대중의 조커를 받아들이려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한 이야기가 조커2의 이야기이다. 1편을 전복해서, 1편에서 마치 코미디언으로 자의식을 구성해보려다 실패한 것처럼 2편에선 아서 자신이 새로 받아들인 이 조커라는 자의식을 구성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이 경우 아서라는 소시민적 면모가 존재했기에 이마저도 안 된것이다. 즉, 1,2편을 통틀어 조커 시리즈는 '아서 플렉이라는 사람이 사회에서 받아들이는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는 이야기'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은 사실 이렇게 단 하루의 불운한 순간을 맞이한 사람들조차 항상 모두 같은 광기와 혼돈으로 치달야하고 자신의 폭력과 파괴를 만족시키기 위해 행동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렇게 항상 일관성 있는 존재가 되기 어려우며, 대부분은 항상 자신의 앞에 놓인 길의 불확정성에 대해서 고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치 킬링 조크의 결말에서 똑같은 '몹시 불행한 한 순간'을 겪고 변해버린 사람들조차 그 결과물은 배트맨과 조커로 확연히 갈려진 것처럼 말이다.

1편과 2편에서 아서가 진정으로, 일관적으로 원했던 것은 사람들의 인정과 자신을 사랑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의 존재였다. 아서는 폭주하는 혼돈과 광기의 화신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폭력을 갈구하는 자들을 만족시키려 조커와 같은 폭력과 광기를 흉내내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반대로 모두의 사랑을 받는 어릿광대가 되기 위해 노력하더라도 본인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로 본인이 원하는 사람은 어느쪽으로든 도달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어떤 길도 선택할 수가 없어서 자포자기하고, 파멸해버리는 것이 이 영화 시리즈가 일관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즉 1편의 관객들은 그 아서 플렉의 암울한 삶을, 정도는 다르지만 역시 고달픈 일상의 한 조각을 할애해가며 1시간 이상 지켜본 끝에 그가 조커야 되어야 할 당위성만을 생각하고 그가 조커라는 슈퍼 빌런이 되면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1편과 2편에서 보여줬듯이 현실에 천국은 없고 오로지 그의 망상에만 존재했다. 그렇기에 그의 노력 자체가 그를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자신과 주변을 오히려 불행하게 했고, 그의 노력도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커 시리즈는 그런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버려 실존을 위협받는 개인에게 닥쳐온 거대한 비극을 관조하는 것에 가까운 것이다. 물론 아서에 극히 공감하고 어떤면에서는 동치하면서 그의 행복을 어떤식으로라도 바라기에 그가 조커가 되는 것은 설득력이 있으며 '조커가 되는 것은 오히려 그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했던 관객에게 2편의 내용은 배신으로 다가오는 것은 당연하고 이에 따른 악평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1편은 어디까지나 그래도 앞으로를 기대하는 일종의 '해피엔딩'이라고 볼 소지라도 있었는데 2편에서 이 시리즈는 희망이 없는 비극이라고 선을 그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리고 극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면 폴리 아 되 이후의 고담은 이제 자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져버렸기에 배트맨이 등장할 당위성이 갖춰지므로 조커만 사용한 개별적인 작품임에도 나름 제 역할을 다 한 셈. 거기에 이 시리즈를 조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고담에 살고있는 소시민 아서 플렉의 이야기라고 한다면 그의 비극적인 일대기를 잘 마무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작이 바닥에서 출발해 상승해서 조커가 되는 스토리라면, 본작은 거꾸로 조커라는 정상에서 바닥으로 처박히다 못해 완전히 매장당하는 스토리로, 완벽한 산 모양 곡선을 이룬 피카레스크 영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코믹스의 조커는 정체불명에다가 다른 이유 없이 미친놈이기에 미친놈인, 혼돈 악이었기에 정체가 온 나라에 알려지고 불쌍한 사연으로 인해 악해진 아서 플렉은 애초부터 조커가 될수 없기에 그를 치워버리고 이후 나올 조커의 정체와 과거를 다시 정체불명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점도 외적으로 호평을 받기도 한다. 아서는 수수께끼의 한 수감자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데 이후 보인 행동[7]을 볼 때 그가 우리가 알던 진짜 조커일 가능성이 존재하며 기구했던 삶과 함께 조커라는 페르소나까지 미치광이 사이코 빌런에게 강탈당하는 아서의 비참한 결말로 볼 수 있다. 혼돈악 그 자체인 원작의 조커를 생각하면 아서가 창조해낸 조커라는 상징이 불러일으킨 혼돈과 파괴를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아서가 이를 부정하자 그에게서 더이상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망설임없이 죽여 빼앗아간다. 아마 진짜 조커는 이후 출소하거나 탈옥해서 마치 아서의 거죽을 뒤집어쓴 듯이 자신이 아서인 양 행세하며 그의 삶을 마치 자신의 것인 것마냥 이야기하며 자신의 과거를 날조할지도 모른다.[8] 사실 그저 불행한 소시민이었던 아서에게서 거대한 악이 탄생한것. 이런 관점으로 해석하면 이 시리즈를 진짜 조커의 오리진, 프리퀄 영화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3.1.2. 배우들의 연기력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호평이 많다. 특히 주연인 호와킨 피닉스는 전작에서 이미 오스카 상을 받았는데, 속편에서는 그걸 뛰어넘었다는 반응이 지배적일 정도로 또 하나의 커리어 하이를 갱신했다.

3.1.3. 미장센

후술하듯 뮤지컬의 남발이라는 연출이 전반적으로 혹평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 이외의 화면 구성, 의상과 미술 등을 비롯한 미장센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좋게 평가받은 편이다. 특히 리와 사랑에 빠져 아서가 망상에 빠진 리와의 첫 뮤지컬 장면에서의 빛이 서서히 밝아지며 등장하는 촬영 구도로 이룬 아름답고 예술적인 표현이 미적으로 극찬을 많이 받았다. 일부 연출은 전작과 대비를 이루기도 하므로 두 편을 모두 본 관객은 그 차이점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혹평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로 볼 수 없을 정도로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뮤지컬 장르를 활용한다. 본작에서의 뮤지컬 장면은 기존처럼 즐거움이나 슬픔 등의 감정을 일으키며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아서가 현실에서 망상으로 도피할때마다 겪는 공허한 내면의 광기를 직접 드러내는 장치이기 때문에 관객들이 느끼는 지루함과 어딘지 불편한 위화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일 수 있다. 실제 감독과 배우들이 뮤지컬 장면을 어딘가 어색하고 부족하게 보이도록 의도했다는 인터뷰가 있는데, 이것 역시 위와 같은 목적으로 볼 수 있다. 혹평이지만 제발 노래좀 그만 부르라는 아서의 결말부 대사에 관객들이 깊이 공감했다는 점은 의도된 지루함과 불편감에 느꼈던 피로를 토로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 내내 반복되는 의미없는 뮤지컬 장면에 제발 멈춰주길 바라는 관객의 마음이 바로 아서가 멈추지 않는 자신의 광증에 제발 멈춰달라 애원하며 느꼈던 그 감정이었을 것이다.

3.2. 부정적 평가

아서 플렉: 싸한 분위기를 보니, 사람들이 원하는 건 이게 아닌 거 같은데?
리 퀸젤: 괜찮아, 자기. 그렇다면 사람들이 원하는 걸 주자고.
조커와 할리 퀸과의 만담 中[9][10]

3.2.1. 전작을 부정하는 서사

이 영화는 명백히 전작이 있는 영화이므로, 영화 자체와는 별개로 전작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의 평가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가 제시하는 바가 전작과는 너무 다른지라 당연히 관객들에게 반발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불호의 의견으로 이어진다.

가장 주된 비판은 아서 스스로가 조커를 부정함으로써 전작에서 쌓아올린 '조커'의 서사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평으로, 아서 플렉은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11] 조커를 자처하다 감당하지 못한 정신질환자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영화가 끝이 나버리면서 관객들에게 실망감을 표출했다는 평이 대다수다.

이런 실망감은 영화에서 의도한 것이라고 쳐도, 예고편 연출부터 '슈퍼 빌런'이 된 조커의 광기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대놓고 그런 기대를 유도했기에 관객들에게 '배신당했다'고 여겨도 마땅할 비판받을 요소다. 심지어 조커와 할리 퀸이 추종자들의 환호와 함께 위풍당당하게 춤을 추며 법원에서 나오는 예고편의 마지막 장면은 예고편 낚시로 정작 본편에는 단 한 컷도 등장하지 않는다.[12] 이 장면은 1차, 2차 예고편에서 전부 등장한 장면이기도 하고, 전작에서는 혼자서 추던 계단 춤을 이번에는 할리 퀸과 함께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에 기대한 사람들을 낚았다고도 볼 수 있다.[13] 하다못해 아서의 망상 속 장면으로라도 처리될 여지가 있음에도 결코 나오지 못했다.

상업영화라는 장르에서 흥행을 위한 어느 정도의 포장은 당연한 것이고, 어쩌면 그 또한 배급사의 실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관객에 대한 '기만'이 되면 곤란하다. 이 영화는 조커가 주인공이 아님에도 아서가 조커인 것 마냥 주인공인 척했고, 심지어 영화에 나오지 않는 장면까지 매 예고편마다 집어넣어 광고했다. 조커가 주인공이라는데 '조커가 된' 아서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그럴 거면 왜 조커라는 이름을 달고 영화를 만들었냐는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일부 호평에서는 이 영화를 차라리 예술영화로 분류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러면 이 '기만'은 더더욱 문제가 된다. 개봉 초기에는 종종 이러한 현상까지 감독의 의도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건 너무 논리의 비약이 크고 공감할 수도 없는 의견이라는 지적이 잦았다. 당시 이러한 관객 간의 갈등에 대해 이 작품에 좋은 평가를 내린 이동진 평론가조차 예고편이 의도적으로 관객을 오도한 것은 마케팅의 선을 넘었다고 지적했으며, 이 모든 실패와 악평까지 감독의 의도라는 것은 오히려 영화에 대한 지나친 과몰입이라 선을 그을 정도다. #캡처, #

마치 영화의 조커 추종자들처럼 관객들도 결국 아서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조커에만 관심을 가졌다고 반박하지만, 전작의 결과물을 부정하는 해체주의 안티 플롯을 내세우면서 관객들이 아서에게 관심이 없다고 주장하는 건 아전인수식 해석에 가깝다. 엄밀히 말하자면 관객들은 아서에게 관심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과거사와 현실에서 느끼는 좌절과 슬픔, 분노에 크게 공감을 표했다. 행위 자체에 찬성하지는 않아도 그에게 관심을 갖고 또한 이해했기에 아서의 조커가 이전과는 상당히 이질적임에도 아서를 조커라 부를 수 있다고 인정한 것이다. 애초에 1편의 마지막에서 아서는 조커라는 자신을 받아들임으로써 관객들에게 조커가 곧 아서 플렉이라 보여지도록 완성된 캐릭터다. 즉 1편의 관객들은 그 아서의 암울한 삶을, 정도는 다르지만 역시 고달픈 일상의 한 조각을 할애해가며 1시간 이상 지켜본 끝에 그가 조커가 되어야 할 당위성을 인정했던 것인데 2편의 전개는 그걸 통째로 부정해버렸으니 애초에 1편을 봐야할 당위성을 잃게 만든다.[14]

종종 아서가 본디 원했던 것은 조커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의 인정을 바랐을 뿐이라는 반론이 있으나, 이는 전작을 고려하지 않는 발언이다. 아서 스스로도 조커가 일종의 상징임을 분명히 인지했고, 내리막길임을 알고 있음에도 끝내 스스로가 조커가 되기를 택했기 때문이다.[15] 무엇보다 아서가 결국 '조커'를 자신의 일부라고 받아들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사람은 결코 자신이 원하는 존재만이 될 수가 없고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게 자신이 아니라고 할 수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아이덴티티에서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일종의 결함으로 인식되는 요소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오로지 원했던 것만이 그 사람의 진정한 구성 요소라고 부를 수 없으며, 아서 플렉은 조커가 비록 달갑지 않은 뭔가라 할지라도 결국은 스스로 받아들임으로써 틀림없는 그의 아이덴티티의 일부가 되었고 그렇게 하나의 완성된 캐릭터로 자리잡은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2편에서 갑자기 조커가 아니라고 부정해봐야 1편에서 완성된 캐릭터를 목격한 관객에게 있어서 심한 거부감이 들게 된다. 1편의 서사 끝에 조커를 받아들인 아서를, 갑자기 사실은 이걸 원한 게 아니었다며 기존으로 되돌리는 전개를 보여주는 것은 전편에서 캐릭터의 서사를 쌓아올리는 과정을 전면으로 부정함으로써 캐릭터 자체를 퇴화시켜버린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이런 식으로 캐릭터를 퇴화시키는 건 같은 인물과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리즈물에서는 결코 좋게 평가받지 못하는 부분이다.

조커를 포기하는 과정과 묘사 또한 결과적으로 부실했는데, 할리의 부추김 속에 변호사까지 해임하며 의기양양하던 흉악범 빌런이 무너지는 계기는 '고작' 게리의 하소연이고 그 직후 아서는 곧바로 공개적으로 조커이기를 포기해버린다. [16] 법원 폭파 씬 역시 마찬가지로, 이 장면 자체로도 전작에 비해 빌드업이 부족하다.

전작에서 법원 폭파씬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장면이 바로 아서가 머레이를 쏴죽이는 장면인데, 전작에선 아서의 극도로 불안정해진 정신 상태와 소유하고 있던 총으로 '아서가 머레이 쇼에서 자살할 계획이다'는 걸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다르게 흘러갈지도 모르는 전개로 기대시킨 후, 아서가 토크쇼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나서 머레이의 지속적인 조롱으로 인해 아서가 점점 폭주하기 시작하는 전개를 보여줌으로써 언제 터질 지 모르는 긴장감을 심어주다 기어코 머레이를 쏴죽여버리며 카타르시스를 극대화시켰다. 하지만 본작의 폭파 씬은 빌드업이라 해봤자 전날 아서가 했던 대사 한마디가 전부고, 뜬금없이 대폭발이 일어나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저 이게 뭔 상황이냐며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어버린다. 서스펜스 문서 최상단의 인용문을 한번 읽어보면 얼마나 나쁜 연출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대미라 할 수 있는 법원 폭파 씬과 이어지는 차량 탈출 씬은 '조커의 추종자들이 아서 플렉을 버렸다'는 주장마저도 어색하게 만든다. 조커 추종자들은 끝까지 아서를 데려다 주려고 했다! 그저 아서가 자신을 구원해 줄 일말의 가능성을 걷어차놓고, 결국 자신을 구해보려는 이들로부터 제 발로 도망치며 부정해버렸다. 이는 '조커인 척하며 조커를 기대하게 만들어놓고, 심지어 마지막까지 조커를 포기하지 않는 관객들을 매몰차게 내팽개쳐버렸다'고 해석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문제다.

결국 관객들이 이 영화에서 목도하는 것은 '흉악범 빌런의 몰락'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정신질환자의 몰락'이 된다. 1편에서는 소시민으로부터 조커가 되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한 반면, 2편에서는 조커에서 소시민이 되는 과정을 표현했어야 했음에도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서는 광기로 도시를 물들이는 빌런은 고사하고 그저 타인에게 휘둘리는 소시민의 모습, 심지어는 교도관들의 폭력에 무자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약자'의 입장으로부터 끝까지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피카레스크적 구성의 완결조차도 되지 못하고 어딘가가 뚝 잘려나간 시리즈물이 되어 관객들이 영화에 공감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리즈물에서 후속작은 전작에서 이어지며 설정을 공유하는 구조를 띠는 게 기본이다. 조커라는 캐릭터를 완성시킨 결말에서 갑자기 조커의 모습을 보이지도 않은채로 그저 조커를 부정하는 전개로 뒤집는다면 관객들 입장에서는 설정파괴로 느껴지면서 당연히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 특히 서술한 지루한 연출과 지나친 뮤지컬 남발로 인해 이 영화 내용에 납득할 만한 몰입감도 크게 하락하면서 그 거부감은 더욱 심화된다. 이는 관객들의 태도와 작품의 의도만을 논하면서 정작 그 내용물로 관객을 설득시키려는 노력이 매우 게을렀다고 평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1편에서 아서 플렉을 조커라는 빌런이자 분노의 상징으로 완성시켰지만 후속작에서는 조커라는 개념 자체가 사실 존재할 필요조차도 없게 됐다. 1편에서도 아서 플렉은 기존의 조커와 이질감이 강하기는 했으나 배트맨 세계관의 요소가 잘 어우러졌기에 재해석의 영역에 머무를 수 있었던 것이지, 2편은 배트맨 세계관과 전혀 상관없는 나약하면서도 어리석기까지 한 범죄자를 향한 조명에 불과해졌기 때문이다. 고담 시는 '배트맨'의 활동 무대로서 창조된 장소다. 즉 그 디스토피아적 막장 설정은 어디까지나 배트맨이라는 슈퍼히어로가 빌런들을 찾아내어 응징하는 배경으로 필요성이 인정되어 수용된 것이고, 배트맨이 없이 조커가 단독 주인공인 전작에서는 그 역할을 아서 플렉이 고담의 부조리 속에서 조커로 각성함으로써 대신하였다. 그런데 아서 플렉이 그 조커조차 되지 못한다면, 1편의 그 암울함을 기억하는 관객들은 고담시 자체를 수용할 어떠한 동인도 찾을 수 없게 된다. 캐릭터 이전에 그 배경의 존재의의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것이다. 반대로 1편과 별개로 2편만 떼어놓고 생각하면 영화 안에서 비판한다는 고담 사회의 문제가 뭔지조차 희미해진다.

서사를 뒤로하고 오직 메시지만을 강요하는 전개는 관객들의 반응과 태도로 영화의 평가를 완성하고자 하는 행위에 가까우며 영화 내부가 아닌 외부적인 요소만을 논하는 평가라는 점에서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관객의 반응은 모두 영화의 의도대로" 라는 논리를 내세움으로써 영화의 좋고 나쁨을 관객의 반응과 사회적 영향력 등의 외부적 요인을 최우선 기준으로 두고 판단하게 되는 일종의 순환 논리의 구조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결과물보다는 영화의 의도를 통해 평가받으려는 행위라고 여겨질 수 있다. 이 점을 불쾌하게 느낀 관객들에게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II와 비교하기도 했다. 다만 전작의 부정이나 전개의 억지성 등에 대해서는 비판측 관객들 사이에서도 상당히 의견이 갈리기에 라오어2와 비교하는건 일부 호평측의 ‘감독의 의도’ 운운처럼 너무 지나치게 나간 평가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17]

3.2.2. 영화 자체의 완성도 부족

본작이 상업성이 아닌 예술영화를 목표로 하였다 가정해도,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영화의 완성도 자체가 매우 떨어진다. 실제로 상업성과 상관없이 높은 점수를 주기도 하는 평론가들조차 전반적인 완성도에 심각한 결함이 있음을 지적하며 좋지 못한 평가를 내리는 중이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뮤지컬 영화에 가까울 정도로 분위기가 전환되었는데, 이게 자주 나와서 자꾸만 극의 맥을 끊어 먹고 지루하다는 지적이 많다. 오죽하면 더 타임스토드 필립스 감독이 후속작은 없을 것이라 말했지만 마음을 바꾼 대신 뮤지컬이 탄생했다며 비꼬았다. 전작은 어디까지나 리얼리즘에 가까운 극 영화였는데, 본작은 성격이 확연히 달라지면서 뮤지컬로써 이 괴리감을 해소하고자 시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영화의 긴장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산만하게 만들었다.

긴장감과 분위기가 고조되는 순간 매번 맥빠지게 로맨틱 코미디스러운 노래와 춤을 추며 역으로 영화에 집중되지 못해서 되려 괴리감이 들게 만들었다. 이에 대해서는 감옥과 법정으로 한정된 공간적 배경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라고도 여기나, 그런 류의 법정영화로 2시간을, 그것도 엄청난 몰입감과 함께 끌고 간 작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이미 감옥과 법정 밖 리 퀸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도 나온다. 더군다나 정극 사이의 공간을 채우느라 고심했다면 굳이 13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을 요구할 필요는 없기에 대체로 뮤지컬 파트는 완성도는 높아도 관객들의 몰입감을 자아내는데에 실패했다고 보는 게 주된 평가이다.

이건 상술한 전작과의 괴리와도 어느 정도 맞물리는 문제점이다. 작중 내내 아서 플렉과 조커를 철저히 분리시키며 아서에게 초점을 맞추는 작업이 반복되기에, 관객들을 캐릭터가 재구성되는 이 상황에 몰입시키기 위한 장치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오히려 전작보다 더한 몰입감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는데 뮤지컬을 비롯한 영화의 모든 연출이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다. 뮤지컬은 너무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해서 지겹다는 감상만 남게 되며, 모든 문제의 원인을 아서에게 몰아넣기 위한 작업이 무의미한 학대에 가깝다 보니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과하다는 느낌만 든다. 본작은 배트맨 세계관의 요소를 거의 배제한 채 현실에 있을 법한 나약한 인간 한 명을 조명하는 내용이라 전작보다 현실적이라 볼 여지가 큼에도 오히려 전작의 세계관보다도 훨씬 이입하기 힘든 상황이 갖춰진다. 이 정도로 몰입감이 조각난다면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갖춘들 관객들에게 메시지 전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 영화가 평론가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요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안전망이 무너진 현실의 씁쓸함, 상징으로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개인, 미쳐 돌아가는 책임을 아서 한 명에게 미루는 고담 등 모든 요소들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오히려 불쾌함을 불러일으킨다. 전작도 비슷했지만 마지막에 아서가 조커가 되어 폭발하던 순간의 통쾌함으로 만회한 것에 비해 본작은 극중 내내 텁텁한 먼지를 씹는 느낌이 들게 한다.

웹진과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주제나 메시지를 풀어내는 방식이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비판이 압도적이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팀 그리어슨은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전작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평을 했으며, 필름 아일랜드 매거진의 셰인 맥케빗은 '전작과는 다른 매력이 있지만, 다시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다'라고 평했다. 더 가디언은 '전편처럼 거칠면서 진지한 분위기는 있지만 지루한 작품'이라며 비판했고, BBC는 '조커 신화의 해체 작업이 대담하기는 하나, 짜증스러울 정도로 교만할 뿐만 아니라 확실히 재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오죽하면 출연 배우들도 이미 촬영 현장에서 실패를 예상했다는 뒷말도 나온다. 정신병원 경비원 역으로 출연한 팀 딜런은 "줄거리도 없다, 심지어 미워하면서 볼 수도 없을 만큼 끔찍하다", “마치 ‘대부2’에서 마피아인 콜레오네 가문이 합법적 사업으로 전환한 뒤 ‘우리가 나쁜 짓을 해서 미안해. 이젠 빵집을 운영해’라며 사과하는 내용 같다”는 말을 남겼다.#

3.2.3. 마케팅

호평하는 쪽과 혹평하는 쪽이 입을 모아 마케팅을 혹평하고 있다. 마케팅에서는 마치 인간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의 광기를 폭발시키고 선동하는 것처럼 나왔었기에 본편과는 괴리가 큰 편이다. 게다가 예고편만 나오고 영화 내부에서는 나오지 않는 장면도 꽤 있어서 광기의 조커를 원했던 관객들을 낚으려는 속임수로 볼 여지가 있다. 그 때문에 원래의 혹평이 더 많아졌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본편의 분위기로 예고편 및 마케팅을 했다면 호불호는 심하게 갈렸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지금만큼의 엄청난 혹평과 마케팅 사기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1] 이는 그동안 개봉한 MCU 영화 중 가장 관객 평점이 낮은 더 마블스보다도 낮은 지수다. 아무리 망작이라도 에그지수가 70% 미만이 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가장 최근에 이 정도 수준까지 떨어진 영화는 희대의 망작이라는 마담 웹이 있다.[2] 2024년 10월 3일 기준으로 롯데시네마는 평점 7.9로 선방하는 양상인데, CGV나 메가박스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용이 높은 아이맥스, 돌비시네마 위주인 반면 롯데시네마는 일반관 위주이다. '비싼 돈 주고 볼 물건은 아니다'라는 데 인식이 모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3] 팝콘지수는 80%미만으로 진입해도 호불호의 단계고 60%미만부터는 마담 웹이나 그린랜턴(2011)처럼 쓰레기라고 평가받는 영화들 뿐이다.[4] 레이디 가가는 인터뷰에서 평생을 프로페셔널 가수로 살아오면서 뮤지컬에도 다수 출연했는데 이번의 감독의 요구는, 노래를 일부러 못 부르고 춤을 고의로 어설프게 추는 것이라 정말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조커2의 리 퀸젤의 노래는 레이디 가가가 부르는 것이 아니며 진정으로 리 퀸젤이 부르는 것으로 보라고 했다.[5] 최악의 작품상, 최악의 남우주연상 (호아킨 피닉스), 최악의 여우주연상 (레이디 가가), 최악의 감독상 (토드 필립스), 최악의 스크린 콤비상 (호아킨 & 가가), 최악의 리메이크/속편상, 최악의 각본상.[6] 평론가 중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주었고, 이에 대해 갑론을박이 일어나자 영상을 통해 평점의 이유와 보다 세세한 감상을 밝혔다.#[7] 아서를 찔렀던 흉기로 자신의 입을 찢고 미친듯이 웃는다.[8] 다크나이트에서의 조커 역시 과거에대해 일관성 없는 진술들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진짜 과거가 어떤 것인지 절대 말하지 않는다.[9] 참고로 해당 장면은 아서의 망상 속에서 나오는 대화이기 때문에 리의 대사도 망상이고 아서의 내면을 반영시킨 조커의 대사만이 실제다. 거기다 이 망상은 아서의 자괴감이 반영된 망상이었기에 리가 말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조커의 죽음이라는 것 마냥, 이 대사 뒤에 노래를 이어가려는 조커의 배에 총을 쏜다.[10] 영화가 개봉된 후 제작진들이 자기들을 셀프디스한게 아닐까 화자되곤 한다.[11] 의외로 대부분의 매체에서 조커의 기원은 대개 내친 김에 됐다는 식으로 전개될때가 많다. 은퇴를 앞두고 한탕하려던 경범죄자가 화학약품에 빠져 얼굴이 변색되자 내친 김에 범죄 아티스트의 길을 걷거나, 화학약품에 쩔어 정신이 나가버린 후 쾌락살인마의 길을 걷거나 한다. 차이점이라면 이들은 더 이상 일반인으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데 비해, 아서는 몸도 멀쩡하고 자신이 미쳤다는 자각이 없어서 1편 전까진 사회에 순응했을 정도로 이성도 어느 정도 남아있었기에 조커를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할 여지가 남은 나머지 흔들렸다는 것.[12] 또한, 영화 홍보 멘트로 '온 세상이 무대라느니, 혼자가 아니야라는 구절이 나왔지만 아서 플렉의 비참한 최후를 보면 전부 다 거짓말이다.[13] 심지어 조커와 할리가 계단에서 함께 춤추는 장면은 예고편을 넘어 무려 아이맥스 포스터로까지 나왔다.# 이 정도면 대체 무슨 깡인지 알 수 없을 지경.[14] 어설픈 해체주의 또는 설정파괴를 내세우는 바람에 서사가 용두사미가 되는 것을 넘어, 작가 또는 감독의 역량 까지도 의심받게 된 대표적인 사례가 기안84패션왕이다. 주인공 우기명이 고생 끝에 패션왕 선발대회 준결승까지 갔는데 뜬금없이 준결승을 포기하는 전개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15] 만약 이 반론대로라면 아서가 권총을 랜들에게 억지로 받고 억지로 월스트리트 금융인 세 명을 총으로 쏘고, 머레이를 억지로 쐈다는 전개가 된다. 1편에서 아서가 금융인 세 명을 쏘아 죽인 것은, 그 금융인들이 여성을 괴롭히다가 자신도 괴롭히려 하자 자기방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쏘았다고 해도, 그 후의 서사는 아서가 의도하는 대로 흘러갔다. 첫 살인 후에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에서 흥분하고, 랜들을 죽이고 계단에서 신나게 춤춘 것은 아서가 아닌 조커가 원했다는 궤변이 돼버린다.[16] 다만 아서가 '가장 동질감을 느끼던 사람'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파괴했단 걸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면 개연성에 아주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영화에서 아서는 게리를 심문하며 마치 머레이가 했던 것처럼 게리를 공개적으로 웃음거리로 만들려 했고, 그러면서 뭔가 기대를 품는 모습을 드러냈지만 돌아온 건 자신과는 전혀 다른 평범한 사람의 하소연이었다. 중요한 장면이었음에도 심리 묘사가 부실해서 관객들은 다소 납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17] 사실 본 문서내에 존재하는 모든 비판과 비난을 수용하더라도 조커2가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II에 비할만큼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참 커뮤니티가 뜨겁게 불타던 개봉 당시에도 불쾌감과는 별개로 영화적 완성도 자체가 나쁘지만은 않다거나 건질만한 부분이 있다는 반응도 꽤 있었고, 일부에서는 잠깐만 진정하고 라오어2가 어땠는지 다시 한번만 생각해보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라스트 오브 어스 2는 그만큼이나 파멸적인 작품이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