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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ahamwe | |
슬로건 | |
<colcolor=#3cb371> 영문 명칭 | <colbgcolor=white,#010101>Interahamwe |
한글 명칭 | 인테라하므웨 |
창립일 | 1990년대 |
수장 | 로버트 카주가[1] |
규모 | 100,000명(1994) 20,000명(1998) |
이념 | 후투 파워 르완다 민족주의 반공주의 |
정치적 스펙트럼 | 극우 |
참전 | 르완다 내전 제1차 콩고 전쟁 제2차 콩고 전쟁 |
테러조직 지정 |
[2] |
1. 개요
르완다에서 활동했던 후투 파워 계열 증오단체, 준군사조직. 임푸자무감비, 르완다 구정규군과 함께 르완다 학살에 연관된 단체로, 나치당, 크메르 루주, ISIL과 함께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집단으로 평가받는다.2. 역사
1990년 국가개발혁명운동의 청년조직으로 결성되었으며 후투족 정권인 쥐베날 하뱌리마나 정권의 지원을 받으며 이후 준군사조직의 형태로 변화했다. 르완다 내전 당시 르완다 학살을 가장 적극적으로 자행했던 단체였으며, "인테라하므웨"라는 용어는 이 단체뿐만아니라 투치족을 죽이는 모든 민간인 또는 민병대를 의미하는 단어로 뜻이 확장되었다.르완다 내전이 폴 카가메가 이끄는 FPR가 승리로 끝나자 당시 르완다 정부군과 대통령 경비대와 함께 콩고민주공화국(당시 자이르) 및 수단으로 도망쳤으며, 현재도 그 잔당들이 남아 르완다 해방군[3]을 거쳐 르완다 해방을 위한 민주군(FDLR)이라는 이름으로 반군을 결성해 콩고와 르완다 국경에서 테러를 저지르고 카가메 정권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 자이르의 모부투 세세 세코 정권은 르완다 견제를 위해 이들 인테라하므웨 잔당들을 지원했는데, 이는 카가메 정권의 분노를 유발해 콩고 전쟁의 단초가 되었다. 현재도 폴 카가메는 모부투의 인테라하므웨 지원을 핑계삼아 민주콩고의 자원을 수탈하고 있으며, 3월 23일 운동과 같은 친르완다 반군을 양성하여 동부 콩고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등 민주콩고의 발전을 방해하며 견제하고 있다.
그 잔혹성 때문에 미국 애국자법 테러리스트 배제 목록에도 후신격 단체인 르완다 해방군, 르완다 해방을 위한 민주군과 함께 등재되어 있다.
3. 기타
- 르완다 학살을 주도했던 단체임에도 지도부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재판을 받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르완다 학살 당시 거의 대부분의 후투족들이 이 단체에 소속되어있어 인원수가 명확하지 않았고 개중에는 전쟁 전까진 투치족과 가까운 사이였던 후투족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서 가해자들을 특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테라하므웨의 구성원들은 후투족 난민들과 함께 자이르(콩고민주공화국)의 난민캠프로 이주하며 피해자들과 섞여 기소하기 어려운 상태이기도 했다.
[1] 본래 투치족 혼혈이였으나 순혈 후투족으로 신분을 세탁했다.[2] 미국 애국자법 테러리스트 배제 목록에 등재.[3] 르완다 해방군은 그 구성원 중 인테라하므웨 출신들이 어찌나 많았는지 아예 이들을 그냥 인테라하므웨로 지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