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14 16:15:27

스테파노 피올리

스테파노 피올리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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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 피올리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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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nopad> 파일:12361.jpg
<colbgcolor=#f0f0f0><colcolor=#000> 이름 스테파노 피올리
Stefano Pioli
출생 1965년 10월 20일 ([age(1965-10-20)]세)
이탈리아 파르마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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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3cm
직업 축구 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 감독
경력 <colbgcolor=#f0f0f0><colcolor=#000> 선수 파르마 AC (1979~1982 / 유스)
파르마 AC (1982~1984)
유벤투스 FC (1984~1987)
엘라스 베로나 FC (1987~1989)
ACF 피오렌티나 (1989~1995)
칼초 파도바 (1995~1996)
US 피스토이에세 (1996~1997)
US 피오렌주올라 (1997~1998)
ACD 콜로르노 (1998~1999)
감독 US 살레르니타나 1919 (2003~2004)
모데나 FC (2004~2006)
파르마 FC (2006~2007)
FC 그로세토 (2007~2008)
피아첸차 칼초 (2008~2009)
US 사수올로 칼초 (2009~2010)
AC 키에보베로나 (2010~2011)
US 팔레르모 (2011)
볼로냐 FC 1909 (2011~2014)[1]
SS 라치오 (2014~2016)
인테르나치오날레 (2016~2017)
ACF 피오렌티나 (2017~2019)
AC 밀란 (2019~2024)
알 나스르 FC (2024~2025)
ACF 피오렌티나 (2025)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전술 스타일
4.1. AC 밀란 부임 이전4.2. AC 밀란 부임 이후4.3. AC 밀란 경력 이후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2. 감독
5.2.1. 대회 기록5.2.2. 개인 수상
6. 여담

1. 개요

이탈리아축구 선수 출신 감독.

2. 선수 경력

파르마 출신인 피올리는 고향을 연고지로 하는 파르마 AC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으며, 1984년 유벤투스 FC와 계약하면서 세리에 A 선수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당시 팀이 85–86 시즌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일조했으며, 이후 엘라스 베로나 FCACF 피오렌티나에서 주축 선수로 활동한다. 특히 피오렌티나에서는 6 시즌 동안 리그 154경기를 출전하면서 피올리의 선수 시절 가장 전성기로 뽑힌다. 1994-95 시즌을 마지막으로 피오렌티나와 이별했으며, 칼초 파도바, US 피스토이에세 1921, US 피오렌주올라 1922 SS를 거쳐 1999년 이탈리아 6부 리그 소속인 ACD 콜로르노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이후 곧바로 볼로냐 FC 1909AC 키에보베로나의 유소년 코치로 코치 경력을 쌓은 피올리는 2003년 세리에 B의 구단 US 살레르니타나 1919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한다. 한 시즌 뒤인 2004년 모데나 FC로 팀을 옮긴다.

2006년 파르마 FC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세리에 A 감독 데뷔전을 치르나,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한 시즌도 채 못채운 2007년 2월 경질된다. 이후 FC 그로세토 SSD의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2부 리그로 돌아왔고, 피아첸차 칼초와 US 사수올로 칼초를 거쳐 2010년 AC 키에보베로나의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세리에 A에서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민다. 팀을 리그 11위에 올려놓으면서 그럭저럭 무난한 성적으로 마친 피올리는 2011년 US 치타 디 팔레르모의 사령탑으로 부임하나 보드진과의 불화로 단 90일만에 팀을 떠난다.

이후 2011년 시즌 부진에 빠진 볼로냐 FC 1909의 감독으로 취임해 강등권까지 떨어졌던 팀을 리그 9위에 올려놓는데 성공한다. 성공적인 11-12 시즌 이후 12-13 시즌도 무난하게 마쳤으나, 13-14 시즌 강등권에서 허덕이는 부진에 빠졌고, 결국 시즌 도중 경질되었다.

이후 2014년 에도아르도 레야 감독의 후임으로 SS 라치오의 지휘봉을 잡았고, 라치오를 3위에 올려놓으면서 UEFA 챔피언스 리그 예선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한다. 이 공로로 라치오는 피올리와 장기계약을 맺었으나 15-16 시즌 팀이 부진에 빠지자 결국 경질된다.

2016년 11월 8일 성적 부진으로 경질된 프랑크 더부르의 후임으로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의 감독으로 부임한다. 그러나 시즌 중 감독 교체라는 강수에도 불구 인테르는 좀처럼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 2017년 5월 시즌을 자기 손으로 마무리하지도 못한 채 인테르에서 경질된다.

2017년 6월, 본인이 선수 시절 전성기를 보냈던 ACF 피오렌티나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페데리코 키에사를 중심으로 팀 전술을 재편하며 17-18 시즌은 중위권인 8위로 마쳤다. 하지만 18-19 시즌에는 지지부진한 성적을 이어가다 2019년 4월 10일 자진 사임 형식으로 피오렌티나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3.1. AC 밀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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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사임 이후

6월 21일 로마노에 따르면 알 이티하드 FC가 피올리 선임을 원한다고 한다.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7월 3일 로마노가 다시 한번 알 이티하드의 부임 유력 보도를 내놓으면서 마르셀로 가야르도의 뒤를 이어 알 이티하드 감독 부임이 확정되는 듯했으나, 돌연 7월 7일자로 딜이 무산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후 로마노가 Here we go를 띄우며 알 나스르 FC 행이 유력해졌다.

3.2. 알 나스르 FC

2024년 9월 18일, 알 나스르 FC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 기간은 3년.

3.2.1. 2024-25 시즌

리그에서는 알 이티하드알 힐랄 2팀에 밀려 3위에 계속해서 머무르고 있다. 심지어 킹스컵에서는 알 타아원에게 16강에서 0:1로 충격패를 당해 조기 탈락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래도 AFC 챔피언스 리그 엘리트는 3위로 무난하게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며, 16강에서는 에스테그랄에게 3:0 승리[2]를 거둬 파이널 스테이지 진출에 성공했다.

파이널 스테이지 8강 요코하마 F. 마리노스전도 무난하게 4:1 승리를 거뒀으나 가와사키 프론탈레와의 4강전은 2:3으로 패배하는 이변의 희생양이 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종료 후 ACF 피오렌티나에 부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아챔 진출도 실패하고 J리그 팀에게 업셋당하는 등 최악의 행보로 알 나스르 최악의 감독 중 한 명으로 남을 듯.

3.3. ACF 피오렌티나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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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전술 스타일

4.1. AC 밀란 부임 이전

처음부터 유명한 감독은 아니었지만 점점 발전해온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감독 커리어를 보면 팀에서 잘릴지언정 점점 좋은 팀 감독을 맡는 기이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피올리가 보통 축구팬이 생각하는 것보다 젊은 선수들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재능이 있고 의외로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보드진에게 많은 걸 요구하는 성격도 아니며, 있는 자원으로 어떻게든 팀을 꾸려간다는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선수들과의 관계는 항상 좋은 편이고 전술가보다는 덕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다만 전술적인 단점이 명확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특히 공격에 대한 세부전술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선수들이 능동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공격을 만들어가지 못했으며, 이러한 부분 때문에 상승세를 타다가도 금세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특히 롱볼이나 크로스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인해 경기력이 바닥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세리에A에서 공공재 감독 또는 땜빵 감독 취급을 받아왔다. 특히 전술이 읽히면 플랜B 없이 무너져내리는 특징이 있는데, 잠깐 반짝하고 팀이 상승세를 타다가도 쭉 하향세를 그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대신 장점도 확실히 돋보이는데,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선수의 능력을 보는 눈이다. 선수의 장단점을 빠르게 캐치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여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에 아주 능하다. 더불어 거대한 피지컬을 가진 밀렌코비치를 우풀백으로 기용하기도 하고, 밀란에서 주로 공격적인 역할을 하던 케시에에게 좀 더 수비적인 역할을 부여하며 롤을 제한하는 등 기존의 틀을 깨는 경우도 많다.

4.2. AC 밀란 부임 이후

감독으로서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AC 밀란에서의 모습을 보면 피올리가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감독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감독 스스로 밝히기를 바이에른 뮌헨의 플레이스타일을 많이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감독이 이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밝히는 것도 좀 놀라운데 피올리 특유의 솔직한 면모가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바이에른 뮌헨의 강한 압박과 컴팩트한 움직임, 유연한 포지션 변경, 공격적으로 끌어올린 수비라인 등을 참고한 듯 하다. 하지만 당연히 선수들의 특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이를 밀란 선수들의 스타일에 맞게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스타일을 코로나 휴식기에 준비시켰고 여기서 피올리의 장점이 나오는데, 피올리 특유의 선수 파악 능력이 발휘되었기 때문이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 3가지는 다음과 같다.
  • 찰하놀루에게 공격시 쉐도우 스트라이커에 가까운 공격적인 역할을 부여해 즐라탄과의 연계를 강화했다. 뮌헨으로 치면 뮐러의 역할을 부여한 것인데 이게 적중해 장단점이 뚜렷한 찰하놀루를 제대로 써먹었다.
  • 주 포지션이 애매했던 케시에베나세르에게 투볼란치 역할을 부여하며 베나세르에게는 드리블과 롱패스를, 케시에에게는 기존보다 수비적이면서 오프더볼 움직임을 통한 전천후 박투박 미드필더의 역할을 부여하며 긴밀한 투볼란치 체제를 구축했다.
  • 풀백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며 윙포워드들에게는 수비적인 압박을 더 주문했다. 그래서 압박능력이 좋은 레비치살레마커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본적으로는 전방압박을 걸면서 전체적인 수비라인을 올리는 공격적인 전술을 짜고 있으나 볼 점유율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 하며, 공을 가지고 돌리기보다는 좀 더 직선적인 공격형태를 보인다. 한지 플릭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인지 클롭의 게겐프레싱과 비슷한 느낌이 든다.[3] 풀백의 공격적인 운용도 클롭과 비슷한 면이 존재한다. 하지만 클롭의 압박축구가 매우 많이 뛰는 전술인데 반해, 피올리의 압박전술은 생각보다 타이트하지 않아 체력소모가 많은 편은 아니다. 실제로 뛰는 양을 보면 리그에서는 하위권에 가까우며, 효율성을 앞세운 축구를 우선시한다고 볼 수 있다. 강력한 압박을 걸기도 하지만 유리한 상황에서는 수비를 중시하는 등 상황에 따라 압박강도를 많이 조절하는 편. 그래서인지 역으로 압박이 강력한 팀을 만나면 의외로 상당히 고전하는 경우도 많다.

원톱에는 주로 타겟형 스트라이커를 세운다. 피올리 체제에서 원톱은 제공권 싸움을 해주고, 버텨주는 역할을 한다. 레비치를 활용해 빠르게 뒷공간을 파고드는 스타일을 쓰기도 하지만 궁여지책의 일환이었다. 궁극적으로 피올리가 원하는 스트라이커는 중장거리 패스를 받아주고 직접 찬스를 노리거나 2선에 좋은 연계를 해주는 선수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피지컬이 좋은 톱자원을 선호하는데 즐라탄, 지루가 나이가 들었지만 상당히 잘 활용하는데에는 피올리가 타겟형 스트라이커를 어떻게 활용할지 잘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이후 5인 교체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감독 중 하나로 좀 부진한 선수는 바로 교체해주며 빠른 타이밍을 가져간다는 특징도 있다. 이는 주전경쟁과 체력안배라는 면에서 긍정적인데, 특히 뛸 시간이 필요한 유망주들에게도 기회를 많이 주는 편이다.

팬들에게 가장 유명한 것은 피올리가 기존에 뇌지컬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들을 선수들을 개조시켜 완전히 자리잡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로 불리며 조롱을 받던 선수들의 포텐을 터트린 것은 기적에 비유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국내팬들이 말하는 피올리 매직이라 불리는 이러한 현상은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생기는데, 첫번째는 앞서 언급한 듯이 선수들의 개인적인 장단점을 파악하는 능력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자신의 지시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선수들의 개인 능력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역할을 주기 때문에 선수들은 좀 더 편하게 경기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정확한 역할 구축이다. 피올리는 선수들에게 맞는 역할을 분배해 경기 구상을 완성하는 스타일이라 선수들은 자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경기를 이해해나간다. 즉, 피올리의 유연한 사고와 선수들의 재능이 합쳐지면 엄청난 시너지가 생기는 것이다. 선수가 확실한 장점만 있다면 피올리는 그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감독이다. 찰하놀루는 슈팅능력과 패스길을 보는 능력, 케시에는 우수한 피지컬과 활동량, 키핑 능력 등 확실한 장점을 가진 선수들이다.

이러한 피올리의 스타일과 말디니의 스카우팅은 상당히 궁합이 좋은 편이다.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선수를 영입해야하는 말디니는 아직 세상이 크게 주목하지 않거나 가진 재능에 비해 저평가된 선수들을 영입해준다. 이 저평가된 선수들은 능력은 확실하지만 아직 전술적인 움직임이 다듬어지지 않은 선수들인 경우가 많다. 피올리는 이러한 선수들에게 적절한 역할 분배를 하고 그를 이해시키면서 선수들의 게임 이해도를 높이는 역할을 맡는다. 말디니가 원석을 발굴하면 그를 가공하는 것이 피올리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 원석의 가치가 높을수록 선수들의 능력치는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이다.

선수들의 평가를 보면 선수들을 잘 이해해주는 덕장의 면모가 있는 듯 하다. 대부분의 선수와 활발하게 소통하고 다소 강한 성격의 선수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그런 예다.

하지만 시즌 내내 폼이 좋지 않은 로마뇰리를 주장의 영향력 때문인지 계속 주전으로 기용하고, 페널티킥 미스가 많은 즐라탄에게 계속 페널티킥을 맡기는 등 선수에게 끌려다닌다는 평가도 있다.

그리고 팀 상황 때문인지 아니면 피올리의 성향인지 알기 힘들지만 눈 밖에 난 선수는 아예 기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어 20-21 시즌 이후의 콘티나 21-22 시즌 이후의 카스티예호 등이 그러한 예. 빨리 팀을 나가게 하기 위해 보드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인지 아니면 피올리 본인이 기용하는 것을 피하는 것인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되면서 선수 판매가 더욱 까다로워지는 부분도 있다.

선수들을 적절하게 파악하는 능력과 전방압박, 선수들과 좋은 관계 등을 보면 클롭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물론 전술적인 부분이나 축구사적 위치가 상당히 다르지만. 몰락한 명문팀을 부활시켰다는 부분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인지도가 낮거나 이적료가 비교적 저렴한 선수들을 데려다 발전시키는 부분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또한 클롭과 피올리 모두 수비수 출신이라는 점도 비슷하다. 머리스타일 때문에 피올리가 훨씬 나이가 많아보이지만 둘은 두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감독 경력은 피올리가 오히려 더 짧은 편이다.[4]

앞으로 피올리의 과제는 이 스타일로 얼마나 오래 좋은 성적을 유지하느냐가 될 것이다. 사실 밀란 이전에도 잠깐씩 좋은 모습을 보여준 적은 있지만 한 시즌은커녕 반 시즌 가서 전부 파훼당하고 무너진 전력이 많았기 때문에 현재 피올리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이 가능하다면 대기만성형의 감독으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높은 감독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밀란에서 발전된 모습을 거듭 보여주며 리그 내에서 상당히 인정받는 감독이 되었다. 21-22 시즌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 여긴 리그 우승을 해냈고 이탈리아 최고의 감독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22-23 시즌에는 무난했던 전반기에 비해 후반기에 상당한 부침을 겪으면서 23년을 최악의 성적으로 시작했다. 엄청난 실점을 극복하기위해 피올리가 들고온 대책은 변형 쓰리백. 수비시에는 쓰리백을 쓰지만 공격시에는 이전과 같이 4231에 가까운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변형 쓰리백의 핵심은 칼룰루이다. 칼룰루는 오른쪽 풀백과 센터백이 모두 가능해 수비시에는 우측 스토퍼, 공격시에는 우풀백으로 뛴다. 이로 인해 우측 윙백은 이전의 우측 윙포워드인 메시아스살레마커스가 수비시 상당히 아래쪽까지 내려온다. 이는 메시아스살레마커스 모두 수비에 많이 가담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도 하다.

즉, 피올리식의 변형 쓰리백은 기본적으로 센터백에토모리-치아우(또는 키예르)-칼룰루 셋을 둠으로써 기존 토모리, 칼룰루의 부족한 제공권을 치아우키예르로 보완했다. 또한 커버 범위가 넓은 토모리칼룰루를 적극 활용하면서 안정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우측 윙백에는 수비 가담이 좋았던 메시아스살레마커스를 놓고 공격시 우측이 움직이면서 칼룰루가 우풀백, 메시아스살레마커스가 윙포워드가 되는 것이다. 이런 변칙적인 쓰리백을 통해 밀란은 심각했던 실점율을 확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경기력 자체는 여전히 좋지 않았으며 결국 잠깐의 반등 이후 결과까지 나락으로 가면서 결국 피올리는 또다시 한계에 봉착했다.

이후 4231로 돌아가서도 잠깐 반짝한 이후 경기력과 성적이 모두 나락을 가면서 시즌을 말그대로 말아먹었다. AC 밀란 부임이전 경질될 때의 모습을 보이며 무한 크로스 축구를 하고 있으나 아무 팀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23-24 시즌이 되면서 다시 한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4231에서 433으로 포메이션을 바꾸고 테오를 공격시 아예 공격수나 공격형 미드필더처럼 올려쓰는가 하면 칼라브리아크루니치와 함께 수비형 미드필더처럼 움직이며 빌드업을 해나간다. 이는 맨시티 등의 팀에서 인버티드 풀백을 쓰는 방식에서 착안한 것으로 보이는데 팀의 조직력과 수비력이 전시즌보다 나아짐은 물론 폭발적인 공격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공격시 쓰리톱은 물론 메짤라 둘과 풀백까지 모두 전진하여 공격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거의 끝물이라 생각했던 피올리가 또다시 진화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다만 밀라노 더비에서 1-5로 참패하면서 다시 회의적인 의견이 돌고있다. 양쪽 메짤라까지 측면에 진출시켜 중원을 비우고 측면 공략만 계속 노리는 피올리의 축구는 시모네 인자기의 전략에 완벽하게 카운터를 맞았으며, 비워진 중원으로 침투하는 인테르의 3선들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였고, 자신의 전술을 카운터치는 데에 전혀 대비가 안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와중에 측면 공략이 제대로 안이뤄진게 문제라면서 플랜A를 계속 밀고가겠단 의지를 보이며 플랜A만 밀고가다가 하향세를 타는 고질적인 문제점을 답습하는게 아니냐는 걱정이 돌고있다. 이 정도면 시모네 인자기와는 인간상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인테르를 상대로는 다른 강팀을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지나치게 약하다.

결국 이때를 기점으로 경기력이 또다시 바닥을 치고 있다. 좋은 변화로 보였던 433으로의 변경은 결국 또다시 U자 형태의 빌드업이 되었다. 게다가 공수밸런스가 무너져 대량 실점하는 케이스도 늘었으며 특히 수비와 미드필더의 폭이 넓어져 센터백들이 굉장히 힘들어했다.

크루니치 부상 이후 아들리를 레지스타로 활용하면서 돌파구를 찾는듯 했으나 결국 크루니치 부상 복귀 후 또다시 루니치만 쓰면서 노답인 상황을 이어갔다. 챔피언스리그에서는 3번의 경기에서 무득점이 이어졌고 리그에서도 A매치 기간 이후 유벤투스, 나폴리, 우디네세, 레체를 상대로 2무 2패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만들게 되었다. 그동안 피올리를 지지하던 팬들조차 이제는 경질을 원하는 상황이다.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3위로 마치며 유로파 리그로 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시즌 후 경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후 경기력이 좋지 않은 크루니치를 경기에서 완전히 제외하였고 결국 크루니치는 겨울 이적시장에서 팀을 떠났다. 2024년 들어서 그렇게나 쓰지 않던 아들리라인더르스와 투볼란치로 기용하면서 다시금 돌파구를 찾았다. 23-24시즌 주구장창 쓰던 433을 버리고 예전처럼 4231로 돌아갔는데, 로프터스치크를 공미에 쓰면서 중원싸움을 돕게 했고, 라인더르스와 아들리가 후방에서 빌드업을 만들어 나가는 방식을 주로 썼다. 이는 꽤 잘 먹혀들어갔으나 문제는 로프터스치크가 공미로 아예 적응을 못하며 최악의 모습만 보인다는 것. 피올리는 예전에 케시에를 공미로 쓰던 방식을 이용하려고 하고 있지만, 로프터스치크는 그다지 공미에서 잘하지 못하던 케시에보다도 더 부진하다는 것이 문제. 그나마 아들리와 라인더르스가 상당한 존재감을 보여 부진에서 어느 정도 탈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피올리의 스타일을 정리하자면 플랜 B가 없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좋지 않다면 플랜 A를 바꿀 수도 있는 그렇게 전술적으로 경직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바꾸는 타이밍이 너무 늦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다. 분명히 주요 선수들의 역할이나 포메이션의 변경을 통해 분위기를 바꾸고 좋은 성적을 가져왔지만, 그것도 잘 안 풀려도 플랜 A를 고집하다가 마지못해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전반기엔 평가가 좋다가 후반기엔 최악으로 치닫는 등 밀란 시절 내내 평가가 급상승하고 급락하기를 반복했다.

결국 막바지 최악의 전술과 경기력, 결과까지 겹치며 더이상은 버틸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밀란 감독직에서 해임되었다.

4.3. AC 밀란 경력 이후

AC 밀란 감독 막바지에는 말그대로 막장 경기력과 결과가 나오면서 예전의 공공재시절 감독으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많다. 이후 알나스르에서도 형편없는 모습이었기에 감독직을 오래 버티지 못했다.

25-26 시즌을 앞두고 자신과 연이 깊은 피오렌티나로 돌아왔으나 이적자금을 꽤 많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결과로 일관하고 있다. 리그 4경기 만에 2무 2패로 강등권 성적이 나왔고 피오렌티나 팬들은 정말 황당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조기 경질설까지 나오고 있다.

결국 10경기 0승 4무 6패에 리그 20위라는 말도 안되는 성적이
나왔다. 이는 피오렌티나가 1938년 4월 24일 이후 약 87년 만에 세리에 A 최하위를 기록한 것이다. 이에 더는 팀을 이끄는게 불가능하다고 느낀 보드진은 경질을 결정했다.

5. 기록

5.1. 선수

5.1.1. 대회 기록

5.2. 감독

5.2.1. 대회 기록

5.2.2. 개인 수상

6. 여담

  • 선수들과 트러블이 거의 없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많은 밀란 선수들이 피올리 감독은 거리낌 없이 선수들을 대해주고 독려해주며, 친근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 테오 에르난데스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감독을 피올리라고 말할 정도로 피올리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으며, 하파엘 레앙 또한 지금의 자신을 만든 사람이 피올리라고 언급했다.
  • 2023-24 시즌 리그 30라운드 피오렌티나전에서 경기가 끝난 이후, 이번 경기 빅찬스에서 반박자 느린 패스로 풀리식에게 패스를 건네 준 유누스 무사를 정말 잡아먹을 것 같이 무섭게 쳐다보아, 많은 밀란팬들이 처음보는 표정이라며 놀라워하고 있다. 물론 이 경기는 결국 밀란이 이겼기에, 피올리도 장난이라면서 유머스럽게 넘어갔다.#
  • 2018년 3월 다비데 아스토리가 사망했을 당시 ACF 피오렌티나의 감독이었다.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고백했으며 갑작스러운 전화가 오면 불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 AC 밀란에서 Pioli is on fire 라는 응원곡이 만들어졌는데 밀란 팬들에게는 상당히 유명하다.
  • 2021-22 시즌 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순간으로 인테르와의 더비 승리, 라치오전 승리, 즐라탄과 키예르의 라커룸 연설이라고 말했다.
  • AC 밀란에서 감독으로 처음 리그 우승을 한 뒤 밀란의 19번째 우승을 기념하는 문신을 새겼다.
  • AC 밀란과 인테르에서 모두 감독을 한 독특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 경기시 정장에 하얀 스니커즈를 즐겨신는데 상당히 스타일리쉬하다. 키도 크고 나름 꽃중년이라 잘 어울리는 편.
  • 무리뉴와 6번 경기를 치르는 동안 단 한번도 지지 않은 유일한 감독이다. 다만 AC 밀란이 AS 로마보다 강한 스쿼드를 가진 것과 무리뉴의 커리어가 AS 로마를 맡을 때 이전보다 평가가 많이 내려갔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무리뉴가 중도 경질되고 임시 감독을 맡고 있는 다니엘레 데 로시가 로마의 스쿼드로 밀란을 유로파리그에서 2번 이상을 잡아냈기에, 많은 전문가들은 무리뉴의 전술이 많이 퇴보됐음과 동시에, 피올리가 맞춤 전술로 그 당시 무리뉴의 로마를 잡아냈다는 평론들이 많다.

[1] 2011-12 시즌 도중 부임.[2] 1차전 0:0 무, 2차전 3:0 승[3] 독일에서 유행하는 전방압박의 원조가 클롭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4] 물론 이는 클롭이 마인츠에서 선수 생활 은퇴와 동시에 바로 감독직을 맡았기 때문에 선수에서 감독으로 넘어가는 기간에 공백이 없었기 때문이다.[5] 세리에 A 어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