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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B0039><colcolor=#fff> {{{#ffffff 제2대 천주교 조선대목구장 성 범 라우렌시오}}} Sanctus Laurentius Imbert Saint Laurent Imbert | |
M.E.P.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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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랑조제프마리위스 앵베르 (Laurent-Joseph-Marius Imbert) |
한국명 | 범세형 (范世亨) |
출생 | 1797년 4월 15일 |
프랑스 공화국 마리냔 | |
순교 | 1839년 9월 21일 (향년 42세) |
조선 한성부 새남터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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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파리외방전교회 |
약력 | 1819년 사제 수품 |
1836년 조선대목구 보좌주교 | |
1837년 제2대 조선대목구장 주교 (카프사(Capsa) 명의) | |
시복 |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 |
시성 |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축일 | 9월 20일 |
묘소 |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
1. 개요
천주교 서울대교구의 제2대 교구장. 한국식 이름은 범세형(范世亨)이며 세례명은 라우렌시오.2. 일생
그는 프랑스 마리냔(Marignane)의 소농 출신으로, 1818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고 1819년 사제품을 받았다. 1836년 조선대목구장 겸 갑사 명의주교로 임명되었고, 이듬해인 1837년에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바르텔레미 브뤼기에르 주교의 뒤를 이어 제2대 조선대목구장이 되었다.#1#2 한국 천주교의 사실상 최초 교구장이라고 볼 수 있다. 초대 대목구장(교구장)으로 기록된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으로 오는 도중에 만주의 한 교우촌에서 그만 병으로 선종하여 입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837년 조선에 입국해 안전 차원에서 숨어있는 신자들을 돌보았다.
기해박해 때 순교하였다. 한국 103위 순교성인의 한 사람이다. 묘소는 원래 서울 관악구 삼성산에 있다가 명동성당 봉헌 후인 1901년에 명동성당 지하로 이장되었다.
3. 기타
김대건 안드레아의 일대기인 2022년 영화 탄생에서 폴 배틀이 앵베르 역을 맡아 연기했다. 작중에서는 "한다", "해라" 등의 근엄한 반말투를 쓰며 (어디까지나 말을 듣는 신자들의 입장에서) 까칠한 꼰대(?) 주교님[1]으로 묘사되지만, 기해박해 때의 자수하는 장면이 명장면으로 남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끌려가 죽으니 자신의 목숨으로 박해를 끝내야겠다며 자수를 결심하고 연행되기 전 정하상, 유준길, 조신철 등 수많은 신자들이 수감된 감옥을 찾아와 신자들을 축복하고 위로한다. 주교를 지키고자 모진 문초를 견뎌온 신자들이 상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옥에 나타난[2] 앵베르 주교를 보고 통곡을 하며 울부짖다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앵베르 주교는 옥에서 정하상의 손을 잡고 "너무 많은 사람이 잡혀가고 죽어나가고 있다. 끝내려면, 내가 죽어야 한다.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에게는 배를 타고 피하라고 했지만 말을 안 듣는다. 지금 여기로 오고 있다고 한다. 너희랑 함께해서 좋았다. 천국에서 만나자."는 말을 남긴채 포졸들을 따라 관아로 향한다.조선에 오기 이전 싱가포르에 있었으며, 싱가포르에서 최초로 미사를 봉헌한 사제이기 때문에 현지 신자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싱가포르 최초의 성당인 착한 목자 대성당에 가면 조선시대 흰 죄수복을 입은 앵베르 주교의 성상을 볼 수 있다.
한국 천주교에서 최초로 시복 및 시성된 주교이다. 김대건 안드레아, 정하상 바오로와 101위 동료 순교자의 시복 및 시성 순서에서는 32번으로, 훗날 조선대목구를 이끌다 순교하는 베르뇌 및 다블뤼 주교보다 앞 순서에 올랐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