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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시기 | 제2차 엘리자베스 시대 · 사건 일람 | ||
생애 | 생애 · 사망 | ||
가족관계 | 아버지 조지 6세 · 어머니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 배우자 필립 마운트배튼 · 동생 마거릿 공주 · 장남 찰스 3세 · 장녀 프린세스 로열 앤 · 차남 요크 공작 앤드루 왕자 · 3남 에든버러 공작 에드워드 왕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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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87061><colcolor=#fffffd> 엘리자베스 2세 Elizabeth 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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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포이 | 올리비아 콜먼 | 이멜다 스턴톤 |
1. 개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크라운의 등장인물로 주인공.2. 작중 행적
2.1. 시즌 1
왕위에 오르기 전인 1947년부터 여왕 재위 초기인 1956년까지의 시기를 다룬다. 조지 6세가 피가 섞인 기침을 하는 모습으로 그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음을 암시하며 작품이 시작된다. 엘리자베스 공주의 약혼자인 필립 왕자는 그리스/덴마크의 왕자 신분과 작위, 국적을 포기하고 영국 해군의 필립 마운트배튼 대위로 귀화하며 조지 6세에게 에딘버러 공작의 작위를 수여받는다.[1] 이후 엘리자베스 공주와 필립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젋은 공주 부부가 1남 1녀(현재의 찰스 3세와 앤 공주)를 낳고 필립의 해군 복무지인 몰타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즐기는 와중에 조지 6세의 건강은 비밀리에 점점 악화되어 간다. 조지 6세는 폐 절제 수술을 받는 등 회복을 위해 힘쓰지만 결국 향년 56세로 서거하고, 엘리자베스는 아버지를 대신해 필립과 함께 떠난 아프리카 순방 중에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을 듣고 급하게 귀국하여 여왕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2] 할머니인 메리 대왕대비는 엘리자베스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에 보낸 편지 [3] 에서 '이제 엘리자베스 마운트배튼이라는 한 개인이 아닌 여왕으로서의 의무를 우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당부한다.대영제국의 위상이 옛날 같지 않은 어려운 시기에 준비없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게 된 엘리자베스는 많은 혼란과 갈등을 겪는다. 한창인 젊은 시기에 예상보다 이르게 갑자기 해군 커리어를 포기하고 여왕의 국서로 살게 된 삶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필립과의 갈등, 16살 연상의 이혼남인 피터 타운센드와의 결혼을 원하는 동생 마거릿 공주와의 갈등 [4], 미숙한 상태에서 관록의 정치인인 처칠 총리를 대해야 하는 어려움 등 군주로서의 정치적, 상징적 위치와 왕실 가정 내에서의 개인적 위치 사이에서 내외적으로 고군분투하며 여왕으로서의 처신과 위치를 깨달아 간다. 국정 운영에 중요한 사안인 건강 문제를 숨긴 일로 처칠을 소환해 호되게 질책하는 에피소드를 기점으로 점점 여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기 시작한 엘리자베스는 6개월간 13개국을 방문하는 고된 장기 해외순방을 무사히 마치게 된다.[5] 시즌 후반을 향해가며 여왕으로서의 위치는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지만 반대로 필립과의 부부 사이는 위기를 맞게 되고,[6] 어느새 조언자로 의지하게 된 자신의 첫 총리인 처칠은 은퇴해 곁을 떠나며 끝내 마거릿의 결혼이 성사되지 못하면서 동생과도 사이가 멀어진 엘리자베스는 왕관의 무게를 홀로 감당해 나가며 점점 외로워진다.
2.2. 시즌 2
영국이 누리던 세계에서의 패권이 크게 줄어든 계기가 된 수에즈 위기가 발발한 1956년 ~ 엘리자베스의 넷째 자녀인 에드워드 왕자가 태어난 1964년까지의 시기를 다룬 시즌. 첫 회부터 필립과의 갈등이 극에 치달은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여왕과 부군이기에 이혼이라는 선택지를 택할 수 없는 것을 아는 엘리자베스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겠냐며 필립에게 묻는다. 사실 두 사람의 사이는 1시즌부터 갈등이 시작되기는 했으나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이혼 위기로 들썩일 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고, 오히려 극중에서 필립이 엘리자베스를 대신해 해외 순방을 떠나기 직전까지는 좋은 편이었다.[7][8] 엘리자베스는 순방을 떠나는 필립의 가방 안에 몰래 편지와 선물을 넣어 두려다가 그 안에서 어느 유명 발레리나의 사진이 담긴 브로치를 발견하게 되고, 그 후 총리와의 면담에서도 집중하지 못하며 필립에게도 서먹하게 대하는 등 스스로 쉽게 감정을 추스리지 못한다. 애써 남들에게 감추려고 하나 쉽지 않고, 식사 자리에서 최근의 이집트와의 수에즈 운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루이 마운트배튼은 필립이 순방 동안 전혀 연락이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 두 사람 모두 거친 영혼과 결혼했으며, 너무 사랑해서 빠져나올 수 없다면 다른 것들은 감내할 수밖에 없다." 며 위로를 건넨다.[9] 그는 또한 이집트 사태에 관련해 총리인 앤서니 이든을 유심히 관찰하라고 조언하고, 이를 보고하기 위해 찾아온 이든과 면담을 하며 이스라엘의 군사적 개입을 위해 뒤에서 밀약을 맺었는지를 추궁한다. 이 시점의 엘리자베스는 경험과 지식의 부족으로 총리(1시즌에서는 윈스턴 처칠)와의 접견에서 애를 먹던 즉위 초기와는 다르게 올라온 자료들을 살펴보고 이를 미리 유추해 낼 정도의 식견을 갖추고 있는 것. 엘리자베스는 총리의 성급한 대처에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군주로서 정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자신의 위무를 지켜 총리를 지지하겠노라 말한다. 이는 결국 2차 중동전쟁(=수에즈 위기)로 발전하게 된다.[10]그래도 수개월간 떨어져 있던 부부는 조금씩 서로에 대한 애틋함을 다시 가지게 되나, 필립의 귀국 시점에 마이크 파커의 이혼 소송으로 스캔들로 불거지며 언론에까지 여왕 부부의 불화설이 보도되고 만다.[11][12] 이후 엘리자베스는 필립의 불만을 들어 애매한 위치에 있던 필립의 작위를 높여주기도 한다. 필립이 그렇게 싫어하는 보좌관들의 수염도 밀게 한 것이 포인트. 이후 어느 정도 갈등을 봉합하고 무난하게 결혼 10주년을 맞이한다.[13]한편 급변하는 시대에 보수적인 왕실 인사들에게만 둘러쌓여 기계적으로 공무를 수행하던 엘리자베스는 어느 날 재규어 공장에서 했던 시대착오적인 연설로 인해 거센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을 계기로 왕실이 지나치게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군주제의 존립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경고를 수용한다. 국민들에게 좀 더 다가가기 위해 성탄절 연설을 티비로 방송하고 버킹엄 궁에 (선별된)국민들을 초대해 인사를 나누는 등 왕실 비판의 계기가 되었던 올트링엄 경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14] 엘리자베스 본인도 자신이 가진 군주제의 가치관에 맞지 않아서인지 올트링엄 경과의 독대에서만 해도 굉장히 차가운 반응을 보였고 연설 방송 중계도 마치 배우가 된 기분이라며 탐탁치 않아했으나, 결국엔 그의 제안을 대부분 수용하여 국민들에게 더 다가가게 된다.
백부인 윈저 공작(에드워드 8세)과는 가끔 조언도 구하는 듯 그럭저럭 표면적으로는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였고 그를 용서하고 공무에 복귀하려는 것을 허락할 마음도 가졌으나, 아버지 조지 6세와 처칠 정부에 의해 비공개 처리된 마르부르크 파일(Marburg File, 일명 윈저 파일로도 불린다)의 공개와 함께 그의 전시중 친나치 행적에 대해 상세히 알게 된 뒤 공무 복귀는 물론 향후 영국으로의 입국을 불허하고 용서는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15] 이 처사가 얼마나 통쾌했는지 왕대비와 필립, 더불어 그 토미 래슬스가 함께 모여서 술을 마셨을 정도. 이후 필립과의 사이에 셋째(앤드루 왕자)를 출산하고 [16], 동생 마거릿 공주가 안토니 암스트롱-존스와의 결혼을 결정하자 그의 복잡한 사생활이나 마거릿의 결정이 타운센드의 결혼 소식 때문에 성급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인지하였지만 결국 이를 덮고 결혼을 허락한다.
정치적으로는 철저히 관여를 삼가던 원칙에서 일부 벗어나 영국의 대외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행보를 보인 모습도 2시즌에 그려진다. 가나의 독립을 이끈 은크루마 대통령이 친소련 행보를 보이자 직접 가나로 날아가 카메라 앞에서 은크루마 대통령과 직접 춤을 춰 주변을 놀라게 하는데, 1960년대 초기에 백인 여왕과 과거 식민지배를 받던 나라의 흑인 대통령이 정식 파트너로 사교댄스를 추는 모습은 세계적으로도 큰 화제가 되었다.[17] 이 과정이 케네디 대통령과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의 영국 방문 일화와 엮어 연출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인사들이면서 또한 동년배(3살 차이)인 두 인물 사이에 흐르는 은근한 경쟁심과 열등감, 화려한 겉모습 뒤에서 개인보다 공인으로서의 삶을 중시해 살아가야 하는 두 사람의 복잡한 모습을 실제 일화들에 녹여내 전체 작품 내에서도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은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18]
엘리자베스가 넷째 아이를 임신해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국방장관인 프로퓨모와 불륜 관계를 가지던 매춘부가 소련 스파이와 연계된 스캔들이 터지는데, 맥밀런 총리가 이를 적절히 수습하지 못한 채 병을 핑계로 사임해버리자 병원을 찾아가 질책한다. 와중에 하필 그 매춘부를 상류층에 소개한 접골사가 자살한 뒤에 수습된 소지품에서 목 치료를 위해 그를 만났던 필립의 초상화가 나오는 바람에 왕실까지 스캔들이 번질 뻔 했으나 왕실이 사전에 이를 입수해 회수하였고,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엘리자베스는 가족들도 만나지 않고 총리 인선만 마친 채 곧바로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버린다. 그나마 필립이 그런 엘리자베스를 찾아가 서로 오래된 오해를 풀게 된다. 이후 버킹엄 궁에서 필립이 출산을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막내 에드워드 왕자가 태어나고[19], 왕실 일가가 모여 가족사진을 찍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2시즌이 마무리 된다.
2.3. 시즌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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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부터 1977년까지를 배경으로 다룬다. 배우는 30대 후반에 접어든 엘리자베스 2세를 반영하고자 클레어 포이에서 올리비아 콜먼으로 교체.
1964년 총선을 앞두고 해럴드 윌슨이 이끄는 노동당의 정권교체가 확실시되는 상황. 남편인 필립 공은 선거를 다루는 뉴스 보도를 보면서 윌슨이 영 마뜩지 않은지 엘리자베스 2세에게 윌슨이 이기면 공화주의자로 내각의 반을 채울거라느니, KGB 스파이 출신이라는 소문이 있다느니 험담을 늘어놓는다. 처음에는 엘리자베스 2세도 그저 소문일 뿐이라고 웃어넘기지만 노환으로 몸져누운 윈스턴 처칠 전 총리와의 면담 과정에서 처칠이 총리 시절 윌슨을 스파이로 의심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으며 여왕도 윌슨을 의심하게 된다.[20]
이듬해 윈스턴 처칠의 장례식에서 여왕은 윌슨 총리가 소련 측 인사들과 면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심증을 굳히게 되고, MI5에서 영국 수뇌부에 실제로 KGB 스파이 출신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고하러 온다. 여왕은 당연하다는 듯 윌슨이 아니냐고 묻지만, 윌슨이 아니라 바로 왕실미술수집품 조사관 앤서니 블런트가 그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왕은 격노하지만 왕실의 평판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사실을 은폐하기로 결정한다.
1966년에는 여왕으로서도 변화의 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애버밴 참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상황 속에서 여왕은 윌슨 총리의 설득에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참사 현장에 방문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참사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고, 윌슨은 대중의 적대감이 자신의 내각과 노동당에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언론이 여왕의 무신경함을 욕하도록 방치한다. 대중의 불만과 자신보다 먼저 참사 현장을 방문했던 필립 공의 설득에 마음을 바꾸고 참사 현장을 직접 방문해 유가족들을 위로한 여왕은 이후 아이들의 장례식에서 부른 찬송가 녹음을 들으면서 혼자 눈물짓는다.[21]
이후 필립 공의 모친인 앨리스 공녀가 그리스 군사정변으로 인해 신변이 위험해지자 즉각 구출해오도록 지시했다. 이게 여왕으로서는 신의 한 수가 되는데, 대중들과 왕실의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BBC를 통해 왕실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방영케 했다가 위화감만 일으켜 역풍을 맞아 왕가가 당황하고 있는 상황에서 앨리스 공녀가 왕실폐지론을 주장하는 더 가디언과 인터뷰에 응해 자신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소개하면서 왕실에 대한 이미지가 다시 긍정적으로 변하고, 이 와중에 서로 어려워하던 필립 공과 어머니의 관계도 개선된다.
시간은 1967년으로 넘어가 여왕이 헨리 허버트(포치)와 함께 경주마 사육법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 사이, 윌슨 총리가 기존의 약속을 깨고 파운드화를 평가절하하기로 하면서 영국 국내 정국이 얼어붙는다. 이에 주변인들의 선동을 받은 루이 마운트배튼이 쿠데타에 동참할 가망이 보이자, 윌슨 총리는 여왕에게 전화해 자신을 도와줄 것을 호소한다. 이에 여왕이 복귀해 루이 마운트배튼을 크게 꾸짖고 쿠데타 시도는 무산되었다.
그런 한편 분리 독립하려는 웨일스 내의 움직임이 전해지자, 윌슨 총리의 제안을 받은 여왕은 찰스 왕세자가 웨일스 공으로 공식적으로 임명되기 전, 웨일스어와 웨일스 문화를 배우라는 목적으로 웨일스로 보낸다. 찰스는 책봉식에서 웨일스어로 연설을 하며 웨일스만의 개성과 의지, 목소리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오히려 왕실의 기대와 정반대로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뉘앙스를 내비친다. 이런 찰스의 단독행동에 분노한 여왕은 이후 독대에서 그에게 네 목소리 따윈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매정하게 쏘아붙인다.
시즌 후반에는 장차 왕실을 뒤흔들 찰스와 카밀라 파커 보울스의 로맨스와 그에 얽힌 스캔들이 시작되면서 비중이 줄어든다. 시즌 최종화 역시 여동생 마거릿 부부의 불화와 마거릿의 일탈이 주 내용이라 등장이 적지만, 시즌 내내 동고동락한 윌슨 총리와 마지막 회담을 가지며 훈훈한 작별을 나누는 명장면을 보였다.
2.4. 시즌 4
영국 현대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두 여인, 마거릿 대처와 다이애나 스펜서가 등판하면서 그들과 함께 시즌의 공동 주인공으로서 비중을 나눠가지게 된다. 사실 시즌 4와 5의 진주인공은 다이애나로, 특히 시즌 4에서 여왕 개인을 중점으로 다룬 에피소드는 단 하나도 없다. 대신 당시 총리였던 대처와 대립했던 라이벌 관계가 돋보이며, 카밀라와 다이애나 사이에서 지저분한 삼각관계를 이어가는 장남 찰스를 걱정하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이 주로 묘사된다.대처와는 1화에서 처음 회담을 가졌을 때 예상되는 내각 멤버들의 상당수를 알아맞추면서 굉장히 호감적이고 기대감 넘치는 관계로 시작하는 듯 했으나[22], 밸모럴 성 테스트[23]에 초대하는 2화에서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한다. 밸모럴에서 바깥 사회의 고달픈 현실을 아예 모르는 듯 유치한 유흥과 사치스러운 행사나 즐기고 앉아있는 여왕 일가와 상류층에 경악한 대처는 잠깐 품었던 여왕에 대한 기대를 접고 '철의 여인' 답게 자신의 강경한 정치 행보를 밀어붙이게 된다. 4화에서는 파리-다카르 경주에 참가했다 실종된 아들 마크 때문에 대처가 회담 도중에 눈물까지 흘리며 심란해하는 모습을 보곤 여왕 자신의 자식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기도 한다.[24] 5화에서는 대처의 가혹한 탈복지 정책에 사회에서 버림받게 된 실직자들 중 한 명인 페이건이 버킹엄 궁전에 무단침입해 자기 침실까지 쳐들어오면서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대소동을 겪지만, 그에게서 포클랜드 전쟁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는 시민들에 가려진 대처 내각의 피해자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는 다음 회담에서 저런 사람들을 돕는 공동의 의무를 대처에게 피력한다.[25]
두 지도자의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건 8화에서로,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에 대한 경제적 제제와 규탄을 두고 영연방의 수장으로서 다른 연방 국가들과 함께 제제에 동참하자는 여왕과 남아공과의 무역을 염두에 두고 이에 반대하는 대처가 충돌한다. 결국 영연방 국가 대표들이 남아공 정부에 보내는 성명서에 영국 총리의 서명을 넣느냐 마냐를 두고 대립하는데, 성명서에 들어가는 '제제'라는 단어 하나를 두고 거절해 돌려보내고 고쳐서 다시 보내는 실랑이를 반복한 끝에 대처가 '신호'라는 대체어를 납득해 서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대처가 나머지 48명의 대표들에게 백기를 든 거냐는 질문에 그 반대라고 답변하면서 역린을 건드리자, 여왕은 총리와 항상 뜻을 함께하고 정치적으로 의사 표명을 하지 않는다는 영국 왕실의 금기를 스스로 어기고 언론에 총리와의 불화를 공인하는 정보를 흘리는 자충수를 두고야 만다. 때문에 바로 다음 회담에서 여왕은 비수처럼 이를 날카롭게 지적하는 대처 앞에서 쩔쩔매며 그냥 한번만 내 편을 들어주면 안됐냐는 굴욕적인 말까지 해야 했고, 자신이 언론에 정보를 주도록 지시했던 왕실 공보관[26]에게 책임을 지워 꼬리자르기를 해야 했다. 시즌 최종화에서는 상황이 다소 역전되는데, 자기 당내에서 총리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배신을 마주한 대처가 점점 좁아져가는 자신의 입지를 만회할 비장의 카드로 의회해산권을 요청하러 여왕을 찾아온다. 하지만 여왕은 정부, 언론, 여론까지 모두 돌아서버린 대처의 현주소를 지적하며 물러날 것을 조언하고, 결국 끝났음을 직감한 대처는 이후 사퇴한다. 그럼에도 여왕은 대처를 버킹엄으로 불러 메리트 훈장을 직접 수여하고, 동갑내기 여성으로서 그동안 고난을 헤치고 업적을 쌓아온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를 진심으로 치하한다. 이에 대처 역시 깊이 감명받은 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고, 시즌 첫 등장 말고는 이래 단 한 번도 여왕에게 하지 않았던 커트시를 하며 훈훈한 결말을 맞는다.
한편 다이애나의 시어머니로서는 실제 엘리자베스보다 굉장히 미화되어서, 그녀를 편들어주지는 않지만 카밀라와 양다리를 이어가는 찰스의 행보를 굉장히 고깝게 보고 기회가 될 때마다 지적하고 비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찰스의 외도를 견디다못한 다이애나가 찾아왔을 때 그녀를 한참 동안 기다리게 하고 비로소 만났을 때 울음을 터뜨리는 다이애나를 곤혹스러워한 일화도 재현되었는데, 다이애나가 경칭도 생략하고 어머니(Mama)라고 부르며 껴안고 울자 굳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여동생 마거릿과 엄마 엘리자베스에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말한다. 어쨋든 말 안 듣는 아들과 (본인 관점에서는) 부담스럽게 징징대는 며느리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난감해하며, 남편이나 딸 등 다른 가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정작 실제 엘리자베스는 찰스의 불륜 사실을 알고도 이에 대해 호소하는 다이애나에게 '왕세자가 구제불능이구나' 라는 소리만 백날 반복하며 별다른 조치나 관심을 주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드라마에서의 묘사는 거의 왜곡 수준으로 여왕에게 유리하게 묘사되었다는 평이 많다.[27]
2.5. 시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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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 무대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다시 한번 배역 세대가 교체되었다. 해리 포터 실사영화 시리즈에서 돌로레스 엄브릿지 역을 맡은 걸로 유명한 이멜다 스턴톤 분이 열연했으며, 정말 그 표독스러운 엄브릿지와 같은 배우인가 싶을 정도로 품위있고 위엄있는 여왕의 노년을 아주 훌륭하게 연기했다. 하지만 해당 시즌이 다이애나와 왕실 간의 갈등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고, 차기 국왕으로서 정력적으로 현대적인 활동을 하는 아들 찰스와도 대립하다보니 역대 시즌들 중 여왕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가 가장 많이 나오기도 한다.
1화에서부터 당시 왕실의 막장스러운 상황이 나타나는데, 선데이 타임스 신문에서 구시대적 가치관과 삶을 향유하는 그녀를 한물간 노인네 취급하며 '빅토리아 여왕 증후군'이라는 멸칭을 갖다붙이질 않나, 맏아들 찰스는 그렇지 않아도 왕위를 계속 지키는 자신에게 불만이었는데 이참에 신임 총리인 존 메이저를 찾아가 양위 이야기를 나누질 않나 한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노후화된 왕실 요트 브리타니아 호를 보수할 예산을 받으러 메이저 총리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총리가 국가 재정이 빠듯한데 그건 너무 사치스러운 소비 아니냐고 주저하자 '브리타니아 호는 내가 가진 재산 중 유일하게 내 대에서 생긴 것으로, 지금껏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한 적이 없었으니 이번에는 군말없이 해달라는 대로 해줬으면 한다.' 라고 요구한다. 사실 비행기가 상용화된 시점에서 십수 시간이면 갈 거리를 며칠간 항해하면서 시간과 돈을 모두 잡아먹는 왕실 요트를 유지하겠다는 건 메이저 말대로 사치가 틀림없어서, 해당 장면을 본 시청자들 상당수 역시 저런 여왕의 행보를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4화는 즉위 40주년 기념식에서 '아누스 호리빌리스(Annus Horribilis ='Horrible Year')'라고 여왕 본인이 밝혔던, 1992년 왕실 최악의 한 해를 담았다. 아내 사라 퍼거슨의 불륜 사진이 매스컴을 타고 공개된 후 차남 앤드루 왕자가 별거에 들어가고, 앤 공주가 이혼을 하고, 다이애나의 결혼 생활을 담은 책 '다이애나: 그녀의 이야기'가 출판되면서 찰스 왕자의 외도와 불행했던 다이애나의 과거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등 한 해 안에 자식들의 결혼 생활이 줄줄이 박살나는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여기에 결정타를 박은 11월 윈저 성에서 일어난 대화재까지 묘사되며, 이렇게 다사다난한 해를 보내며 심적으로 너무나 괴로워진 여왕은 연말 열리는 40주년 기념식에서 영국 국민에게 심정을 토로하면서 동시에 사과하는 연설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때 엄마인 엘리자베스 왕대비가 정색하며 이를 막으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부군 필립이 목소리를 높여 여왕의 편을 들고[28] 상술한 아누스 호리빌리스의 연설이 이루어진다.
6화에서는 8월 쿠데타를 저지하고 소련을 해체한 러시아 초대 대통령 보리스 옐친와 영러 우호 조약을 맺고[29], 볼셰비키에게 학살당한 로마노프 왕가의 유해를 감식하기 위한 DNA를 제공할 남편 필립 공과 함께 러시아를 방문한다. 정작 러시아에 와서 정교회니 DNA 감식이니 온갖 일에 참여하며 자신을 피하는 필립을 추궁했다가, 사실 오래 전부터 너무나도 서로 다른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고 다른 사람을 동반자로 삼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듣는다. 심지어 그 상대가 대자의 아내인 페니 롬지 백작부인임을 듣자 분노를 넘어 허탈해하지만, 오히려 불륜이 아니라 오로지 정서적 유대뿐인 동반자일 뿐이라며 추문이 돌지 않게 여왕이 페니와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 사실상 관계를 공인해달라는 필립의 요구를 받는다. 결국 페니를 만나고 그녀에게서 로마노프 일가의 죽음이 사실 알렉산드라 황후를 시기한 메리 대왕대비가 일부러 구원 요청을 묵살해 벌어진 일이라는 일부 사학계의 가설을 듣는데, 메리의 친손녀로서 그녀를 잘 알았던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이유는 친독일파인 황후를 독일과 전쟁 중이던 조국에 받아들였다간 왕실의 안정을 해칠 거라는 우려에서 비롯되었을 텐데 어째 그 사학계에서는 그 점은 쏙 빼놓은 듯하다며 맞받아친다. 남편의 요구대로 페니에게 왕실 교회 예배에 동행해달라고 하지만, 국왕 부부의 대외적 안정을 위해 남편의 소울메이트 자리를 앗아간 그 당사자와 억지로 친한 척까지 해야 하는 처지가 너무나도 서러웠는지 눈물을 흘리며 홀로 조용히 슬퍼한다.
8화에서는 진작에 끝났어야 할 찰스와 다이애나의 결혼 생활에 완전한 종지부를 찍었던, 그 역사적인 다이애나의 BBC 단독 인터뷰 방송이 다뤄진다. 하지만 왕실 일가는 다이애나의 인터뷰 사실을 방영 직전까지 몰랐고 여왕이 인터뷰 방송을 보고 충격받았던 실제 역사와 달리, 드라마에선 다이애나가 여왕을 찾아와 자신의 인터뷰가 방영될 거라고 예고하고 여왕이 일부러 방송을 안 보고자 대신 필립과 결혼 48주년 기념일 특별 공연을 보러 간 것으로 전개가 각색되었다. 그동안 수 차례 만나서 대화하려 노력했지만 매번 거절하거나 자리를 비운 건 어머니였다는 다이애나의 원망에 여왕은 우리가 너를 방치했다면 그건 결코 너가 미워서가 아니라 너무 바빴기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왕실 모두가 바라는 건 그저 네가 행복하고 언젠가 이 나라의 왕비가 되는 거라며[30] 다이애나를 진심으로 놀라게 한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대로 인터뷰는 방송되고, 이어지는 9화에서 마침내 여왕은 찰스와 다이애나의 이혼을 승락하게 된다. 해당 화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다른 평범한 부부들의 이혼 소송과 똑같이 끝이 난 왕세자 부부에 대해 모두의 성대한 축복 속에서 시작한 결혼이 저리도 초라하게 끝났다며 허망해한다. 실제 모습과 다르게 찰스와 전화하면서 이 고생도 이제 끝이라며 기뻐하는 그에게 '고생은 그 애도 해왔다' 며 다이애나를 감싸는 것도 여전하다.
최종화에선 시즌 내내 함께해온 메이저 총리를 치하하며 떠나보내고,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한 토니 블레어 신임 총리를 맞이한다. 하지만 여왕 자신 대신 홍콩을 중국에 반환하는 행사에 보낸 왕세자 찰스가 그대로 카밀라 보울스와 휴가까지 보내고 돌아오자, 내 요트를 끌고 네 불륜녀와 외도를 즐기고 왔냐며 날세워 비꼰다. 이에 발끈한 찰스가 국민과 더 잘 공감하는 젊은 새 총리도 내 편을 든다며 토니와 따로 만난 사실을 밝히자 총리와 소통할 수 있는 건 국왕인 나뿐이고 넌 내가 죽기 전까진 왕세자에 불과하다고 쏘아붙인다. 여왕이 로열 브리타니아 호에 올라 착잡한 표정을 짓는 게 시즌의 마지막 장면이다.
2.6. 시즌 6
[1] 필립은 그리스 왕실에서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 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전쟁으로 인한 망명생활 등 어린 시절 여러 부침을 겪다가 10대 후반에 해군으로 복무하기 위해 영국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뒤 엘리자베스와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후 그리스/덴마크 왕자로서의 계승권을 포기하고 영국으로 완전히 귀화했으며 '필립 마운트배튼' 이라는 이름은 그리스 본명인 이름 '필리포스' 와 외가인 '바텐베르크' 공가의 성을 영국식으로 합쳐 이름으로 삼은 것.[2] 귀국과 동시에 남편인 필립 뿐 아니라 그 누구도 엘리자베스를 앞질러 걸을 수 없고, 어머니와 동생 및 왕실의 가장 어른인 할머니 메리 대왕대비 역시 엘리자베스에게 무릎을 굽혀 커트시를 올리며 예를 표하는 연출로 바뀐 지위를 보여준다.[3] 넷플릭스 자막에는 편지 내용 중 'three great monarchies' 라는 표현이 '세 분의 선왕' 이라고 잘못 번역되었는데, Monarch(군주) 가 아닌 Monarchy(군주제, 군주 일가) 의 복수형이기 때문에 엘리자베스의 선대왕 3명이 아닌 유럽의 3황실(호엔촐레른, 합스부르크, 로마노프 왕가)의 몰락을 의미한다.[4] 영국 성공회의 수장이라는 국왕으로서의 종교적 위치와 미국인 이혼녀와의 결혼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 큰아버지 에드워드 8세의 사례를 고려할 때 사실상 쉽지 않은 결혼이었으나, 엘리자베스는 마거릿이 왕위 승계 가능성의 거의 없는 공주이기에(여왕의 직계 자녀인 찰스와 앤이 태어난 이후라 동생인 마거릿의 왕위 승계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왕실, 정부와 성공회가 그렇게까지 크게 반대할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결혼을 지지해 주려고 했고 이는 마거릿에게는 희망고문과 다름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려 자매 사이에 더 큰 갈등이 빚어지고 만다. 반대로 필립은 마거릿의 열애 사실을 듣자마자 곧바로 이런 상황을 예상한다.[5] 매일 군중에게 손을 흔들며 웃어주느라 얼굴 근육에 경련이 생겨 이완제를 맞아가며 정해진 모든 일정을 소화해냈다. 필립은 잠결에도 손을 흔들 지경이었다고.[6] 즉위 초기 여왕으로 자리잡아가는 모든 과정이 사실상 필립과의 갈등의 요소가 된다. 주거지를 기존에 머물던 클래런스 하우스로 삼기를 원했으나 국왕의 주거지는 버킹엄 궁이어야 하기에 불발되고, 여왕이 아내로서 남편의 성을 따르느냐의 여부는 왕가의 성이 누구에게 가느냐를 두고 국가적인 이슈가 되며, 즉위식에서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식순를 두고도 남편으로서 아내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를 두고 두 사람과 총리, 의회 사이에 갈등이 벌어진다.[7] 이때까지만 해도 왕실 외부 인사들이나 궁 내 직원들 앞에서도 애정표현을 서슴치 않았다.[8] 다만 필립은 단독 해외순방을 내키지 않아했다. 가족, 특히 어린 자녀들과 오래 떨어져야 하는데다 왕실이 자신을 문제아 취급해 반성이나 하고 오라고 해외로 보내버린다고 여겼기 때문.[9] 루이 마운트배튼의 부인 에드위나 애슐리는 수차례 불륜을 저질렀으며 그중에서도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와의 염문설이 유명하다.[10] 이후 국제사회의 반발로 유엔의 정전 결의안이 채택되며, 영국은 굴욕적으로 수에즈에서 철수하게 된다. 이든은 이 여파로 총리직을 사임했다.[11] 필립의 개인 비서인 마이크 파커가 순방 동안 있었던 소위 '무용담' 들을 적은 편지를 주기적으로 신사들끼리 모이는 조찬클럽에 보냈고, 남편의 무관심과 부정에 지친 파커의 아내가 남편이 이혼의 유책 배우자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해당 클럽에서 일하는 직원을 통해 편지를 입수한다. 편지에는 여왕이 동행하지 않는 순방에서 남자들끼리 얼마나 현지 여성들과 즐기고 있는지 뽐내는 내용이 주로 담겼다. 그런데 파커는 그 클럽 직원과도 불륜 관계를 맺었었다..[12] 필립이 관여되었는지는 극중 직접 묘사되지 않으며, 이혼 스캔들 당사자가 본인과 절친한 사이에 개인 보좌관이다 보니 미디어에 같이 엮여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사태 수습을 위해 필립은 귀국 전 파커를 사임케 한다.[13] 일종의 왕실 내 서열을 정리했다고 보면 무난하다. 왕실은 사실 철저하게 서열에 의해 돌아가는데 여왕의 남편이라는 위치가 선례가 부족하다 보니 이 전까지는 필립이 왕위 계승권을 가진 아들 찰스보다도 서열이 낮았던 것.[14] 어머니 엘리자베스 왕대비는 왕실이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되었다며 탐탁치 않아 한다.[15] 단순한 친나치 성향을 넘어 나치 독일 정부가 그를 영국 왕으로 복위시켜주고(+심프슨 부인은 왕비로 즉위.) 그 대가로 유럽 지배에 대한 묵인을 얻어내고 조국인 영국을 폭격하는 일에 동조하는 등 사실상 국가에 대한 반역행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이후 에드워드 8세는 생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16] 앞선 두 자녀는 즉위 전 공주 시절 낳았기에 여왕으로서 재위 중에 낳은 첫번째 자녀이다.[17] 실제로 당시 테러가 빈번해 의회에서는 여왕의 가나 방문을 반대했으나 영 연방의 유지를 자신의 소명으로 여겨온 여왕이 강행했다고 하며, 춤을 추자고 먼저 제의한 것도 여왕이라고 한다.[18] 재클린이 만찬 이후 엘리자베스의 뒷담화를 했다거나 사과를 하러 다시 방문하는 부분은 상상에 의한 창작이다. 다만 국빈 방문 다음 해에 런던을 재방문 하여 여왕과 만남을 가진 것은 사실이며, 측근들에 의하면 단 둘이 대화하는 시간이 상당히 많았다고 한다.[19] 실제로도 필립이 출산 시 참관하였고, 에드워드가 태어날 때 아내의 손을 잡고 있었다고 한다.[20] 심지어는 총선에서 승리한 윌슨 총리가 임명을 위해 버킹엄 궁을 방문하여 알현하자 윌슨의 전임 노동당 당수인 휴 게이츠컬 암살 음모론을 넌지시 꺼내 윌슨을 떠보기까지 한다.[21] 이후 자막으로 훗날 여왕이 재위 중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로 이 당시 참사 현장을 즉시 방문하지 않은 것을 꼽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여왕은 이후 서거 때까지 여러 사회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꺼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현장을 방문해 피해자 가족들을 위로했다.[22] 대처는 이를 두고 자신과 호흡이 잘 맞겠다며 나름 큰 기대를 걸었다.[23] 총리나 예비 신랑/신부 등 왕실 일가에게 중요한 인물들을 성에 초대해 얼마나 코드가 잘 맞는지 시험하는 일종의 신고식으로, 해당 화에선 대처와 다이애나가 각각 테스트를 치르게 된다.[24] 대놓고 아들 마크를 딸 캐럴보다 총애한다는 대처와 달리 자신은 편애하는 자식이 없다고 말하지만,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듯 앤드류 왕자를 가장 예뻐하고 있었다. 에피소드 말미에 가선 본인 스스로도 이를 인정하는데, 정작 남편 필립은 진작부터 이미 다들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며 시큰둥하게 반응한다. 참고로 필립이 편애하는 자식은 앤 공주.[25] 물론 이에 대해 대처는 공동의 의무란 그저 그릇된 구시대적 관념이라고 받아치곤, 승전 퍼레이드에 참석하러 먼저 자리를 떠난다.[26] 마이클 셰이라는 이 공보관은 수 차례 거절당한 성명서에 '신호'라는 대체 표현을 고안해내 통과시킨 공신으로, 취미삼아 하고 있던 작가 생활 중 편집자에게 왕실 관련 썰을 직접 폭로하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자 바로 거절할 정도로 충성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결국 왕실 대신 찌라시를 퍼뜨린 책임으로 짤리고, 짤린 뒤에 전업 작가로 전직해 정치 스릴러 장르로 대박을 쳤다는 후일담이 자막으로 나온다.[27] 반대로 실제로 왕실에서 가장 다이애나의 편을 적극적으로 들고 그녀와 친했던 부군 필립 공은 2화의 밸모럴에서 처음 만난 때와 최종화의 사진 촬영 전 밀담를 제외하면 다이애나와 대화하는 장면이 하나도 나오질 않는다. 심지어 최종화의 대화 장면의 내용도 다이애나의 고충을 이해하고 편들어주는 게 아니라, 사실상 '이 집안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왕이니까 넌 주제 파악 잘하고 우리와 갈라설 생각 말아라' 정도로 요약할 만큼 다소 냉혹한 말이었다. 아마도 여왕의 일대기를 담은 드라마다보니 긍정적인 묘사도 그쪽에 더 실어준 듯하다.[28] 지난 40년간 여왕만큼 주님의 뜻을 실현한 사람은 없으며, 그녀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그깟 사과할 권리 정도는 당연히 있고 우리는 그저 여왕을 도울 뿐이라고 말한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필립 공이 왕실 최고 어른인 엘리자베스 왕대비에게 드라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정면으로 대드는 장면이라 굉장히 인상적이다.[29] 러시아 국빈 방문을 요청하는 옐친에게 조건으로 철거한다는 이파티예프 하우스에서 몰살당했던 로마노프 가문의 유해를 찾아 장례를 치뤄달라고 부탁한다. 근데 로마노프의 몰살은 친척 왕가인 영국 왕실의 묵인 하에 이뤄졌다고 알고 있던 옐친은 어이가 없었는지, 여왕이 못 알아듣는 러시아어로 '자기 집안이 죽였으면서 말조심이나 할 것이지' 라며 조롱한다. 해맑게 웃는 여왕에게 차마 그대로 통역해줄 수 없어 그냥 만나게 되서 기뻤다고 말했다며 둘러대는 러시아 측 남성 통역원과, 옆에서 알아듣고 썩은 표정을 짓는 영국 측 여성 통역원의 상반된 반응이 압권.[30] 이 역시 엄청난 미화로 생전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저런 말을 한 적도, 저런 기대를 품었다고 나중에라도 말한 적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