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09 08:12:45

비비안 캠벨

<colbgcolor=#000><colcolor=#fff> 비비안 캠벨
Vivian Campbell
파일:비비안 캠벨.jpg
본명 비비안 패트릭 캠벨
Vivian Patrick Campbell
출생 1962년 8월 25일([age(1962-08-25)]세)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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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기타리스트
활동 시기 1977년 ~ 현재
소속 그룹 디오, 화이트스네이크
데프 레파드(1992년~)
악기 기타, 보컬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커리어3. 연주 스타일
3.1. 전반적인 스타일3.2. 디오 시절
4. 사용 악기

1. 개요

파일:MyPhoto_1197814510_0958.jpg
▲ 전성기 시절[1]
명실공히 레전드 헤비메탈 기타리스트들 중 한 명.[2]

디오화이트스네이크를 거쳐 현재의 데프 레파드까지, 가히 레전드 록밴드들만 거쳐온 기타리스트이다. 기타의 마법사 (Magician Of Guitar)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하다.

2. 커리어

북아일랜드 리즈번에서 1962년에 태어나, 15세때 sweet savage라는 밴드에 합류해서 어린 나이에 영국 내에서 신인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3]

그래서 슈퍼 신인으로 관심을 받던 중, 랜디 로즈의 요절로 공석이 된 오지 오스본 밴드의 기타리스트 오디션에 합격한 로니 제임스 디오의 솔로밴드 기타리스트 제이크 E.리가 오지 오스본 밴드로 이적하면서, 공석이 된 디오의 밴드에 22살의 나이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는 디오의 솔로 커리어 전성기의 시작을 알리던 그 유명한 1집 Holy Diver 활동을 막 시작하던 시기로,[4] 이 앨범이 초대박을 터뜨리며, 캠벨 역시 전세계 하드 록,메탈 씬에서 초신성으로 주목받게 된다.[5]

그러나, 1985년 말 ~ 1986년 초 사이에 급여 협상이 결렬되면서 디오에서 어느 정도 한계를 느낀 캠벨은 디오를 탈퇴하게 된다. 캠벨은 본인이 밴드 내에서 은근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급여는 세션을 서는 뮤지션들이 받는 수준으로 밖에 가져가지 못했다. 그로 인해 염증을 느낄 수 밖에 없었으며, 디오의 매니저이자 RJD의 아내였던 웬디 디오와 불화까지 겹쳐, 캠벨 측에서 먼저 탈퇴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게 되었다.[6] 그렇지만, 이 불화는 공적인 면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지, RJD와 웬디 디오가 락 음악의 성직자라는 별명에 걸맞게 착한 심성 및 건강한 마인드셋을 지닌 건 유명했으며, 공적으로 부딪히는 것과 달리 사적으로는 탈퇴 직전이나 탈퇴 후로나 별 탈 없이 좋은 관계로 지내왔다고 한다.

그렇게 디오를 탈퇴한 캠벨은 1년 동안의 공백 기간을 가지던 중에, 머지 않아 또 다시 적시에 제의를 받아들이는데, 바로 1987의 활동 직전 내분의 폭발로 멤버들 모두가 잘려나간 화이트스네이크의 기타리스트 자리에 제안이 온 것이다. 그는 아드리안 반덴버그와 함께 화이트스네이크에 합류해 최전성기 화이트스네이크의 흥행을 타고 명성과 부를 거머쥔다. 하지만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는데, 여러 사적 갈등과 아드리안 반덴버그,데이비드 커버데일사이에서 밴드 작곡 주도권을 가지고 알력이 벌어졌다가 결국 1년 만에 다시 화이트스네이크를 떠난다.

이후 여러 밴드에서 활동하던 캠벨은 1991년 알콜중독 끝에 숨진 데프 레파드의 기타리스트 스티브 클라크의 빈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데프 레파드의 기타리스트로 활동중이며, 잠시 재결성한 씬 리지의 기타리스트로 투잡을 뛰다가 돌아온 후 데프 레파드와 솔로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고, 로니 제임스 디오 사후에는 그를 기리며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캠벨 본인을 비롯해서 디오에 몸담던 멤버들과 다시 의기투합하여 뭉치게 되는데, 그렇게 뭉치게 된 밴드명 역시, 디오 2집 앨범 타이틀인 Last In Line으로 정하면서 이 역시 꾸준히 활동 중에 있다.

3. 연주 스타일

3.1. 전반적인 스타일

블루지함을기반으로 정통 헤비메틀 식 프레이즈를 구사하며 여느 1980년대를 관통했던 록 기타리스트답게 블루지함이 녹아 있는 교과서적인 헤비메틀 프레이즈를 들려준다. 스스로 게리 무어를 최고 중 하나로 뽑았듯이 게리 무어 식 블루스 필링과 공격인 프레이즈가 플레이 전반에 녹아있다. 후술하겠지만 디오화이트스네이크 때와 데프 레파드 가입 후의 플레이 스타일이 조금 다르다.

3.2. 디오 시절

일명 기타의 마법사(The Magician of Guitar)라고 불렸다. 그 유명한 Holy Diver를 비롯해 Don't Talk To Stranger, Rainbow In The Dark, Last In Line 등 디오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들 모두가 캠벨이 재적 중이던 당시에 나온 곡들이다. 디오의 최전성기였던 초기에 맹활약했으며, 공격적이면서도 멜로디컬한 사운드를 뽐내는 곡들이 상당 포진되어있다. 곡 하나 하나가 높은 완성도를 보였으며, 이처럼 곡의 완성도가 높을 수 있었던 건 바로 다름 아닌 캠벨의 직선적인 리프와 수려한 속주, 그의 아이덴티티이자 상징인 블랙 레스폴에서 뿜어져 나오는 웅장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리어 픽업에서의 적절한 톤 메이킹까지 골고루 완벽했기 때문이다.[7]

또한 언급된 곡들 외에 무수히 많은 디오의 히트곡들 뿐만 아니라 블랙 사바스, 레인보우 시절에 디오가 불렀던 곡들도 공연 셋리스트에 들어갔기에 캠벨 본인의 스타일로 재구성하여 연주했는데, 이 시절에는 날이 잔뜩 서 있으면서도 기세가 호방한 프레이즈들이 많았다. 현재와 제일 큰 차이 역시, 현재 데프 레파드에서는 블루지한 스케일 기반을 중점으로 두는 점과 달리, 디오에 재적 중이던 전성기 시절에는 웅장하면서도 카랑카랑한 톤을 최대한 살리면서도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레가토 기법 및 클래식한 멜로디를 기반으로 둔 속주를 내세웠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라고 볼 수 있겠다.[8]

총평하자면, 로니 제임스 디오의 보컬과 함께 밴드 전반의 사운드를 거의 이끌었다고 볼 수 있으며, 급여 협상 결렬 등의 금전적인 사유로 인해 팀을 탈퇴한 후에 들어온 후임 기타리스트들 마저도 캠벨의 빈자리를 모두 메우지 못할 정도로 디오 내에서의 영향력은 대체 불가능하다라고 평해지고 있다.

4. 사용 악기

깁슨에피폰 사에서 시그니처 기타가 출시됐다.
▲ 에피폰 인터뷰영상 ▲ 깁슨 인터뷰영상


[1] 디오화이트스네이크에 몸담았던 시절이며, 지금도 미중년이지만 이 당시에 캠벨은 상당히 마초적인 향을 풍기는 선이 굵은 잘생긴 외모를 지녀서 여자 팬들도 많았고, 얼핏 보면 브라이언 메이와도 닮았다는 평 역시 많았다.[2] 락 불모지인 대한민국 한정으로는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전세계적으로 따지면 랜디 로즈, 에디 반 헤일런에 견줘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위상을 지녔다. 즉, 80년대 초반에 등장했던 앞서 언급한 불세출의 기타리스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세상을 달리 한 이 둘과 다르게 아직도 현역으로서 활동 중이라 메탈/하드 락 씬에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할 정도이다.[3] 이때 밴드의 곡인 Killing Time을 후일 메탈리카가 커버한다.[4]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미 가사와 멜로디, 코드 진행은 디오가 전곡 작사•작곡 둘 다 완성을 했던 상태였지만, 기타 리프와 솔로 파트는 제이크의 것이 아닌, 엄연히 캠벨의 작품이 맞다. 제이크가 오지 오스본의 밴드에 들어가면서 애초에 기타 파트는 공석이었으며, 캠벨이 합류하고 나서야 녹음을 시작할 수 있었고, 심지어 이 앨범의 3번 트랙인 Gypsy라던가, 디오의 상징과도 같은 명곡인 Rainbow In The Dark는 아예 디오와 공동 작곡을 통해 탄생한 곡들이다.[5] 그의 별명인 기타의 마법사 또한, 이 때 생겨난 별명이다.[6] 전반적으로 따지자면, RJD와 웬디가 너무한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캠벨도 잘못이 없진 않았다. 비중에 비해 적은 급여도 급여대로 문제는 맞으나, 캠벨이 웬디와 급여 협상 당시에 부른 금액은 RJD와 동일한 급여를 가져가겠다고 한 것(...). 사실 음악적인 면에서 캠벨이 차지하는 영향력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지만, 밴드 마케팅, 공연 내 기획 및 퍼포먼스 구성, 앨범 컨셉 및 홍보, 스케줄 일정 확보 등 다른 외적인 것들은 RJD와 웬디가 전부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의 잘못인가?'가 아니라 서로가 겪고 있는 상황과 그에 따른 비하인드를 존중하지 못한 결과로 봐야 타당하다.[7] 오지 오스본랜디 로즈가 있다면 로니 제임스 디오한테는 비비안 캠벨이 있다. 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정도로, 그의 후임 기타리스트인 크레이그 골디, 덕 앨드리치 등 거물급 기타리스트들이 그의 빈자리를 메우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디오 재적 당시 캠벨과의 비교를 피해 갈 수 없었다.[8] 가장 유명하고 널리 알려진 즉흥 솔로는 1983년에 연주한 Heaven and Hell인데, 원곡 중간에 나오는 토니 아이오미의 기타 솔로 파트와 정반대의 스타일의 멜로디 구성, 본 솔로가 끝난 후 모든 사운드가 멈추고 캠벨의 기타 연주 사운드로만 3분 가량을 더 채우는 즉흥 솔로는 가히 누가 와도 범접하기 힘들다 싶은 느낌까지 줄 정도로 이 당시 캠벨의 플레이 스타일이 모두 담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