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5-06 18:40:03

소나(리그 오브 레전드)/리그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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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 소나
날짜: CLE 20년 9월 21일

관찰

소나가 조화로운 바람을 타고서 우아하게 로브 자락을 나부끼며 대전당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온다. 양 갈래로 묶은 풍성한 물빛 머리칼은 끝 부분이 금색으로 물들어 있다. 주인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이끄는 듯이 앞에 떠 있는 특이한 모양의 악기만 아니면, 룬테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어여쁜 마법사 아가씨들과 별다를 바가 없다.

소나의 강력한 마법에 공명하여 건물의 기단부가 가볍게 삐걱대며 제자리를 찾는다. 소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더니, 소리가 가시고 난 뒤까지 꽤 오랫동안 가만히 서 있다. 머릿속에 아직도 울리고 있는 그 소리의 조성, 목적,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 여부를 분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굳이 주위를 둘러볼 것도 없이, 건물 내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협연만으로도 이곳에 대해 알고자 하는 정보는 다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눈치채기도 힘들만큼 가벼운 동작으로 악기의 현을 하나 뜯자, 눈앞의 문이 양쪽으로 벌컥 열린다. 소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안으로 들어선다.

회고

자신을 괴롭혀 온 끝도 없는 정적의 구렁텅이만큼이나 깊은 어둠이 주위로 펼쳐졌다. 하지만 에트왈을 손에 쥐고 있는 한 두려울 것은 없었다. 두 팔로 사랑스럽게 악기를 감싸고, 손가락으로는 능숙하게 황동 판과 팽팽히 조율된 현을 어루만지고는 악기를 뺨에 대고 눈을 감은 채 가만히 기다렸다. 이럴 때는 꼭 품 안의 악기가 생명을 지닌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을 지키며 천천히 침착하게 숨을 쉬는 것만 같았다. 사랑하는 악기와 세상에 단둘만 남아, 안전한 누에고치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이런 순간이 소나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이 소중했다.

갑자기 에트왈이 팽팽하게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소나는 무슨 일이냐고 묻듯이 악기의 부드러운 굴곡을 어루만졌다. 하지만 악기가 채 무슨 답을 하기도 하기 전에 허스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나!"

세상 단 한 사람, 음악보다 더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듣고서 그녀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이곳은 데마시아의 저택, 소나는 이 새 저택에 처음 오던 날만큼이나 감탄한 표정으로 열린 문 안을 들여다보며 문간에 서 있었다. 앞에는 레스타라 부벨르가 아름다운 벨벳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보석을 주렁주렁 휘감고 언제나 그렇듯 진한 향수를 뿌린 레스타라가 동그란 얼굴이 행복에 상기된 채 앞으로 걸어왔다.

"어머나 얘! 이제 어른이 다 됐구나, 벌써 숙녀티가 나는걸."

레스타라는 소나를 끌어안고는 몸을 뒤로 젖히며 자세히 살펴봤다.

"정말이지 자랑스럽구나. 널 볼 때마다 가슴이 벅찰 정도라니까. 어서 들어와 앉자."

레스타라가 몸을 돌려 긴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타일 바닥에 신발 굽이 부딪치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소나 역시 흐뭇해하며 늘 자신을 달래주는 악기의 현에 손을 뻗었다.

그런데 손에 닿는 게 없었다.

소나는 에트왈을 찾으려 몸을 돌렸다. 아까 자기도 모르게 옆에다 세워뒀었나?

갑자기 듣기 싫은 불협화음이 울려 퍼졌다. 소나가 몸을 홱 돌려보자, 에트왈이 쏜살같이 복도를 따라 떠오는 게 보였다. 소나가 악기를 불렀지만, 에트왈은 처음으로 그녀의 명령을 무시하고는 레스타라 뒤로 점점 다가가면서 단 하나의 음만 되풀이해서 연주했다.

살기를 띤 소리였다.

소나가 미친 듯이 복도로 뛰어들어갔지만, 레스타라를 따라잡기엔 거리가 너무 멀었다. 그저 소리쳐 경고해 주는 것밖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목구멍을 쥐어짜 봤자 소나는 소리를 낼 수 없는 몸이지 않은가!

에트왈의 현들에서 울려 퍼지던 그 끔찍한 소음을 소나는 절대 잊을 수 없었다. 현의 공명이 공기를 타고 울려가고,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공기의 낫은 이내 레스타라의 몸을 찢어버렸다.

소나가 달려갔을 땐 피 흘리며 바닥에 쓰러지는 레스타라의 몸을 겨우 붙들어 안을 수 있을 뿐이었다. 얼굴을 타고 쉴새 없이 눈물이 흘렀고, 비명을 지르려 해 봤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 복도는 어둠 속으로 묻혀 버리고, 레스타라 곁에 풀썩 무릎 꿇은 소나와 그 곁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누워있는 에트왈만 남았다. 레스타라의 두 눈이 힘없이 떠지며, 쇠약한 목소리로 물었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뭐니?"

이게 무슨 일인지 머릿속이 멍해진 채 소나의 생각이 갈피를 못 잡고 헤맸다. 갑자기 비전 마법이 목구멍을 간질이는 벅찬 감각을 느끼며 눈에 눈물이 고였다. 몸 안으로 들어왔다 빠져나가는 숨결이 몸속 깊은 곳을 간질이며, 숨을 내쉴 때마다 소리를 만들어내려 들었다. 소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자, 레스타라는 말해도 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기를 낸 그녀가 난생처음 말을 하려 입을 벌렸지만, 목구멍에서 숨이 걸리면서 첫 마디를 채 뱉어내기도 전에, 먼 기억 저편에 묻어뒀던 누군가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이 악기는 네게 세상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거다. 어떤 목소리보다 더 진실한 네 목소리가 되어 줄 게다. 우리든 그들이든, 아니 세상 그 어떤 마법도 다신 널 지배할 수 없을 거다.

소나의 손이 거의 저절로 뻗어 나가 곁에 있던 에트왈을 내리쳤고, 귀를 찢을 듯한 불협화음이 터져 나오더니 그녀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소리를 완전히 파묻어 버렸다. 그리고 에트왈 소리가 가실 즈음 소나의 목구멍을 간질이던 낯선 감각도 사라져버렸다. 마법은 이미 가셨고,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레스타라의 음성이 커지며 쩌렁쩌렁 울렸다. "리그에 들어오려는 이유가 뭐야, 소나?"

에트왈의 현이 바르르 떨리며 저절로 연주를 시작했지만, 소나가 손바닥으로 현을 눌러 이를 잠재웠다. 악기는 잠시 팽팽히 맞서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서서히 소나의 손가락들이 현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악기가 자기 말을 듣는지 시험해 보듯 머뭇거리는 느낌이었지만, 곧 질문에 답하듯 도발적인 연주로 발전해 나갔다.

"속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니 기분이 어때?"

소나의 손가락들이 현 위에서 춤을 추며, 고독과 단절감의 음률을 뽑아냈다. 아무리 애를 써도 누구 하나 알아봐 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의 눈길이 늘 그저 스쳐 지나가 버리는 삶을 살아온 이들에 대한 노래였다. 처음엔 수심 어린, 애절한 음률로 시작하더니 점차 모든 걸 부숴버릴 듯, 분노에 찬 크레센도로 커져갔다. 그리곤 이내 수긍하는 톤으로 잦아들더니, 마침내 카타르시스가 찾아왔다.

레스타라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리그에 온 걸 축하해, 현의 명인."

레스타라가 사라지더니, 어둠이 물러가고 아름답게 장식된 한 쌍의 문 앞에 둥 떠 있는 소나의 모습이 드러났다. 이 문이 리그 오브 레전드로 통하는 것임을 소나는 잘 알고 있었다.

에트왈이 안심시키듯 그녀의 손안으로 들어와, 주인의 명령을 얌전히 기다렸다. 소나는 두 번 다시 되돌아보지 않고 문을 통과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