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03 12:22:59

조제프오렐 플루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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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대 캐나다천주교주교회의 의장
<colbgcolor=#25275f,#25275f><colcolor=#fff,#fff> 제8대 오타와-콘월대교구장[1]
조제프오렐 플루르드
Joseph-Aurèle Plourde
파일:Mgr Joseph-Aurèle Plourd.png
출생 1915년 1월 12일
캐나다 자치령 뉴브런즈윅주 생프랑수아드마다와스카
사망 2013년 1월 5일 (향년 97세)
캐나다 온타리오주 오타와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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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 수품 1944년 5월 7일
주교 임명 1964년 7월 30일 알렉산드리아-콘월교구 보좌주교 임명[2]
1967년 1월 2일 오타와대교구장 임명
재임기간 알렉산드리아-콘월교구 보좌주교
1964년 7월 30일 ~ 1967년 1월 2일
제8대 오타와대교구장[3]
1967년 1월 2일 ~ 1989년 9월 27일
제6대 캐나다천주교주교회의 의장
1970년 ??월 ??일 ~ 1971년 ??월 ??일

1. 개요2. 대교구 내 아동 성학대 책임 문제

1. 개요

조제프오렐 플루르드(Joseph-Aurèle Plourde)는 제8대 오타와대교구장, 제6대 캐나다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역임했던 캐나다가톨릭 대주교이다.

2. 대교구 내 아동 성학대 책임 문제

1980년대 공개된 교회 문서들과 언론 보도는 조제프오렐 플루르드(Joseph-Aurèle Plourde) 대주교가 오타와 대교구를 이끌던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까지, 교구 내에서 벌어진 다수의 아동 성학대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인지하고 있었는지를 둘러싸고 중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최소 11명의 사제가 아동 성폭력에 연루되었으며, 모두 플루르드 대주교의 치리 아래 있었다.

1986년 보도에 따르면, 일부 피해자 부모들은 교구 측의 미온적인 대응에 실망한 나머지, 결국 같은 해 3월 경찰에 직접 사건을 신고하였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플루르드 대주교와 그의 보좌주교였던 존 마이클 비핸(John Michael Behan)은 가해 사제들에 대해 아무런 징계나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같은 해 6월, 플루르드 대주교는 언론을 통해 사건을 폭로한 기자들과 피해자 가족, 나아가 일반 신자들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였고, 이로 인해 대교구 소속 사제들, 특히 데일 크램프턴(Dale Crampton) 신부가 유죄 판결을 받는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교구 내부에서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인물 중 한 명은, 대주교로부터 "크램프턴 신부에 대한 고발을 공론화할 경우 '추문 유포(scandalmongering)'를 이유로 파문시키겠다"는 경고를 받았다고 증언하였다. 이 내용은 1986년 6월 2일자 『오타와 시티즌』의 사설을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해당 사설은 "교회 당국이 피해 아동의 복지보다 성직자 공동체의 명예를 우선시했다"고 강하게 비판하였다.

시간이 흐른 뒤인 2016년 5월, 은퇴한 사제 배리 맥그로리(Barry McGrory)가 오타와 성십자가 성당에서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청소년 신자 세 명을 성적으로 학대한 사실을 자백했다. 이 또한 플루르드 대주교 재임 시기의 일로, 맥그로리는 당시 대주교가 자신이 저지른 학대 사실을 알고도 묵인했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이 주장은 공식적인 사법 절차를 통해 검증되지 않았다.

맥그로리의 자백 이후, 당시 대교구장이었던 테렌스 프렌더개스트(Terrence Prendergast) 대주교는 공식 성명을 통해 "그 사건들이 보여주는 악의 실체(the enormity of evil)"를 인정하며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표했다. 그러나 플루르드 대주교가 이 사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수준의 인지와 책임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2020년대 현재, 오타와대교구와 알렉산드리아-콘월교구가 통합된 오타와-콘월 대교구는 플루르드 대주교 재임 시절 발생한 성학대 사건의 총 건수나 피해 내용에 대해 여전히 구체적인 자료를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교구 차원의 공식적인 해명이나 논평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교회가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거나 책임을 회피했다는 비판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 당시 오타와대교구[2] 라프다 명의주교[3] 오타와대교구와 알렉산드리아-콘월교구 통합 이후 오타와-콘월대교구장으로 소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