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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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에르네스토 쿠키아로니 Ernesto Cucchiaroni | |
| 본명 | 에르네스토 베르나르도 쿠키아로니 Ernesto Bernardo Cucchiaroni | |
| 출생 | 1927년 11월 16일 | |
|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주 포사다스 | ||
| 사망 | 1971년 7월 4일 (향년 43세) | |
| 아르헨티나 미시오네스주 포사다스 | ||
| 국적 | | |
| 신체 | 키 미상|체중 미상 | |
| 직업 | 축구 선수 (공격수 / 은퇴) |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CA 티그레 (1949~1955) CA 보카 주니어스 (1955~1956) AC 밀란 (1956~1958) UC 삼프도리아 (1958~1963) |
| 국가대표 | 11경기 (아르헨티나 / 1955~1956) | |
1. 개요
아르헨티나의 前 축구 선수. 선수 시절에는 공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애칭은 티토(Tito). 티그레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밀란과 삼프도리아에서 활약했다.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으로는 1955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미시오네스주 역사상 최고의 축구선수로 평가받으며, 삼프도리아의 울트라스는 그의 이름을 따서 울트라스 티토 쿠키아로니(Ultras Tito Cucchiaroni)라고 불린다.2. 선수 경력
2.1. 클럽
에르네스토 쿠키아로니는 고향 포사다스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1949년 티그레로 이적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사이드 레프트로 뛰었지만, 윙어로 포지션을 바꾼 후 진가를 발휘했다. 좁은 공간에서의 가속과 정지 능력, 그리고 환상적인 개인기로 상대 수비수들을 농락했다. 티그레에서 139경기에 출전해 59골을 기록했다.뛰어난 활약으로 보카 주니어스가 당시로서는 거액을 들여 그를 영입했고, 이 이적료로 티그레는 에스타디오 호세 델라조반나의 지붕 있는 관중석 건설을 완료할 수 있었다.
1956년에 쿠키아로니는 이탈리아로 건너가 밀란에서 활약했다. 밀란에서는 1956-57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하며 리그 최고의 센세이션으로 떠올랐다. 또한 처음으로 참가한 유러피언컵에서는 1라운드 상대인 라피트 빈과의 경기에서 퇴장을 당하기도 하였지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와의 8강전에서도 선제골을 넣는 등, 팀의 결승 진출에 일조하였다. 쿠키아로니는 결승전에 선발 출전했으나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레몽 코파, 파코 헨토 등이 뛰던 레알 마드리드에게 패하며 우승을 놓쳤다.
1958년 삼프도리아로 이적한 후 5년간 뛰며 클럽의 아이콘이 되었다. 138경기에 출전해 40골을 기록했으며, 1963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뛰어난 클럽 활약으로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55년 코파 아메리카에 참가했다.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 우루과이를 6-1로 대파하는 등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이며 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에서는 칠레를 1-0으로 꺾고 정상에 올랐다.이듬해인 1956년에는 1956년 코파 아메리카와 1956년 팬아메리칸 챔피언십에 참가해 각각 준우승과 준우승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