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052a1><tablebgcolor=#0052a1> | 레스터 시티 FC 감독(초대~40대) |
{{{#!wiki style="margin: 0 -10px" {{{#0053a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555555,#aaaaaa | 1919년 ~ 2010년 | ||||
초대 호지 ★ | 2대 오르 | 3대 호지 | 4대 로크헤드 | 5대 워맥 ★ | |
6대 브로밀로 | 7대 마더 | 8대 던컨 | 9대 블록 ★ | 10대 할리데이 ★ | |
11대 길리스 ★ | 12대 오파렐 ★ | 13대 블룸필드 | 14대 매클린톡 | 대행 맥팔레인 | |
16대 월레스 ★ | 17대 밀른 | 18대 밀른/해밀턴 | 19대 해밀턴 | 20대 플리트 | |
대행 리 | 22대 리틀 | 대행 맥도날드/맥앤드루 | 24대 맥기 | 대행 니시/터너/파커/월시 | |
26대 오닐 (오닐 체제) ★★ | 27대 테일러 | 대행 파커 | 29대 바셋 | 30대 애덤스 | |
대행 바셋/윌킨슨 | 32대 레바인 | 33대 켈리 | 대행 워싱턴 | 35대 알렌 | |
대행 루드킨/비글홀/스토웰 | 37대 멕슨 | 대행 버로우즈/타가트 | 39대 홀로웨이 | 40대 피어슨 (피어슨 체제(1기)) | |
▶ 레스터 시티 FC 감독(41대 이후) | |||||
★프리미어 리그 / ★EFL 챔피언십 / ★FA컵 / ★EFL컵 |
[[나이젤 피어슨| | |
제40대 감독 나이젤 피어슨 | |
<colbgcolor=#0053a0><colcolor=#fff> 감독 |
나이젤 피어슨 / 제40대 |
코칭스태프 |
크레이그 셰익스피어 (수석 코치)
스티브 월시 (풋볼 디렉터)
크리스 포웰 (플레잉 코치) |
주장 |
스테픈 클레멘스 / 제9대[1] 주장 (2007~2009)
맷 오클리 / 제10대[2] 주장 (2009~2011) |
계약 기간 | 2008년 6월 20일 ~ 2010년 6월 29일 (2년 / 739일) |
계약 종료 (보드진과의 갈등으로 인한 계약 만료) | |
연봉 | 미상 |
전술 스타일 | 잉글리시 축구 ┗ 측면 활용, 풀백의 오버래핑 ┗ 투톱 전술 (빅 앤 스몰) ┗ 4-4-2 포메이션 |
주요 성적 | 106전 55승 28무 23패 (승률 51.89%) 2008-09 풋볼 리그 원 (우승) |
1. 개요
레스터 시티 FC의 나이젤 피어슨 제40대 감독 체제를 정리한 문서.2. 선임 과정
2007-08 시즌, 레스터 시티는 전례없는 충격적인 결과로 강등권을 허덕이며 시즌 내내 3번의 감독이 바뀌었다. 최종전까지 이어졌던 강등 탈출 도전에서 마지막 경기 상대는 승격 내지 우승을 바라보던 스토크 시티 원정이었다. 경기는 0:0으로 마쳤다. 하지만 강등권 동기 사우스햄튼이 셰필드 유나이티드를 3:2로 이기면서 리그 22위로 창단 이래 최초로 3부리그 강등이라는 치욕을 맛보게 됬다.[3] 그리고 강등 19일뒤, 감독 이안 홀로웨이가 상호 합의하에 떠났다.같은 해, 나이젤 피어슨은 뉴캐슬 감독 대행직을 마치고, 2부리그에서 강등권을 허덕이던 사우스햄튼의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피어슨의 사우스햄튼은 아슬아슬하게 강등권과 인접한 성적을 찍다가 마지막 46R에서 셰필드 유나이티드에 3:2 역전승을 거두고 잔류를 확정지었다. 이후 약 3주뒤, 사우스햄튼이 얀 포르트플리트를 새 감독으로 선임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게 풋볼 리그 원으로 강등당한 레스터는 어떻게 보면 자신을 직접 강등시킨 피어슨을 새 감독직으로 선임했다. 코치로는 피어슨과 함께했던 크레이그 셰익스피어와 스티브 월시가 선임됬다.
3. 활동
3.1. 2008-09 시즌
여름 이적시장에서 리처드 스티어먼과 이안 흄과 같은 주축 선수를 보내고 로이드 다이어, 폴 디코프, 크리스 포웰 등의 선수를 무료로, 톰 클레벌리, 데이비드 마틴 등의 선수를 임대로 데려오며 어느정도 알짜배기 이적시장을 보냈다.피어슨 하에 레스터는 시즌이 시작한 직후 4경기에서 3경기를 이겼고, 피어슨은 이 공으로 8월의 풋볼 리그 원 감독 상을 수상했다. 그후 브라이튼에게 2:0으로 이기고 있다가 3:2로 뒤집히는 충격패를 맞이했지만 곧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2008년 11월 1일부터 2009년 3월 7일까지 23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벌이며 1위를 굳건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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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공적으로 2008-09 시즌 3부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되었다. 이 시즌, 레스터는 46경기에서 단 4패만 기록하며 승점 96점을 획득했다. 이는 3부리그 역사상 최소 패배 기록이다. 또한 레스터는 단일 시즌에 리그 최다 승리(27승), 단일 시즌에 리그에서 최소 패배(4패)를 기록하며 클럽 기록도 경신했다.
3.2. 2009-10 시즌
2009년 여름, 챔피언십 잔류가 레스터에게 큰 목표였기에 폴 갤러거, 리치 웰렌스 등의 선수를 보강받았다. 그리고 지난 시즌 레스터 선수였던 크리스 포웰이 플레잉 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그렇게 시작한 새 시즌, 피어슨의 레스터는 챔피언십에서도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였다. 레스터는 특히나 홈에서 시즌 단 4패만을 기록하는 홈깡패의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 피어슨은 2월 챔피언십 이달의 감독상을 수상하고, 레스터는 챔피언십에 승격하자마자 곧바로 5위를 기록하며 프리미어 리그 승격을 위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 4강전에서 카디프 시티에게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끝에 패배, EPL 승격은 아쉽게 실패했다. 그래도 피어슨이 레스터에서 보여준 2년간의 행보는 실로 세간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다만 이 기간 사건이 하나 터졌는데, 시즌 말에 수비수 웨인 브라운이 팀원들 앞에서 2010년 영국 총선에서 극우 정당인 영국 국민당에 투표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이에 피어슨은 브라운을 플레이오프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그래도 좋은 성적을 만들었지만 이와 별개로 이 시기 피어슨은 레스터의 구단주 밀란 만다라치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2010년 여름, 만다라치는 클럽을 팔아치우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고[4] 피어슨과의 감독 계약도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혔다.[5] 피어슨은 훗날 자신은 계속 레스터에 남고 싶었는데 구단주가 노골적으로 얼른 나가라고 부추겼다며 분노를 토로했다. 결국 피어슨은 2010년 여름 헐 시티의 감독으로 부임하며 레스터를 떠났다.
4. 시즌별 주요 성적
나이젤 피어슨의 시즌별 주요 성적 | ||||||||
시즌 | FC | FL1 | FA | EFL | FLT | CS | 감독 | |
2008-09 시즌 | - | 1위 (▲ ) | 3R | 2R | 북부 8강전 | - | 나이젤 피어슨 | |
2009-10 시즌 | 5위 (▲ [6]) | - | 4R | 2R | - | - |
5. 평가
파멸의 굴례로 빠질 수도 있었던 레스터를 구해내고 더 나아가 한 단계 위에 안착시킨 감독이다.전임 감독들의 잇다른 실패로 레스터는 3부리그 강등이라는 큰 수모를 겪게되었고, 한편으로는 구단의 미래가 위태해진 어두운 상황이었다. 즉시 승격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레스터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피어슨이 이를 건져내며 구단의 미래를 연장시켰다.
피어슨의 주요 전술은 전형적인 잉글랜드 축구 + 4-4-2 포메이션이었다. 첫 시즌, 중앙을 바쳐줄 두 명의 미드필더는 맷 오클리-앤디 킹 구성으로 시즌 내내 이어졌고, 양쪽 날개에는 왼쪽은 폴 갤러거와 스테픈 클레멘스가 기용, 오른쪽은 로이드 다이어가 들어갔다. 그리고 투톱은 빅앤스몰 조합으로, 제공권을 만들어준 스티브 하워드가 빅을, 뛰어난 위치 선정과 결정력을 가진 매티 프라이엇이 스몰을 맡았다.
두 번째 시즌 역시 4-4-2 포메이션이었는데, 오클리-킹으로 이어지던 미드필더 구성에서 오클리 자리는 영입생 리치 웰렌스가 번갈아가며 출전했다. 윙어진은 클레멘스 이적 후 갤러거가 프리롤에 가깝게 왼쪽 주전을 차지했고, 반대쪽은 다이어가 그대로 뛰며 자신의 스피드로 팀의 공격에 기여했다. 다만 투톱 자리에 문제가 있었는데 프라이엇과 임대생 마틴 웨그혼이 초반 투톱을 구성했으나, 잘해주던 프라이엇이 턱뼈 부상으로 장기결장하며 고참인 하워드가 출전하거나, 윙어인 갤러거가 톱까지 소화해야했다.[7] 물론 톱 자리에서 모두 쏠쏠한 활약을 펼첬으나, 확실한 고정 투톱이 없다는 것은 타격으로 다가오긴했다.
그래도 피어슨은 성과를 내고 팀의 스피릿을 끌어올려 충격적인 강등팀에서 백투백 승격까지 노려보는 팀으로 바꾸어놨으나 2009-10 시즌 말미에 부적절한 발언을 한 부주장 웨인 브라운과 갈등이 있었고, 구단주 만다라치는 팀을 팔아재끼고 피어슨도 자르려하는등 온갖 고난을 겪으며 레스터와 좋지 못한 이별을 해야만했다. 그러다보니 레스터에서의 감독 생활을 이번이 마지막일 줄 알았으나...
피어슨 재임 기간 동안 레스터의 프랜차이즈 스타 앤디 킹이 본격적으로 활약했다.
[1] 정확히 말하면 9대 주장은 아니고 그나마 레스터 시티의 주장에 관해 남아있는 기록이 이것이라 참조하였다.[2] 정확히 말하면 10대 주장은 아니고 그나마 레스터 시티의 주장에 관해 남아있는 기록이 이것이라 참조하였다.[3] 게다가 스토크의 승격 확정 후 스토크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는 모습과 상반된 레스터의 모습이 강등을 더욱 비극적이게 만들었다.[4] 이전에도 만다라치는 피어슨 몰래 잠재적으로 구단주가 될만한 사람들을 모아 구단을 둘러보게 했다고 한다.[5] 만다라치는 아예 카디프와의 플레이오프 4강 2차전에 자신이 점찍어둔 감독 후보 파울루 소자를 초대하기까지 했다.[6] 승격 플레이오프 4강 탈락[7] 갤러거의 자리는 다이어가 맡거나 킹, 웨그혼 등 다양한 선수들이 돌아가며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