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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효문



卞孝文
출생 1396년
사망 1461년 4월 20일
본관 초계 변씨
초명변계문(卞季文)
일민(一敏)
가족아버지 변남룡, 어머니 염씨, 이복형 변혼[1], 동생 변효경, 외할아버지 염제신[2], 이부형 이천[3]

1. 생애2. 여담

1. 생애

한성부판윤 변남룡의 아들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긴 했었지만 5살 때 아버지 변남룡이 태종 때 완풍대군의 아들 이양우 등이 모반을 꾸미고 있다는 무고를 했다가 그 죄 이복형 변혼과 함께 저자에서 목을 베이고 그 가산은 적몰되기도 했다. 이후 13년 뒤 알성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면서 관직에 든다. 첨지중추원사, 빈전도감제조, 전주부윤 등을 거쳐 직제학이 되었다. 1443년 통신사일본에 다녀왔다. 1444년 <오례의주>를 제안했고, 그에 앞서 최치운, 이세형, 김황 등과 함께 <신주무원록>을 펴냈으며, 정초와 함께 <농사직설>을 편찬했다.

2. 여담

이후로 변효문의 자손이 이어져, 100여년 뒤에 증손이 덕수 이씨와 혼인하여 이순신을 낳는다. 즉, 이순신의 모계 측 조상 중 한명.
[1] 하술되지만 변효문의 어머니 변씨는 변혼에게는 새어머니인데, 새어머니의 전 남편인 이송의 딸과 결혼하였다가 강제이혼되기도 했다.[2] 염제신의 아들이 이인임의 측근으로 활동하다 무진피화 때 처형된 염흥방이다. 즉 변효문의 외삼촌이 바로 염흥방이다.[3] 변효문의 어머니는 무진피화 때 남편 이송(李竦, 이부형 이천의 아버지)을 잃었고 아버지 변남룡과 재혼하면서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한다. 이부형인 이천 역시 외삼촌 염흥방이 몰락했던 무진피화 당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