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3-06 12:04:29

이성춘

{{{#white 이성춘(李成春)
자(字) 원보(元甫)}}}
시조(始祖) 이신우(李申佑)
관향 원주(原州)
출생 선조 10년 1577년
사망 미상
관직 교력부위(效力副尉)권지(權知)
훈련원봉사(訓練院奉事)
배(配) 영인(令人) 밀양박씨(密陽朴氏)
슬하 5남 1녀
1. 개요2. 일생3. 가족4. 추모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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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름은 이성춘(李成春)이고 자(字)는 원보(元甫)이다.
할아버지는 무공랑(務功郞) 별시위사정(別侍衛司正) 이승개(李承介)이시고 아버지는 판관(判官) 이호(李琥)이시다.

2. 일생

아버지 이호(李琥)와 어머니 밀양박씨(密陽朴氏) 만호(萬戶) 박세우(朴世佑)의 따님 사이에서 선조(宣祖 10) 정축(丁丑 1577)년에 2남1여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성춘(李成春)은 나면서부터 남달리 준수(俊秀)하고 여력(膂力)이 뛰어났고 목소리가 우렁찼으며, 기개(氣槪)가 있고 절의(節義)를 지켜 언제나 충의지사(忠義之士)가 되겠다고 어려서부터 자처(自處)하였다.
1594년(甲午) 선조(宣祖)에 무과(武科)에 올라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에 제수(除授)되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아버지를 따라 의주(義州)까지 임금의 행차(行次)를 호위(護衛)하였는데 난당(亂黨)들이 어가(御駕)의 가는 길을 막으니 이성춘(李成春)은 몸을 날려 칼을 휘두르며 뇌성벽력(雷聲霹靂)같이 꾸짖고 20여 무리를 때려누이니 나머지는 박산(博山)되어 흩어지고 길이 깨끗이 트였다.
필로(蹕路)의 소임(所任)을 다한 장거(壯擧)를 가상(嘉尙)하여 특별히 주부(主簿) 감역관(監役官)을 제수(除授)하며 상(賞)으로 전마(戰馬) 11마리를 내리고 원종2등공신(原從二等功臣)의 녹훈(錄勳)하였다.
아!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당하여 많은 충의지사(忠義之士)가 전사(戰死)하거나 공(功)을 세운 사람이 호남(湖南)에 가장 많아 김건제(金健濟) 부자(父子)와 고재봉(高濟峰) 3부자(父子)가 더욱 이름 높으나 이성춘(李成春)은 부정(副正) 이원해(李元海) 이하 6~7명의 종형제(從兄弟)가 함께 일어나 수 천리(千里) 밖까지 근왕(勤王)에 정성(情性)을 다하고 험란(險難)한 고비를 겪었으니 사정에 따라 혹은 순사(殉死)하고 보신(保身)하는 것이 다를 뿐 그 충의(忠義)와 고절(苦節)에 있어서 천륜(天倫)과 천성(天性)의 타고남은 어찌 길고 짧음이 있겠는가.
아! 훌륭한지고. 그 충절(忠節)의 빛남이여,

3. 가족

배(配)는 영인(令人) 밀양박씨(密陽朴氏) 박희란(朴希蘭)의 따님으로 슬하(膝下)에 5남1여를 두셨으니 첫째 아드님은 행훈련원주부(行訓練院主簿) 정형(廷馨)이시고 둘째 아드님은 정빈(廷馪 出系 興春)이고 셋째 아드님은 증통정대부(贈通政大夫) 정암(廷馣)이며 넷째 아드님은 정겸(廷兼 겸=香+兼)이시고 다섯째 아드님은 정함(廷馠)이시다, 사위는 김귤(金橘)로 밀양(密陽)인 이다.

4. 추모

향리(鄕里) 유림(儒林)들이 해남(海南) 영산사(英山祠)에 배향(背向)하여 매년 8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5. 참고문헌

원주이씨대동보(1991)
원주이씨 강릉공파의 인물과 유산(비천당/김성태 저/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