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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루이스포토시 San Luis Potos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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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기(市旗) | 시장(市章) | ||
| 국가 | | ||
| 지역 | 산 루이스 포토시 | ||
| 면적 | 159.9km² | ||
| 인구 | 976,082명(2020년) | ||
| 도시권인구 | 1,401,795명(2022년) | ||
1. 개요
멕시코 중부에 위치한 산루이스포토시 주의 주도이자 인구가 가장 많은 도시로 멕시코에서 18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이다. 보통은 산루이스라고 줄여서 불린다.도시내 인구수는 850,000명에 달하며, 주내 총 인구가 2백 80만 가량이 되므로 주도에 인구가 많이 집중된 편이라 볼 수 있다. 주내 제2의 도시는 동부에 위치한 시우다드 바예스인데, 인구수가 180,000 가량 밖에 안되므로 확연히 차이가 난다.
2. 역사
산루이스포토시는 1592년 세로 데 산페드로(Cerro de San Pedro)서 은광이 발견되면서 스페인 식민당국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이다. 도시의 이름은 프랑스의 성인인 성 루이와 볼리비아의 은광 도시 포토시를 합성하여 붙였다. 이는 산루이스포토시가 스페인 식민경제에서 은(銀) 생산의 중심지로서 가지는 중요성을 암시한다. 도시는 곧 스페인 제국의 북부 식민 행정, 상업, 광산업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카미노 레알 데 티에라 아덴트로(Camino Real de Tierra Adentro)라는 교통로를 통해 멕시코시티와 연결하였다.1862년 프랑스가 멕시코를 침공하자 산루이스포토시는 멕시코 공화국의 임시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이곳도 프랑스군에 의해 함락당해 치와와로 수도를 또 이전하였다. 1888년 10월, 멕시코시티와 러레이도를 잇는 철도가 개통되어 산루이스포토시를 통과하며 남북으로 여객과 화물 운송이 가능해졌다. 1901년 이래로 포르피리오 디아스 정부에 대한 공개적인 반대가 산 루이스 포토시에서 나타났다. 1910년 대선은 디아스가 상대 후보 프란시스코 마데로를 체포하고 투옥하면서 시작되었다. 탈옥한 마데로는 산루이스포토시 계획을 발표하고 선거 무효를 선언하며 멕시코 국민들에게 정부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것을 촉구하였다. 이는 멕시코 혁명의 시작이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산루이스포토시는 광산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서비스업, 교통 중심지로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경험했다. 이후 공업단지가 조성되고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다국적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3. 경제
산루이스포토시는 멕시코 중부의 주요 산업 중심지로 제조업이 발달해있다. 특히 산루이스포토시는 멕시코의 주요 3개 도시인 멕시코시티, 과달라하라, 몬테레이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구래서 파이낸셜 타임즈는 산루이스포토시를 멕시코에서 세 번째로 가장 큰 경제적 잠재력을 가진 도시이자 가장 투자하기 좋은 곳으로 평가한다.4. 요리
산루이스포토시의 요리는 주로 옥수수를 기반으로 하며 돼지고기와 닭고기 등의 육류를 사용한다. 구운 당근과 감자를 곁들인 치즈 또는 닭고기 타코인 고르디타스 알 파스토르(gorditas al pastor)와 붉은 고추를 넣은 반죽에 볶은 콩, 아보카도, 식초에 절인 할라피뇨 고추, 다진 양파를 곁들인 엔칠라다 포토시나스(enchiladas potosinas)가 가장 유명하다.5. 교통
규모가 꽤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도로교통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동하는 방법은 자가용, 버스, 택시, 우버로 나뉘는데 시내버스는 스페인어가 없으면 이용이 불가능에 가깝고 우버는 좋지만 버스터미널은 출/도착지로 쓸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도시외곽에는 산루이스포토시 국제공항이 있는데 국제노선은 전부 미국행이며, 주 행선지는 DFW와 IAH이다. 국내선 행선지는 다소 빈약한 편이다.[1] 공항이용은 전적으로 택시에만 의존해야 한다. 이용객이 연간 1백만명이 안된다.
철도는 기대하지 말자. 물론 과거에야 중요했지만, 멕시코전역과 비슷하게 많이 쇠퇴해 과거 산루이스포토시역은 철도박물관이 되어 과거의 영광을 짐작할 수 있을뿐이다. 멕시코시티-몬테레이 고속철도가 실현되면 부활이 시작될지도?
6. 관광
- 산루이스포토시 대성당 (Catedral Metropolitana de San Luis Rey) : 1670년에 지어졌고 1730년에 완공된 대성당으로 프랑스의 국왕이자 성인인 루이 9세에게 헌정되었다. 멕시코시티의 과달루페 대성당과 비슷하게 지어졌다.
- 마스카라 국립 박물관 (Museo Nacional de la Máscar) : 멕시코의 가면 무용과 의례 유산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 게레로 정원 (Jardín Guerrero) : 산루이스포토시에서 가장 유명한 정원.
7. 자매도시
[1] 국내 주요 도시인 과달라하라, 몬테레이, 멕시코시티와 모두 도로로 가나 시간및 거리가 고만고만 한 것이 크다. 모두 5시간정도 거리인데, 멕시코는 딱히 4시간의 법칙이 느슨한편이라 버스도 절찬리에 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