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6-08-02 16:26:47

야유타야 왕조

1. 아유타야


1350년 우통 왕[1]이 아유타야를 세웠다. 아유타야는 그전까지 타이족을 주도하던 수코타이를 공격해 1378년에 속국으로 만들고 1438년에 완전히 병합한다. 한편 그전까지 동남아의 패자였던 캄보디아에 대한 공격도 계속하여 1431년 6개월간의 포위 끝에 앙코르를 점령하였고[2], 캄보디아는 곧 앙코르를 탈환할 수 있었지만 앙코르를 더 이상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힘듬을 깨닫고 수도를 천도한다.

앙코르 이후 캄보디아의 수도는 로벡, 우동, 프놈펜을 전전한다. 모두 지금의 시엠 리엡인 앙코르의 동남부에 위치한다.


이후 아유타야는 발전을 계속했으나, 이웃 버마의 따웅우 왕조의 침공으로 결정적인 타격을 받는다. 1547년[3] 따웅우 왕조의 따빈슈웨티의 공격으로 아유타야 왕 마하 짜크라팟은 부인 수리요타이 왕비를 잃었으며, 1563년 버인나웅의 침공[4]으로 결국 항복을 하고 속국이 되고 말았다. 왕인 마하 짜크라팟은 버마에 인질로 끌려간 의혹이 보이며[5] 북부의 중심지 피싸눌록을 지키다 버마군에 항복한 반정공신(...) 마하 탐마라차[6]는 아들 나렛 왕자[7]를 인질로 보냈다. 이 후 마하 짜크라팟과 그 아들은 다시 저항을 하나 버인나웅의 재침공을 받고 아유타야는 함락되었다. 그리고 왕은 마하 탐마라차로 교체. 하지만 그게 버마의 불행의 시작이었다.(...)
[1] 연대기에서는 중국 한족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원래 다른 지역에 있던 왕국에서 아유타야로 이동해 아유타야를 건설했다고 하는데...[2] 태국사 관련 책에서 이 이후 태국이 계속 앙코르를 점령하였다거나, 캄보디아가 태국의 속국이 되었다고 서술할 때가 많으나 사실이 아니다. 캄보디아는 여전히 독립국이었으며 16세기 말까지 태국에 역습을 한다. 완전히 속국이 된 것은 나레쑤언 왕 때다.[3] 동남아의 기후적인 특성으로 전쟁은 양력으로 12월경 시작해서 그 다음해 봄이 올 때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많은 책에서 년도가 1년씩 차이가 날 때가 흔하다.[4] 이 전쟁은 흰 코끼리로 인해 일어났기 때문에 백상전쟁이라고도 불리운다. 버마가 아유타야에 흰 코끼리를 요구했고 아유타야에서는 논의 끝에 주나 안주나 어차피 전쟁을 일어난다고 해서 안 주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전통적인 버마의 다이렉트 침공로인 삼탑로를 집중적으로 방어했고 북쪽에는 마하 탐마라차를 보내 부족한 방어를 보완하려고 했다. 하지만 버인나웅은 예전에 점령한 란나를 통해 북쪽으로 부터 침공을 했고 아유타야는 이 때문에 전쟁에 졌다.[5] 의혹인 것이지 정설단계까지는 아니다. 이 기록은 버마측 연대기에 보인다.[6] 마하 탐마라차는 마하 짜크라팟을 왕으로 세운 1등공신이었다. 마하 짜크라팟의 즉위과정은 어지간한 드라마를 압도하는 스케일인데 왕의 죽음->왕비의 섭정->왕비와 친척인(...) 신하와의 불륜->왕비의 임신과 출산(!!!)->유력한 왕자 제거시도->그 왕자의 출가->왕비가 옛아들 대신 새아들을 왕으로 추대시도(...)->보다못한 신하의 쿠데타->왕비와 불륜상대자의 끔살과 출가한 왕자의 즉위(...)의 과정을 거친다. 이 왕자가 마하 짜크라팟이고 쿠데타를 주도한 신하가 마하 탐마라차이다.[7] 이후의 나레쑤언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