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01 06:29:17

옥스퍼드 대학교/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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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 교수 교수형 사건2. 성 스콜라스티카 축일 폭동3. 인종차별4. 2016년 옥스퍼드대학 의대생이 애인을 칼로 찌른 사건5. 70만 파운드 받고 석좌교수명에 텐센트 병기

1. 대학 교수 교수형 사건

1209년에 옥스포드 시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당시 대학 교수 중 하나에게 도시의 시민 여자 하나를 죽였다는 혐의가 걸렸다. 이에 시민들이 대학으로 달려가 의심가는 교수들 셋을 잡고 추궁을 하였으나, 셋 다 혐의를 부인하며 모르겠다고 하자 열이 받은 시민들은 독단으로 그 교수들을 감옥에 가둔 뒤 모조리 교수형을 시켜버렸다. 사실 이 당시 교수들은 신학자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었던지라, 원래라면 교회에서 교회법에 의한 재판을 받았어야 했지만, 하필이면 이때의 왕이 교회와 척을 지고 있던 존 왕이었던지라, 이들의 이런 행동을 말릴 사람이 없었다. 이에 자신들도 이렇게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감을 느낀 교수들은 그대로 대학 문을 몇 년 간 닫은 채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참고로 이때 도망간 교수들이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도 돌아오지 않고 그 지역에 남아서 만든 게 바로 케임브리지 대학교다.

2. 성 스콜라스티카 축일 폭동

1355년 2월 10일에 발생했던 사건으로, 당시 근처 술집으로 술을 마시러 나왔던 대학생들에게 술집 주인이 물을 탄 술을 제공하자 이에 대학생들이 항의를 하면서 시비가 붙었다. 그리고 말싸움으로 시작되었던 이 시비는 결국 빡친 대학생 하나가 술집 주인에게 잔을 집어던지면서(술병을 머리에다 내리쳐 깨버렸다는 설도 있다.) 격화되었고, 이후 열 받은 술집 주인은 교회로 달려와 종을 치며 자신의 편을 들어줄 시민들을 불러모았다. 참고로 이때는 대학이 치외법권과 면책 특권 등의 여러 국가 혜택을 등에 업고 학생들이 깽판을 쳐도 말릴 방도가 딱히 없던 시대라서 의외로 술집 주인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많았던지라 사태는 결국 집단전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에 학생들 역시 학교로 돌아가자마자 이를 다른 학생들과 교수에게 알렸고, 졸지에 옥스포드 대학에 바리케이드를 구축한 학생, 교수들과 시민들 사이에 공성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단순히 농기구나 방망이 같은 걸 들고 간 수준도 아니고 활과 화살까지 동원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사태를 더욱 크게 키우게 만드는 요소가 생기고 말았으니, 하필이면 이 사태의 원인이 된 술집 주인, 크로이돈과 이 도시의 시장인 존 드 베레포드는 절친이었다. 그리고 안 그래도 평소 고깝게 보던 대학생들이 알아서 불씨를 만들어준 데다가 절친이 피해까지 봤다는 걸 알게 된 시장은 이걸 말릴 생각은 커녕, 시의 경비들을 풀어서 시민들의 무장을 도와서 대학으로 향하게 한 걸로도 모자라 2,000명이나 되는 시민군을 급히 구해서는 그걸로 대학을 공격했다.

결국 대학은 함락되었고, 대학생들과 교사, 총장은 붙잡혀 조리돌림을 당하다가 수십 명이 살해당하고 대학 건물까지 불태워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사건이 도시 시민들의 승리로 끝난 건 아니었는데, 불과 일주일 뒤 국왕이 이곳으로 직접 찾아와서는 대학의 편을 들어주면서 시장과 그 부하들은 모조리 해임되었고, 도시에는 매년 2월 10일마다 대학교에 배상금을 지불하고 깊이 반성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심지어 이 뒤에는 대학교 총장이 대학 주변 식료품점에 대한 세금 권리와 품질 조사 감독권까지 가져가게 된지라, 공성전에서는 졌어도 결과적으로는 대학이 승리한 사건이 되었다.

3. 인종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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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16년 옥스퍼드대학 의대생이 애인을 칼로 찌른 사건

2016년 12월 30일, 옥스퍼드대학의 의대생 러비니아 우드워드(Lavinia Woodward, 여성, 2017년 만 26세)가 틴더를 통해 만난 남자친구를 칼로 찌른 사건. 10개월의 구류 및 18개월 집행유예라는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끝내 재학하던 옥스퍼드대학 의대 및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를 자퇴하였다. '여성' 및 '명문대 학생'이라는 이유로 형량이 낮은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5. 70만 파운드 받고 석좌교수명에 텐센트 병기

영국 옥스퍼드대가 유명 석좌 프로그램 이름에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텐센트 이름을 병기하는 대가로 70만 파운드를 받아 논란이 일고 있다. 타임스에 따르면 텐센트는 옥스퍼드대에 70만 파운드를 기부했고, 옥스퍼드대는 유명 물리학 석좌 프로그램인 '와이크햄' 명칭을 '텐센트-와이크햄'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

옥스퍼드대 총장을 지낸 크리스 패튼 경은 "중국은 전세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게 위협적 존재"라며 "이번 거래에는 심각한 안보적 이슈가 있다"고 지적했다. #

이언 덩컨 스미스 전 영국 토리당(보수당) 대표는 “대학들이 중국 돈 앞에 무릎 꿇는 데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