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27 15:21:53

아부 하산 알아슈아리



1. 개요2. 생애 및 업적3. 주요 주장4. 아슈아리파의 영향5. 평가

1. 개요

이슬람 순니파 샤피이파 마드하브의 신학자로 아슈아리 학파의 시조로 여겨진다.

2. 생애 및 업적

정확한 생년월일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9세기 후반 바그다드에서 태어났다고 추정된다. 아슈아리는 40세까지는 이슬람 사변철학 학파인 무타질라 학파의 신학자였으나, 40세가 되던 무렵 무타질라 학파의 신학사조를 적극적으로 공격하면서 새로운 신학 체계를 구축했다. 그는 쿠란과 하디스(선지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아타리파를 옹호하고 이슬람 사변철학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수사학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3. 주요 주장

신의 속성: 신은 완전하고 무한하며, 인간의 이성으로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선과 악: 모든 선은 신에게서 비롯되며, 악은 신의 섭리 안에서 허용된 것이라고 보았다.

자유 의지: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지만, 모든 일은 결국 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무타질라 학파의 원자론[1]형이상학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원자들은 물질적이지 않고, 영구적이지도 않으며 단지 순간적인 존재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공간 뿐만 아니라 시간도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했으며, 원자가 비물질적이거나 관념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주장하였다.

4. 아슈아리파의 영향

아슈아리파는 한동안 순니 이슬람 신학의 주류가 되어 이슬람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알가잘리가 해당 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이슬람 법학과 수피즘에도 영향을 주었다.

5. 평가

아부 하산 알아슈아리는 이슬람 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다른 한편으로 아슈아리파는 이슬람 내부에서 다양한 비판을 받았으며, 그가 남긴 90여권의 저술 중 실전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 극히 드물다.

몽골 제국이 호라즘을 침공해 초토화시킬 무렵 아슈아리 학파 또한 다른 학파로부터 공격을 받아 몰락하기 시작했다. 한발리파이븐 타이미야는 "아슈아리 학파는 그리스 철학을 가지고 다른 그리스 철학을 공격하는 학파일 뿐이다."라고 비판한 것이다.

중세의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가장 소중한 개념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이었다. 그리고 불교연기법의 영향을 받은 중앙아시아 무슬림들 역시 원인결과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무슬림 의사나 철학자들은 불이 천쪼가리를 태우는 원인이라고 분석하면, 아슈아리 학파 신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사기이자 가짜라고 주장했다. 사건 A와 B가 연속적으로 발생해다고 해서 그것이 A와 B의 원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반박은 쿠란이나 하디스에서 나온 주장이 아니라 그저 프로불편러 행각에 불과했다.

아슈아리 학자들이 과학을 불신앙의 원인이라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매우 상이한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간섭할 수도 있음을 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사람이 참수당한 후에도 살아 있게 할 수 있다."라는 말을 남긴 것에서 보듯 아슈아리 학파의 철학 비판 자체가 갖가지 미신에다가 궤변 범벅이었고, 쿠란과 하디스에서 제대로 된 근거를 도출한 것이 아니었다. 성묘 숭배를 미신이자 우상숭배로 보고 비판하던 이븐 타이미야가 아슈아리 학파의 철학 비판을 공격한 것은 그가 아슈아리 근본주의자들보다 더 근본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아슈아리 학파의 주장이 궤변이었기 때문이다.
[1] 해당 학파는 고대 그리스의 4원소론과 인도/중앙아시아 당대 불교 문화권의 원자론 이론 양쪽 모두의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