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15:31:25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

<colcolor=#373a3c> 파일:Yaglakar_clan_tamga.png
𐱃𐰸𐰆𐰕 : 𐰆𐰖𐰍𐰺
위구르 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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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년, 당시 몽골 고원의 패자였던 돌궐 제2제국이 내분으로 약화되자 휘하에 있던 위구르, 바스밀, 카를루크의 세 부족이 반란을 일으켰다. 4년 뒤인 744년, 세 부족은 수도 외튀켄을 점령하고 외즈미시 카간을 살해하여 돌궐 제2제국을 멸망시켰다. 이후 몽골 고원을 차지한 세 부족은 처음에는 바스밀의 수장을 엘레미쉬 카간으로 두고 위구르와 카를루크가 각각 '야브구'를 칭하기로 합의했지만, 얼마 안가 위구르의 수장 쿠틀룩 보일라가 카를루크와 연합하여 엘레미쉬 카간을 살해하고 스스로를 카간으로 칭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이때를 위구르 제국의 시작으로 본다.
씨족 이름 치세
야글라카르 쿠틀룩 빌게 퀼 카간
(咄禄毗伽阙可汗 골돌록비가궐가한)
(? Qutlugh Bilge Kül Qaghan)

회인가한
(懷仁可汗)
744년 ~ 747년
야글라카르 텡그리데 볼미쉬 엘 에트미쉬 빌게 카간
(英武威遠毗伽闕可汗 영무위원비가궐가한)
(𐱅𐰭𐰼𐰃𐰓𐰀⁚𐰉𐰆𐰞𐰢𐱁⁚𐰠𐱅𐰢𐰾𐰋𐰠𐰏𐰀⁚𐰴𐰍𐰣 ,
Teŋride bolmuš El Etmiš Bilge Qaɣan)

카를륵 카간
(葛勒可汗 갈륵가한)
747년 ~ 759년
야글라카르 텡그리데 쿠트 볼미쉬 엘 투트미쉬 알프 쿨뤼그 빌게 카간
(𐱅𐰭𐰼𐰃𐰓𐰀:𐰸𐰆𐱃:𐰉𐰆𐰞𐰢𐱁:𐰃𐰠:𐱃𐰆𐱃𐰢𐱁:𐰞𐰯:𐰚𐰇𐰠𐰏:𐰋𐰃𐰠𐰏𐰀:𐰴𐰍𐰣,
Tengrida Qut Bolmish El Tutmish Alp Külüg Bilge Qaghan)

뵈귀 카간
(牟羽可汗 모우가한)
759년 ~ 780년
야글라카르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
(合骨咄祿毗伽可汗 합골돌록비가가한)
(𐰞𐰯:𐰸𐰆𐱃𐰞𐰍:𐰋𐰃𐰠𐰏𐰀:𐰴𐰍𐰣
Alp Kutlugh Bilge Qaghan)
780년 ~ 789년
야글라카르 텡그리데 볼미쉬 퀼뤽 빌게 카간
(登里羅沒蜜施俱錄毗伽可汗 애등리라몰밀시합비가가한)
(𐰖:𐱅𐰭𐰼𐰃𐰓𐰀:𐰉𐰆𐰞𐰢𐰃𐱁:𐰚𐰇𐰠𐰏:𐰋𐰃𐰠𐰏𐰀:𐰴𐰍𐰣
Ay Tengride Bolmish Külüg Bilge Qaghan)
789년 ~ 790년
야글라카르 불명
(回紇六代可汗 회흘육대가한)
790년(?)
야글라카르 쿠틀룩 빌게 카간
(咄錄毗伽可汗 골록비가가한)
(𐰸𐰆𐱃𐰞𐰸:𐰋𐰃𐰠𐰏𐰀:𐰴𐰍𐰣
Qutluq Bilge Qaghan)

봉성가한
( 奉誠可汗)
790년 ~ 794/795년
795년, 쿠를룩 빌게 카간이 후사없이 사망하자 신하들이 논의 끝에 당시 재상이었던 쿠를룩을 새로운 카간으로 추대하였다. 쿠틀룩은 야글라카르 씨족이 아니라 에디즈 씨족이었기 때문에 이때부터 위구르 제국의 왕조는 에디즈 가문이 잇게 된다.
야글라카르(𐰖𐰍𐰞𐰴𐰺) → 에디즈(𐰓𐰔)로 씨족 교체
에디즈 텡그리데 울룩 볼미쉬 알프 퀼뤽 빌게 카간
(騰里邏羽錄沒密施合祿胡毗伽可汗 애등라우록몰밀시합록호비가가한)
(𐰖:𐱅𐰭𐰼𐰃𐰓𐰀:𐰆𐰞𐰍:𐰉𐰆𐰞𐰢𐱁:𐰞𐰯:𐰸𐰆𐱃𐰞𐰸:𐰚𐰇𐰠𐰏:𐰋𐰃𐰠𐰏𐰀:𐰴𐰍𐰣
Ay Tengride Ulugh Bolmish Alp Qutluq Külüg Bilge Qaghan)

회신가한
(懷信可汗)
795년 ~ 805년
에디즈 텡그리데 알프 퀼뤽 빌게 카간
(滕里野合俱錄毗伽可汗 등리야합구록비가가한)
(滕里野合俱錄毗伽可汗 애덕갈리록몰이시합밀비가가한)
805년 ~ 808년
에디즈 텡그리데 쿠트 볼미쉬 알프 빌게 카간
(登里羅沒蜜施合毗伽可汗 애등리라몰밀시합비가가한)
(𐰖:𐱅𐰭𐰼𐰃𐰓𐰀:𐰸𐰆𐱃:𐰉𐰆𐰞𐰢𐱁:𐰞𐰯:𐰋𐰃𐰠𐰏𐰀:𐰴𐰍𐰣
Ay Tengride Qut Bolmish Alp Bilge)

보의가한
(保義可汗)
808년 ~ 821년
에디즈 텡그리데 울룩 볼미쉬 알프 퀴췰뤽 빌게 카간
(登羅羽錄沒密施合句主錄毗伽可汗 등리라우록몰밀시합구주록비가가한)
(𐰚𐰇𐰤:𐱅𐰭𐰼𐰃𐰓𐰀:𐰆𐰍𐰞:𐰉𐰆𐰞𐰢𐱁:𐰚𐰇𐰲𐰠𐰏:𐰋𐰃𐰠𐰏𐰀:𐰴𐰍𐰣
Kün Tengride Ulugh Bolmish Küçlüg Bilge Qaghan)
821년 ~ 824년
에디즈 아이 텡그리데 쿠트 볼미쉬 알프 빌게 카간
(愛登里囉汨沒蜜施合毗伽可汗 애등리라골몰밀시합비가가한)
(𐰖:𐱅𐰭𐰼𐰃𐰓𐰀:𐰸𐰆𐱃:𐰉𐰆𐰞𐰢𐱁:𐰞𐰯:𐰋𐰃𐰠𐰏𐰀:𐰴𐰍𐰣
Ay Tengride Qut Bolmish Alp Bilge Qaghan)

소례가한
(昭禮可汗)
824년 ~ 833년
에디즈 아이 텡그리데 쿠트 볼미쉬 알프 퀴췰뤽 빌게 카간
(登里羅沒蜜施合句主錄毗伽可汗 등리라몰밀시합구주록비가가한)
(𐰖:𐱅𐰭𐰼𐰃𐰓𐰀:𐰸𐰆𐱃:𐰉𐰆𐰞𐰢𐱁:𐰞𐰯:𐰚𐰇𐰠𐰏:𐰋𐰃𐰠𐰏𐰀:𐰴𐰍𐰣
Ay Tengride Qut Bolmish Alp Külüg Bilge Qaghan)

창신가한
(彰信可汗)
833년 ~ 839년
에디즈 카사르 카간
(㕎馺可汗 압삽가한)
839년 ~ 840년
창신가한 사후인 840년, 내부 권력 다툼에서 밀린 셍귄 퀼뤽 바가는 남시베리아 예니세이 강에 자리를 잡고 있던 키르기스족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요청을 수락한 키르기스족은 10만 명의 대병력을 동원해 위구르 제국의 수도 오르두 발릭을 침공하고 철저히 파괴하였고, 이를 기점으로 위구르 제국은 사실상 멸망하였다. 이후에도 2명의 카간이 더 있지만 이들은 별다른 업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에디즈 외게 카간
(烏介可汗 오개가한)
841년 ~ 846년
에디즈 에니안 카간
(遏捻可汗 알념가한)
846년 ~ 84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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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Alp qutlugh bilge qaghan(합골돌록비가가한, 合骨咄祿毗伽可汗)
재위기간 (780 ~ 789)

위구르 제국의 제4대 가한. 고대 투르크어로 “용감하고 축복을 받은 현명한 군주”라는 의미이다. 이름은 톤 바가 타르칸(돈막하달간, 頓莫賀達干). 시호처럼 현명한 행동을 하여 뵈귀 카간의 폭정에 신음하던 당나라와 위구르에 지혈을 하여 봉합을 한 현군.

2. 생애

780년, 톤 바가 타르칸은 정변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카간의 자리에 올랐다. 정변을 일으킨 이유는 외적으로는 토번이 발흥하는데 당나라에서도 뵈귀 카간에게 원한[1]이 있던 당덕종이 즉위하면서 한꺼번에 두 적을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내적으로는 위구르 사회의 정주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꼽히며 직접적으로는 소그드 상인과 결탁해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 해에 당덕종이 톤 바가 타르칸을 무의성공가한(武義成功可汗)으로 책봉하였으나, 신당서에는 위구르 제국에서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이 즉위한 이후에 구성호(九姓胡)를 귀국시키는 과정에서 진무군 절도사 장광성(張光晟)이 이들을 모두 살해한 사건이 기록돼 있다. 위구르의 사신이었던 돌동(突董)을 비롯한 구성호 살해 사건은 당나라가 위구르와 연합을 끊고 토번과 연계하려는 외교 노선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카간은 780년대 지배집단의 내분과 뵈귀 카간대 당나라와의 결별, 호시 상인들의 활동마저 위축되면서 악회된 경제사정 등을 타개하기 위해 이에 787년 사신을 파견해 당에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한다.

당덕종은 제위에 오르기 전 뵈귀 카간에게 큰 굴욕을 당한 기억을 잊지 않았으므로 처음에는 위구르의 화친 제안을 거절하였으나, 안으로는 할거하던 번진들이 쉽게 정리되지 않고, 밖으로는 토번이 안서와 북정으로 통하는 길목을 계속 공격하면서 관계가 악화되자 재상의 건의를 받아들여 위구르와 연합하여 토번을 제어하기로 결심한다.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은 덕종이 화친을 받아준것에 대해 기뻐하였다. 이후 덕종이 조서를 내려 함안공주(咸安公主)를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에게 시집보냈으나 789년 알프 쿠틀룩 빌게 카간이 사망하면서 혼례를 치르지는 못하였다.

카간의 사망을 전해들은 당나라에서는 조정의 일을 사흘 동안 중지하여 예를 차렸다.

[1] 뵈귀 카간은 폭군이었으며 당 덕종이 어린 시절, 춤을 모른다는 사신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사신단을 죽인 뒤 난 진압을 명분삼아서 당나라 전역에 무소불위의 폭정을 저지른 악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