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박영록(朴永綠) |
본관 | 음성 박씨 |
생몰 | 1896년 11월 3일 ~ 1975년 5월 7일 |
출생지 |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1] |
사망지 | 충청북도 음성군 |
추서 | 대통령표창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2. 생애
박영록은 1896년 11월 3일 충청북도 음성군 대소면 오류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2일 밤 충북 음성군 대소면 오산리에 있는 대소면사무소에서 수백 명의 면민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임경순(任暻淳)·김동식 등이 주도하는 시위대열은 면사무소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임백규(林白圭)·김달년(金達年) 등은 면사무소에 돌을 던져 창문을 파괴하였고, 김동식은 의자를 파괴하여 군중의 사기를 높였다. 그들의 격렬한 투쟁에 고무된 군중은 함께 건물을 파괴하고 기구와 문서를 파기하였다.박영록은 이날 밤, 다시 오류리 뒷산에서 민병철(閔丙哲)·박제성 등 동지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로 인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19년 5월 10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소요 및 보안법 위반으로 태형 90도를 받았다. 이후 음성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5년 5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박영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