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미군의 장성급 지휘관 | ||
{{{#!wiki style="margin:-0px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colbgcolor=#627546> 육군 | |
★★★★★ 육군 원수 | 조지 C. 마셜 | 더글러스 맥아더 |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 헨리 아놀드항 | |
★★★★ 육군 대장 | 오마 브래들리 | 조지 S. 패튼 | 칼 스파츠항 | 조나단 웨인라이트 | 조지프 스틸웰 | 월터 크루거 | 조지 케니항 | 코트니 호지스 | 마크 클라크전 | 레너드 T. 게로 | 윌리엄 H. 심슨 | |
★★★ 육군 중장 | 레슬리 맥네어† | 존 리드 하지 | 앨버트 웨드마이어 | 매튜 B. 리지웨이 | 사이먼 B. 버크너† | 월튼 워커전 | 로버트 리처드슨 | 루시안 트러스콧 | 호이트 반덴버그항 | 루이스 H. 브레레턴항 | 존 C. H. 리 | |
★★ 육군 소장 | 제임스 밴 플리트 | 모리스 로즈† | 커티스 르메이항 | 맥스웰 테일러전 | 레슬리 그로브스전 | 윌리엄 F. 딘전 | 클레어 셰놀트항, 전 | 랄프 스미스 | 월터 쇼트 | J. 로턴 콜린스 | |
★ 육군 준장 | 마크 클라크 | 돈 프랫† |
||<-2><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0080><table bgcolor=#fff,#191919><colbgcolor=#000080> 해군 ||
★★★★★ 해군 원수 | 윌리엄 리히 | 어니스트 킹 | 체스터 니미츠 | 윌리엄 홀시 |
★★★★ 해군 대장 | 마크 미처 | 토머스 킨케이드 |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 홀랜드 스미스해병 | 알렉산더 밴더그리프트해병 |
★★★ 해군 중장 | 프랭크 잭 플레처 | 제시 올덴도르프 | 윌리스 리 |
★★ 해군 소장 | 허즈번드 킴멜 | 아이작 C. 키드 | 노먼 스콧 | 대니얼 J. 캘러헌 | 해리 슈미트해병 | 윌리엄 H. P. 블랜디 |
★ 해군 준장 | 알레이 버크 |
||<tablewidth=100%><tablebgcolor=#eaeaea,#1f2023>※ 문서가 있는 인물만 2차 대전기 당시 계급으로 서술함
※ 윗 첨자 †: 전사, 윗 첨자 항: 육군 항공대, 윗 첨자 해병: 해병대, 윗 첨자: 전 전시 계급 ||
}}}}}}}}} ||※ 윗 첨자 †: 전사, 윗 첨자 항: 육군 항공대, 윗 첨자 해병: 해병대, 윗 첨자: 전 전시 계급 ||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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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 bgcolor=#fff,#191919><tablecolor=#373a3c,#ddd><width=20%> 1950
더글라스 맥아더
미 육군원수 ||<width=20%> 1951
이근석
공군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백선엽
육군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정일권
육군대장 ||<width=20%> 1951
심일
육군소령 ||
}}}}}}}}} ||더글라스 맥아더
미 육군원수 ||<width=20%> 1951
이근석
공군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백선엽
육군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정일권
육군대장 ||<width=20%> 1951
심일
육군소령 ||
1951 이명수 육군일등상사 | 1951 김용식 육군일병 | 1951 홍재근 육군일병 | 1951 홍재근 육군일병 | 1951 김용배 육군준장 |
1951 박노규 육군준장 | 1951 김백일 육군중장 | 1951 김홍일 육군중장 | 1951 함준호 육군중장 | 1951 1953중복수훈 손원일 해군중장 |
1951 최용남 해병소장 | 1951 김성은 해병중장 | 1951 1952중복수훈 김정렬 공군중장 | 1952 이형근 육군대장 | 1951 권동찬 육군준장 |
1952 김종오 육군중장 | 1952 1953중복수훈 신현준 해병중장 | 1953 장덕창 공군중장 | 1953 최용덕 공군중장 | 1953 마크 클라크 미 육군대장 |
1953 김교수 육군대위 | 1953 김한준 육군대위 | 1953 김용배 육군대장 | 1953 민기식 육군대장 | 1953 임충식 육군대장 |
1953 한신 육군대장 | 1953 김점곤 육군소장 | 1953 이성가 육군소장 | 1953 이용문 육군소장 | 1953 1954중복수훈 임부택 육군소장 |
1953 1954중복수훈 강문봉 육군중장 | 1953 김동빈 육군중장 | 1953 김종갑 육군중장 | 1953 백인엽 육군중장 | 1953 1954중복수훈 송요찬 육군중장 |
1953 유재흥 육군중장 | 1953 최영희 육군중장 | 1953 함병선 육군중장 | 1953 최치환 총경 | 1954 김만술 육군대위 |
1954 허봉익 육군대위 | 1954 김경진 육군소령 | 1954 김웅수 육군소장 | 1954 송석하 육군소장 | 1954 엄홍섭 육군소장 |
1954 임선하 육군소장 | 1954 백재덕 육군이등상사 | 1954 최득수 육군이등상사 | 1954 김옥상 육군일병 | 1954 조재미 육군준장 |
1954 안낙규 육군중사 | 1954 박병권 육군중장 | 1954 이응준 육군중장 | 1954 이준식 육군중장 | 1954 장도영 육군중장 |
1954 최석 육군중장 | 1954 최창언 육군중장 | 1954 박옥규 해군중장 | 1954 김석범 해병중장 | 1955 김창룡 육군소장 |
1955 정긍모 해군중장 | 1956 서정학 이사관(치안국장) | 1960 미군무명용사 - | 1961 김금성 공군준장 | 1961 국군무명용사 - |
1964 박정희 대통령 | 1966 이종세 육군상사 | 1966 강재구 육군소령 | 1966 이인호 해병소령 | 1967 송서규 육군대령 |
1967 채명신 육군중장 | 1967 지덕칠 해군중사 | 1967 정경진 해병대위 | 1967 신원배 해병소위 | 1968 최규식 경무관 |
1968 이익수 육군준장 | 1968 최범섭 육군중령 | 1970 이세호 육군중장 | 1972 이무표 육군대위 | 1972 임동춘 육군대위 |
1975 찰스 B. 스미스 미육군중령 | 1980 육군대장 | 2002 장철부 육군중령 | 2006 김영옥 미 육군대령 | 2011 조달진 육군소위 |
2021 에밀 카폰 미 육군대위 |
마크 웨인 클라크 Mark Wayne Clark | |
출생 | 1896년 5월 1일 |
미국 뉴욕 사케츠 하버 | |
사망 | 1984년 4월 17일 (향년 87세) |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 |
복무 | 미합중국 육군 |
복무 기간 | 1917년~1953년 |
최종 계급 | 미국 육군 대장 |
지휘 | 미 제5군 영.미 제15군집단 UN군 사령관 |
주요 참전 |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6.25전쟁 |
종교 | 성공회 |
서훈 | 수훈십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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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 육군의 장군. 제2차 세계대전과 6.25 전쟁에 참전했다.2. 생애
아버지가 육군 장교여서 아버지의 영향으로 군인을 동경하게 되었고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1917년 미국이 1차대전에 참전하였고 사관학교들은 졸업식을 조금 앞당겨 장교를 전장으로 보냈다.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차대전에 참전하게 된다.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장 계급으로 이탈리아 전선을 지휘했는데 사실 처음부터 해당 전선을 지휘했던 게 아니라 도중에 아이젠하워와 버나드 로 몽고메리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하기 위해 옮겨가자 대타로 연합국 제15집단군 지휘를 이어가게 되었다.
이탈리아 전선은 한때 몬테카시노 전투와 같은 격전을 치루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전선이 평온한 상태였는데, 이는 우선순위에 따른 차이에서 기인했다. 태평양보다 유럽 쪽에 우선순위가 가 있었으며, 그중에서도 이탈리아 전선은 2부 리그 취급. 그래서 물자와 병력이 노르망디에 비해 많이 뒤쳐져 적극적인 공세에 임하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 연합국 내 높으신 분들조차 가차없는 비판을 가했다. 이유야 어쨌건 책임자인 마크 클라크 장군이 덤탱이를 쓸 수 밖에. 그 외에도 로마에 가장 먼저 입성하기 위해 적군의 후퇴를 방치한다든지 해서 연합군 내에서 평판은 매우 좋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처칠이나 아이젠하워는 그를 신뢰했고 그는 1945년 3월 부로 미국 육군 대장에 임명되어 맥아더와 함께 미국 최연소 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종전을 맞았다.
후에 6.25 전쟁에서 1952년 8월 15일 나토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한 매튜 B. 리지웨이를 대신해 3대 유엔군 총사령관을 맡아 전선을 지휘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당시 유엔군 대표로 휴전 협정에 서명했다.
다만 클라크 또한 트루먼 행정부와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휴전협정을 서두르는 모습에 크게 실망하였다. 클라크는 휴전협정 막바지에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에게 대규모 공세를 위해 원산 지역에 기습 상륙작전을 펴겠다고 건의하였으나 거부당했다. 또한 52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의 방한 당시, 서울 동숭동 미8군 사령부에서 재차 상륙 작전 승인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유엔군 사령관으로서, 휴전협정에 조인하였다.
3. 저서
- 다뉴브에서 압록강까지(From the Danube to the Yalu)
4. 여담
- 6.25 전쟁 때 휴전 회담장에 가기 직전 클라크는 이승만을 예방했는데 이승만이 견장에 달린 별 4개 계급장을 보면서 "이건 적에게 항복하라고 달아준 거냐?"며 비꼬았다고 한다.[1]
- 김영옥이 이탈리아 전선에 있었을 때 당시 이 방면군 사령관이었던 클라크는 로마 점령 이후 그를 보고 계급이 고작 중위라는데 놀라서 왜 겨우 중위냐고 물었다. 김영옥은 진급 신청을 5번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했고 그 말을 들은 클라크가 당장 옆에 있는 전속부관의 대위 계급장을 떼다가 붙여주면서 즉석 진급시켰다고 한다.
[1] 이승만은 휴전에 대해 반대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