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차 세계 대전기의 러시아 제국군 기갑차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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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차 세계 대전기의 협상군 기갑장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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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Руссо-Балт тип С[1] |
1. 개요
1914년, 러시아에서 루소-발트의 섀시를 기반으로 개발한 장갑차.2. 제원
| Руссо-Балт тип С 루소-발트 C형 | |
| 전장 | 4.5m |
| 전폭 | 1.98m |
| 전고 | 2.0m |
| 중량 | 2.96t |
| 장갑 | 3mm~5mm |
| 무장 | 7.62mm PM M1910 3정 |
| 탑승 인원 | 5명 |
| 엔진 | 루소-발트 수랭식 가솔린 직렬 4기통(40마력) |
| 속력 | 20km/h (도로), 10km/h (야지) |
| 항속거리 | 100km(도로 기준) |
3. 개발사
4. 실전
4.1. 제1차 세계 대전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루소-발트 C형 8대가 제1 자동차 기관총 중대[2]에서 만네스만-무라크 장갑차 2대, 팩커드 장갑차 2대와 함께 운용되었다.이 중대의 편제·조직 구조는 1914년 8월 19일, 전쟁부 장관 V. A. 수호믈리노프의 결의로 승인되었으며, 이후 소규모 변경이 몇 차례 이루어졌다.
1914년 10월 19일, 제1 자동차 기관총 중대는 페트로그라드 세묘노프 광장에서의 열병식을 마친 후 전선으로 출발하여 제2군 사령부의 작전 지휘를 받게 되었다.
중대의 실전 첫 경험은 1914년 11월 9~10일, 로지 전투에서 이루어졌다.
11월 10일, 참모대위 B. A. 슐케비치가 지휘한 기관총 장갑차 6대가 적이 점령한 스트리쿠프 시를 돌파하였고, 포 장갑차 2대는 제9·제12 투르키스탄 소총연대의 공격을 화력으로 지원하였다.
독일군은 양면 사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고 도시에서 축출되었다.
이 공로로 슐케비치는 성 스타니슬라프 3급 훈장(검과 리본 포함)을 수여받았다.
1914년 11월 20~21일 파비아니체 전투에서는 참모대위 P. V. 구르도프가 4대의 장갑차로 엄호 없이 전진하여 적 부대를 근거리에서 타격, 완전히 붕괴시켰다.
중상자 속출과 차량 손상에도 불구하고 모든 차량을 전장에서 철수시킨 공로로 그는 성 게오르기우스 4급 훈장을 받았으며, 부대 최초의 수훈자가 되었다.
이후 1915년 2월 11일, 최고사령부 명령 제7호로 '장갑차 전투 운용 지침'이 제정되었고, 장갑차의 공격·방어·추격 전술이 공식화되었다.
이후 1915년 3월, 포 장갑차 3대가 추가 도입되었고, 1916년 9월에는 제1 자동차 기관총 중대에서 제1 장갑차 대대로 개편, 1917년에는 핀란드에서 페트로그라드로 간 다음, 드빈스크로 이동했고, 1918년 봄에는 독일군 진입으로 드빈스크에 고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