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3 17:34:22

세일통상 야구단

구단명 세일통상 야구단
창단 1988년 1월 27일 ([age(1988-01-27)]주년)
해체 1988년 6월 9일 ([age(1988-06-09)]주년)
구단주 가와노 야스이
감독 권정화
역대 성적[1] 대통령배 봄철연맹전 4위
마산시장기 준우승

1. 개요2. 창단3. 4개월만의 해체4.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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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실업야구팀이었다.

2. 창단

1988년 1월 9일 창단 발표 후 1월 27일에 창단식을 진행했다. 세일통상은 1987년 말부터 창단작업에 들어갔는데 류명선삼성 라이온즈와의 돈싸움에서 승리해 데려오기도 했으며 강기웅(당시 한국화장품 소속) 또한 삼성 라이온즈와 영입경쟁을 벌이는등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8천만원 상당의 선수버스를 구매하고 승리에 따른 수당을 지급하는등 선진화된 프로급 실업야구단을 지향했었다. 해체까지 단 4개월간 야구단에 쏟아부은 돈이 당시 금액으로 4억원에 달했다.##

이 팀에는 송진우서울올림픽 참가를 위해 입단하기도 했던 팀이고[2] 첫 경기에서 송진우의 활약으로 콜드게임승을 이뤄내는 등 나쁘진 않은 전력이었다.

3. 4개월만의 해체

그러나 재정 악화로 창단 4개월만에 해체되었다.당시 기사 1988 서울 올림픽을 위해 세일통상에 반강제로 입단했던 송진우와 최해명은 무소속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 합류했다.

사실 이 팀 창단에 말들이 많았는데 대구에 본거지를 둔 세일통상이라는 회사가 베일에 싸여 있고 경영주인 가와노 야스이에 대한 정보도 아무것도 없다는 점, 특히나 세일통상이라는 회사의 직원이 고작 20명에 공식 자본금이 5천만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일통상 야구단 창단은 경영주 모르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팀이 해체된 것도 돈이 엉뚱한(?) 곳으로 새나가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경영주가 분개해서였고 그 여파로 기업 역시 폐업하고 말았다.

4. 선수단

<colbgcolor=#dcdcdc,#222222> 감독 권정화
(계명대학교)
코치 박병만
선수단 송진우
(동국대학교)
최해명
(연세대학교)
류명선
(계명대학교)
남동률
(계명대학교)
정윤수
(계명대학교)
조명헌
(계명대학교)
이정윤
(영남대학교)
김창일
(포항공업고등학교)
이중석
(포항공업고등학교)
김범석
(포항공업고등학교)
오창훈
(경북고등학교)
임도경
(성광고등학교)
박준호
(성광고등학교)
김해조
(대구상업고등학교)
정창화
(영남대학교)
손태민
박종철


[1] 4개월간 존속하면서 2개대회만 나갔다.[2] 프로야구 초창기 최동원, 김재박, 이선희, 장효조 등의 사례에도 나타나지만 1997년 이전까지 야구 국가대항전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 선수들만 출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야구계에서 국가대표 주전들을 일부러 실업팀에 넣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야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강기웅, 노찬엽, 조계현이 올림픽 참가를 위해 프로 입단을 미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