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前 축구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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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colcolor=#000,#e5e5e5> 이름 | 마우로 벨루지 Mauro Bellugi | |
출생 | 1950년 2월 7일 | |
이탈리아 시에나도 분콘벤토 | ||
사망 | 2021년 2월 20일 (향년 71세) | |
이탈리아 밀라노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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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83cm|체중 70kg | |
직업 | 축구 선수 (수비수[1] / 은퇴) 축구 감독(은퇴) | |
소속 | <colbgcolor=#eee> 선수 | 분콘벤토 (19??~1967 / 유스) 인테르나치오날레 (1967~1969 / 유스) 인테르나치오날레 (1969~1974) 볼로냐 FC (1974~1979) SSC 나폴리 (1979~1980) US 피스토이에세 (1980~1981) |
감독 | 피스토이에세 (1981~1982 / 수석 코치) | |
국가대표 | 32경기 (이탈리아 / 1972~1980) |
1. 개요
이탈리아의 축구 선수 출신 前 축구 감독. 선수 시절 수비수[2]로 활약했으며, 인테르, 볼로냐, SSC 나폴리, US 피스토이에세에서 뛰었다. 이탈리아 대표팀으로 32경기에 출전하여 1974년 월드컵과 1978년 월드컵에 참가했다. 은퇴 후에는 US 피스토이에세 수석 코치와 축구 평론가로 활동했다. 2021년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마우로 벨루지는 시에나도의 분콘벤토에서 태어났다. 이후 분콘벤토의 지역 아마추어 팀인 비안코네리 델 분콘벤토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벨루지는 뛰어난 신체 능력으로 스토퍼로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16세에 이미 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다.이후 인테르 유소년 팀에 합류하여 1968-69 시즌 프리마베라 스쿠데토를 우승했다. 19세였던 1969년, 에리베르토 에레라 감독이 이끄는 인테르 1군 팀에 데뷔했다. 인테르에서 1970-71 시즌 세리에 A 우승을 차지했지만, 내부 갈등으로 인해 주전으로 완전히 자리 잡지는 못했다. 인테르에서 유일한 프로 경력 골을 기록했는데, 1971년 11월 3일 유러피언컵 2라운드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와의 경기에서 득점했다. 이 경기는 인테르가 4-2로 승리했다. 인테르에서 총 90경기에 출전하여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1974년, 인테르의 젊고 핵심적인 선수 중 한 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볼로냐로 이적했다. 이는 팀 내부의 해소되지 않는 갈등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인테르 회장의 아내였던 레나타 여사는 "벨루지는 기술적인 이유로 이적한 것이 아니다. 선수로서 그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벨루지는 볼로냐에서 활약하며 기량이 만개했지만,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1976-77 시즌에는 2경기 출전에 그쳤다. 볼로냐에서 총 91경기에 출전하여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1979년 SSC 나폴리로 이적했지만, 그의 기량은 이미 하락세에 접어들고 있었다. 나폴리에서 한 시즌만 보낸 후, 1980-81 시즌 승격팀인 피스토이에세에 합류했다. 피스토이에세에서 30경기 중 8경기를 제외한 모든 경기에 출전하며 "괜찮은 마지막"을 보냈다. 31세의 나이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나폴리에서 26경기, 피스토이에세에서 20경기에 출전하여 모두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세리에 A에서 총 227경기에 출전했지만, 득점은 기록하지 못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이탈리아 U-21 대표팀에서 1경기를 뛴 후, 1972년 10월 7일 1974년 월드컵 예선 상대인 룩셈부르크와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이탈리아는 이 경기에서 4-0으로 승리했다.벨루지는 페루초 발카레지 감독 체제에서 이탈리아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 잡았고, 1974년 서독 월드컵에 소집되었다. 그러나 "논란에 휩싸인" 팀에서 감독은 그에게 주전 자리를 주지 않고 프란체스코 모리니를 선호했다.
이후 풀비오 베르나르디니와 엔초 베아르초트 감독 체제에서 모리니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대표팀의 주전 스토퍼가 되었다.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참가하여 부상으로 인해 마지막 결정적인 경기와 3위 결정전만 결장했다.
1979년부터 그의 자리는 풀비오 콜로바티에게 넘어갔지만, 벨루지는 대표팀에 남아 1980년 유로에 소집되었다. 그러나 유로에서는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대표팀 경기는 1979년 11월 17일 스위스와의 친선 경기였으며, 이탈리아가 2-0으로 승리했다.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총 32경기에 출전했다.
2.3. 감독 경력
선수 경력 종료 후 1981-82 시즌 피스토이에세의 수석 코치로 활동했다. 1982년 감독직에서 은퇴했다.2.4. 은퇴 이후 경력
축구계에 남아 다양한 지역 TV 방송국의 축구 평론가로 활동했다. 특히 7 골드의 '디레타 스타디오... 에 에 수비토 골!' 프로그램에 출연했다.3. 여담
마우로 벨루지는 도나텔라와 결혼하여 딸 지아를 두었고, 이후 로레다나와 재혼했다.오래전부터 지중해 빈혈을 앓고 있었으며, 2020년 11월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병세가 악화되었다. 모세혈관의 허혈로 인해 밀라노의 니구아르다 병원에서 양쪽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감염으로 인해 2021년 2월 20일,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21년 9월 27일, 그의 고향 분콘벤토의 시립 경기장이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