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05 23:31:51

마르마라 에레을리시

파일:marmaraereğlisi01.jpg
시가지 전경
파일:8693154515_13701e0382_b.jpg
페린토스 (헤라클레아) 유적

1. 개요2. 역사

1. 개요

Marmara Ereğlisi

튀르키예 서북부의 도시. 테키르다에서 동쪽으로 50km, 초를루에서 동남쪽으로 30km, 실리브리에서 서쪽으로 40km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3만명이다. 옛 지명은 헤라클레아 (Ἡράκλεια) 혹은 페린토스 (Πέρινθος)로, 트라키아의 주요 항구 중 하나였다. 현대 에레을리는 동북쪽의 항구에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탱크선들이 왕래하고, 여름철에는 피서지로 각광받는 중소 도시이다. 시가지 동부의 반도에 남아있는 페린토스 유적, 제디드 알리 파샤 모스크, 도시 서쪽의 델라스 해변 등이 볼거리이다.

2. 역사

파일:jSpFoAZ0bk2GL2ET3UDQKw.jpg
옛 도시가 있던 반도 일대
파일:8693154543_91444a9366_b.jpg
페린토스 (헤라클레아) 유적

기원전 600년경 사모스 혹은 사모트라케 섬의 주민들이 해안 언덕에 도시를 세워 페린토스로 명명했다. 페린토스는 흑해-지중해간 해상 교역의 거점으로써 성장했고, 기원전 340년 마케도니아 왕국필리포스 2세가 도시를 포위했다. 비잔티온, 아케메네스 제국이 보낸 지원 병력과 합세한 수비대는 아테네의 해상 보급을 받으며 버텼다. 몇 주간의 공격 끝에 마케도니아 군은 외성을 돌파했으나, 공성 기간동안 수비대가 더욱 견고한 세워둔 내성을 마주하자 물러났다. 다만 몇년 후 페린토스는 알렉산드로스 3세에 복속했고, 기원전 2세기에 로마령이 되었다.서기 300년경 지명은 헤라클레아 (Ἡράκλεια)로 바뀌었다. 그 무렵 도시는 에우로파 속주의 주도이자 대주교구가 되었고, 330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건설 전까지 비잔티움 일대까지 관할했다.

6세기 유스티니아누스 1세는 헤라클레아의 궁전과 수도교를 재건했고, 20세기 초까지 대주교구로 유지되었다. 다만 도시 자체는 점차 콘스탄티노폴리스에 가려져 쇠퇴했고, 13세기 라틴 제국 하에서는 라틴 가톨릭 주교구가 있었다. 14세기 오스만 제국의 정복 후 지명은 부육 에레을리로 바뀌었고, 어촌 마을로 유지되었다. 메흐메드 2세는 에레을리의 세금을 코스탄티니예의 무료 급식소를 운영비로 설정했고, 1565년 대재상 제디드 (세미즈) 알리 파샤가 모스크를 세우며 도시로의 이주를 장려했다. 1892년 기준 330 가구가 거주했고, 그리스 정교도와 튀르크 무슬림 외에 아르메니아 인들도 있었다. 1920년 10월 그리스 왕국군이 점령했으나 1922년 10월 터키 령으로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