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5-03 10:05:51

디노케팔로사우루스

디노케팔로사우루스
Dinocephalosaurus
학명 Dinocephalosaurus orientalis
Li, 2003
분류
<colbgcolor=#fc6> 동물계 Animalia
척삭동물문 Chordata
계통군 석형류 Sauropsida
†프로토로사우루스목 Protorosauria
†디노케팔로사우루스과 Dinocephalosauridae
디노케팔로사우루스속 Dinocephalosaurus
  • †디노케팔로사우루스 오리엔탈리스(D. orientalis)모식종
    Li, 2003

1. 개요2. 상세

1. 개요

트라이아스기인 2억 4500만 년 전부터 2억 4400만 년 전까지 아시아에 살았던 해양 파충류. 속명의 뜻은 '무서운 머리 도마뱀'. 종명은 '동쪽의'란 뜻으로 테티스 해의 동쪽에 살아서 이러한 종명이 붙었다.

2. 상세

2002년 중국 구이저우성 판현 신민구 양 쥐안 마을에서 목뼈 여러 개와 턱뼈 왼쪽 부분을 제외한 거의 완전한 두개골이 발견되었다[1]. 이후 루오핑 지역에서 표본이 추가적으로 벌견되었는데[2] 그 중 2008년에 수집된 표본 하나는[3] 뱃속에 새끼가 들어 있었으며 새끼의 목뼈, 앞다리, 그리고 여러 다른 요소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몸길이는 5~6m로 발견된 표본은 두개골이 융합되어 있고 친척인 타니스트로페우스의 어린 개체에서 볼 수 있는 뾰족한 이빨이 없다는 점에서 성체로 여겨진다. 두개골은 낮고 좁으며 타니스트로페우스에 비해 전상악골과 상악골이 길고 모두 앞쪽 아랫부분 모서리에서 만난다. 콧구멍은 눈구멍의 함몰된 부분의 아래쪽 끝에 위치했다. 전상악골의 두께로 보아 콧구멍은 주둥이 끝에서 뒤로 젖혀졌을 것이다. 두 주둥이뼈의 아랫부분 가장자리에는 각각 5개와 12개의 이빨이 늘어서 있다. 아래턱에는 15개의 이빨이 나 있다. 타니스트로페우스와 달리 눈구멍은 앞쪽이 좁은 복숭아 모양을 하고 있었고 두개골 꼭대기의 두정골은 넓고 평평했으며 타니스트로페우스에게는 존재하는 정중앙의 능선의 흔적이 없다.

타니스트로페우스와 마찬가지로 1m의 몸통에 비해 상당히 긴 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타니스트로페우스와 달리 목뼈 각각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고 목뼈의 개수는 최소 27개이고 이중 19번째 목뼈가 제일 길어 길이가 91mm이고 목뼈 속이 비어 있지 않았다. 목뼈의 신경 척추는 오목한 상단 가장자리가 있는 낮고 용골처럼 생긴 신경 척추와 척추의 앞뒤 관절면이 모두 오목한 것이 특징이다. 경늑골은 자유로운 정면 돌출부가 있어 목뼈를 따라 정렬되어 목 앞쪽의 두세 개의 연속된 관절에서 목 뒤쪽의 대여섯 개의 연속된 척추 관절을 연결했다. 척추에는 갈비뼈와 관절을 이루기 위한 뚜렷한 돌기가 없었다. 각 배갑은 3개의 부분으로 나뉘었으며 1개의 중앙선이 있다. 몸통의 척추는 최소 26개였으며 모두 요추뼈나 갈비뼈가 있었고 천골과 미늑골은 해당 척추와 융합되지 않았다.

다리는 비교적 크고 발은 지느러미 모양이었다. 다리가 굵었지만 타니스트로페우스와 달리 앞다리와 뒷다리의 길이는 거의 비슷했고 골화가 잘 되지 않았고 노토사우루스류와 비슷했다. 앞발목뼈 중에서는 6개만, 뒷발목뼈 중에서는 3개만 골화되었다. 뒷발목뼈와 뒷발꿈치뼈는 서로 연결되지 않았고 대신 단순하고 둥근 골화를 형성했다. 5번째 중족골은 단순하고 곧은 모양이었고 적어도 5개 이상의 지골을 평균보다 많이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는 목을 옆으로 구부리고 목을 곧게 펴 갈비뼈에 부착된 목 근육을 작용시켜 경부 갈비뼈가 바깥으로 벌어지게 하고 머리를 앞으로 숙여 식도의 부피가 증가하게 해 먹이를 흡입해서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가설이다. 그래도 먹이를 머리부터 삼키고 소화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긴 목을 수직으로 뻗어 호흡하기보다는[4] 호흡을 위해 수면에 가까이 접근할 때 목을 거의 수평에 가깝게 했을 것이다. 목을 수평으로 하면 체형이 길어져서 신체 길이가 길어져 파도의 저항을 감소시키고 수면에서의 이동을 용이하게 했다. 신체 구조상 육지로 올라올 수 없어 몸 속에서 알을 부화시켜 새끼를 낳았을 것이다.
[1] 이 화석은 처음에는 2억 3000만 년 전의 것으로 여겨졌지만 현재는 우라늄-납 동위원소 연대 측정법을 기반으로 2억 4400만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2] 이 화석이 발견된 지층은 2억 4500만 년 전에서 2억 4400만 년 전의 것이다.[3] 수집 당시 풍화 작용으로 인해 표본이 세 조각 났으며 그 틈이 현대의 흙으로 채워져 있었다.[4] 그랬다면 수면과 몸통 사이의 압력 차이가 충분히 커서 폐가 부풀어 오르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