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4-20 16:10:48

백문불여일견

고사성어
일백 백 들을 문 아닐 불 같을 여 한 일 볼 견

1. 개요2. 유래3. 여담4. 관련 문서

1. 개요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뜻으로, 말 그대로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누군가에게 듣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에서는 현토[1]를 붙여서 "百聞이 不如一見(백문이 불여일견)"으로 보통 읽는다.

2. 유래

時充國年七十餘,上老之,使御史大夫丙吉問誰可將者,充國對曰:「亡踰於老臣者矣。」上遣問焉,曰:「將軍度羌虜何如,當用幾人?」充國曰:「百聞不如一見。兵難隃度,臣願馳至金城,圖上方略。然羌戎小夷,逆天背畔,滅亡不久,願陛下以屬老臣,勿以為憂。」上笑曰:「諾。」

그 무렵 조충국은 70여 살이었다. 황제는 그가 늙었다며 어사대부 병길(丙吉)을 보내 누가 군대를 지휘할 수 있을지 물어보게 하자 조충국이 대답했다. "저(老臣)를 넘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황제가 (다시) 사람을 보내 물었다. "장군이 보기에 강로(羌虜)가 어떻게 나오겠는가? (군사는) 얼마를 출동시켜야 마땅한가?" 조충국이 대답했다. "백번 듣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百聞不如一見) 전쟁의 승패는 멀리서 판단하기 어려우니 신(臣)이 금성으로 달려가서 그쪽 지형도와 진압책을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강융(羌戎)은 약소한 이민족으로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 배반하였으니 오래지 않아 멸망할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저에게 맡기시고 근심을 거두어 주십시오."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허락하겠다."
한서 漢書》〈조충국신경기전 趙充國辛慶忌傳〉
전한 10대 황제인 선제(宣帝) 때 장군 조충국(趙充國)의 일화에서 유래했다. 이민족 강융이 변방에서 날뛰자 선제는 군대를 보내 진압할 작정으로 조충국에게 누구를 보낼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선제는 조충국이 늙었기 때문에 그를 보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자 조충국은 "저를 넘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선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쓸 것이며 얼마의 병사를 투입할 것인지를 묻자, 조충국은 "백번 듣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말하며, 전쟁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 전쟁터로 직접 가서 그곳을 확인하고 말하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선제는 웃으며 허락했다.

조선 초의 명재상 맹사성(孟思誠) 때의 일화에는 이 뒤에 두 줄이 더 덧붙여지게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요, 백견이 불여일각이며, 백각이 불여일행." 말 그대로, "백 번 듣는 것(百聞)이 한 번 보는 것(一見)보다 못하며(不), 백 번 보는 것(百見)이 한 번 생각하는 것(一覺)보다 못하고, 백 번 생각하는 것(百覺)이 한 번 행함(一行)보다 못하다."라는 뜻이다.[2][3]

진서(陳書) 소마하 열전에서는 "천문불여일견(千聞不如一見)"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의미는 '백문불여일견'과 똑같다.

3. 여담

  • 현대 중국어에서도 사용되는데 이와 비슷한 백견불여일간(百見不如一干)이라는 표현도 사용하며, 백 번을 보는 것보다 한 번 행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러시아어에도 정확히 같은 뜻의 속담이 존재한다. 원문은 «лучше один раз увидеть, чем сто раз услышать». 한 번 보는 것이 백 번 듣는 것보다 낫다는 뜻이다. 라틴어에도 비슷한 뜻의 격언이 있다. Auribus oculi fideliores sunt. 눈은 귀보다 믿음직하다는 뜻이다.
  • 무협지에서 말로 할 생각도 없이 무작정 주먹부터 휘두르는 경우에 "백문이 불여일견"이 관용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문답무용과도 관련이 있는 것.

4. 관련 문서


[1] 한문을 읽을 때 그 뜻이나 독송(讀誦)을 위하여 각 구절 아래에 토를 다는 일. ‘隱(은, 는)’, ‘伊(이)’ 따위와 같이 한자를 쓰기도 하였지만, ‘亻(伊의 한 부)’, ‘厂(厓의 한 부)’ 따위와 같이 한자의 일부를 떼어 쓰기도 하였다.[2] 풀어 쓰자면, 귀에 들리는 것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 역시 모두 진실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생각(비판적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며, 생각에서만 끝나면 그것이 정확한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행동으로써 검증하여 정확성을 완성시켜야 하는 것이다.[3] 때에 따라 '불여일각'과 '백각'에 해당하는 '생각' 부분을 생략하여 "백문이 불여일견, 백견이 불여일행"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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