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치 활동
1995년 12월에 신한국당 부대변인, 안양시 동안구 갑구 지구당 위원장울 맡으면서 정계에 입문했다.[1]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안양 동안 갑에 출마했으나 가수 출신인 새정치국민회의 최희준에 밀려 낙선했다.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안양 동안구에 출마, 새천년민주당 이석현을 밀어내고 당선되었다. 한나라당 제3정조 위원장, 대외협력 위원장, 국무총리 후보자(이한동, 장상) 인사청문위원, 공적자금특위위원, 정책위 부의장 등을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때 안양시 동안구 을에서 재선되어 전략기획 위원장, 홍보기획 본부장, 원내수석 부대표를 지냈고,[17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3선 고지에 올라 국회 윤리위 · 예결위 위원장, 경기도당 위원장을 맡았다.
국회의원 모습 |
- 건국절 주장: 건국절을 주장했다. 그 이유로 "국가가 성립하려면 영토와 국민과 주권, 그리고 전 세계적인 인정, 유엔의 인정 이 같은 4가지 요건이 결합해야만 한다"며 "임시정부는 임시정부였을 뿐"이라면서 당시는 "엄연히 일제 치하, 국토를 빼앗기고 주권이 없는 상태였지 않은가"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건국절 제정은 "대한민국이 식민지에서 벗어나 국민 투표라는 합법적인 과정을 거쳐 세운 바로 근대국가라는 생일을 올바르게 세우자는 그런 취지"라는 말도 덧붙였다#.
-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 특위’(불법 사찰 국정조사)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14개월 동안 단 1차례도 회의를 열지 않고 방치하면서 월 600만 원씩 1년간 받았다고 한겨레신문이 2013년 8월에 보도했다. 민간인사찰특위는 6개월 정도의 활동시한을 정한 다른 특위와 달리 ‘본회의 의결 때까지 활동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정치 공세가 반복되면서 단 한 번도 열리지 못했던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당시 심 위원장은 "저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확실히 지켰고 18대와 19대 국회에서 모두 세비 반납 운동을 주도해왔다"며 당시 특위로 받았던 활동비 전액을 국회 사무처로 반납했다.#
- 이후 MBC <PD수첩>이 '광우병' 방송을 내보내면서 자신의 발언을 비방할 목적으로 악의적으로 보도해 명예가 훼손됐다며 5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으나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언론사의 보도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해 승소한 경우는 거의 없다.#
- 2016년 박주선과 함께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국회부의장 모습 |
- 이날 심재철 의원은 "대의민주주의의 심장인 국회에서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소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특히 "국회는 이념과 정쟁의 장이라는 비판을 받아왔지만 국민 주권과 기본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발걸음을 70년 간 해왔다"며 "20대 국회는 다양성에 기반한 더 적극적이고, 치열한 논쟁과 토론이 이뤄지는 민주주의 장으로 거듭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17년 11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을 내란죄로 형사고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기사 이에 대해 여당 지지층은 "문 대통령에 대해 정녕 형사고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본인이 직접 하면 되지, '해야 한다'고만 주장하고 정작 아무것도 안 하는 건 무슨 생각인 거냐"는 비판을 던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를 향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짓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일부 보수층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른 자유한국당 의원보다 심재철이 조금이나마 낫지 않냐는 의견이다. 일단 본인이 DJ, 노무현 정부 시절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는 의원 중 한 명이었다.
- 최근 문재인 퇴진 집회(태극기 집회)에 참여하였다.
-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피해자)로 인정돼 정부 보상금이 지급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5.18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고 주장해왔던 심재철 의원이 정작 자신이 5·18피해자로 인정돼 3,500만원의 보상금까지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표리부동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광주시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포함해 5·18 피해자에 대한 보상 과정에서 신청서를 내지 않은 관련자를 포함시키는 일괄보상은 이뤄진 적이 없다"고 설명했고, "보상금을 받은 사람들의 서류를 모두 확인했는데 신청서에 본인들의 도장이나 서명이 다 돼 있다면서 신청서가 없는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1998년 광주민주화운동관련자보상심의위원회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24인에 대해 일괄보상을 실시했기 때문에 심재철 의원이 직접 5.18 피해자 보상 신청을 하지 않았기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참고로 심 의원 말고도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이 이 명단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유는 가짜 유공자가 있다는 주장이다. # ##[5]
-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된 이후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비판과 공격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1.1.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선출 |
2019년 12월 9일 열린 자유한국당 원내 대표 경선에서 결선 투표 결과 106표 중 52표를 획득하며 나경원의 뒤를 이어 자유한국당의 4대 원내대표 자리에 올랐다.# 국회부의장까지 지냈던 5선 의원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원내대표가 됐는데, 2004년 17대 국회 초반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 이후 보수정당 최다선 원내대표라고 한다. 보통 5선 정도면 당 대표급이며[8] 국회의장 경선에 나가도 태클 안 걸리는 의원선수[9]다.
문희상 의장 여당 같이 찍은 모습 |
부임하자마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및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패스트트랙 정국을 맞이했는데 기껏 원내대표로서 처음 가져온 협상안이 의원 총회에서 부결되는 굴욕[10]을 당하고 황교안 대표와 함께 강경 투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을 필두로한 4+1 협의체가 이미 과반을 확보한 상황이라 표 대결로는 이를 막기 힘들었으며 2016년 민주당이 진행해 호평을 받았던 필리버스터도 시도했지만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임시국회 기간을 짧게 쪼개는 방식으로 대응한데다가 4+1 협의체 의원들이 오히려 그 기회에 찬성 토론에 나서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020년 2월 18일, 자유한국당이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및 보수 시민단체와 미래통합당으로 신설 합당하게됐는데 그 과정에서 지도부는 자유한국당 지도부를 유지하기로 하면서 미래통합당에서도 초대 원내대표를 맡게 됐다.
하지만 4월 15일 열린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초선 비례대표 출신인 이재정 후보에게 무려 12%p 차이로 완패하면서 졸지에 원내대표직을 20대 국회가 끝나는 5월 29일, 취임 6달만에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 되어 결국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일단 당장의 원내대표 사퇴를 거부하고 당대표였던 황교안 대표가 총선 패배를 책임지고, 사퇴하면서 당대표 권한대행 직을 맡게 되었다.#
선거 참패 수습을 위해 김종인 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하려했지만 조경태 최고위원 등 당내 반발과 김종인 전 위원장의 거부로 무산되었고 결국 5월 8일 선출된 후임 원내대표에게 공을 넘겼다.#
1.2. 21대 총선 낙선 이후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 캠프에서 지원 유세를 했다.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예비후보로 나섰으나 결국 김은혜 지지를 선언하면서 사퇴했고#, 김은혜는 경선에서 유승민을 꺾고 본선에 진출했지만 결국 낙선했다.[11]
2022년 12월에는 안양시 동안구 을 지역을 떠나 인근지역인 의왕시·과천시 지역구로 옮겨 당협위원장으로 공모했지만 최기식 검사에게 밀려 탈락하였다.
2024년 22대 총선을 앞둔 2023년 12월 다시 안양시 동안구 을로 돌아와 공천을 신청한 뒤 2024년 3월 1일 경선을 거쳐 윤기찬 변호사를 꺾고 공천을 받게 되었지만 본선에서 또 다시 현역인 이재정 의원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행정동 전체를 통들어서 범계동, 갈산동 두 곳에서만 이기고 나머지는 모두 이재정 의원에게 패했다. 출구조사에서만 봐도 무려 20%p 차이로 밀리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지만# 그래도 출구조사 격차를 줄이는데 성공했는지 오히려 4년 전보다 4.4%를 더 득표하며 나름대로 체면치레는 했다. 심재철 본인을 포함해 안양에서 또 국힘이 전멸하며 안양시가 민주당의 텃밭이 되었음만 다시 확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6년 15대 총선부터 동일 지역구에서만 8회 연속으로 공천되는 기록을 세웠다.
2024년 6월 21일, 국민의힘 경기도당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0년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경기도당 위원장을 역임하고 다시 한번 경기도당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 당시 민주당계에서는 민주정의당의 후신이었던 신한국당에 입당한 것을 배신이라며 비난했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한 이후 김영삼이 당을 장악했고, 문민정부 출범 이후 민정계는 외곽으로 밀려나다 YS에 협조적이던 신민주계를 제외하면 일부는 자유민주연합에 합류하는 등 민주자유당이 신한국당으로 개편될 때는 민주정의당의 색채는 꽤 빠진 뒤였다.[17대] 총선에는 한나라당이 경기도에서 거의 궤멸을 당한 선거되도,과반수 넘는 득표율로 살아남았다.[3] 첨언하자면 상대적으로 등뼈나 머리뼈에서 멀리 떨어진 부위는 아무리 광우병 걸린 소의 것이라도 위험성이 낮긴 하다. 그러나 도축장 위생관리나 유통과정에서 위험부위와 섞일 수 있으므로 '절대 안전'을 장담할 수는 없다.[4] 게다가 부정문이 아니기 때문에 문법상 '절대'가 올 수 없다.[5] 1998년 광주시에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신청’을 한 뒤 심사를 거쳐 ‘연행·구금’ 분야 피해자로 인정됐다고 한다.[6] 동시에 이종걸, 이석현, 심재철로 구성되었던 안양 3대장 시대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이석현이랑 이종걸은 당내 후보를 정하는데서 떨어졌지만, 심재철은 후보 확정은 되었다는 것이다.[7] 비슷한 케이스로는 경기도 북부지역인 의정부시 인데 갑 지역인 문희상 의원이 6선, 을 지역인 홍문종 의원이 4선 총 안양시(안양시는 이석현 6선+이종걸, 심재철 5선=16선) 못지 않게 10선을 자랑하는데, 이번 21대 총선에서 문희상 의원은 국회의장 끝으로 불출마 및 정계 은퇴 선언했고, 홍문종 의원은 임기 도중 자유한국당을 탈당해 극우정당인 우리공화당을 거쳐, 친박신당을 창당해 지역구가 아닌 비례대표로 출마했으나 낙선해 의정부시도 안양시와 마찬가지로 유력거물 다선의원에서 정치신인 초선의원으로 물갈이 되었다.[8] 추미애가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낼 당시 의원선수가 5선이다. 그 이전에 문희상이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을 지낼 당시 선수도 5선이었으며, 김한길이 민주당 대표를 지낼 당시 선수는 4선. 황우여, 김무성이 새누리당 대표를 지낼 때도 5선이었다. 예외적으로 문재인은 초선 시절, 안철수와 이재명은 초·재선 시절, 박근혜도 재선 시절에 당 대표를 지냈지만 이들은 대권주자였다.[9] 19대 국회 하반기 새누리당 국회의장 경선 당시, 후보자였던 정의화, 황우여 의원 둘 다 5선 의원이었다.[10] 여담이지만 전임 나경원 원내대표도 임기 초반 같은 일을 겪었다.[11] 참고로 그 김은혜를 꺾고 도지사에 당선된 김동연은 후술할 국가 재정정보 무단 유출 논란으로 심재철과 설전을 벌인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