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5 15:10:50

란치아 몬테카를로

파일:1974 란치아 로고.png
파일:lancia_Montecarlo.jpg
Montecarlo

1. 개요2. 상세
2.1. 제작 배경2.2. 모델 종류
3. 문제점4. 레이싱에서5. 둘러보기


Lancia Montecarlo[1] / Scorpion[2]

1. 개요

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인 란치아1975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한 미드 엔진 스포츠카이다.

2. 상세

최초로 공개된 차는 75년부터 78년까지 생산된 란치아 베타 몬테카를로이며 두번째 버전으로는 2년 후 1980년부터 1981년까지 생산된 란치아 몬테카를로이다. 두 시리즈 모두 쿠페와 스파이더 버전으로 제공되었으며, 후자는 독특한 롤백 수동식 타르가 스타일 컨버터블 탑이 특징으로 제작되었다. 스파이더 개조 버전은 1976년과 1977년에 미국 시장에서 스콜피온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총 생산 대수는 7,798대로, 1974년부터 1982년까지 생산되다가 1979년 생산이 중단되었다. 도합 판매량은 첫번째 시리즈 타르가가 3,558대, 두번째 시리즈 타르가는 817대, 첫번째 시리즈 쿠페는 2,080대, 두번째 시리즈 쿠페는 1,123대가 제작되었고 220 컴페티션 모델인 란치아 037도 제작되었다.

2.1. 제작 배경

란치아의 모기업 피아트에서 124 쿠페를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을 찾고 있었는데, 피아트에서는 피닌파리나에게 대체 모델의 설계와 개발을 의뢰했다. 하지만 베르토네는 피닌파리나보다 더 저렴한 대안을 제시했고, 이것은 후에 피아트 X1/9가 되었다. 피닌파리나는 3리터 V6 엔진을 장착한 미드엔진 스포츠카를 개발하는 피아트 X1/8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했고 X1/8 프로젝트는 피닌파리나 최초로 기존 양산차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전적으로 자체 개발 및 제작한 자동차가 되었다.

초기 설계 작업은 1969년에 완료되었고, 최종 설계는 1971년에 파올로 마틴이 완성했다.

1970년대 첫 번째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프로젝트의 이름은 'X1/20'으로 바뀌었고, 엔진은 2리터 4기통 버전으로 변경되었다. 최초의 X1/20 프로토타입은 1974년 레이싱용 피아트 아바스 SE 030이었으며 1974년 레이싱 시즌이 끝난 후 피아트는 아바스 SE 030 프로그램을 종료했다. X1/20 프로젝트는 피아트 X1/9의 프리미엄격 대안이자 브랜드의 대표성 성격을 띄는 자동차를 원했던 란치아에게 주어졌다.

피아트의 프로젝트를 넘겨 받은 란치아에서는 프리미엄급 장비를 위해 124 스포츠 쿠페의 트윈캠 4기통 엔진과 맥퍼슨 서스펜션, 124 스포츠 쿠페와 마찬가지로 5단 변속기, 앞 뒤 모두 디스크 브레이크를 장착한 새로운 1,995cc 변형 엔진을 적용했다. 몬테카를로는 다른 베타 모델과 부품을 거의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란치아는 차량 전체를 제작하는 업체로 피닌파리나를 선정하였다.

2.2. 모델 종류

  • 첫번째 시리즈(베타 몬테카를로)
    1975년 3월 제45회 제네바 국제 오토쇼에서 마침내 공개되었다. 첫 번째 시리즈는 1975년부터 1978년까지 한정으로 Lancia Beta Montecarlo라는 배지가 부착되었으며 트윈 캠, 1995cc 람프레디 직렬 4기통 엔진으로 6000rpm에서 120PS(88kW, 118마력), 3400rpm에서 126lb⋅ft(171N⋅m)의 토크를 발휘했다. 란치아에서는 베타 몬테카를로의 최고 속도를 190km/h(118마일) 이상, 0-100km/h(62마일) 가속 시간 9.3초라고 주장했다.

    첫 번째 시리즈의 특징은 엔진 베이 상단의 리어 윙에 단단한 패널과 모델 고유의 5.5Jx13 인치 '보타이'형 알로이 휠이었다. 실내 소재로는 EVT(Elasticized Vinylic Textile, 탄성 비닐 직물)이 기본이었고, 옵션으로 천을 씌울 수 있었다. 운전석 사이드 미러[3]는 비탈로니 캘리포니안 미러가 적용되었다.
  • 미국 시장 버전(스콜피온)
    베타 몬테카를로의 컨버터블 버전은 쉐보레 몬테 카를로와의 유사성을 피하기 위해 1976~1977년 미국 시장에서 란치아 스콜피온(Lancia Scorpion)으로 이름을 바꿔 판매하였다. 1976년에 1,805대가 생산되었고 1976년과 1977년 모델(각각 1396대, 405대)로 판매되었다.

    미국 배기가스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배기가스 배출량을 줄인 1,756cc 트윈 캠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덜 공격적인 캠샤프트 프로필과 더 작은 카뷰레터, 그리고 압축비를 8.1:1로 낮춰 몬테카를로의 120마력보다 40마력 더 낮은 81마력(60kW)으로 조절했다. 충돌 테스트 및 조명 요구 사항도 충족하기 위해 더 큰 5마일 범퍼와 낮은 높이의 팝업식 밀폐형 빔 헤드라이트를 장착하여 공차 중량을 약 60kg 더 추가했고 촉매를 냉각하기 위해 엔진 커버에 두 개의 통풍구를 추가로 만들었다.
  • 두번째 시리즈(몬테카를로)
    새로운 부벽(buttresses)[4] 디자인, 베타의 14인치 알로이 휠과 배지가 특징이다. 2년의 공백기를 거쳐 1980년에 출시되었고 베타라는 접두사는 사라지고 몬테카를로라는 뱃지가 붙었다. 외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1979년 델타에 처음 도입된 란치아의 시그니처 스플릿 그릴과 시인성 향상을 위한 부벽 디자인, 그리고 후면에서 모델 배지 대신 전폭 브러시드 알루미늄 스트립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더 커진 브레이크 로터와 캘리퍼를 위해 베타의 더 큰 8스포크 5,5Jx14" 알로이 휠을 채택했으며, 브레이크 잠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브레이크 서보를 제거했고 실내에는 기존의 2스포크 스티어링 휠 대신 새로운 3스포크 모모 스티어링 휠과 개선된 트림 및 패브릭이 적용되었다. 엔진도 더 높은 압축비, 마렐리 전자식 점화장치, 토크 향상을 위한 새로운 카뷰레터 등 많은 부분이 수정되었다.

3. 문제점

란치아는 미국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구 사항들을 충족하기 위해 더 높은 스프링, 캐스터 하향, 범프 스티어 등을 적용했는데 미국 시장용 스콜피온의 핸들링이 많이 지적을 받았으며 이는 차량 설계면에서 신뢰성을 충족하지 못했다.

주로 차량 내부의 엔진 소음이 비판 받았다. '로드 & 트랙'에서는 "배기 장치가 억압된 4기통 엔진의 쌕쌕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은 거의 즐거움이 없었다"며 차량에 대한 가장 큰 불만 중 하나로 소음을 꼽았고, 베타 몬테카를로와 스콜피온의 브레이크가 지나치게 심화되어 비 내린 상태에서 앞바퀴가 쉽게 잠기는 문제를 두고 "심각한 앞쪽 제동 잠김으로 37%가 닳아버린다고 비판했다. '모터'지에서는 "코너에 접근 할 때 앞바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쉽게 잠기는 것을 발견했다."고 전했고 엔진 소음에 관해서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 결과, 브레이크 서보 제거를 포함한 일부 엔지니어링 변경으로 제동 문제가 해결되는 동안 1978년 잠시 생산을 중단했다. 또한 변속기의 거친 단수 변경은 흔했으며 이는 미드 엔진 자동차의 일반적인 특성과 같이 부싱이 마모됨에 따라 증가했다. 후방 크로스 멤버는 설계 결함으로 발견되었는데 사용 된 금속이 너무 얇아서 부식 및 고장에 취약했다. 그리고 모든 란치아 차량들의 공통점인 녹 문제도 있었는데 주로 방화벽과 휠 벽, 차체 바닥면에서 발생되는 것으로 알려져 몬테카를로, 스콜피온 조기 사망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건조한 환경에 보관하지 않는 한 해결하기 어려웠다. 때문에 차량의 녹을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예방이 필요하다.

4. 레이싱에서

  • 아바스 SE 030
    몬테카를로의 기반인 X1/20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과물은 베타 몬테카를로 양산차가 아니라 아바스 030이었다. 280마력의 3.2리터 V6 엔진과 엔진에 공기를 공급하는 지붕 위의 스노클을 포함한 공기역학적 장치를 장착하고 아바스의 레드-옐로우 배지를 단 SE 030은 처음에 모터스포츠에서 124 아바스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피아트는 당분간 마케팅상의 이유로 판매량이 많은 131의 레이싱 버전을 더 선호했고, 아바스 030은 단 두 대만 제작되었다.

    1974년 두 대의 프로토타입 차량 중 한 대는 당시 인기 있던 도로 및 트랙 레이스로 구성된 지로 디탈리아 오토모빌리스티코(Giro d'Italia automobilistico) 챔피언십에 참가했다. 조르지오 피아타와 크리스틴 베커가 주행한 이 차는 안드루에 비체 듀오의 란치아 스트라토스 터보에 이어 놀라운 2위를 기록했다.
파일:79_lancia_beta_monte_carlo_turbo_02.jpg
* 베타 몬테카를로 터보
그룹 5 레이스카로, 1979년 5월 실버스톤 6시 레이스에 출전하면서 8년 만에 란치아가 처음으로 출전한 레이싱 카였다. 1979년 월드 챔피언십의 2리터 미만 부문과 1980년 월드 챔피언십, 1981년 WEC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한스 헤이어 또한 1980년 독일 레이싱 챔피언십(Deutsche Rennsport Meisterschaft)[5]에서 우승했고 1980년 지로 디탈리아 오토모빌리스티코에서도 1, 2위를 차지했다.

실루엣만 양산차였던 몬테카를로 터보는 차체 중앙 부분만 양산차와 공유했고 앞, 뒤 튜블러 서브 프레임이 서스펜션을 지지한 구성에 엔진이 장착되었으며, 콜로티 기어박스가 그대로 중앙에 장착되었다. 세 개의 엔진이 사용되었는데 440마력의 1,425.9cc, 490마력의 1,429.4cc, 490마력의 1,773.0cc 엔진이 번갈아 적용되었다.
  • 랠리 037
    란치아의 성공적인 그룹 B 랠리카인 란치아 랠리 037의 기반 차량이 몬테카를로였다. 1982년에 데뷔한 이 차는 1983년 WRC 제조사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037은 몬테카를로 터보와 마찬가지로 몬테카를로 양산차에서 센터 섹션만 유지하고 다른 부분은 거의 개조되었으며, 슈퍼차저 엔진은 몬테카를로와 마찬가지로 미드십 구성에 가로로 장착되지 않고 세로로 장착되었다.

5. 둘러보기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00387B><tablealign=center><tablebgcolor=#00387B>
파일:란치아 로고.png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차급 생산 차량 단종 차량
<colbgcolor=#00387B> 경차 - Y10
소형차 입실론 Y
준중형차 - 알파 · 다이얼파 · 베타(1909) · 엡실론 · 델타(1911) · 테타 ·
카파(1919) · 디카파 · 람다 · 아테나 · 아피아 · 델타 · 프리즈마
중형차 - 풀비아 · 베타 · 데드라 · 리브라 · 플라비아(2011)
준대형차 - 플라미니아 · 플라비아(1961) · 감마 · 테마 · 카파 · 테시스
그랜드 투어러 - 오렐리아
MPV - 제타 · 페드라 · 무사 · 보이저
스포츠카 - 몬테카를로
레이스카 - 랠리 · 스트라토스
트럭 - 3Ro
장갑차 - 1ZM
피아트의 차량
알파 로메오의 차량
마세라티의 차량
아바스의 차량
}}}}}}}}} ||



[1] 어원은 모나코 공국몬테 카를로이지만 띄어쓰기 없이 한 단어로 철자가 표기되었다.[2] 미국 시장 수출용 명칭.[3] 당시 오른쪽 미러는 옵션이었다.[4] 본래 건축학적 용어로, 지지나 보강 역할을 하는 벽에 기대거나 돌출된 구조 부재로 정의된다. 자동차 공기역학 부문에서 쓰이며 차체 C 필러 뒤쪽에 추가로 지지대 역할을 함과 동시에 공기역학점 이점을 가지고자 제작한다. 대표적으로 부벽 형태가 사용된 차종은 페라리 599, 포드 GT, 혼다 NSX 등등이 있다.[5] DTM의 전신 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