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6-14 08:41:38

드라코(고대 그리스)

1. 개요

드라코 (Ελληνικά: Δράκων, 영어: Draco)는 기원전 624 ~ 620년경 아테네의 법전 (법률)을 최초로 성문화한 아테네의 초대 입법가다. 드라코의 법은 당시 구전법을 대체해 나무 · 석판에 새겨 두어 공개했으며, 고의 살인과실치사를 명확히 구분한 점이 특징이다. 그러나 매우 가혹해 모든 범죄에 사형을 포함했고, 이러한 잔혹성으로 인해 ‘드라코니안(draconian)’이라는 용어가 생기게 되었다.

2. 생애

생몰 연대는 대부분 ‘기원전 620년 전후’에 법전을 제정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정확한 생년월일은 기록에 없다. 드라코는 주로 귀족 계층 출신으로 추정되며, 구전법의 모호함과 귀족의 자의적 해석으로 야기된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 입법자로 기용되었다.

전해지는 일화에 따르면, 드라코는 아이기나 (Aegina)에서 법 제정을 마치고 귀환 중 관중이 선물한 옷더미에 깔려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다만 이 죽음의 전설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가 불확실하다.

3. 법전(드라코니안 헌법)

3.1. 제정 배경

귀족들이 구전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사적 복수 · 분쟁이 만연했기에, 이를 방지하고 법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드라코가 법령을 성문화했다.

3.2. 법 조문 및 특징

  • 모든 법률을 목제 축(轴)이나 피라미드형 석제 비석에 새겨 공개했으며, 이를 통해 문서 · 판독 가능성을 높였다.
  • 고의 살인 (intentional homicide)은 사형, 과실치사 (unintentional homicide)는 추방 또는 재산 몰수로 구분했다.
  • 절도, 사채 미상환자 노예화, 잡초 (배추) 도둑에 이르기까지 경미한 위반도 사형에 처했다.
  • 귀족층의 경제적 · 정치적 특권을 유지하고, 구체적 기준 (미나 단위 재산, 병역 등)에 따라 공직 자격을 설정했다.

3.3. 의의와 영향

  • 아테네 법전의 최초 성문화로서 법 앞의 평등이 시행되는 토대를 마련했다.
  • 잔혹성은 논란을 일으켰으며, 기원전 594년 솔론이 대부분의 법률을 폐지했으나 살인 관련 조항은 유지했다.
  • 이후 ‘draconian (잔혹한, 가혹한)’이라는 용어가 유럽어권에 널리 확산되었다.

4. 여담

  • “법은 잉크가 아닌 피로 쓰여졌다 (written in blood, not ink)”라는 전설적인 묘사는 플루타르코스 같은 고대 작가의 언급에서 유래했다.
  • 법전이 목재 또는 석판 축 형태로 제작된 이유는 회전식으로 읽을 수 있게 하려는 고도의 설계 의도 때문이다.
  • 드라코가 죽었다는 전설의 소재는 드라코라는 이름이 ‘ (dragon)’을 의미하며, 이는 상징적 · 신화적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 드라코가 실제 인물이었는지, 아니면 상징적 법의 화신이었는지는 학계에서 여전히 논쟁 중이다. 일부는 ‘드라코’가 아크로폴리스의 신성한 (dragon) 숭배와 연관된 상징인물일 수 있다고 본다.