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23 07:13:08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클럽 경력/FC 바이에른 뮌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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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2002-2015
파일:100006101.jpg
2002년 데뷔 당시
소속팀 <colbgcolor=#ffffff,#191919>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등번호 31
기록
파일:분데스리가 로고.svg
342경기
45득점 68도움
파일:UEFA 챔피언스 리그 로고(가로형 화이트).svg
89경기
13득점 21도움
[1]
파일:UEFA컵 로고 (2005-2009).svg
12경기
3도움
파일:DFB-포칼 로고.svg
49경기
9득점 9도움
파일:DFL-슈퍼컵 로고.svg
2경기
파일:Premiere_Ligapokal_Logo_für_DFL_2005.jpg
6경기
1득점
합산 성적
500경기
68득점 101도움
1. 개요2. 데뷔와 윙어 시절3. 2009-10 시즌 : 중앙 미드필더로의 포지션 변경4. 2010-11 시즌5. 2011-12 시즌6. 2012-13 시즌7. 2013-14 시즌8. 2014-15 시즌
8.1. 이적 사가
9. 평가

1. 개요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FC 바이에른 뮌헨에서의 경력을 소개하는 문서이다.

2. 데뷔와 윙어 시절

파일:external/somosinvictos.com/Bastian-2.jpg
1998년 바이에른 뮌헨의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2001년 바이에른 B팀을 거쳐 2002-03시즌 1군 명단에 들어 정식 데뷔한 이후 2015년까지 바이에른 뮌헨에서 뛰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2002년 11월 13일 RC 랑스와의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 경기에서 프로 데뷔를 치렀다.[2] 이 경기에서 후반 막판, 오트마어 히츠펠트 감독은 슈바인슈타이거를 풀백으로 투입시키며 데뷔전의 기회를 부여했고,[3] 슈바인슈타이거는 2대2로 비기던 와중에 오버래핑 후 크로스로 팀의 3번째 골을 만들어내며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4] 2002년 12월 7일 VfB 슈투트가르트와의 리가 경기에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바이에른은 3-0으로 승리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2003년 2월 4일, FC 쾰른과의 DFB-포칼에서 리바운드된 볼을 중거리로 때려넣어 데뷔골을 넣었고, 이 경기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며 본인의 프로통산 1,2호골을 넣었다. 팀도 8:0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2003년 9월 볼프스부르크와의 경기에서 왼발 중거리슛으로 분데스리가 첫 득점을 넣었다.
초기에는 주로 메멧 숄하산 살리하미지치의 백업 요원으로 출장했으나 강력한 중거리 슈팅과 준수한 드리블 센스를 보여주며 꾸준히 모습을 비추는 로테이션 자원으로 많은 경기에서 활약했고, 2004-05 시즌을 기점으로 점차 주전 자리를 확보한다. 제바스티안 다이슬러의 중요한 순간마다 이어지는 계속된 부상과 창의성을 갖춘 미드필더가 부족한 현실이다보니 슈바인슈타이거의 발재간과 모험성, 창의성은 대체할 수 없는 자원이었던 것. 특히 슈바이니 특유의 중거리 슈팅력이 기복이 조금 있긴 해도 중요한 순간마다 공격 포인트로 잘 터져준 편이다. 2006년 하노버, 브레멘전이나 첼시, AC 밀란전이 그 대표적인 예. 조별리그 유벤투스 FC전에서 왕성한 활동량으로 준수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원정에서는 비록 패했지만 거의 대부분의 공격이 슈바이니를 통해서 돌아갈 지경이었다. 첼시 FC와의 8강전에서 1, 2차전 모두 공격포인트를 올렸으며, 1차전에서는 조 콜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후 끌려가던 경기를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동점골을 성공시켰고, 2차전에서는 1차전 패배를 만회하기 위해 골을 넣어야하는 경기에서 도리어 2:1로 끌려가던 상황에서 파올로 게레로의 골을 만든 (흔히 말하는 0.9골 어시스트) 중거리 슛으로 페트르 체흐 골키퍼를 무너뜨렸다. 바이에른은 경기종료까지 메멧 숄의 추격골까지 더해 필사적으로 따라붙었으나 결국 합산 스코어에서 6:5로 패했다.
2005-06 시즌은 발락-슈바이니-제호-브라쪼 등의 미들진과 여전한 마카이, 피사로의 화력을 앞세워 리가, 포칼 더블에 성공했고, 챔스에서도 유베, 브뤼헤, 라피드 빈과 한 조가 되어 홈에서 전승을 거두며 토너먼트 진출에 성공하지만 하필 만난 것은 천적 밀란 챔스 16강 AC 밀란 원정에서 팀이 2-0으로 쫒기던 상황에서 특유의 필살기인 강력한 중거리슛으로 이스마엘의 골을 만들어냈으나 천적관계는 천적관계였는지 실력도 압도당하는데 골대 불운까지 겹치는 등 4-1로 패했고, 홈에서도 무재배를 거두며 챔스에서는 조기탈락한다.[5][6]
독일 월드컵을 매우 성공적으로 치르고 돌아오니 2006-07 시즌 바이에른은 대혼란 그 자체. 개막전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서 필살기 땅볼 중거리 골을 넣으며 기분좋게 출발했지만 2시즌 연속 더블을 기록한 챔피언의 위용은 온간데 없고 팀 전체적으로 극심한 부진에 빠졌다. 3위까지 주어지는 챔스권 내에도 못 들자 마가트 감독의 입지는 급격히 위태로워졌다. 그나마 웬일로 유럽대항전에서는 무려 인터 밀란에게 1승 1무를 거둔데다[7] 스포르팅에 1승1무,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에 1승1무로 조별리그 1위로 진출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스포르팅 원정에서 35m 거리에서 환상적인 중거리슛을 성공시켜놓고선 10분도 채 되지 않아 퇴장당해 졸지에 챔스 한정 가린샤 클럽에 준회원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이 골이 결승골이 되어 1-0으로 승리! 스파르타크와의 홈경기에서도 환상적인 논스톱 발리 중거리슛으로 달아나는 골을 기록했다.
전반기 막판 그래도 승수는 어찌어찌 챔스권 복귀 가능한 범위까지는 쌓고 챔스에서도 순항하고있으니 바이에른은 마가트를 신뢰한다는 입장을 표명했으나 겨울 휴식기가 지나고도 팀 분위기는 영 시망이었다. DFB-포칼은 아헨같은 하위권 팀에게 일찌감찌 16강에서 발목잡혀 떨어졌고, 16강 상대는 하필 조1위로 올라갔음에도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레알 마드리드고 후반기 첫 경기부터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패하더니, 지난 시즌 2부리그에서 올라온 승격팀 보훔에게도 무승부를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바이에른 보드진은 더는 참지 못하고 1월 21일 마가트를 경질했고, 바이에른의 영광의 시절을 함께했던 오트마어 히츠펠트를 다시 불러오기에 이른다. 16강 레알 마드리드전은 그 유명한 로이 마카이 10초골 사건이 탄생한 그 경기다. 슈바인슈타이거도 나쁘지 않은 경기력으로 팀 승리에 일조했으나 하필 8강에서는 또다시 천적 AC 밀란을 만났지만 원정에서 2:2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번에야말로 복수할 기회인 줄 알았으나 카카의 PK골과 필리포 인자기의 쐐기에 4강행에 또 실패하고 말았다. 팀은 꾸역꾸역 부진을 수습하는 모습이었지만 결국 시즌을 4위로 마감해 다음시즌 챔스 진출에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2007-08 시즌부터는 분노의 영입으로 프랑크 리베리가 합류했고, 이에 따라 슈바인슈타이거는 오른쪽 윙으로 포지션을 바꾼다. - 이 포지션은 독일 국대에서도 이어졌고, 루카스 포돌스키와의 아름다운 호흡으로 이어졌지만 그건 국대에서 얘기고 팀에서 포돌스키는 애국자모드여서 그런지 부진 그 자체. 자신을 데뷔시킨 은사 히츠펠트 아래에서 다양한 공격루트에 굳은 일을 도맡아 몸소 뛰어들며 헌신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2008-09 시즌에는 개막전 함부르크 SV 전 홈경기부터 아름다운 논스톱 발리골을 넣더니 시즌 내내 자신의 커리어하이였던 9골 15도움을 기록했다. 그러나 경기력에서는 여전히 합격점을 받기 어려운 계륵 수준이다 [8] 특히 왼쪽에서는 활발히 중앙으로 파고들며 직접 슈팅을 노리고, 마치 중앙미드필더인 양 종횡무진 반대편 윙을 가리지 않고 뛰어줬던 이전에 비해 오른쪽 측면은 아직 적응이 안됐는지 앞에 두 명 이상만 자리를 막고 있어도 백패스를 남발하는 답답한 모습이 계속되었다. 그 정점이 바로 볼프스전과 FC 바르셀로나 전.[9] 그래도 리베리나 필립 람이 파괴한 측면에서의 볼이 중앙으로 들어오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불쑥 튀어들어와 잘라먹는 플레이로 적지 않은 골을 기록했고, 이 플레이는 국대에서 루카스 포돌스키와의 호흡에도 이어지며 포돌스키의 크로스를 독일이 위기상황일때마다 침투해서 잘 받아먹어주며 포르투갈, 터키전 승리에 큰 공헌을 하게 했다. 스포르팅이나 피오렌티나 전에서도 필살기 오른발 슈팅이 뿜어져 나오며 스텟을 잘 적립했다.

3. 2009-10 시즌 : 중앙 미드필더로의 포지션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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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을 앞두고 여름 이적시장에서 레알 마드리드아르연 로번이 영입됨으로써 포지션이 겹치는 본인의 팀내 입지가 크게 위협받게 되고, 이로 인해 거의 잉여자원으로 전락할 뻔한데다 유벤투스 FC가 그를 강력히 원한다는 이적설이 나돌았다. 그러던 찰나에 슈바이니의 중앙지향적 성향과 패스 능력을 높이 산 반 할 감독은 그에게 중앙 미드필더로의 전향을 권유하게 되고, 슈바이니는 이를 승낙한다. 이것은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했는데, 슈바이니는 이미 펠릭스 마가트오트마어 히츠펠트 시절에도 몇 경기 실험 출전해 미하엘 발락의 역할을 수행해 봤으나 기대 이하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중앙으로 옮긴다고 해도 포지션 경쟁자들은 팀의 주장이자 중원사령관 마르크 반 봄멜과 제니트의 UEFA 컵 우승과 우크라이나의 월드컵 8강의 주역이었던 아나톨리 티모슈크였다. 그렇다곤 하나, 팀의 척추였던 제 호베르투가 빠진 큰 자리를 메꿀 필요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긴 했다.
아직 적응기였던 시즌 초반에는 4위까지 떨어지며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나 이후 폼이 올라오고 반봄멜과 함께 중원을 장악하며 준수한 패싱력을 보여주었으며, 챔스 조별리그 유벤투스 FC 원정에서 4:1 대승을 거두며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며 팀의 승승장구를 이끌었다. 덕분에 여름 이적시장에서 큰 맘 먹고 지른 제니트 출신의 미드필더 아나톨리 티모슈크철저히 벤치 신세를 지게된다(...)
중거리 슈팅도 여전했다. 대표적으로 포칼컵 슈투트가르트전에서 강력한 오른발슛으로 레만을 무너뜨린 것과 도르트문트와의 더비전에서는 강력한 땅볼 중거리슛으로 동점골까지 넣었다. 특히 프리시즌이긴 하지만 아우디컵에서 AC 밀란을 상대로 자그마치 젠나로 가투소알레산드로 네스타를 제끼고 땅볼 중거리를 꽂아넣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8강 2차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3-0으로 팀이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이비차 올리치의 추격골의 발판이 되는 롱패스를 토마스 뮐러에게 성공시켰으며, 중앙과 측면을 오가는 왕성한 활동량으로 상대를 괴롭혔다.[10]
올림피크 리옹과의 4강전에서도 뛰어난 발재간과 패스로 중원장악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1차전에서는 상대 중원의 핵심 제레미 툴랄랑을 퇴장시키는 공을 세우기도했다.[11] 팀은 1,2차전 합계 4-0으로 리옹을 크게 누르며 9년만에 결승전에 진출한다.
리가 마지막 라운드에서 헤르타 BSC을 기분 좋게 3:1로 꺾으며 분데스리가 우승 트로피를 되찾았다. FC 샬케 04의 거친 추격을 막판까지 뿌리치는데 성공한 것이다. 포칼컵 결승전에선 SV 베르더 브레멘을 상대로 좋은 경기를 보여주며 4-0으로 대승을 거두며 우승을 차지했다. 슈바이니는 날카로운 중앙 침투로 팀의 네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결승에선 4강전의 퇴장 징계로 팀의 핵심 프랑크 리베리가 결장한 상태에서 인테르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팀은 다시 한 번 더블을 달성하며 2008-09 시즌의 치욕을 씻게 되고, 슈바이니는 공로를 인정받아 빌트지로부터 Weltklasse(월드클래스)에 선정된다.[12]
결과적으로 슈바이니의 중앙 미드필더 포지션 변경은 선수 본인 뿐만이 아니라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 조국인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도 매우 긍정적인 경기력 향상을 미쳤다. 수많은 우려가 있었으나 슈바이니는 빼어난 활약으로 많은 이들의 우려를 종식시켰다. 반 할 감독 초기에 팀이 휘청거리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반봄멜과 매우 단단하고 안정적인 중원 콤비를 형성했으며, 결과는 바로 리그-컵 더블우승과 9년 만의 챔피언스리그 결승행이라는 성적으로 나타났고 직후 개최된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올라온 폼을 바탕으로 맹활약하며 독일의 3위를 이끌었다.
그의 중앙지향적 성향과 활동량은 오히려 포지션이 아예 중앙에 고정되면서 넓은 시야를 활용한 안정적인 볼배급을 가능케 했으며, 윙어 출신이다 보니 테크닉도 꽤 좋은 편이라 단단하지만 느린 반 봄멜에 비해 볼키핑도 훨씬 뛰어났다. 틈만 열리면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때릴 수 있다는 메리트도 있었다. 초반에는 수비적인 면에서 약점을 많이 드러냈으나,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해결되었고, 이후 슈바이니는 수비형 미드필더에서는 Top3에 포함될 만큼 수비력에서도 큰 강점을 나타내고 있다.

4. 2010-11 시즌

시즌 초반 엄청난 월드컵 후폭풍에 시달리며 팀은 나락으로 치닫는다. 부상을 참고 결승전까지 뛴 로벤은 결국 부상이 악화 되었고, 팀은 전체적으로 컨디션이 떨어졌다. 최전방 공격진의 득점력 부진과 형편없는 수비로 팀은 11위까지 떨어진다.
그나마 슈바이니는 개막전 볼프스부르크전에서 후반 91분 결승골로 2-1 승리를 이끌고, 바젤과의 챔피언스리그전과 브레멘과의 포칼컵에서 홀로 2골씩을 기록하며 바이에른의 승리를 만들어냈다 (브레멘전에서는 32m거리에서 대포알같은 중거리로 때려넣었다) 하지만 아무리 미드필더 한 명이 분전한다고 해도 혼자 순위를 끌어올리는데에는 무리가 있는건 당연지사.
물론 슈바이니의 패스 센스도 눈에띄게 발전하는 등 개인적으로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나 결과적으로 안정적인 수비가 뒷받쳐주지 않는 한 우승경쟁은 힘들다는걸 보여준 셈. 얼마나 막장이었냐면 잠깐이긴 했지만 도중에 중미인 슈바이니가 센터백으로 내려간적도 있었다.
겨울 이적시장을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 CF,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첼시 FC등 유럽의 주요 클럽들과의 이적설이 강력히 나돌기 시작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의 주제 무리뉴 감독이 남아공 월드컵 이후부터 슈바인슈타이거를 강력히 원했다. 여기에 여름에 레알로 이적한 독일 국대 동료 사미 케디라가 "슈바인슈타이거가 레알에서의 생활에 대해 물었다"라고 발언해서 이적설에 불을 지폈던 적이 있다. 또한 맨유 이적설도 굉장히 거셌는데, 특히 슈바이니의 친형인 토비아스 슈바인슈타이거는 맨유의 굉장한 광팬이라 동생 바스티에게 맨유로 가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슈바이니도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EPL의 경기장 분위기를 매우 좋아한다.", "바이에른에서 행복하지만 미래의 일은 어떻게 될 지 확답할 수 없다" 등의 발언을 한 적이 있어 이적설에 무게가 실렸다. 이러한 분위기에 팀의 주장 마르크 판보멀마저 AC 밀란으로 떠난 마당에 슈바이니마저 떠나면 바이에른에게 있어서 큰 타격이 되는 상황이었다. 이적이 기정사실화 되어가던 상황에 슈바이니에게 야유를 보내는 팬들마저 생겨나기도 했다.
바이에른 팬 여러분, 먼저 여러분께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전 바이에른에서 12년동안 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계약을 5년 더 연장했습니다.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그리고 슈바이니는 결국 바이에른에 남는 것을 선택했다. 리가 전반기 마지막 홈경기였던 쟝크트 파울리와의 16라운드 경기 승리 후 홈 팬들앞에서 직접 바이에른과 5년 재계약했음을 밝히며 유니폼에 있는 엠블럼에 키스를 했고, 홈 팬들이 보내던 야유는 뜨거운 환호와 기립박수로 변했다.
다행히 나락까지 떨어졌던 순위는 시즌 중반 쯤 접어들면서 마리오 고메스가 각성하며 골을 마구마구 삽입하기 시작했고, 프랑크 리베리의 폼이 돌아오면서 빠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루이스 구스타부의 합류로 판보멀의 공백을 지우는데도 성공했다.
하지만 선두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는 좀처럼 순위가 떨어지질 않고, FC 샬케 04와의 DFB-포칼 4강전에서도 마누엘 노이어의 선방쇼에 1-0으로 패하고, 챔피언스 리그도 인터 밀란에 1차전을 승리하고 2차전에서도 전반내내 가둬놓고 패며 2-1로 앞서다가도 후반 막판 실점으로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며 16강에서 원정다득점 순위에 밀려 탈락하고, 리가에서도 4위에 머물며 하마터면 유로파리그로 밀릴 뻔 하다가 32R 에서야 하노버를 끌어내리고 3위 자리를 차지해 간신히 플레이오프 자격을 얻는 등, 무관에 그치며 암울한 시즌을 보낸다.

5. 2011-12 시즌

마누엘 노이어, 제롬 보아텡, 하피냐 등등 우수한 자원을 대거 영입한 바이에른은 2년 만에 우승 도전에 나섰고 슈바이니의 기량은 여전히 출중했다. 바이에른은 개막전 삽질 빼고는 거의 모든 경기에서 완벽한 모습을 보였고, 그 중심에는 슈바이니가 있었다. 양질의 패스를 배급하며 바이에른의 공격을 이끌었고, 뉘른베르크전에서는 또다시 중거리슛을 뿜어내며 1골 1도움을 올렸다.
챔스에서도 날아다녔는데, FC 취리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헤딩골을 넣으며 1, 2차전 합계 3:0 완승을 거뒀고, 1라운드 바야레알 원정에서는 토니 크로스와 함께 다소 공격적인 역할을 수행해 2"0 승리를 이끌었다. 화제가 되었던 맨체스터 시티 FC와의 2차전에서도 슈바이니는 야야 투레와의 중원 싸움에서 압승을 거두며 후반에는 거의 맨시티를 가둬놓고 팼다. 후반 중반쯤엔 강력한 중거리도 날렸으나 조 하트가 가까스로 쳐냈다. 경기는 마리오 고메스의 멀티골로 2:0 승리했다.
하지만 이렇던 슈바이니에게 시즌 중반에 크나큰 위기가 찾아온다. 나폴리와의 챔피언스리그 4차전에서 쾨칸 인러와의 공중볼 경합의 충돌로 인해 어깨뼈 골절 부상을 당하게되고, 거의 2~3달간을 쉬어야했다 (처음에는 6주 부상이었으나 점차 악화되었다.)
파일:attachment/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2884552738.jpg
어깨뼈 골절상으로 실려나가는 슈바인슈타이거
슈바이니가 빠진 바이에른의 경기력은 나락으로 치닫았다. 중원 장악도 형편 없었고 볼배급도 원활하지 않았다. 중원사령관을 잃은 바이에른은 토니 크로스가 중미로 내려오고 토마스 뮐러를 다시 중앙으로 돌렸으나 전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리고 선두자리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다시 빼앗겼다.
후반기 묀헨글라트바흐전에 복귀해서 만회골을 터뜨렸으나 팀의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후에도 부상 후유증과 계속되는 잔부상으로 인해 결장이 잦았으며 실전 감각도 점차 떨어져갔다. 그로 인해 이전 같은 날카로운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 딱 평타만 쳤다.
FC 바젤와의 챔스 16강 2차전에서 오랜만에 후반전에 복귀해들어와 아르연 로번의 쐐기골을 멋진 킬패스로 어시스트했고, 마르세유와의 8강 1차전 원정경기에도 출장해 괜찮은 폼을 보여줬다. 2차전은 경고누적으로 결장.
그러나 잔부상은 계속되었고 가장 중요한 데어 클라시커를 앞두고 또 부상, 결국 슈바이니가 빠진 상태에서 치러진 30라운드의 분데스리가 우승을 건 리가경기에서 바이에른은 1-0으로 패하며 분데스 우승은 물건너가게 되었다.[13] 역시 도르트문트와의 포칼컵 결승에서도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팀의 대패를 막지 못했다.
천만 다행으로 레알 마드리드와의 챔스 4강전을 앞두고 복귀해 좋은 수비력을 보여줬고, 날카로운 중거리슛도 쏘는 등 평타 이상은 쳤다. 2차전도 120분 풀타임 출장했으며,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마지막 5번 키커로 니서서 이케르 카시야스를 무너뜨리며 레알 마드리드를 꺾고 2년만에 챔피언스 리그 결승 무대에 다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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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첼시 FC와의 결승전에서 승부차기 다섯 번째 키커로 나와 치명적인 실축을 범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실축 때문에 바이에른 뮌헨은 홈에서 첼시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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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축 이후 자책하는 모습.
이날 슈바이니의 폼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바이에른이 첼시를 가둬놓고 패도록 좋은 점유율 확보와 공격 전개를 보여줬다. 그러나 연장전 아르연 로번이 페널티킥을 찰 땐 차마 못쳐다보고 자기편 진영에서 뒤돌아있는 등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결국 5번 키커로 나서서 기어이 불안한 징조가 현실로 다가오고야 말았다. 잠깐 멈칫거리면서 찬 슈바이니의 슛이 골퍼스트를 정확히 때리고 튕겨나가버린 것(..)[14] 결국 첼시의 드록바가 성공시키며 비극적인 PK패를 당하고 말았다. 결국 2011-12 시즌 팀은 분데스리가, 포칼컵, 챔스 3개 대회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치는 준우승 트레블의 비극을 겪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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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슈바인슈타이거는 챔피언스리그 종료 직후 엄청난 결례를 범하고 만다. 그것도 상대가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 첼시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배 후, 바이에른 선수들이 단상으로 차례대로 준우승 메달을 받으며 지나갔다. 플라티니 회장 바로 옆에 가우크 대통령도 비록 패했지만 바이에른 선수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건네며 그들을 격려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오직 슈바인슈타이거 혼자만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지 않았다..관련링크
결국 독일 내부에서도 슈바인슈타이거는 엄청난 구설수에 올라가고 말았다. 안 그래도 승부차기 마지막 주자로 나와서 실축하는 바람에 바이에른 뮌헨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놓치게 한 것까지 겹치면서. 뭐 본인 해명에 따르면 당시 패배감에 젖어 가우크 대통령이 손을 내민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고 했고 사과도 했다. 영상으로는 실축 직후 눈물을 흘리며 유니폼에 얼굴을 묻었고, 단상에 올라갈때까지 얼굴을 들지 못했다. 은메달을 받았을때도 차마 목에걸지 못하고 그냥 손으로 잡고 고개를 떨구고 내려왔는데 제일 끝자리에 있던 가우크 대통령이 손을 내민것을 못봤을 법도 하다. 어쨋건 위에 언급했듯 슈바이니도 즉각 사과를 했고, 가우크 대통령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더이상 슈바이니를 갈구지 말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하며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담으로 이듬해 2012-13 포칼컵 결승전이 열린 베를린 올림피아 슈타디온에서 둘은 재회했고, 시상식 단상에서 가우크 대통령과 슈바이니는 웃으며 악수했다.

6. 2012-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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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 트레블의 아픔을 딛고 다시 시작한 2012-2013 시즌, 여전히 꾸준히 선발 출장하여 골과 어시스트를 쏟아 붓고 있다. 특히 지난 시즌에 비해 눈에 띄게 물오른 골 결정력을 과시하며 팀의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리그 2라운드 슈투트가르트전과 3라운드 마인츠전에서 윙과 중앙을 오가는 활동량을 보이며 각각 1득점을 올렸다.
챔피언스리그 첫 경기 발렌시아전에서 로벤의 패스를 강력한 무회전슛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기록했고, 주말 경기 함부르크원정에서도 크로스의 크로스를 다이빙헤딩으로 연결하며 선제골을 기록해 3:0 승리를 이끌었다.
슛 정확도도 물이 올라 팀의 전담 프리키커를 맡았고, 샬케와 릴, 레버쿠젠전에 각각 프리킥 골을 기록했다. 호펜하임 원정에서는 프리킥으로 골대 같은곳만 두 번 때렸다. 또한 이번에 새로 영입된 하비 마르티네스와 지난 시즌 파트너였던 루이스 구스타부와도 찰떡콤비를 이루며 바이에른 경기때마다 그라운드를 초등학교 운동장마냥 누비고 있다. 그야말로 중원의 지휘자.
특히 이 시즌의 슈바이니와 하비 콤비는 만나는 클럽 팀마다 중원을 아작내버리며 하인케스 전술의 핵심인 게겐 프레싱과 빠른 공수전환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포칼컵 8강에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중원을 쓸어버리며 지난 시즌 패배를 설욕했고[15], 안드레아 피를로-마르키시오-아르투로 비달의 MVP 라인을 앞세운 유벤투스를 상대로도 중원 싸움에 우위를 점하며 유로 2012 이탈리아전 패배를 어느 정도 되갚아주는데 성공했다.
특히 2차전에서는 막판에 빠른 퍼스트 터치로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와 피를로를 한 번에 따돌리며 킬패스를 찔러 피사로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다. 마리오 만주키치의 선제골도 슈바이니의 날카로운 프리킥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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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피를로와의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슈바인슈타이거
리가 28라운드, 프랑크푸르트 원정에서 필립 람의 크로스를 환상적인 백힐슛으로 연결하며 결승골을 넣었다. 이 골로 팀은 분데스 역사상 최단기간 우승을 확정하며 3년만에 분데스리가 타이틀을 되찾아온다.
그리고 가장 화제를 모았던 바이에른 뮌헨과 바르셀로나의 챔스 4강전!!! 슈바이니와 하비 콤비는 이번 경기에서도 완성형 티키타카를 구사하는 바르샤의 중원을 파괴하며 1,2차전 합계 7-0 으로 털어버리는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슈바이니는 1,2차전을 통틀어 가장 많은 태클과 가로채기를 성공했으며 1차전에서 아르연 로번의 세번째 골을 어시스트했다. 2차전에서도 로벤과 람에게 골이나 다름없는 킬패스를 성공시켰지만 (1차전에서 삽질한)피케의 영혼의 태클에 막히며 추가 어시스트에는 실패했다.[16] 여담으로 이날 슈바이니와 하비에게 꽁꽁 묶인 리오넬 메시는 유효슈팅을 단 한개도 날리지 못했다.
아래는 슈바이니-하비 콤비가 바르샤 중원을 아작내는 참고 영상. 심지어 홈도 아니고 캄프 누 원정에서 치른 경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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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2013년 5월 26일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상대는 레알 마드리드를 떨어트리고 올라온 최대의 라이벌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슈바이니는 전반에 도르트문트의 오버페이스로 나오는 압박에 고전하며 거의 경기장에서 지워졌으나,[17] 후반 시작과 동시에 차츰 존재감을 비추기 시작했고 전반전 오버페이스 압박 탓에 도르트문트는 차츰 체력적으로 밀렸다. 슈바이니-하비 듀오는 다시 한 번 중원을 씹어먹으며 거의 반코트 경기로 도르트문트를 가둬놓고 패기 시작했고, 후반 막바지에 람의 패스를 논스톱으로 중거리를 날렸으나 이날 약빨고 경기한 바이덴펠러가 가까스로 쳐냈다. 경기는 후반 44분 아르옌 로벤의 드라마틱한 결승골로 2대1 승리를 거두게 되고 슈바이니는 생애 첫 빅이어를 들어올린다. 작년 첼시 FC전 패배의 원흉이었던 로벤과 슈바이니가 1년만에 다시 올라온 결승 무대에서 승리 후 울면서 포옹하는 장면이 나름 감동적.
그 후 6월 2일 슈투트가르트와의 포칼 결승전에서도 상대의 거친 육탄공격에 발목 부분을 수없이 다치며 고전했지만, 마리오 고메즈의 쐐기골을 만든 롱패스를 뮐러에게 찔러줬고, 이비셰비치의 골이나 다름없던 쇄도를 태클로 저지하는 등 맹활약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결국 바이에른은 리가, 챔스에 이어 DFB-포칼마저 제패하며 독일 클럽 사상 최초로 트레블을 이루는 쾌거를 맛본다.
2013년 세계 최강의 중앙 미드필더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다. 빌트지에서 무려 레알 마드리드의 전설 지네딘 지단이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슈바이니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인터뷰했다.(Schweinsteiger ist mein Lieblings ; Lieblings는 영어의 Favorite의 의미이다.)
또한 환상적인 중원 장악과 준수한 스텟에 팀의 트레블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3년 전에 이어 2013 독일 올해의 선수에 다시 한 번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2013 UEFA 베스트11에는 마르코 로이스, 가레스 베일등의 윙어들에게 표가 밀리다보니 근소한 차이로 안타깝게도 선정되지 못했다.[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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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의 아픔을 딛고 기어이 빅이어를 들어올린 슈바인슈타이거. 저 빅이어가 작년 본인의 실축으로 홈에서 놓쳐 눈물을 삼켜야했던 트로피였다.

7. 2013-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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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 과르디올라 감독의 부임 이후 팀 기본전술이 4-1-4-1로 전환됨에 따라 이전보다 한층 수비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2011-12 시즌처럼 중간에 3개월 정도의 긴 공백기를 가진데다 한 시즌 내내 부상에 골골거리느라 이전 시즌같은 전성기 시절 포스는 많이 죽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인 순간마다 한순간의 침투나 프리킥으로 8골을 몰아쳤을 정도로 클래스는 여전하다는걸 보여줬다.
12/13시즌 최전성기를 달렸던 것에 비해 폼이 꽤 떨어졌는데, 지난 시즌 DFB-포칼 결승에서 당한 발목 부상 후유증이 너무 심했다. 과르디올라 컨피덴셜에서도 이때 상황이 자주 나오는데, 슈바인슈타이거는 일정 기간동안 직선으로 뛰는 트레이닝만 해야했고, 하필 발목부상으로 인해 방향전환에 계속해서 애를 먹어야했다.
결국 부상여파로 프리시즌 경기에 대부분 결장했다. 도르트문트와의 독일슈퍼컵도 후반에 잠깐 교체 출장해 뭐 좀 해보지도 못하고 팀의 패배를 지켜봐야했다.
다행히 리가 개막 때에 맞춰 회복해서 3라운드까지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1. FC 뉘른베르크전을 모두 선발 출전해 여전한 모습을 보여줬고, 아일랜드전 월드컵 예선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4라운드 프라이부르크전에서 후반 막판 깊은 태클을 당해 그나마 갓 복귀한 슈바이니는 다시 발목 부상이 재발하고 말았다. 결국 리벤지 매치였던 첼시 FC와의 UEFA 슈퍼컵도 결장했다.(다행히 경기는 챔스 결승의 완전 반대 드라마가 나오며 바이에른 뮌헨이 승리했다)
하노버전에서도 결장했으나 다행히도 6라운드 샬케 원정에서 선발로 복귀해 선제 헤딩골을 기록한데다 수차례 양질의 패스를 보여주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팀도 4:0으로 크게 이겼다.
2013년 10월 15일 스웨덴과의 월드컵 지역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 축구 사상 12번째 센츄리 클럽에 가입하는 영광을 안았다. 경기는 독일이 3:1로 승리.
CSKA 모스크바와 맨체스터 시티, 볼프스부르크전에서도 연이어 선발로 나서며 여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맨시티전에서는 진공청소기같은 모습을 보여주며 야야 투레와의 중원 싸움에서 압승을 거뒀고, 바이에른이 높은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도록 홀딩 역할을 환상적으로 수행해주었다.
하지만 티아고 알칸타라마리오 괴체의 부상으로인한 공백으로 슈바이니는 본인에게 익숙지 않은 공격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뛰게 되자 포지션이 다소 애매해지며 약간 다운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사이에 토니 크로스필립 람이 자신의 볼배급 역할까지 번갈아가면서 대신 수행하자 더더욱 역할이 애매해지며 플레이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모든 바이에른 공격의 시발점이었던 슈바이니가 이번 시즌에는 중원에서 자리를 못잡고 헤메는 모습을 자주 보여줬다. 아무래도 4-2-3-1 바이에른의 더블볼란치 전술의 핵심 역할이었던 슈바이니가 4-1-4-1로 변화된 과르디올라 체제에 얼마나 빠르게, 어느 위치에 적응할지가 최대의 변수라고 할 수 있겠다. 최근에는 강력한 무회전슛을 장착하고 돌아온 다비드 알라바에게 프리킥 키커 자리까지 내줬다. (근데 사실 프리킥 정확도는 여전히 슈바이니가 훨씬 좋다.)
그나마 FC 빅토리아 플젠과의 챔스 3차전 홈경기에서 마리오 괴체의 땅볼 크로스를 환상적인 퍼스트터치로 방향을 돌리며 앞의 수비수 두 명 사이에서 반박자 빠르게 단 두 번의 터치로 추가골을 넣었다. 그외에도 경기내내 좋은 수비력과 패싱력을 보여주며 자신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헤르타 BSC전 홈경기에서도 날카로운 프리킥으로 마리오 만주키치의 헤딩골을 만들어냈다.
2013년이 거의 끝나가는 상황에서 챔스 조별리그와 분데스리가에서 모두 선두를 달리고있다.
리가 중반으로 접어드는 11라운드 현재 발목부상이 재발하여 재수술을 받게되었고, 당분간 결장이 불가피할것으로 보인다. 6주 아웃이라는 얘기가 있지만 정확한 복귀시점은 아직 미지수. 이로써 2013-14 분데스리가의 판도가 달려있는 '데어 클라시커', 도르트문트 원정을 뛸 수 없게 되었다.
12월 16일,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아 빠르게 러닝 훈련에 복귀했다. FIFA 클럽 월드컵출전은 약간 무리이고 리가 후반기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월베 선정이 유력시되었으나 발롱도르 시상때에 공개된 2013 FIFPro 월드 XI에는 여전히 슈바인슈타이거가 아닌 사비 에르난데스가 선정되어 이거 인기투표 아니냐는둥 많은 비난이 흘러나왔다. 객관적으로도 차비는 역대 기록한 업적을 보면 언터쳐블이지만 2013년 한정으로는 슈바인슈타이거의 업적이 훨씬 뛰어났기 때문. 슈바이니가 중원에서 이끄는 바이에른은 5관왕을 달성했고, 특히 트레블을 달성하던 하인케스의 바이에른때 슈바이니가 빠진 경기는 팀 벨런스가 크게 휘청거렸을 정도로 그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심지어 둘의 맞대결이었던 바이에른과 바르셀로나의 챔스 4강전에서도 중원싸움에서 차비를 완전히 압도한 모습을 보여준 슈바인슈타이거였기에 이번 기회에 선정되지 못한 것에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클듯 하다.
이미 FIFA 발롱도르는 이전 선정방식이던 유명 저널리스트들의 투표가 아니라 각 팀 주장, 감독들도 투표할 수 있게 방식이 바뀐 FIFA 통합 발롱도르는 모든 리그를 다 봤을리 만무한 객관성이 떨어지는 표심 때문에 공신력도 떨어지고, 인맥도 많이 작용하기때문에 FIFA는 스스로 상의 권위를 깎아내리는 짓을 하고있는 셈이다. 작년 베스트11에도 훨씬 뛰어난 활약을 펼친 필립 람 대신 다소 삐걱거린 모습을 보여준 다니 아우베스가 그대로 베스트 11에 올라 가루가 되도록 까였었다.
그리고 긴 공백을 뒤로하고 드디어 함부르크 SV와의 DFB-포칼 8강전에 교체출전으로 복귀하여 역시 클래스가 살아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팀은 5:0으로 대승을 거두며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아스날 원정은 결장했으나 이어진 하노버 96 원정에서 오랜만에 선발출전해 75분을 뛰었다. 오랜 시간 부상후 복귀여서 폼은 저하되어 보였으나 역시 넓은 시야와 클래스는 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절묘한 패스로 티아고 알칸타라의 추가골을 어시스트했다. 팀도 4:0으로 대승.
FC 샬케 04와의 23라운드 홈경기에서도 선발출장해 80여분을 뛰었다. 바이에른이 상대를 압도하도록 점유율을 확보하는데 중심 역할을 잘 해줬고, 팀도 5:1로 크게 이겼다. 후반에는 골문 구석을 향한 논스톱 인사이드슛으로 복귀골을 넣을 뻔도 했으나 이날 선방쇼를 펼친 페어만에게 막혔다.
볼프스부르크 원정은 로테이션으로 결장하고 주중에 치러진 아스날 FC와의 16강 2차전 홈경기에 선발로 출장해 풀타임을 뛰며 맹활약했다. 지난 시즌 본인과 프랑크 리베리의 부재로 뜬금패를 당했으나 이번에는 깔끔한 터치로 복귀골을 넣었고, 강력한 중원 장악력을 보여주는 등 맹활약했다. 바이에른은 1-1 무승부를 거두며 합계스코어 3-1로 8강행에 성공했다. 슈바인슈타이거는 이 경기 최우수 선수(Man of the Match)로 선정되었다.
이어진 레버쿠젠과의 홈경기에서도 주장 완장을 차고 선발 출장해 맹활약을 펼쳤다. 팽팽하게 맞서던 전반 막판 절묘한 크로스로 마리오 만주키치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했고, 후반 시작 직후 그림같은 프리킥으로 베른트 레노를 꼼짝 못하게 만들며 득점에 성공, 팀의 2-1 승리를 견인했다. 27라운드 헤르타 BSC 원정에서도 여전한 모습을 보여줬고, 절묘한 패스로 마리오 괴체의 득점을 만들어내며 팀의 3:1 승리를 만들었다. 이 승리로 바이에른은 지난시즌 28라운드에서 확정한 최단기간 우승을 다시 한 번 경신하며, 유럽 빅리그 사상 초유의, 3월에 우승을 확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대망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 공-수 양면에서 빼어난 활약을 보여주었고 특히 맨유의 역습을 날카로운 태클로 조기에 차단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네마냐 비디치에게 선제골을 허용한 이후 후반 초반에는 마리오 만주키치의 원터치 연결을 그대로 환상적인 왼발 논스톱슛으로 연결해 다비드 데 헤아를 무너뜨리고 팀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런데 경기 종료 직전 웨인 루니에게 태클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하고 말았다.[19] 졸지에 슈바이니는 가린샤 클럽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사실 슈바이니의 가린샤클럽 가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게 2006-07 챔피언스 리그 스포르팅 리스본 원정에서도 전반 17분 35m 중거리슛으로 환상의 선제골을 기록해놓고선 10분도 채 되지 않아 거친 태클로 경고누적 퇴장당한 적이 있다.
그리고 잔여 시즌동안 고질적인 발목 부상에 고생하며 그냥 그럭저럭 큰 존재감 없이 평타만 쳤다. 3월말 우승 확정 이후 바이에른은 이전까지 53경기 무패를 달리다가 우승 확정후 10경기 4승이라는 극악의 부진에 빠지는 등 팀 전체적으로 동기부여가 사라져서 순식간에 팀이 휘청휘청거렸으니 슈바이니 혼자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기대 이하였던건 사실. 레알 마드리드와의 4강 1, 2차전과 30라운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전에도 나왔으나 워낙 역습에 휘둘리거나 세트피스에서 잇따라 실점하며 패스만 줄기차게 돌렸지 뭐 좀 해보지도 못하고 이번 시즌 가장 중요했던 저 세경기를 모두 패했다. 복수전이었던 도르트문트와의 포칼컵 결승과 리그 최종전 슈투트가르트전에는 부상으로 결장했다. 결국 바이에른은 더블로 시즌을 마감하는데 만족해야 했다.
시즌 막판의 부상 때문에 조마조마했으나 다행히 2014 브라질 월드컵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23인 최종 명단에 승선했다.

8.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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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종료 후 필립 람이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하면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직을 맡게 되었다.
중원에서의 파트너였던 토니 크로스가 레알로 떠나면서 다시 하인케스 체제에서처럼 중원에서 볼배급 룰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혹은 여러 친선전에서 중앙 미드필더로 실험중인 다비드 알라바와 콤비를 이룰 가능성도 있다.
브라질 월드컵을 치른 독일 대표팀 멤버들은 8월 첫 주까지 휴가를 즐기고 있기에 필립 람, 제롬 보아텡, 마누엘 노이어 등과 더불어 프리시즌 평가전과 텔레콤컵에는 불참했다. 미국 투어 중 포틀랜드에서 합류해 미국 MLS 올스타전에 후반에 잠깐 교체투입됐는데, 친선전임에도 불구하고 MLS팀이 굉장히 거칠게 나와 슈바인슈타이거가 들어가자마자 부상당해 교체아웃되었다. 과르디올라는 그야말로 빡쳐서 상대 감독의 악수도 거부하는 등 분위기도 안좋아졌다.[20]
8월 7일 있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레전드매치에서 하프타임에 폴 스콜스의 사인과 유니폼을 요청했고, 스콜스는 월드컵 우승까지 한 세계적인 선수가 자신의 유니폼을 원한다는 사실에 매우 흡족해하며 자신이 입은 유니폼에 사인해서 주었다는 훈훈한 일화가 알려졌다. 그런데 딱 하나뿐이었던 준비해온 마킹 유니폼을 슈바이니에게 주는 바람에 스콜스는 후반에 등번호가 마킹되지 않은 예비 유니폼을 입고 뛰어야했다고 한다.
결국 무릎 통증이 악화되어 슈퍼컵도 결장했고 몇 주 동안 결장이 불가피해보인다. 2013-14 시즌 1년 내내 고질적인 무릎 부상과 발목 통증에 시달렸던 슈바이니는 월드컵이야 단기간 토너먼트인데다 조국을 대표하는 대회이니 정신력으로 끝끝내 버티면서 결승전까지 전부 소화했지만 시즌 내내 그러다간 선수 생명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현재 어떠한 훈련도 하지 않는 채 진단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 MLS 올스타전에서 왜 빡쳤는지 알만하다.
9월 A매치를 앞두고 소집된 독일 국가대표팀 컨퍼런스에서 요아힘 뢰브 감독은 은퇴한 필립 람의 뒤를 이어 슈바인슈타이거를 주장으로 결정했음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클래스도 클래스지만 2004년 첫 소집되어 어느덧 대표팀 10년차인 관록의 중원사령관인 데다 팀, 지역감정 구분없이 타 팀 선수들이나 후보선수들까지 일일이 챙겨주며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진정한 리더이기 때문. 이 점은 브라질 월드컵에서도 잘 보여주었다.
한편 올스타전에서 당한 부상은 장기부상으로 악화되었고, 현재 웨이트 트레이닝 외에는 어떤 훈련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재활에만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한스-빌헬름 뮐러-볼파르트 팀닥터의 진단에 의하면 내년 1월에나 복귀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갓 이적해 온 샤비 알론소가 슈바인스타이거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다. 일단 8라운드 베르더 브레멘전을 앞두고 팀 트레이닝에 복귀해 30분정도 트레이닝을 했다는 희소식이 들어왔다. 예상 복귀기간을 확 단축시켜버리는 슈바이니의 짐승같은 회복력을 기대해야 할 듯. 중원에서 슈바인슈타이거 - 사비 알론소의 조합만 완성된다면 다시 한 번 트레블을 노리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닐 정도의 강력한 조합이 될 것임이 자명하기에 팬들과 선수단도 빨리 슈바이니가 복귀해 폼을 회복해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2014 발롱도르 후보 23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어느덧 2010년부터 5년 연속이다. 하지만 현재 장기부상으로 전반기를 통째로 쉬고있다보니 작년처럼 Top 10에 들기는 힘들어보인다. 결국 엄청난 회복력을 보이며 여러 유력지들로부터 복귀가 임박했다는 소식이 속속 들리고 있다. 예상 복귀시점은 호펜하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슈바이니의 복귀가 임박하자 다비드 알라바필립 람이 장기간 부상을 끊으며 복귀하지도 않은 슈바인슈타이거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는데.. 드디어 호펜하임전에서 76분 괴체와 교체되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2014-15 시즌 복귀를 알렸다. 몸 풀 때부터 홈팬들은 슈바이니의 이름을 연호했으며 드디어 괴체와 교체투입되자 7만여 홈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복귀하는 장면은 장관 그 자체. 그리고 몇 분 안되어 제바스티안 로데의 바이에른 데뷔골을 어시스트하며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부상으로 후반기를 거의 통으로 날렸음에도 포포투 선정 2014 최고의 선수 100인에 22위로 선정되었다. 월드컵 우승에 온몸을 바친 게 평가에 크게 작용한 듯.
마인츠 원정을 끝으로 바이에른의 전반기 일정이 모두 끝난 현재, 슈바인슈타이거의 기세는 어느 때보다 좋아보인다. 최악의 부상악령으로 알론소 외에 클래스 있는 중원 사령관이 전무했던데다 그 알론소마저도 혹사에 시달리고 있던 때에 복귀해서 그간의 공백이 무색하지않게 패스, 탈압박, 수비 등등에서 여전한 모습을 보여줬고, 17라운드 마인츠전에서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 사비 알론소마저 부상으로 빠진데다 선제골까지 전반에 헌납했으나 곧바로 골문 상단을 정확히 노린 환상적인 직접프리킥 골로 팀을 구해내고 자신도 복귀골을 신고했다. 바이에른은 2-1 역전승을 거두며 14승 3무로 단독1위를 질주중이며, 챔스에서도 맨시티전 10명이서 싸우다 아쉽게 역전패한 그 1패만 빼면 전승을 달리고있다.
후반기도 볼프스부르크전 충격패를 빼고는 순항중이지만 중요 경기마다 샤비 알론소와 콤비를 이루는 경기에서 유난히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게 앞에 언급했던 볼프스 원정과 UEFA 챔피언스 리그 16강 1차전이었던 샤흐타르 도네츠크 원정. 슈바이니-알론소 콤비는 2013-14시즌 슈바이니-토니 크로스 콤비가 지녔던 단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데, 둘의 동선이나 성향이 비효율적으로 너무 겹친다. 마치 따로따로 떨어졌을땐 최강으로 군림하던 스티븐 제라드프랭크 램파드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둘의 조합이 안 맞는 것과 비슷하다. 알론소가 수비형미드필더 자리를 맡고 슈바인슈타이거가 평소보다 전진하는 것으로 역할을 분담하는데 문제는 이렇게 되면 슈바이니가 평소 포지션이 아니다보니 제 기량을 발휘를 못한다는 것. 마찬가지로 알론소를 전진시키면 슈바인슈타이거야 뭐 본래 포지션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알론소도 탈압박이 딱히 좋은 편이 아니라서 장점이 상당부분 반감되어버린다. 유프 하인케스식 4-2-3-1이었다면 둘을 동시 가동하는게 엄청난 효과를 볼지 몰라도 이미 4-1-4-1 혹은 다이아몬드 중원과 플랫 3백을 바탕으로 하는 3-4-3 체제가 정착되어버린 펩 체제하에서는 볼란치가 한 명만 있으면 되다보니 감독의 스타일상 두 선수들 한꺼번에 다 잘 쓰기는 어려운 환경인 셈이다.
샬케전 무재배 이후 4연승 20득점의 쾌속행진을 하는 동안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샤비 알론소와 슈바인슈타이거를 번갈아가며 선발출전시키고 다른 한명은 벤치에 뒀는데, 알론슈 조합을 가동시키는 것보단 둘을 따로따로 쓸 때 확실히 경기력이 좋지만 그렇다고 한명을 벤치에 두자니 슈바인슈타이거나 사비 알론소급 네임벨류의 선수를 선수 불만을 고려하면 계속 벤치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니 미칠 지경이다. 앞으로의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2월 27일에는 팀 창단 115주년 기념 경기였던 쾰른전 홈경기에서 높은 타점의 강력한 헤딩슛으로 선제골을 기록하는 등 1골 1도움의 맹활약으로 팀의 4-1 승리를 이끌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 FC 포르투 전에서는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고, 팀은 원정에서 3대 1로 대패했다. 2차전 홈경기에서 6대 1로 대승을 거두며 4강 진출에 성공했다. DFB-포칼 4강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전에서는 바이에른은 1대 1 무승부를 거두었고, 이어진 승부차기 승부 끝에 탈락했다.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 FC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1,2차전 모두 선발출전했으나 팀은 합계점수 5대 3으로 패해 탈락했다. 1차전에서는 팀 전체가 부진한 경기력으로 3대 0으로 패했으나, 2차전 홈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으로 3대 2 역전승을 거두었고, 슈바인슈타이거는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리그 32라운드 헤르타 베를린과의 홈경기에서 크로스를 받아 강력한 슈팅으로 연결하며 결승골을 기록했으며, 시즌 마지막 경기인 마인츠전에서도 골을 기록하며 바이에른에서의 500경기 출장을 자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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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경기는 슈바이니가 바이에른에서 출장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8.1. 이적 사가

2014-15 시즌 종료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링크가 뜨며 마테우스, 베켄바워 등 여러 독일의 레전드들이 이적에 대한 고려를 심각하게 해보라는 발언과 반 할 감독이 옛제자 영입에 자신 있다는 발언까지 이적에 관련된 말이 굉장히 많이 나와서 과연 정말로 떠날 것인지에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시간으로 2015년 7월 11일 빌트 독점보도에 따르면 슈바인슈타이거가 맨유 이적에 가깝다고 보도 되었다. 이유가 펩 과르디올라 감독과 뭔가 문제가 있는 듯 하며, 과거 반 할 감독과의 관계 및 현재 바이에른에서의 팀 내 위치와 불투명한 미래가 거론되고 있다. 결국 칼 하인츠 루메니게 바이에른 사장이 공식 기자회견에서 슈바이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간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이적이 확정되었다. 현재 영국에서 메디컬 테스트만 남겨놓았다는 소식과 함께 모든 게 완료되면 맨유의 프리시즌 투어에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마침내 7월 13일 모든 이적 절차가 완료되었다.

바이에른 뮌헨 팬들은 슈바인슈타이거를 내보낸 것에 분노와 좌절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필립 람과 함께 유스 시절부터 바이에른 뮌헨과 독일 국가대표팀만을 위해 뛰어온 원클럽맨이자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21]인만큼 팬덤도 두터운 데다, 유럽 전역을 통틀어도 수위 안에 드는 최고의 미드필더를 빼앗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 1년 전 감독의 전술 문제를 문제 삼으며 마리오 만주키치를 AT 마드리드로 이적시키고 토니 크로스와는 재계약 문제로 마찰을 빚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시킨데 이어 또다시 감독과의 마찰로 인해 이적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니 독일 현지에서도 팬들을 중심으로 구단에 성토를 보내는 중이다. 아예 대놓고 팬들이 바이에른 훈련장에 펩과 루메니게를 디스하는 걸개를 걸고 돌아가버릴 정도.

슈바인슈타이거의 이적에 대해 축알못들의 가장 대표적인 오해는 샤비 알론소에게 주전 경쟁에서 밀려 쫓겨나듯 이적해왔다는 건데 당연히 개소리.[22]
선발로는 확고부동한 주전임을 과시했음에도 슈바인슈타이거가 2014-15시즌 경기당 69.3분에 그친 것은 잦은 부상 때문이었다. 모두 22경기나 부상자명단에 올라 전력에서 제외됐다. 바이에른 전체 일정의 42.3%(22/52)나 빠졌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슈바이니가 출전 가능한 상태일 때에는 모조리 주전으로 출장시켰고, 선발 출장시에는 평균 85.4분을 뛰며 감독의 신임을 받으며 21경기 5골 7도움을 기록, 알론소의 공격포인트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준수한 기록이다.[23] 필립 람의 부상도 한 몫 했지만 선발로 주장완장까지 차고 나온 것도 14경기나 될 정도로 펩 체제에서 신임을 받았다. 복귀전에서 제바스티안 로데의 골을 어시스트 한 것을 포함해 교체출전까지 포함하면 총 결산으로 리그에서 28경기 5골 8도움, 90분당 공격포인트는 0.6을 찍으며 중미로는 빼어난 활약을 펼쳤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6경기에 출장해 90분당 0.79도움을 기록했다.

지난 시즌 슈바인슈타이거가 부상자가 아님에도 벤치만 지킨 것은 단 2차례다. 팀 훈련합류 직후라 뛰지 않는 것이 안전했던 한 번을 빼면 감독의 전술적인 판단에 따른 결장은 1회에 불과했다. 즉, 알론소에게 주전경쟁에서 밀려서 떠났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축알못들과 기레기들의 개소리일 뿐. 알론소도 매우 잘했지만 슈바이니가 매우 밀리는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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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ke Basti!

9. 평가

단연코 팀의 최고 레전드. 역대 바이에른 뮌헨의 베스트 라인업을 짜본다면 토마스 뮐러, 로타어 마테우스 등과 함께 미드필더 부문에서 항상 거론되는 선수이다. 특히 하비 마르티네스와 함께 수년간 유럽의 중원을 지배하며 최고의 미드필더 조합에도 선정되는 팀 뿐만 아니라 역대 미드필더에서도 최고로 뽑히는 선수였다.
[1] 예선 4경기 1골 1도움[2] 공교롭게도 필립 람 역시 이 경기가 바이에른에서의 데뷔전이다.[3] 이 때 슈바인슈타이거와 교채되어 나온 선수가 바로 전 뮌헨 감독인 니코 코바치이다.[4] 그러나 경기는 막판에 한골 더 먹혀서 3대3으로 무승부를 거뒀다. 이 시즌에 바이에른은 로이 마카이데포르티보에게 연패하며 챔스에서 충격의 조별리그 탈락을 당한다.[5] 계속되는 유럽대항전의 실망적인 성적에도 바이에른이 이적 시장에서 돈을 안쓰자 우승에 대한 열망으로 미하엘 발락, 오언 하그리브스, 클라우디오 피사로 등을 떠나보내게 된다.[6] 결과론적으로는 잘된 일이기도 하다. 발락은 30세 노장의 길로 접어들고 있는데다 창의성이 부족했고, 하그리브스는 1년간 꼬장부리고 떠나자마자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유리몸화, 피사로는 계약기간도 끝났는데다 루카 토니, 프랑크 리베리등을 영입했던 분노의 영입에 딸려 버려진 희생양으로 보는게 대부분이다.[7] 원정 2대0 승리는 운이 따라줬다. 전반전에만 인테르 선수 2명이나 퇴장시켰으니 2-0은 조금 모자란 스코어일수도 있겠다(..)[8] 보통 윙어는 10골 정도 기록하면 수준급 윙어로 본다. 시즌 9골 15도움이면 훌륭한 스탯 이상이다. 참고로 박지성맨유 시절 폭주하며 커리어하이를 기록한 2010-11 시즌 스텟이 9골 4도움이었다.[9] 이건 슈바인슈타이거 혼자만의 잘못이라고 하긴 어렵다. 우주 최강 바르샤를 만나는데 주전이란 주전은 모조리 부상당하거나 채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투입한 탓도 크다.[10] 바이에른은 후반 아르연 로번의 환상적인 발리슛을 성공시키며 3-2까지 추격하며 원정 다득점으로 4강진출에 성공한다.[11] 문제는 더 중요한 리베리가 퇴장당해서 결승까지 못뛰게 됐다는거다.[12] 참고로 빌트지는 선수 평점을 굉장히 짜게 주는걸로 유명하다. 리가 전체에서도 Weltklasse를 받는 사람은 많아야 1~2명이라고 한다.[13] 득실차가 앞서는 상황에서 도르트문트와의 승점차가 3점이었는데, 결국 패해서 6점차가 되고 다음라운드에서 무캐서 8점차로 벌어지고 말았다(...)[14] 사실은 체흐가 막고 굴절된 것이 골대를 맞은 것이었다.[15] 공격포인트는 기록하지 못했지만 가장 많은 볼터치와 패스, 인터셉트, 활동량을 보여주며 MoM이 되었다. 팀은 로벤의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한다.[16] 로벤이 너무 안일하게 접으려해서 뺏긴게 아쉬웠다[17] 플레이스타일 항목에서 언급되었듯 이 경기에서 도르트문트의 압박도 거셌지만 슈바인슈타이거는 경기 직전 트레이닝에서 마리오 만주키치와의 충돌로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은채로 풀타임을 뛰었다.[18] Best11로 팀을꾸리면 미들진이 리베리-외질-로이스-베일이 되어 중미가 없다.[19] 이 판정은 잘못됐다는 의견이 많다. 슈바이니의 태클은 공을 향했었고, 공이 빠진 이후 루니의 과격한 액션에 주심이 그대로 속아넘어갔다. 과르디올라 감독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했으나 바뀌는 건 없다. 경기전 바이에른 선수들에게 다이빙하지 말라니 어쩌니 하던 모예스 보고있나[20] 이후 라커룸 들어갈때 풀고 악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무개념 현지 해설진들은 이럴거면 미국 오지 말든가라는 식으로 생방송에서 말하는 등 추태를 보였다. 대부분의 여론은 바이에른을 옹호하는 편. 당연히 프리시즌 친선전에서 괜히 선수 다치게하면서 거칠게 나오는 쪽을 옹호하는 사람이 있을리는 만무하다.[21] 심지어 국대에서는 주장, 클럽에서는 부주장[22] 기사 참조 - http://sports.mk.co.kr/view.php?no=762897&year=2015[23] 애초에 알론소의 플레이스타일 자체가 공격포인트를 쌓는 선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